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의 블랙스완에 대비하는 법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내털리 포트먼이 열연한 영화 ‘블랙스완’이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가 되길 열망하는 발레리나의 열정과 욕망을 그려낸 내털리 포트먼의 연기,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연출력, 가장 아름다운 육체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가혹하게 몸을 학대해야 하는 발레라는 소재 선택 등 다양한 요소가 매력적이다.
영화는 아름다운 백조를 연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관능적이고 탐욕적인 흑조를 연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아름답고 순진한 발레리나 니나(내털리 포트먼 분)의 내면을 포착한다. 완벽한 흑조가 되고 싶은 욕망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파괴해 나가는 모습을 무서우리만큼 섬세하게 보여준다.
블랙스완, 즉 흑조라는 말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왠지 불편하고 꺼림칙하다.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며 매력적인 긴 목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익숙한 백조가 검은색이라니! 그래서 블랙스완이라는 용어는 처음 생길 때부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을 블랙스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17세기 말 네덜란드 탐험대가 호주에서 흑고니를 발견한 다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2007년에는 금융시장에도 블랙스완이 등장했다. 레바논 출신 금융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렙이 『블랙스완』이라는 책을 내면서였다.
블랙스완이라는 개념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작아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힘들지만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는 있는, 그런데 결국 실현된 사건을 의미한다. 9·11테러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진행형인 일본의 대지진 같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상은 해볼 수 있지만 실제로 경험할 때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사후적인 설명이나 분석만 가능한 부정적인 일이나 사건을 가리킬 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백조의 호수라는 전통적인 발레에서 백조의 사랑을 빼앗는 흑조처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9·11테러나 일본의 대지진 같은 블랙스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블랙스완이 존재하고, 발생했을 때는 그 고통과 파급효과가 엄청나기에 무시할 수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블랙스완에 초점을 맞추고 완벽하게 대비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9·11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아랍인을 감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건물이나 원전 등을 규모 10이 넘어도 끄떡없도록 설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나 일본의 쓰나미를 보고 평생 해운대에 가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선 안 되는 투자를 결정할 때 블랙스완에 대한 걱정은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만약 북한과의 갈등이 심해져 심각한 전쟁 상황이 벌어진다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어지고 있는 재스민 혁명이 잘 마무리되지 않아 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유럽의 재정위기가 더욱 심각해 진다면…. 가능성은 매우 작지만 실제로 발생했을 때 감당하기 힘든 일을 생각해 보면 어디에도 안전한 투자처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치명적인 블랙스완을 경험하곤 한다. 내가 주식투자를 시작하자마자 시장은 폭락한다. 승승장구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이 추천하던 펀드가 내가 가입한 다음날부터 곤두박질친다.
주식시장뿐만이 아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대출을 안고 아파트를 사면 금리가 오르고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로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장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치킨전문점을 시작하면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삼겹살 장사를 시작하면 구제역이 난리다.
이런 걱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 주식이나 펀드에 대한 투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익’이라는 환상을 꿈꾸며 투자를 거부해 나가면 또 다른 실패가 불가피하다. 만약 지금 금리가 1990년대 초반처럼 10% 내외라면 누가 투자를 권유하고 누가 그런 위험을 선택하겠는가? 하지만 4%를 오가는 금리로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 없고, 결코 자산을 증식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예측은 불가능해도 반성은 가능블랙스완은 예측은 어렵지만 여러 가지 징후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사후에는 분석과 평가가 가능하다.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2008년의 금융위기 등 우리가 경험한 블랙스완은 사전에 다양한 징후와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리고 사후에 수립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살펴보면 얼마나 무모하고 무대책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각종 블랙스완에 대한 반성 후에 수립된 사후 대책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평범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위험자산에 투자할 때 그 위험성을 파악하고, 위험을 분산하고 지나친 탐욕을 버리는 것 등이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내용이다.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투자자산을 적절하게 분산하는 것, 일시적인 수익을 노리는 단기 투자보다는 장기적인 투자원칙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 등이 투자자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는 반성이다. 이런 태도를 견지하면서 투자해 나간다면 블랙 스완 때문에 겪는 고통을 줄여나갈 수 있다.
영화 ‘블랙스완’의 마지막 장면에서 니나는 완벽한 흑조를 표현하고 나서 “나는 완벽했다”라고 말하면서 숨을 거둔다. 완벽에의 갈망과 강박이 그녀의 삶을 끝장내버린 것이다. 『블랙스완』의 저자 탈렙은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한 것(블랙스완)을 다룰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초점 맞추기다.” 모든 불확실성, 모든 리스크, 모든 블랙스완에 대한 완벽한 준비라는 불가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반성을 통해 기본에 충실하는 게 블랙스완이 주는 투자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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