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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이지윤 ‘숨 프로젝트 앤 아카데미’ 대표

[ART & Culture] 이지윤 ‘숨 프로젝트 앤 아카데미’ 대표

월 12일 현대미술 전시공간인 서초동 아트클럽(Artclub)1563을 찾았다. 천장이 높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온통 캄캄했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커다란 세 개의 스크린에선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일본 미디어 아티스트로 유명한 히라키 사와의 ‘Did I? 제가 그랬나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실제 생활 공간과 상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몽환적인 영상 작품이다.

화면 앞으로 빨간색 스카프를 두른 여자가 등장했다. 빨간색 매니큐어에 빨간색 구두까지. 빨간색이 너무 잘 어울리는 이지윤(42) 숨 대표다. “런던의 하늘은 회색빛이에요.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이렇게 환한 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런던의 골드스미스대에서 미술사 석사, 시티대에선 미술 MBA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박물관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공부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국의 저명한 예술학교인 코토드 미술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미술 관련 이론과 경영을 두루 갖춘 전문가다. 그는 2003년 런던에서 숨 프로젝트 앤 아카데미(SUUM Contemporary Art Project & Academy)라는 회사를 세웠다. 독립 큐레이터로 첫걸음을 뗀 것이다.

첫 작업은 런던의 대영박물관 내 한국관 설립이었다.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한국 미술사와 미술 경영을 두루 아는 큐레이터를 수소문하던 중 이 대표가 추천됐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영박물관에 한옥을 지은 신영훈 선생을 비롯해 도자기 작가들이 한국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신영훈 선생님께서 대영박물관 안에 사랑방을 지으셨어요. 한옥은 못을 쓰지 않잖아요. 전부 끼워 맞추는 방식이에요. 정말 대단한 장인정신과 기술이 필요한 거예요. 한국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기회였어요.”

이후 한국 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주요 전시로는 2005년 덴마크에서 열린 ‘Seoul Until Now’, 2008년 런던 한국문화원 개관 기념전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 2009년 53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김아타 특별전,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Korean Eye’ 등이 있다.

어떤 전시회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 그는 단연 덴마크에서 소개한 ‘Seoul Until Now’를 꼽았다.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전이었다고 들려줬다. “전시된 작품 중 최정화 작가의 설치 미술이 화제였어요. 벽이나 전봇대를 보면 전단지나 현수막 광고가 많잖아요. 버려진 그것들을 덴마크까지 운송했어요. 그 양이 엄청났죠. 크레인을 이용해 40m까지 쌓았거든요. 아파트 7층 높이예요. 미술계 전문가들은 작품의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죠. 사실 이 작품은 일반 사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비꼬면서 재미있게 표현한 겁니다. 우리의 일상을 우리만의 글씨체로 순수하게 담은 거예요.”

그는 큐레이터(curator)의 어원인 Cura는 라틴어로 ‘연구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보고 분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임무 중 하나라는 것.

“저는 한국의 작품을 단순히 전시장에 갖다 놓는 게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창의적인 정신을 전시에 풀어놓는 역할을 한 겁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사고에는 자연히 우리의 문화가 스며 있고, 그것을 옮기는 것이 더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큐레이터의 역할은 프로듀서와 같아요. 작가가 컨셉트를 만들고 그것을 현실화하면 큐레이터는 글로 쓰고 전시와 이벤트까지 이끌어 내지요.”



광주국제아트페어 디렉터 맡아그의 프로듀서 역할은 뛰어났다. 영국에서 한국 작가를 알려온 그를 반대로 한국에서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냉각기 수입업체 한국하몬의 전금홍 대표 후원으로 ‘Artclub1563’이라는 비영리 아트센터를 열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유명한 해외 현대 미술작품을 소개한다. 개관 전시로는 세계적인 작가 키스 소니에의 ‘형광룸’을 선보였다. 이후 실비 오브레이의 ‘수브니어’, 리처드 우즈의 ‘서울 튜더’, 히라키 사와의 ‘Did I? 제가 그랬나요?’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올해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두 개나 따냈다.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축하 기획전과 2회째를 맞는 광주국제아트페어다. 8월28일 시작하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축하기획전은 삼성전자의 공식 후원으로 진행된다.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이번 전시는 ‘꿈_백야’다. 제목처럼 밤에 진행되며 야외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서 빌 비올라, 김수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14명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공공미술(public art)인 만큼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미술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잔잔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로 선정했다”고 들려줬다.

이 전시는 다음달 세계육상경기대회가 열리는 브뤼셀에서 한 차례 더 전시된다. 이후 동계 청소년 올림픽이 열리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내년 여름엔 런던 올림픽까지 순회할 예정이다. 전시 자체를 수출하는 셈이다.

그는 9월 1일 시작하는 광주국제아트페어 ‘아트: 광주’ 디렉터로 선임됐다. 일반적으로 아트페어는 개인 소유 회사가 운영한다. 반면 ‘아트: 광주’는 광주시에서 후원·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그는 “광주 시민에게 사랑 받는 행사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한다. “요새 아트페어가 너무 많아요. 생각해 보면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광주까지 온다는 건 무리한 바람이겠죠. 적어도 광주 사람들만큼은 즐길 수 있는 행사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에서 사랑 받아야 글로벌로 나갈 수 있기에 글로벌(global)과 로컬리티(locality)를 합친 ‘글로컬리티(glocality)가 이번 ‘아트: 광주’의 모토입니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77개 갤러리 중 12곳이 광주 갤러리다. 광주의 신인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 이뿐이 아니다. 여기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1000만원 선을 넘지 않을 예정이다. 이 대표는 미술품에 관심은 있었지만 비싼 가격에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행사인 만큼 공공성을 더해 국내외 미술관과 비영리 미술 기관들을 초청했다.

늘 발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운동화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지윤 대표. 그는 앞으로 큐레이터 출신 문화 경영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미술계에 숨을 불어넣고 싶다고 해서 회사 이름도 숨 프로젝트 앤 아카데미로 지었다. 어쩌면 한국 작가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는 그가 진정한 문화 외교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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