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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현 SM그룹 회장의 `미친 경영` _ 시골 닭장수 중견그룹 오너 되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미친 경영` _ 시골 닭장수 중견그룹 오너 되다


진덕산업·벡셀 등 쓰러진 기업 기적처럼 살려내…우방 위해 중소 건설사 M & A 추진 골프 치지 않고 쪽방 쓰는 회장 `임직원과 회장은 다르지 않다`…`일에 미쳐라`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갔다. 청년 시절을 양계장에서 보냈다. 30대 중반에 건설업에 뛰어들어 어렵게 돈을 모았다. 우오현(58) SM그룹 회장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CEO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일에 미쳐야만 했다. 그런 ‘미침’을 밑거름으로 계열사 18곳, 연매출 1조5000여억원의 중견그룹 오너에 올랐다. 6월 1일 서울 여의도 신송센터빌딩에 있는 SM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우 회장을 만나 ‘미친 경영론’을 들었다. 그가 언론에서 과거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북 구미시에 있는 섬유업체 TK케미칼 생산공장에서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부친은 전남 고흥의 이름 없는 소농(小農)이었다. 자식들 학비를 대려면 얼마 되지 않는 논을 팔아야 했다. 그는 8남매를 뒀다. 그중 일곱째 남자 아이가 가장 명석했다. 지역 명문 상업고등학교였던 광주상고에 다녔다. 대학(전남대)도 단번에 붙었다. 그 아이는 하지만 한(恨)이 많았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큰형에게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대들기도 했다.

억울할 법도 했다. 아이는 학업을 위해 고3이던 1971년부터 장사를 했다. 양계업이었다. 병아리 몇 마리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제법 큰 양계장이 됐다. 닭 2만 수를 키운 적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는 1978년까지 양계장을 운영했다.

외롭지는 않았다. 그와 가시밭길을 함께 걸은 동료가 있었다. 전남 익산이 고향인 동료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병아리를 키웠고,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났다. 아이가 네 살 위였지만 친구처럼 지냈다. 검정 통고무신에 반바지, 그리고 흰색 메리야스. 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트럭을 개조한 차량을 몰고 다니면서 둘은 병아리를 모았고, 닭을 키웠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훗날 둘은 기업 회장이 됐다. 양계장을 계속한 동료는 닭 가공업체 하림을 만들었다. 김홍국(54) 회장이다. 다른 한 사람인 그 아이는 건설·제조업체 SM(삼라마이더스)그룹을 세웠다. 우오현 회장이 그 아이다.(※청년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이후 만난 적이 없다. 우 회장은 “언론을 통해 김 회장의 활약을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림 김홍국 회장과 운명적 만남SM그룹. 걸그룹 소녀시대가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낯선 사명이다. 우오현 회장의 이름도 귀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SM그룹의 내실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건전지 업계 2위 업체 벡셀, 강남성모병원을 지은 진덕산업이 SM그룹의 계열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구 최고 건설사 C & 우방(현 SM우방)을 인수한 곳도 이 그룹이다.

SM은 중견그룹이다. 계열사는 18곳, 임직원은 2000명이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1조4494억원, 영업이익은 989억원을 올렸다. 계열사 중엔 중견기업도 있다. 2010년 8820억원의 매출을 올린 섬유업체 TK케미칼이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이만하면 우 회장을 ‘인간 승리의 산증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게 부르는 업계 관계자도 많다. 정작 우 회장은 덤덤하다. “중견그룹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우 회장의 화법은 늘 이런 식이다. 때론 자랑하고, 내세우는 게 있어야 (기자로선) 맞장구를 치고 말꼬리를 물 수 있는데, 그게 없다. 대놓고 “이 실적은 회장의 공이 아니냐”고 물어도 손사래 치기 바쁘다. “직원이 잘해서 그렇고, 나는 한 일이 없다”면서 말이다. 힘든 ‘인터뷰이’다.

남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SM그룹 김기호 전무는 “우 회장의 원래 모습”이라고 말했다. 연매출 1조원이 넘는 SM그룹의 여의도 사옥에 가면 그의 성격이 쉽게 읽힌다. 사옥 내부는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책상과 걸상 외엔 별다른 사무용 가구가 없다. SM그룹 이장우 부장은 “그나마 이게 좋아진 것”이라고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우 회장의 방은 ‘쪽방’에 가까웠다. 회의하거나 손님을 만날 땐 부사장실을 빌려 썼다. 임원들이 “남 눈도 있으니 그럴듯한 사무실을 사용하시라”고 조언해도 우 회장은 들은 체 만 체했다.

이유는 늘 똑같았다. “사무실이 멋들어지면 사람들이 나를 더 인정하는가, 아니면 회사의 격이 한 단계 높아지는가. 경영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좋은 방이 왜 필요한가.” 우 회장은 이런 CEO다.<※SM그룹의 여의도 사옥은 1년 전 리모델링했다. M & A 성공으로 계열사 한 곳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 회장은 이전보다 큰 방을 얻었다. 그래 봤자 규모는 20㎡(약 7평)에 불과하다. 그 흔한 소파도 없다. 우 회장은 “많이 양보한 것”이라며 웃었다.>

SM그룹의 모태는 삼라건설이다. 1988년 우 회장이 설립했다. 양계장 주인이던 그가 어떻게 건설사를 창업했을까. 우 회장은 “운명의 장난과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1978년 즈음 양계업으로 큰돈을 번 그는 집 장만 계획을 세웠다. 132㎡(약 40평)의 땅에 79.2㎡(약 24평) 규모의 단층집을 지어 달라고 지역 건설업자에게 부탁했다. 첫 집인지라 많은 돈을 건넸다.



“주식 실패가 약 됐다”그런데 이 업자가 공사하던 중 돈만 먹고 튀었다. 하는 수 없이 우 회장이 직접 집을 완성했다. 얼마 후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우 회장은 깜짝 놀랐다. 집을 팔면 남는 돈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릎을 치면서 “아! 이 사업”이라고 외쳤다. “집을 지으면 당장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양계업을 곧장 접고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말이 건설업자지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1인 기업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면허 ‘집장사꾼’으로 불렸는데 우 회장은 “건설업자의 전신”이라고 했다. 그래도 우 회장은 자부심이 넘쳤다. 미친 듯이 일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공사를 시작했다. 끼니를 제때 챙긴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 어묵을 먹는 게 습관이 됐다. “그때 말이지. 오양맛살이 참 먹고 싶었당게. 비싸서 어묵만 먹었지 않소.” 그의 전라도 사투리에는 애환이 실려 있었다.

뼈를 깎는 고생 끝에 세운 건설사가 삼라건설이었다. 삼라는 삼라만상(森羅萬象·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에서 따온 사명이다. ‘우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우 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 출발은 좋았다. 창업 시기가 무엇보다 적절했다. 그 무렵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국에 아파트 붐이 일었고, 수많은 건설사가 돈방석에 앉았다.

하지만 우 회장은 ‘아파트 붐’을 타지 못했다. 친구 따라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놨던 게 패착이었다. 그동안 번 돈을 모두 투자했지만 남은 건 쪽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라건설을 세우고 긴장이 풀어졌던 것 같다. 친구가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걸 보고 유혹에 빠졌지. 어렵게 번 돈을 다 잃은 것도 모자라 삼라건설의 문을 닫아야 했다. 절망에 빠졌다.”

우 회장은 “그래도 신이 나를 버리진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992년 무렵 그가 유일하게 갖고 있던 전남 광주 땅 주변에 순환도로가 생겼다. 그는 제법 많은 보상금(1억원)을 챙겼고, 이를 종잣돈으로 삼라건설을 다시 열었다. 1993년, 그의 나이는 불혹이었다. 우 회장은 “마흔 살이 돼서야 초심을 되찾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열매가 영근다고 믿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우 회장이 주식시장에서 고배를 들지 않았다면 중견그룹 회장에 오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는 주식 실패를 교훈으로 M & A(인수합병)의 밑그림을 그렸고, 이게 SM그룹 성장의 발판이 됐다. “문득 주식에 왜 목숨을 걸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주식을 통째로 사면 어떨까 싶었지. 그때 M & A가 떠올랐다.”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가 우 회장에게는 기회였다. “외환위기 때 5000원짜리 주식이 100원이 되더라. 액면가로 따지면 자본금 500억원 규모의 기업을 10억원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더 엿봤다. 삼라건설의 탄탄한 내실이 먼저였다. 건설사는 어음거래를 한다. 어음이 돌아올 것에 대비해 여유자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갑자기 찾아오는 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 M & A 관련 공부도 해야 했다. 관련 서적을 보는 것으론 부족했다. 우 회장은 M & A 전문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했다. 시험 삼아 필드에도 나갔다. C & 그룹이 인수한 한강유람선 M & A를 시작으로 남강토건·고려산업개발 등 굵직한 M & A에 참여했다. 연전연패였지만 우 회장은 “M & A 필드의 냉정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물꼬는 2004년 트였다. 그해 건설사 진덕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때부턴 연전연승했다. 2005년 건전지 제조사 벡셀, 2006년엔 경남모직 등을 M & A했다. 2007년 남선알미늄을 인수해 SM그룹의 전열을 갖췄다. 2008, 2010년엔 각각 TK케미칼과 C & 우방을 M & A했다. 덩달아 SM그룹의 규모가 부쩍 성장했다. 그룹 매출액은 2006년 3206억원에서 2010년 1조4494억원으로 4.5배가 됐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6억원에서 988억원으로 개선됐다.

우 회장은 무너진 회사를 우량기업으로 바꾸는 능력도 뽐냈다. 2004년 5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던 진덕산업은 SM그룹에 인수된 지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 기업이던 벡셀은 SM그룹 M & A 이듬해인 2006년 흑자로 돌아섰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워크아웃 중이던 남선알미늄도 SM그룹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실적 회복에 성공했다.

2002년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됐던 섬유산업 1세대 기업 TK케미칼은 지난해 460억원의 흑자를 올린 알짜 기업으로 거듭났다. 4월엔 코스닥 재상장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TK케미칼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말 606억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난 1829억원이 됐다. 자본잉여금(자본거래에서 발생하는 잉여금)은 217억원에서 1287억원으로 493% 증가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김기호 전무는 “겨울을 지나 여름을 맞이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파산 회사, 알짜 기업으로 변신

우오현 회장은 `SM우방 임직원이 회생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파산으로 향하던 회사를 어떻게 알짜 기업으로 만들었느냐”고 비법을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영원히 좋은 회사도, 영원히 나쁜 회사도 없다.” 우 회장은 말을 이었다. “섬유업을 생각해 보자. 섬유로 옷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산업섬유가 등장했지 않나. 이젠 섬유로 배·비행기를 만든다. 그러면 사양산업이라던 섬유업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 않겠는가.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다. 한때 알루미늄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토록 잘나갔던 율산알루미늄이 망할 정도였으니 말 다하지 않았나. 지금은 어떤가. 알루미늄으로 무게를 줄이는 시대이지 않은가.”

종소리는 누가 치느냐에 따라 다르다.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죽음의 바다에 빠질 수도,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 그는 직원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회생을 이끌었다. 남선알미늄 인수 당시 쇠파이프를 들고 난리법석을 피던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았다. 회장이 생산직 직원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줄 요량으로 골프를 끊었다. 2008년엔 벡셀의 대표에 노조위원장을 앉혔다. 노조위원장이 기업 CEO에 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회장이 솔선수범하자 직원과 노조가 따랐다. 남선알미늄 노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임금동결을 결의하면서 의지를 다졌다. 연간 5억5000만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남선알미늄 구미공장의 불량률은 2008년 5110ppm에서 2009년 1756ppm으로 65%가량 줄었다. TK케미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SM그룹이 TK케미칼을 인수한 2008년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우 회장은 TK케미칼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법인카드마저 잘라 버렸다.

그러자 이 회사 임직원과 노조가 월급 10%를 자진 삭감했다. 우 회장은 “일에 미치면 못할 게 없다”며 “나와 임직원이 미치지 않았다면 죽어 가는 기업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미친 경영론’은 확고하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그가 분기를 참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임직원이 일에 몰두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을 때다. “사장이라면 여직원의 나이, 가족관계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 직원이라면 공장에 부품이 어디에 있는지 또 소화전은 몇 개가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일에 미치면 누구든 할 수 있다.”

업계의 관심은 이제 우방에 쏠린다. 초점은 우 회장이 우방을 살릴 수 있느냐다. 의문을 가질 만하다. 우방은 2009년 손실액이 1909억원에 달했다. 자본도 잠식됐다. 변변한 사업장마저 없었다. 우 회장은 “회생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 “우방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회생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우 회장의 말처럼 우방은 회복세를 보인다. 대구 괴전동·목포 옥암동에 새 사업장을 열었다. 재무구조도 점차 개선된다. 우방의 자본은 2009년 -1873억원에서 지난해 49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부채는 3403억원에서 563억원으로 줄었다. 우 회장은 “올 6월 중 투자계열사 TK케미칼홀딩스와 우방을 합병할 예정”이라며 “그러면 우방의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돼 회생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해외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몇몇 건설사를 M & A한 뒤 우방에 합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M & A를 추진하겠다는 포부다.



“6월 TK케미칼홀딩스-우방 합병”SM그룹의 이런 확장 전략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다. 무리한 팽창이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기우일 수도, 옳은 지적일 수도 있다. SM그룹은 M & A를 진행하면서 대부분 자기자본을 활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승자의 저주’는 기우다. 하지만 TK케미칼 때처럼 LBO(차입매수), 은행 파이낸싱을 활용하면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박스기사 참조).

우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TK케미칼의 인수가는 3000억원이었다. 우리로선 금융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죽음의 바다에 빠질 만한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히 문제가 잘 해결돼 금융비용을 모두 갚았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의 M & A는 하지 않을 거다.” 자기자본이 아니면 M & A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우 회장은 주말이면 종종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 내려간다. 마을 언덕을 거닐고, 시골 장에 가기도 한다. 이곳에서 얼큰한 막걸리와 도라지 안주를 먹는 걸 즐긴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사는 그로선 유일한 재충전 시간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고 그는 말했다. “다음주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느라 쉬는 것 같지도 않다.” 우 회장이 존경하는 인물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정주영 회장이 학벌이 있나, 뭐가 있나. 그런데 소 한 마리 끌고 와서 굴지의 대기업을 만들지 않았나. 일에 미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다.” 맞다. 정 회장은 일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 회장은 정주영을 빼닮았다. 그는 일에 미쳤다.



■ 우오현 회장의 말말말

“CEO여, 일에 미쳐라”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말은 투박하게 들린다.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조리 있고, 끊기는 법도 없다. 우 회장은 “부전자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친은 빈농이었다. 하지만 풍류와 해학을 즐겼고, 시조를 잘 읊었다.” 우 회장도 사안마다 적절한 비유를 들며 인터뷰를 끌어갔다. 그중엔 중소 벤처기업 CEO가 귀담아들을 만한 조언도 있었다.



▶ 새남터로 가는 북소리더라(CEO 공부를 강조하며)

“기업을 경영하려면 공부를 다양하게 많이 해야 한다. 잘 모른다고 직원에게 맡기면 큰코다칠 수 있다. 나도 검찰과 법원에 가 본 적 있다. 직원이 배신하면 끝이더라. 못 믿을 직원의 말은 새남터로 가는 북소리다.”



▶ 밭 주인에겐 돌이 보이지만 머슴 눈엔 보이지 않는다(임직원의 주인의식을 언급하며)

“밭 주인의 눈에는 정리해야 할 돌이 보이지만 머슴은 그걸 못 본다. 임직원이 회사를 자기 것으로 여길 때 기업은 성장한다.”



▶ 내 딸한테 CEO를 맡겨도 되겠네(CEO일수록 일에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CEO가 일을 대충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CEO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도 된다면 내 딸에게 그룹을 맡겨도 될 거다.”



▶ 비서에게 일주일 용돈 맡겨놔도 쓰지 않을 때가 많다(복지재단 설립 이야기를 하면서)

“올해 안에 복지재단을 만들 생각이다. 복지기금을 출원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돈이라는 게 그렇다. 쓸 곳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비서에게 일주일 분량의 용돈을 맡겨놓으면 그대로 있을 때가 많다.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올해 안에 100억원가량은 출연할 거다.”



■ SM그룹 승자의 저주 없나

“금융기법 활용한 M & A 안 한다”


SM그룹은 특별한 M & A 원칙이 있다. 자기자본 인수다.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예외는 있었다. 2008년 섬유업체 TK케미칼을 인수할 때 금융기법을 활용했다. SM그룹 김기호 전무는 “인수가격이 3100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SM그룹은 먼저 TK케미칼의 주식 및 자산을 담보로 1520여억원을 우리은행에서 빌렸다. LBO 기법이었다. LBO는 피인수 회사의 자산·주권 등을 담보로 자금을 만드는 것이다.

난관은 남아 있었다. 주권 인수에 필요한 1482억원 중 절반인 833억원은 SM그룹이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이 그룹의 자기자본은 280여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700억원(이자 포함)을 SM그룹의 계열사 남선알미늄 지분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3년 만기로 대출 받았다. SM그룹 측은 TK케미칼이 2009년 코스닥에 상장되면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터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자 TK케미칼의 실적이 타격을 입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08년 5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크게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197억원(2008년 328억원→2009년 131억원) 감소했다. 2009년 IPO(기업공개) 목표는 물 건너갔다. 위기를 느낀 우 회장이 직접 나서 원가개선에 힘을 기울였다. 다행히 TK케미칼의 실적이 개선됐다. 이 회사의 2010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820억원, 712억원으로 전년비 14%, 42% 늘었다. TK케미칼은 목표 시점보다 1년 늦었지만 올 4월 IPO에도 성공했다.

만약 IPO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TK케미칼은 승자의 저주에 빠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금융비용 700억원 때문이었다. SM그룹은 2009년 100억원을 사내 유보금으로 갚았다. 2010년에는 남선알미늄 지분 31.74%를 팔아 200억원을 변제했다. 임기응변이었다. 올 5월이 만기였던 나머지 400억원은 IPO를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갚았다. 우오현 회장은 “TK케미칼의 2008년 실적을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앞으로 자기자본으로 인수할 수 없다면 M & A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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