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men in the world] 결혼하거나 죽거나

MICHELLE GOLDBERG 기자자스빈더 상게라는 열네 살이 되자 드디어 자신에게도 때가 닥쳤다고 직감했다. 영국 산업도시 더비에서 보수적인 시크교도 집안의 일곱 자매 중 여섯째로 성장하면서 부모가 언니들을 차례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 뒤 인도에 보내 생면부지의 남자와 결혼시키는 일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언니들은 대개 남편의 학대를 받았다). 영국 학교는 그 아이들의 오랜 결석과 실종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상게라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어머니가 한 남자의 사진을 건네며 여덟 살 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상게라는 이렇게 돌이켰다. “언니들과 달리 난 반항했다. ‘싫어요, 엄마. 학교를 마치고 싶어요. 교육을 받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교실에서 공부하던 그녀를 끌고 나와 집안의 방에 가뒀다. 몇 주가 지나 상게라는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오로지 내 자유를 되찾겠다는 생각에서 결혼에 동의했다.” 부모는 그 약속을 믿고 친구 집에 놀러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틈을 타 상게라는 그 친구의 오빠와 가출했다. 처음엔 그 오빠의 차에서 자다가 나중에는 싸구려 하숙집에서 지냈다. 상게라는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고 돌이켰다. “오늘부터 우리 눈에는 네가 죽은 사람이야.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와 우리가 말한 그 남자와 결혼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넌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야.” 상게라가 거부하자 가족은 그녀와 관계를 끊었다. “지금도 언니들과 가족을 길에서 마주치면 길을 건너가버리고 외면한다. 한순간에 내가 용서 못할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됐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고 배반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내겐 가족이 없다.” 그녀는 지난 29년 동안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살았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자스빈더 상게라는 어렵사리 교육을 마치고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부모의 말을 고분고분 들은 두 살 위의 언니 로비나 상게라는 운이 지독히도 없었다. 두 자매는 가족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서로 연락했다. 로비나는 결혼한 뒤 가정폭력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자스빈더는 언니에게 부모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계속 설득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생활을 순조롭게 끌어나가는 일은 로비나의 의무라고 못을 박았다. 가문의 명예 때문이었다. 결국 로비나는 24세 때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전신의 90%에 화상을 입고 다섯 살 난 아들을 남겨둔 채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상게라는 언니의 자살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고 집을 찾아 갔다. “딸 한 명을 잃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달려 나와 딸로, 가족으로 품에 안아주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장례식에도 집에도 오지 마라. 우리와 함께 애도해도 안 된다. 어두울 때 아무도 보지 않게 온다면 눈감아주겠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도 상게라는 장례식에 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가족이 모두 일어나 나가버렸다. “가장 가깝고 소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고 상게라가 말했다. “기댈 데가 없었다.”
서방에서는 강제결혼과 명예살인(honor killing: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을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누군가가 직접 살해하는 관습)이라고 하면 가난한 개도국에서나 행해지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름 끼치는 명예살인이 영국에서 빈발하고, 미국에서 미성년자 결혼이 만연한다는 새로운 조사 결과까지 나오면서 어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런 폭력이 훨씬 널리 퍼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영국은 2005년 이런 범죄에 대처하고자 내무부와 외무부 공동으로 강제결혼 전담반을 설립했다. 2010년 그 전담반은 강제결혼 1700건을 다뤘다. 상게라는 자신의 시련과 언니의 자살에 자극 받아 1993년 강제결혼과 명예폭력의 희생자를 돕는 자선단체 카르마 니르바나를 설립했다. 그 단체에 따르면 2008년 영국의 학교에서 사라진 여학생이 2500명이었다. 대개 방학 중에 모습을 감춘 그들은 강제결혼의 피해자로 추정된다. 올해는 피해자가 그 두 배로 예상된다.
1999년 1월 런던 동부의 쿠르드족 동네에서 툴레이 고렌(15)이 실종됐다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그녀의 아버지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툴레이가 몰래 남자친구를 사귀는 사실이 드러나자 가족들이 모의해 그녀를 살해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툴레이의 애인은 그녀가 실종되기 직전에 아버지에게 구타 당했다고 증언했다. 2002년 쿠르드족인 압둘라 요네스는 런던 서부의 자택에서 딸 헤슈(16)의 목을 그어 살해했다. 헤슈의 남자친구가 레바논인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였다.
2003년 9월에는 샤필레아 아메드(17)가 체셔 카운티의 워링턴에서 실종됐다. 5개월 뒤 그녀의 부패한 시신이 켄트강 부근에서 발견됐다. 샤필레아는 실종 전에 친구들에게 부모한테 매를 맞았고 파키스탄 남자와 해야 하는 강제결혼이 무섭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랑이 될 남자를 보러 파키스탄에 갔다가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녀의 부모(샤필레아의 죽음과 관련해 2003년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2010년 다시 구속됐다)는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검시관은 샤필레아가 ‘아주 끔찍한 살인’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엽기적인 명예폭력은 2006년 바나즈 마모드의 살해였다.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인 바나즈는 런던 남부에 살다가 16세에 강제결혼했다(그 남자가 그녀를 강간하고 구타했다고 알려졌다). 2년 뒤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가족에게 돌아간 뒤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분개한 그녀의 삼촌과 아버지, 친척들이 쿠르드족 회의를 열고 가문의 이름을 지켜야 한다며 바나즈와 그녀 남자친구의 살해를 논의했다. 바나즈는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너무 무서워 보호소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살인 기도 후 그녀는 가족을 기소하려는 경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 며칠 뒤 사촌 두 명이 포함된 남자들이 바나즈를 집에 가두고 고문하고 강간한 뒤 신발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는 시신을 여행가방에 담아 다른 도시에 버렸다. 사촌 두 명은 즉시 이라크로 도피했다. 해외에 가면 안전하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경찰이 그들을 추적해 체포했다. 그들은 영국으로 인도된 최초의 명예살인 피의자가 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그런 명예살인이 매년 적어도 12건이 일어나며, 희생자의 4분의 1은 18세 미만이다. 영국에서 강제결혼은 오래전부터 불법이었지만 2007년 영국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강제결혼법을 제정했다. 상게라의 경험담[‘치욕(Shame)’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도 그 법의 제정에 기여했다. 그 결과 강제결혼 보호령 같은 억제책이 나왔다. 요즘 영국에선 여자 아이가 강제결혼을 당할 처지라고 의심되면 누구든 법원에 그녀 가족을 상대로 법원 명령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면 그 가족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새 여권 신청도 거부된다. 여자 아이를 해외로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강제결혼법이 발효된 이래 그런 법원 명령이 300건 이상 발부됐다. 그 명령을 어기면 최고 5년 징역형을 받는다. 아울러 경찰, 주택건설국, 교육자, 의료진, 사회복지 기관이 여자 아이가 강제결혼의 위험에 처했다고 의심되면 의무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 강제결혼 전담반은 의지에 반해 결혼하도록 해외로 보내진 영국인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송환하는 임무도 맡는다. 미국에는 그런 기관이 없다. 미국에선 강제결혼이 명시적으로 불법화되지 않았고 사회복지 기관들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도 어렵다. 나지르 아프잘 영국 검찰총장은 “미국도 이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강제결혼 피해자를 도우려고 나서면 이민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 쉽다. 상게라의 경우 살해협박을 받았고, 아파트 문밖에 인분이 칠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상게라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녀는 미국까지 활동 영역을 넓힐 생각도 한다. 카르마 니르바나에는 미국에 사는 여자 아이들의 문의를 종종 받는다. 미국에서도 강제결혼이 있다는 증거가 많아지지만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다. “개도국에는 이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인 법이 있지만 미국에는 없다”고 워싱턴 DC의 인권단체 글로벌 저스티스 이니셔티브를 설립한 줄리아 알라넨이 말했다. 미 국무부가 강제결혼을 인권 침해로 간주하고, 미성년자가 포함된 경우 아동학대의 한 형태로 분류하지만 “미국에는 강제결혼의 인식이 별로 없다”고 알라넨이 말했다.
미국에 이민 온 여성을 성차별적 폭력에서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타히리 저스티스 센터의 레일리 밀러뮤로 사무총장이 그런 상황을 바꾸려고 나섰다. 타히리 센터는 최근 미국에서 처음으로 강제결혼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강제결혼으로 알려졌거나 그렇게 의심된 경우가 3000건이나 된다. “이 조사를 통해 밝혀진 상황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밀러뮤로가 말했다.
밀러뮤로는 3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타히리 센터에 경찰, 학교 상담사, 사회복지사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부모로부터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당하는 여자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오와, 테네시, 텍사스 주 등 미국 전역의 56개 이민자 집단에서 그런 사례가 보고됐다. 13세 소녀가 그런 일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강제결혼 피해자를 위한 법적 장치나 조치가 거의 없었다”고 밀러뮤로가 말했다.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인식 제고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 안전장치가 없으면 여자 아이들은 종종 그 틈새로 빠진다. 아프리카 여성을 돕는 뉴욕 브롱크스의 비영리단체 사우티 예투에 연락을 취한 열네 살짜리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대표적인 예다. 그 여자 아이는 뉴욕시의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아주 잘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만나본 적도 없는 남자의 어린 신부가 되기보다는 계속 공부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모는 딸의 그런 소원을 무시한 채 그녀를 본국의 24세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 했다. “그런 결혼의 대부분은 가족이 주선한다”고 사우티 예투의 자이나브 에예가 사무총장이 말했다. “여자 아이의 나이가 아주 어릴 때 결정된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그런 결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거부하는 아이는 드물다. 그런 경우에만 아이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부모를 설득해 결혼을 포기시키려 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딸아이를 데려갈 비행기표를 이미 구입한 상태였다. 이미 두 살 때 그 남자의 집안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부모는 말했다. “부모는 약속을 취소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고 에예가가 말했다. “약속을 어기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되고 체면을 잃는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실제로 아주 심각한 문제다. 동료나 동네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가족 전체가 피해를 본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우티 예투는 그 아이를 시립 어린이집에 데려갔다. 16세가 안 된 나이였기 때문에 아동보호국의 지시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동보호국에도 그런 사건을 다루는 규정이 없었다. “물리적 학대나 임박한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아이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고 에예가가 말했다. “그들은 아이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그후 다시는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에예가는 그 직후 아이가 출국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아는 사회복지 기관은 거의 없다. 미국 여러 주의 관련 법은 강제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정됐기 때문에 부모의 동의를 더 중시한다. 대개는 아이 자신의 동의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해외로 데려 나가 결혼시켜도 불법이 아니다. 폭력이나 폭력 위협이 확실히 있는 일부 경우는 개입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금전적이거나 정서적인 협박이라 개입이 쉽지 않다. “아이들이 전하는 협박 내용은 ‘아버지가 내 목을 자르겠다고 해요’ ‘부모가 집에서 내쫓고 돈 한푼도 안 주겠다고 해요. 난 집안에서 죽은 아이로 간주될 거예요’ 등 매우 다양하다”고 밀러뮤로가 말했다.
타히리 센터는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찾으려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강제결혼의 규모부터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 도시문제 연구소의 법정책 센터와 손잡고 법집행 기관, 종교 지도자, 법률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 강제결혼을 목격할 만한 사람과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500건의 응답은 미국에서도 강제결혼이 빈번하며, 그 문제를 다룰 자원이나 지식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신의 단체가 그런 피해자를 도울 준비를 갖췄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카르마 니르바나의 상게라는 최근 미국을 방문했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생각이었다. “방문 목적 중 하나는 협력 관계의 모색”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미국에 카르마 니르바나 지점을 설립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상게라는 특히 밀러뮤로를 만나고 싶어 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좋은 결과가 나올 듯하다”고 상게라가 말했다. “미국에서 강제결혼 문제의 인식을 높이고 싶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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