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요리기행
스칸디나비아 요리기행
북유럽 요리를 처음 맛본 곳은 아이슬란드였다. 2년 전 겨울 1주일간의 체험이었다. 고래, 순록 그리고 두 달간 땅속에서 삭힌 뒤 몇 달 더 건조시킨 상어고기 하우칼을 먹어 봤다(반주로는 ‘흑사병’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네덜란드 진 ‘브렌빈 슈냅스’가 어울린다).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이 국민요리는 북대서양 요리를 연상케 하는 기묘하고 색다른 맛의 음식을 상징하게 됐다.
따라서 지난 11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한 주를 보내게 됐을 때 처음엔 속이 울렁거렸다. 루트피스크(대구 요리)와 청어 절임을 눈 꾹 감고 먹어줘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메스꺼운 느낌은 이 동화 같은 도시에 세계 최고의 음식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라앉았다. 음식평론가와 요리사를 대상으로 해마다 실시되는 권위 있는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초 노마가 최고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2003년 문을 연 뒤 ‘뉴 노르딕’ 요리 개념을 창시한 노마의 정상 등극은 덴마크 고급요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다. 심사위원들은 선정 사유에서 “코펜하겐이 더는 미식요리 지하철의 종착역이 아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이 도시가 이미 마지막 역은 아니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음식점 평가지 미슐랭으로부터 스타 등급 판정을 받은 식당 수가 마드리드, 베를린 같은 미식의 메카에 못지 않으며 암스테르담, 밀라노 또는 베네치아보다 많다. 그리고 북유럽 국가에서 종종 샛별이 떠오르기도 했지만(핀란드의 체즈 도미니크, 스웨덴의 마티아스 달그렌, 오악센 크로크) 코펜하겐의 음식점들은 깊이와 다양성 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이처럼 코펜하겐의 미식세계는 빠르게 세상에 알려지는 추세다. 따라서 친구 레이와 함께 코펜하겐에 48시간을 체류하게 됐을 때 첫 24시간은 현지 미식탐험에 투자하기로 했다. 첫 방문지인 노마의 요리사이자 현지산 식재료를 고집하는 레네 레드제피는 모든 식재료(초콜릿과 커피는 제외)를 스칸디나비아, 그린란드, 패로 제도에서 조달한다. 요리는 해산물과 가공육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익지 않은 말오줌나무 열매와 창꼬치, 뜨거운 돌에 얹어 나오는 랑구스틴(작은 바닷가재) 볶음 등에 덴마크식 마카로니와 치즈 같은 색다른 수입 재료가 덤으로 나온다. 바로 아래쪽 운하에 띄운 주거용 배의 한 요리 연구실에서 레드제피는 특정 지역산 빈티지 당근과 ‘감자 캐비아’ 같은 이색 음식으로 실험을 한다.
이 식당은 테이블을 12개밖에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니 2월 중순까지 예약이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운하 한 곳의 바로 위에 자리잡은 19세기 창고 건물 내에 있는 이 음식점은 정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노마는 덴마크 특유의 휘게(hygge) 개념을 제대로 구현한 음식점으로 유명하다. 휘게는 번역하기가 어려운 용어로 고급 와인, 촛불, 좋은 친구를 수반하는 안락함에 가깝다.
점심식사는 헤르만에서 하기로 했다. 눈부시게 세련된 스타일의 부티크 호텔 님프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식당이다. 코펜하겐의 티볼리 가든이 내다보이는 이 음식점의 요리사 토마스 헤르만이 내놓는 음식은 그 역사적인 놀이공원만큼이나 재미있다. 실제로 일곱 코스의 식사는 탄성을 자아내는 요소가 듬뿍 담겼다. 음식들은 생명유지의 수단이라기보다 오감을 충족시키는 작품이라고 부를 만하다. 헤르만의 전위적인 성향은 에멀전(오이), 젤(해조), 심지어 인공 눈(아스파라거스)을 사용해 맛에 미묘한 변화를 준 솜씨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상차림은 사이키델릭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아뮈즈 부슈(식당에서 제공하는 애피타이저)는 대형 스푼 같은 기능을 하는 반짝이는 돌 위에 얹혀 나왔다. 또 어떤 수프는 그릇의 드라이아이스에서 수 분간 연기를 뿜어내 내용물보다 용기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그곳에서 세 시간 가까이 식사를 한 뒤 우리는 티볼리 공원을 가로질러 폴로 향했다. 스타 요리사 폴 커닝햄이 휘게 분위기로 꾸민 전면 유리 구조물 안에 세운 미슐랭 스타 등급의 음식점이다. 커밍햄은 최근 어느 상하이 호텔의 특별초청으로 한 주 동안 출장을 다녀왔으며 자신의 다섯 번째 요리책을 한창 홍보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 쾌활한 영국인은 양념에 재운 검정 자두에 올리브 오일을 넣은 샤벳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직원 식사시간 중 몇 분을 할애해 빌 클린턴이 자신의 식당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그 전 대통령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호원들의 주의를 무시하고 클린턴에게 말을 걸고는 그에게 자신의 요리책 한 권을 건네줬다. 몇 주 뒤 클린턴은 자필 메모를 보내 그 요리책을 비서에게 시켜 영어로 번역 중이라고 알려 왔다.
저녁식사 때는 밀케&후르티칼의 환상적인 세계로 찾아 갔다. 벽지에 바퀴벌레를 그려 넣고, 화장실에 화려한 장식과 환각 조명을 설치하고, 곤충 울음소리 같은 소음이 포함된 세 시간짜리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는 고급 음식점은 아마도 이 곳이 세계에서 유일할 듯하다. 두 명의 수석 요리사 중 하나인 야콥 밀케는 헤르만 같은 실험주의자다. 코스에 포함된 당근 ‘밭’ 요리는 식용 커피 분말로 ‘흙’을 표현했지만 식용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어줘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파격의 성패는 순전히 운에 좌우된다. 호박과 성게 라비올리는 뜻밖에 궁합이 잘 맞았지만 근대 뿌리는 함께 나온 화이트 초콜릿과 상극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저녁식사 값(와인 포함 700달러)이면 차라리 재료를 구입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은 뒤 남는 돈으로 주방기구를 새로 장만하는 편이 낫겠다. 다음 날 밤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티볼리를 다시 방문했을 때에야 마침내 우리가 알 만한 음식을 발견했다. 대니시 페이스트리였다.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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