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3인방<금강·에스콰이어·엘칸토> , 수제화로 명가 재건 나서다
- 토종 3인방<금강·에스콰이어·엘칸토> , 수제화로 명가 재건 나서다

월 8일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의 한 패션매장에서 이색 행사가 열렸다. 참석자가 하얀 종이 위에 발을 올려놓자 구두장인이 족형 그림을 그렸다. 계측기와 줄자를 이용해 발등 높이까지 세심하게 측정했다. 그러고는 해당 발 사이즈에 가장 가까운 라스트(발모양 틀)로 만들어진 피팅 슈즈를 신은 채 수정 보완작업을 하면서 발과의 오차를 줄였다. 이제 디자인을 고를 차례. 샘플을 보고 원하는 것을 택한 뒤 가죽 종류나 컬러, 그리고 창을 선택했다. 구두 내피까지 고르고 이니셜을 새기면 주문 완료. 이른바 슈즈 비스포크(Bespoke)다. 에스콰이어(EFC)는 이날 1년간 준비한 남성 수제화 브랜드 ‘알쿠노(Alcuno)’를 론칭했다.
고급화 나서는 토종 구두 명가들비스포크 슈즈는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국내에 도입하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구두장인이 방문해 국내 VIP를 위한 구두를 직접 맞춰주는 광경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명품 수제화는 견고하고 스타일리시했지만 대중이 접근하기엔 값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맞춤 제작 구두인 비스포크 서비스는 사이즈를 측정한 뒤 완성된 구두를 받아 보기까지 길게는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제작 기간을 줄이려 해외 본사 장인이 내한해 직접 시연한다 해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 100% 만족스러운 제품을 받아 신기가 쉽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 수제화의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토종 비스포크’다. 수십 년 경력을 가진 한국인 구두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서비스해준다. 기간도 대폭 짧아졌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어 봤자 두 달이 채 안 걸린다. 가죽이나 부자재 같은
소재는 모두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것을 들여와 쓴다. 품질 차이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토종 브랜드들의 이런 변화는 1년 전쯤 시작됐다. 지난해 9월 금강제화가 수제화 라인 ‘헤리티지’의 비스포크 서비스를 개시하며 포문을 열었다. 금강의 지난해 제화부문 매출액은 약 4000억원이다. 이 중 남성화 부문만 2500억원에 이른다. 금강의 국내 남성화 시장 점유율은 30~40%다.
그즈음 에스콰이어도 이번에 론칭한 ‘알쿠노’ 인큐베이팅 작업에 나섰다. 알쿠노는 에스콰이어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심 차게 준비한 작품이다. 외국 명품 브랜드에 맞서 구두 명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에스콰이어는 알쿠노 론칭을 계기로 올 매출을 지난해 대비 280억원 늘어난 2193억원으로 잡고 있다.
올 초에는 이랜드그룹이 제화업계 3위 엘칸토를 전격 인수하면서 고급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간 해외 명품 브랜드에 밀려 퇴출 위기에 놓였던 국내 제화 3인방이 고급화를 무기로 재기에 나선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 명품화와 견줘도 손색없을 만한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살아남는다”면서 “고급품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어 향후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해외 소규모 브랜드 속속 상륙소비자 입장에서는 국내외 업체들의 이런 경쟁이 좋은 일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격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인이 벨루티, 존롭 등 외국 유명 기업형 수제화를 구입하기는 힘들다. 값이 비싸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토종 브랜드들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 품질 좋고, 가격대가 합리적인 제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해외 수제화 브랜드들도 국내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이름을 들으면 금방 아는 유명 브랜드가 아니다. 유럽의 한 골목에서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 명맥을 유지해온 작은 구두방 브랜드들이 속속 국내에 상륙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수제화 시장에 대한 해외 브랜드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뜻한다.
금강제화는 이미 모레스키(MORESCHI), 로세티(ROSSETTI), 브루노말리(BRUNO MAGLI), 처치스(CHURCHS), 에드워드그린(EDWARD GREEN) 등 다양한 수입화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랜드는 지난해 이탈리아 전통 브랜드 라리오(Lario)를 인수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백화점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세계는 지난해 12월 강남점에 수제화 편집매장을 열었다. 현대백화점은 8월 19일 본점에 유럽 고급 수제화를 엄선해 꾸민 남성 슈즈 편집숍을 오픈했다. 3대 백화점 중 구두 매출이 가장 많은 롯데백화점도 11월 본점에 남성 수제화 편집숍을 계획 중이다.
수제화를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수제화가 뜨는 이유는 뭘까. 구두 브랜드들의 마케팅 전략 탓도 있지만 우선 한국 남성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패션에 눈을 뜬 남자들이 늘었다. 자신을 가꾸고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급속히 커지는 것도 이 같은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다.
액세서리 가운데 남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구두다. 이탈리아 구두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사들은 자신에게 잘 맞는 구두 스타일을 하나 골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활용한다.
국내에서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의 ‘공항 패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밝은 파스텔톤 재킷에 크림색 바지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보였다. 그가 옷에 맞춰 택한 구두는 밝은 갈색 ‘로퍼(loafer)’. ‘게으름뱅이’라는 뜻을 가진 로퍼는 발등에 끈이 없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낮은 가죽구두다. 갈색 구두 중에서도 가장 밝은 황갈색으로 젊은 이미지가 강조됐다. ‘유연하다’는 인상을 주기 좋은 신발이다.
멋쟁이들이 수제화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편안함이다. 수제화 매니어들은 “수제화를 신는 순간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라며 “이제 기성 구두는 못 신는다”고 입을 모은다. 발이 편하면 마음이 편하고 자신감이 붙는다. 비즈니스맨에게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국내 제화시장 규모는 연 2조원에 달한다. 남성 수제화 경쟁이 가열됨에 따라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남성 시계 시장이 불과 몇 년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과 비견된다.

■ Style Tip 1
구두 관리법업무상 매일 구두를 신는다면 손상 예방법을 알아두는 게 좋다. 잘 아는 얘기지만 평상시 구두약을 사용해 잘 닦아놓는다. 구두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 광택이 나고, 코팅제 역할을 해 빗물이 튀어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다.
직장인은 주말에 구두를 관리해야 한다. 관리하지 않은 신발은 때가 묻고 힘이 없어 보여 전체 스타일을 흩트려버릴 수 있다. 일주일 넘게 같은 신발을 신었다면 관리가 필요하다.
구두를 닦기 전 슈트리를 끼워 구겨진 가죽을 펴준다. 슈트리가 없다면 신문을 구겨 밀어 넣어도 된다. 관리를 시작하기 전 브러시를 사용해 구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고급 구두의 경우 밑창 전용 오일과 크림을 발라 가죽에 영양을 공급해준다. 구두 표면에는 구두 크림을 발라 오염을 제거한다. 크림을 바를 때 약솔이나 칫솔을 사용해 틈새까지 스며들도록 한다.

■Style Tip 2
어떤 구두가 좋을까1. 유행을 따른다면 바지 폭에 맞는 구두를 고른다. 남성 팬츠의 폭이 좁을수록 끝이 날씬한 구두를 선택해야 조화롭다. 반대의 경우라면 구두머리가 둥글고, 두툼한 것으로 선택한다.
2. 팬츠 밑단에 어울리는 구두가 좋다. 남성 팬츠의 밑단은 정통 클래식 스타일로 볼 수 있다. 옥스퍼드 스타일의 구두를 신는 것이 좋다.
3. 구두끈이 없는 게 편하다. 하지만 클래식한 정장을 입는 경우라면 몽크 스트랩, 모카신 등과 같이 구두끈이 없는 구두는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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