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닉슨의 귀환

오페라 무대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고 상상해 보라. (1972년)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아리아를 부른다. 그는 자신의 방중 소식을 서방에 방송하는 뉴스 산업의 놀라운 기술을 노래한다. 그리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으로부터 공자(孔子)에 관한 철학적 강의를 듣는다. 그 다음엔 마오의 부인이 등장해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가안보 보좌관)를 모욕하는 내용의 격렬한 공산당 선전극을 펼친다. 상징적 의미가 큰 미·중 회담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침실로 퇴장한다. 그들은 세계를 새롭게 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닌가 불안해 한다. 그리고 막이 내린다.
작곡가 존 애덤스의 첫 오페라 작품 ‘중국의 닉슨(Nixon in China)’이 1987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초연됐을 때 관객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닉슨의 성대모사를 하는 코미디언 리치 리틀의 모습이 오락가락했다. 관객의 절반 정도는 닉슨 대통령을 비난하는 가벼운 풍자극이려니 생각했을 테고, 나머지 절반은 미니멀리즘을 신봉하는 미국 작곡가가 과연 제대로 된 오페라를 만들었을까 의구심을 품었을 법하다.
하지만 오늘날 애덤스는 현존하는 작곡가 중 미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곡가로 꼽힌다.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뉴욕 필하모닉은 애덤스에게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을 의뢰했고, 애덤스는 이 곡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중국의 닉슨’이 마침내 합당한 예우를 받게 됐다. 지난 2월 2일 피터 셀라스가 연출하고 애덤스가 지휘를 맡은 ‘중국의 닉슨’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극장 측은 2월 12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HD 라이브 시리즈’의 일환으로 미국 내 약 600개 영화관에서 이 작품의 공연 실황을 상영하며, PBS는 올해 안에 방송을 내보낼 예정이다.
메트로폴리탄 같은 일류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오르는 동시에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돼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은 ‘중국의 닉슨’이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이 작품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국빈만찬을 베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싱턴 정가와 케이블 TV의 시사평론들이 당파주의 색채로 우려를 자아내는 요즘 이 작품은 1972년 닉슨의 방중을 초당파적인 신화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닉슨이라는 인물 속에 숨겨진 (실제 정치인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깊이를 조명한다.
앨리스 굿먼이 쓴 대본에서 이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목은 닉슨이 냉전시대였던 당시 공산국가인 중국을 방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닉슨은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을 날아서 왔다”는 등 진부한 표현을 늘어놓은 뒤 자신이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베트남전에서 희생된 미군의 시체들을 뛰어넘어야 했다”고 말한다. 상투적이고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상상력이나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의 복잡성을 뛰어넘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을 본다.
공연 리허설 당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애덤스의 모습에서 이런 특성을 살리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애덤스는 어떤 대목에 이르렀을 때 저음 악기 파트에 “소련군처럼 엄격하게”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또 닉슨이 사회적 비난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자신을 겨냥하는 언론에 관한 아리아(‘생쥐들이 침대 시트를 갉아먹기 시작하네’)를 부르는 대목에선 트롬본 파트에 듀크 엘링턴의 재즈처럼 으르렁대듯 연주하지 말고 좀 더 서정적이고 슬픈 톤으로 연주하라고 요청했다. 닉슨을 희화화하기보다는 그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도록 하려는 의도에서다. 닉슨의 부인 패트 역을 맡은 여가수가 아리아를 끝내자 애덤스는 명랑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딕(닉슨의 애칭)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닉슨이 이렇게 환영받기는 정말 오랜만이니 적절한 인사 아닐까?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사이드미러 펼쳐진 차 문 열었다가...형사가 “누구냐”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SMSA] "만족하는 순간, 끝" CHOO의 메시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3000P 돌파' 파죽지세 코스피…증권가 "3100선까지 갈 것"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벤처투자·창업·IPO ‘트리플 위축’…“정책 물꼬로 활력 되찾아야"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최종석 라메디텍 대표 "하나뿐인 레이저 미용기기, 러브콜 쏟아져"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