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의 ‘악마 같은 천사’
스티브 잡스를 억만장자로 만든 건 컴퓨터가 아니라 ‘토이(완구)’였다.
1999년 11월 22일 개봉된 ‘토이 스토리(세계 최초의 완전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는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으며 29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몇 달 전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업체로 평가받던 영화제작사 픽사는 이 영화의 개봉 한 주 뒤 기업공개(IPO)를 실시했다. 그 IPO는 그해 최대 규모였으며 잡스에게 10억 달러의 횡재를 안겨줬다.
이뿐만 아니라 그것은 잡스의 마법을 되찾아줬다.
그는 10년 전 애플에서 쫓겨났다. 상처받고 조급해진 그는 영화제작자 조지 루커스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작지만 흥미로운 애니메이션 사업부를 인수했다. 거기에 500만 달러의 자본을 보태 지분을 70%로 키웠다. 회사명은 픽사로 정했다. 그 회사가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9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것은 잡스의 천재성을 재확인하고 실리콘밸리의 왕자가 할리우드의 영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었다.
애플과 매킨토시, 넥스트(NeXT),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잡스의 제품과 사업은 대부분 그의 DNA를 물려받았지만 픽사는 항상 달랐다. 입양됐다는 점에서만큼은 잡스와 같았다. 그는 설립 7년째 되던 해 픽사를 인수했다. 독자적인 문화가 이미 굳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잡스는 몇 년에 걸쳐 픽사에 많은 변화를 주려 했지만 그 회사는 문화적으로 많이 달랐다. 그의 영향은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프로젝트가 된다는 의미에 관한 선천적 요인 vs 후천적 요인의 연구사례에 가까웠다.
픽사의 전신은 1979년 루커스필름의 한 사업부로 탄생한 그래픽스 그룹이다.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내다본 루카스는 뉴욕공과대에서 그 새 매체의 미래를 확신하는 두뇌 여러 명을 끌어들였다. 그들에게 루커스는 화려하지만 인내심을 가진 후원자였다. 그의 인도 아래 그들은 1986년 잡스가 등장할 때까지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그러나 곧바로 문제가 시작됐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할 정도의 성능을 갖춘 컴퓨터 하드웨어가 개발되려면 아직 몇 년 더 기다려야 했다. 픽사는 다른 데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잡스는 하드웨어 제조에 답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사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간접비가 많이 들고 공급망이 복잡했다. 그리고 그래픽 수퍼컴퓨터는 엄밀히 말해 대량생산 제품이 아니었다. 잡스의 초기 자본금이 빠르게 소진돼 갔다.
“우리는 하드웨어 회사로 출발했는데 솔직히 망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고 에드윈 캐트멀과 함께 픽사를 공동 창업한 앨비 레이 스미스가 말했다. “하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그런 망신을 당할 생각이 없었다. 회사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수표를 꺼내 지분을 더 많이 늘렸다. 그 뒤 몇 년 사이 회사 전체 지분을 손에 넣었다.”

잡스가 픽사에 쏟아부은 돈은 모두 5000만 달러였다. 그동안 그는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벤처회사 넥스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느 쪽이 더 큰 계륵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픽사의 재무상태는 “한도를 넘은 빚만 남은 깡통계좌”를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초창기 직원이었던 파멜라 커윈이 돌이켰다.
“당시 [잡스는] 밸리 동료들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그가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다”고 커윈이 말했다. 픽사의 회계연도가 마감되는 12월에는 그야말로 회사에 찬바람이 몰아칠 때가 많았다. “그는 감정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솔직히 누구라도 그럴 만했다. 잡스를 가리켜 이런 표현을 쓴 사람은 없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분명 겁을 먹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픽사 이미지 컴퓨터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존 래스터라는 한 직원이 고객을 끌어모을 요량으로 ‘룩소 주니어(Luxo Jr.)’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해 기술력을 과시했다. 놀랍게도 그 영화는 1987년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뒤로도 래스터의 단편영화들이 호평 받으면서 상업적인 작품들의 수입도 약간 증가했다. 그러나 잡스의 출혈은 여전했다. 그는 잇따른 감원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줄여나갔다. 회사는 그와 같은 사랑의 매로 연명해 나갔다.
잡스는 두 벤처사업 중 넥스트를 더 아꼈다. 거기에는 픽사의 핵심 애니메이션 두뇌들의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 잡스가 발을 들여놓기 몇 년 전에 이 분야를 발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은 잡스의 개인적인 매력에 넘어가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잡스가 가끔씩 느꼈던 불만은 우리가 ‘잡스 숭배자’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그를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동료로서 높이 평가했다”고 픽사의 초창기 직원이었던 랠프 구겐하임이 말했다. “그에게는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숭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위험해진다. 사람들이 ‘노’라고 말하지 않게 된다.”
픽사의 경영진은 매달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넥스트 본사를 방문했다. 잡스에게 회사 현황을 브리핑하고 최면을 거는 듯한 그의 전략 구상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까지만 말이다. “그는 언변이 아주 뛰어나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픽사의 공동창업자 스미스가 말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요정 사이렌의 섬에 가까워지자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았듯이 픽사 경영진은 은밀한 신호를 정해 잡스의 매력에 맞섰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빠져드는 듯 보이면 자신의 코를 긁거나 귓불을 잡아당겼다.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잡스의 인내와 신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1990년대 초 그는 픽사를 매각하려고 자신의 옛 라이벌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해 여러 차례 인수자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픽사의 하드웨어 구매 고객 중에는 디즈니도 있었다. 2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과정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 영화사가 장편 대작영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를 필두로 하는 세 편의 영화계약을 따내 자신이 단순히 회사 금고만이 아님을 입증했다.
픽사에는 그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토이 스토리’ 제작자인 구겐하임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영화 사운드트랙의 작곡과 연주는 밥 딜런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말발이 서지 않았다. 1995년 1월 잡스는 래스터, 구겐하임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 ‘토이 스토리’ 시사회에 참석했다. 관객의 아첨에 가까운 반응에 잡스는 몹시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뉴욕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이곳의 작업방식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구겐하임은 전했다. 잡스는 CEO로 취임해 그해 연말까지 회사를 공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머리 위의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온 듯했다.”

그해 11월 ‘토이 스토리’가 개봉됐을 때 영화 캐릭터 우디와 버즈 라이트이어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픽사의 다음 영화 ‘벅스 라이프(A Bug’s Life)’와 ‘토이 스토리 2’는 그들의 성공이 요행수가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잡스는 재협상을 벌여 디즈니로부터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협상에 들어가면 그의 기세가 무섭다. 미친 사람 같다”고 스미스가 말했다. 픽사는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 ‘월-E’ ‘업(Up)’ 등 평단과 흥행의 히트작이 잇따랐다. 영화제작사상 이처럼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2006년 디즈니는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했다. 이 거래로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 주주가 됐다.
픽사와 잡스의 다른 사업체는 문화적으로 극과 극이었다. 픽사를 하와이 셔츠와 포옹에 비유한다면 애플은 철저한 미니멀리즘과 부하 호통치기였다. 하지만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잡스의 유전자가 픽사를 지배했다. “잡스, 특히 더 성숙한 잡스는 버즈, 우디, 니모를 미국문화의 일부로 만든 일을 하드웨어만큼이나 높이 평가한다”고 커윈은 잡스가 사망하기 2주 전 말했다. “잡스를 보편적인 의미의 천사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남을 대신해 기꺼이 일을 떠맡으려는 사람, 악마 같은 천사랄까, 그는 픽사에 그런 존재였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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