- 서방 우월주의의 끝?
PETER TASKER
조지 오웰에 따르면 본격적인 스포츠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영국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섕클리의 말을 빌리면 축구는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최근 있었던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유치경쟁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대결의 최종 결과, 러시아와 카타르가 미국·잉글랜드·일본을 물리치고 유치권을 따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을 상징하는 결과였다. 신흥국 세계의 현금 두둑한 강국들이 재정난에 허덕이는 옛 G7(선진 7개국) 회원국들을 쉽게 따돌렸다. 패자들은 심판 판정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억지를 부리듯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FIFA는 나름대로 축구의 유망한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전략에 입각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더 비판적인 주장도 있었다. 영국 평론가들은 곧바로 파울 플레이라고 항의했다. 그게 아니라면 맥킨지에 의뢰해 실시된 평가에서 최고점을 획득한 잉글랜드가 실제 투표에선 어떻게 꼴찌를 기록할 수 있겠는가? 두 가지 주장 모두 타당하다. 하지만 축구가 여느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고도성장하는 신흥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건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세계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이 글로벌 성장의 62%를 담당하는 반면 G7 국가들이 맡는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이는 그런 신흥시장에 방송권, 스포츠웨어, 전자 게임 그리고 기타 현대 스포츠 산업이 낳는 고수익 제품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투명한 자금조달로 악명 높은 축구가 신흥국가를 더 편하게 여기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FIFA가 자신들이 지명한 사람들의 돈세탁 면책특권을 인정해 달라고 잉글랜드 유치위원회에 요구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축구계의 교황으로 알려진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FIFA 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막판 연설에서 이미 위원 두 명의 투표자격을 박탈시킨 영국 탐사보도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러시아에선 그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관들의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마피아와 정부가 손과 장갑처럼 한통속이다. 마찬가지로 카타르도 언론이 비리를 잘 들춰내거나 야당 활동이 활발한 편은 아니다.
마치 자석에 끌린 듯이 신흥시장으로 몰려드는 산업은 축구뿐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들 신흥시장에서 수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 벌어지며 구미의 대기업들은 사상 처음으로 신흥시장의 선두기업들과 직접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 월드컵 유치전에서 미국과 잉글랜드가 그랬듯 그들도 입찰경쟁에서 같은 꼴을 당하게 될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위키리크스 덕분에 영국의 한 지도층 인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됐다. 앤드루 왕자는 키르기스스탄의 한 오찬 모임에서 영국이 사우디 아라비아와 체결한 항공우주 계약과 관련된 부패혐의 조사를 ‘멍청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으려 애쓰던 기업가들은 그의 발언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위키리크스도 똑같은 딜레마의 상징이다. 말하나마나 이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의 내부 통신문은 공개하지 못한다. 미국과 우방들은 투명성과 국가안보 간의 균형을 두고 씨름할지 모르지만 신흥국 세계에선 그런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위키리크스를 개설하는 사람은 결국 콩밥을 먹게 되기 십상이다. 중국은 노벨상 수상자를 구금하고 시상식에 참석하는 나라에 무역 제재조치를 가하겠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는 나라다. 마르크스의 후임자는 자본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근대 정치학의 시조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최근까지 정부가 폭정을 하고 부패가 뿌리 내린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나머지 세계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서방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모델과의 통합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그 글을 쓴 시점은 이제 돌이켜보면 서방 우월주의의 절정으로 여겨지는 냉전 종식 직후였다. 요즘의 의문은 신흥세계가 서방에 수렴하느냐가 아니라 서방이 경쟁력을 유지하려 신흥세계로 수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완전히 판이 뒤집어지게 된다.
[필자는 헤지펀드 운용사 아커스 인베스트먼트의 창업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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