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상승기 기업 생존법] 新원가절감 ‘생각이 힘이다’

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기업이 원가절감 압박에 다시 내몰리고 있다. 일부 업종은 더 이상 원가를 줄일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하소연한다. 그동안 줄일 수 있는 것은 다 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가 부담을 곧바로 상품 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다. 한 대기업 식품업체 관계자는 “소비자 반발을 우려해 출고가를 올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기에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 눈치도 봐야 한다. 협력사에 단가 인하 압박을 하는 것도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이 와중에 남들이 생각지 못한 참신한 아이디어로 원가절감에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 특히 나 홀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이종업체·협력사와 ‘윈-윈 전략’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키우는 곳이 늘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컨설팅 회사인 맥큐스, 네오플럭스의 컨설팅 사례와 자체적으로 원가를 줄이는 데 성공한 기업을 취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감한 사고 전환과 실행력이었다. 지난 10년간 110개 기업의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컨설팅해온 유찬 맥큐스 대표 인터뷰도 실었다.
2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다. 당시 기업의 화두는 ‘생존’이었다. 위기 때 더 투자하라는 경영이론은 한가한 경영학자의 수사일 뿐이었다. 비용을 줄여 우선 살고 보는 게 급선무였다.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 글로벌 기업과 달리 국내 대기업은 대부분 사람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강도 높은 ‘원가절감과의 전쟁’을 벌였다. 삼성전자와 SK, 포스코는 임원 연봉과 직원 성과급을 줄였다. 현대·기아차는 감산으로 버텼다. LG전자는 3조원 비용절감 프로젝트를 벌였다. 두산은 주류사업을 매각했고, 금호아시아나는 사옥을 팔았다. 대부분 기업이 대형 프로젝트 투자를 연기했다.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불황 여파에도 국내 기업은 좋은 실적을 냈다. 2009년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늘었다. 순이익은 50%나 늘었다. 2010년은 더 좋았다. 올해 국내 상장사는 주주와 투자자에게 사상 최대의 배당금을 나눠줄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4분기 국내 500대 기업의 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나 급감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선전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런 실적 개선의 요인으로 원화 약세, 수출 경쟁력 강화, 국내외 경기회복 외에 기업의 ‘원가절감 노력’을 꼽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원가절감의 ‘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경영컨설턴트는 “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거나 협력업체에 부담을 넘겨 이익을 늘린 기업이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원가절감 압박을 받을 때 ‘쉬운 길’로 가려는 유혹을 받는다. 공급업체에 납품가격을 낮추라고 압박하고 무차별로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이 실적 잔치를 벌일 때 중소기업은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린다. ‘귀사의 원가절감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한 구매정보 교류 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설문 내용이다. 3월 10일 현재 151명이 참여한 이 설문에서 42명(27%)이 ‘개선활동’이라고 답했다. 둘째로 많은 답은 ‘일방적 단가 인하 유도(41명)’였다. 지난해 말 정부가 전국 219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44%가 대기업의 단가 인하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으로 신(新)원가절감 시대의 파고를 넘는 기업도 많다. 막연히 돈줄을 죄는 것이 아니라 사고 전환을 통해 낭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조업단축, 자산 매각, 연봉 삭감, 복지 축소, 통신비나 출장비·소모품비 축소 등 전통적 비용절감 방식과도 차이를 보인다. 이종업체와 협의해 구매 비용을 줄이고 전혀 다른 업종의 원가절감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또한 한쪽 공장에서는 버리고 다른 공장에서는 돈을 주고 사는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손을 잡는 ‘윈-윈 사례’도 있다. 협력사를 압박해 공급가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와 원가절감 방안을 공동 개발하고 이익을 나누는 방식도 주목 받는다.
원가절감에 성공한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사고 전환과 실행력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과감히 목표를 세워 실행했다. 물론 그 근간에는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 임직원의 자발적 노력, 부서 또는 타 업체·협력사 간 소통이 깔려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원가를 어디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전략이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비용을 몇 퍼센트 줄여라’라는 두루뭉술한 목표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구매 부서라면 단순히 싸게 구입하는 것을 넘어 ‘전략적 조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삼성전자가 좋은 사례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제품 간 부품 공용화와 표준화를 추진했다. 이를 통해 2000년 60만 개에 달하던 부품 수를 2005년 22만 개까지 줄였다. 매출액 대비 재료비 비중을 6% 감축하면서 이 회사는 같은 기간 5조원 가깝게 비용을 절감했다.
전문가들은 원가절감은 무차별로 지출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조언한다. 또한 근시안으로 비용절감을 추진할 경우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성장 잠재력만 훼손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미국 자동차 빅3가 대대적 인력 감축으로 불황을 넘겼지만 체질개선에 실패해 2008년 위기를 맞은 것을 상기하자.
기업들이 ‘콜럼버스 달걀의 지혜’를 발휘할 때가 왔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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