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로 농약 뿌려주고 돈 법니다

7월 1일 오전 서해안고속도로에서 한 시간을 달려 충남 서산시 해미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강렬한 눈빛과 날렵한 콧날에 보잉 선글라스를 걸친 중년 남자가 아우디 Q7에서 내렸다. 케이바스 임수동(51) 대표다.
케이바스는 비즈니스 제트 항공기, 자가용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1990년 자가용 항공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하는 국가원수, 다국적 기업 회장, 연예인 입·출국, 연료 공급, 기내 청소 등 맞춤 서비스를 지원하는 회사로 시작했다. 국내는 자가용 항공기를 소유한 인구가 적어 외국인이 주 고객이다. 항공 업계에서는 이러한 업종을 FBO(Fixed Base Operator)라고 한다. 임 대표는 케이바스의 국내 FBO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한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가수 셀린 디옹 등 전용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한 많은 외국 인사가 케이바스의 고객이다. 포뮬러원(F1), 2002 월드컵 등 국제 행사가 있을 때가 이 회사의 성수기다. 전용기를 가진 유명 인사들이 한국 땅을 밟기 때문이다.
케이바스는 서울 본사를 축으로 인천·김포공항에 FBO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무소를 두고 있다. 필리핀과 캐나다에 해외 법인이 있다. 자가용 항공기 인구가 600명에 달하는 필리핀에서는 2002년부터 비행학교를 운영해 파일럿을 양성한다. 캐나다 법인에서는 항공기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한다.
요즘 그가 주력하는 일은 따로 있다. 바로 서산 간척지 일대에서 하는 항공 영농 사업이다. 2006년 현대그룹이 도맡던 것을 인수했다. 해미톨게이트에서 그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비행기로 영농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케이바스의 연 매출 50억원 중 절반이 항공 영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임 대표의 차를 따라 서산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도 길 찾기가 어려워 톨게이트까지 마중 나왔다고 했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두 차례 굽이진 산길로 들어가니 케이바스 푯말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니 광활한 논과 밭 가운데 활주로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해미 공군 비행장에서 7km정도 떨어져 있다. 관제탑으로 무전 연락이 오더니 노란 비행기 한 대가 프로펠러 굉음을 내며 활주로에 착륙했다. 미국 에어 트랙터(Air Tractor)사 비행기 AT502다. 1.2톤의 비료를 서산 간척지 A지구에 10분간 뿌리고 도착한 것이다.
“농민이 통장에 입금하고 연락하면 비행기가 뜹니다. 3.3㎡에 비료는 40원, 농약은 12~13원 받고 뿌려줍니다. 처음엔 사탕 값도 안 되는 걸 때려치울까 했는데 막상 해보니 아니더라고요. 비행기 10분 뜨면 10만㎡는 거뜬히 해결하거든요(웃음).”
비행기로 농약 10분 뿌리는 데 130만원방금 공중에서 농약을 살포하고 내려온 조종사 김명국씨는 비행기로 3분 동안 뿌리는 농약 분사량을 인부가 하려면 320명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AT502는 2톤가량 비료를 실을 수 있는 농업용 소형 비행기다. 시속 270km로 최대 4시간30분 비행할 수 있다. 이 비행기를 운항하는 케이바스 6명의 조종사 중 3명은 비행 경력 1만 시간이 넘는 베테랑이다. 모두 공군 출신이다. 그들은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유화 작업에도 나섰다. 농번기인 3월부터 9월 중순까지는 조종사 한 명당 하루 이·착륙을 열 번 이상 할 정도로 바빠 주로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대신 겨울에는 출근을 안 한다.
임 대표는 케이바스 한국지사 연 매출 50억원 중 항공 영농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라고 했다. 주 고객은 인근 농민들이다. 서산 간척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일궜다. 현대는 서산 천수만 일대 농경지 중 3분의 2를 농민에게 매각했다.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1%에 달한다. 요즘에는 입 소문이 나 서산뿐 아니라 영산강 일대 농민도 돈을 모아 케이바스 비행기를 부른다.
이곳에서 임 대표의 자가용 비행기 1986년식 세스나(Cessna) HL-1051도 볼 수 있었다. 국내 한 언론사가 사진 촬영용으로 구매한 것을 2005년 사들였다. 그는 이따금 김포에서 서산으로 비행기를 직접 조종해 출근한다. 차로 2시간 넘는 거리를 비행기로는 20분이면 올 수 있어서다. 그가 조종사 면허증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름값이 1L에 2300원 정도고, 1시간 타면 20L정도 듭니다. 차보다 비행기가 비용도 더 저렴해요.”
그는 한국에서 항공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캐나다의 한 항공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1990년대 캐나다에서 조종사 면허증을 땄다. 그렇다고 모든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정 항공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따야 조종이 가능하다. 이렇게 얻은 항공기 관련 자격증이 16개에 달한다. 챌린저(Challenger), Cearjet, BO-105 등 헬리콥터부터 제트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는 파일럿 지망생을 교육할 수 있는 교관 면허도 갖고 있다. 2002년부터 필리핀에서 운영하는 비행학교 월드 애비에이션(world aviation)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수업료는 7000만~8000만원 정도 받는다.
“필리핀 직장인 한 달 급여가 300달러 정도 될 겁니다. 하지만 교육을 이수하고 필리핀 에어라인 파일럿이 된 친구들은 급여가 1만 달러입니다. 한국 항공사에 스카우트되면 1만2000달러 정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엊그제 대한항공에 합격한 필리핀 학생이 서울에 찾아와 같이 밥 먹었어요.”
1967년 자장면 한 그릇이 15원 하던 시절 그는 20만원짜리 미국산 모형 비행기를 갖고 있었다.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다. 부모님이 프로펠러 소리가 시끄럽다며 갖고 놀지 말라고 하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시동을 걸었다. 결국 프로펠러에 손가락이 부딪쳐 부러졌다. 외아들의 사고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대한 꿈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돈도 버니 행복하고요.”
그는 2002년 혼자 비행기를 조종해 필리핀의 86개 섬을 돌아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공항 수가 한국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지만 시설은 열악했다. 공항 푯말도 잘 안 보이고 바닥에 돌만 박아놓은 곳을 활주로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공항에 착륙하면 팬티만 입고 복면을 쓴 사람들이 비행기로 떼로 몰려왔다. 그는 납치된 듯 섬뜩한 기분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들은 케이바스처럼 FBO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직원들이었다. 착륙하는 자가용 전용기 손님들을 고객으로 끌어가고자 경쟁한 것이었다. 복장은 더운 날씨 때문이었다.
그는 장거리를 운항할 때는 다른 조종사를 대동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주로 혼자 다녔다고 한다. 그는 홀로 비행 중 시동이 꺼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웃었다.

“엔진 안 돌아가는 것 정도야 대수롭지 않죠. 비행기 사고로 죽는 게 차 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적을 겁니다.”
그는 비행기에 이상이 생겨도 일단 ‘keep planning’만 하면 산다고 했다. 비행기가 똑바로 가고 있다면 안심하고, 비행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당황해 호들갑 떨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착륙할 곳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엔진이 꺼져도 1시간은 거뜬히 간다고 했다. 종이 비행기를 날리면 바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폭탄 테러가 아닌 이상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비행기가 갑자기 떨어져 폭발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3000만원이면 2인승 비행기 산다“큰 기업 CEO만 자가용 항공기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3000만원이면 국내에서 타고 다닐 만한 2인승 비행기를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인천·김포공항 주차도 무료로 가능하고요. 이·착륙료 3000원만 내면 됩니다.”
필리핀, 일본에 비해 아직 한국의 경비행기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다. 구입보다 조종사 면허증을 따는 게 쉽지 않아서다. 해당 기종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을 거쳐야 취득이 가능한데, 국내에선 자가용 비행기를 구경하기도 힘들다. 면허증을 미국, 캐나다 등에서 따오는 게 대다수다. 그는 1990년 20일에 약 6000만원을 지불하고 면허증을 취득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다. 임 대표는 비행기를 살 때 로그북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로그북은 조종사가 모든 운항일지와 내부 부품을 교체한 이력을 적어 놓은 책이다. 비행기를 운항하는 개인, 법인 모두 일 년마다 국토해양부로부터 로그북을 점검 받는다.
그는 비행기는 연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엔진과 프로펠러를 언제 교체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 통상 교체 주기는 1600시간인데 엔진의 경우 최소 1500만원이 넘는다.
그는 비행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미국 브랜드 세스나를 최고의 경비행기로 꼽았다. 패셔너블한 유럽산에 비해 모양은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내후년쯤 세스나 340을 타고 6개월간 혼자 세계일주를 떠나볼까 합니다. 7인승짜리인데 필리핀 법인에 갖다 놨죠. 일반 에어 라인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고공으로 다닐 수 있어 연료 효율성이 높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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