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UNITED NATIONS] 세계의 대법관이 되다

권오곤(59) 판사는 2001년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으로 부임했다. ICTY는 직원수만 1500명에 유엔 정규 예산의 10분의 1 정도를 쓰는 거대한 조직이다. 권 판사가 부임할 당시 한국인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2003년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송상현 재판관(재판소장), 르완다전범재판소(ICTR)의 박선기 재판관, 2011년 캄보디아특별재판소(ECCC)의 정창호 재판관이 각각 국제 사법기관에 진출했다. 이처럼 지난 10여 년 사이 정규직원과 파견판사, 인턴을 포함해 한국인 30 여 명이 국제 재판 업무에 진출했다.
2000년 권 부소장은 ICTY 재판관에 지원했다. “1980년 초임 판사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선배 외교비서관이 한국의 대법관보다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재판관으로 세계의 대법관이 되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권 부소장은 외국계 회사에 근무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국제무대를 동경해왔다. 한국에서 22년간 판사(형사합의부 재판장)와 대통령 비서실, 법원행정처,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경험도 충분했으며 영어 역시 비교적 능숙했다. “아무래도 영어로 읽고 쓰기가 원어민보다 늦다 보니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생소한 국제형사법과 그 재판제도에 익숙해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요. 그러나 성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어디에서나 통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헤이그 소재 ICTY에서는 한 사건의 재판이 시작되면 그 재판이 끝날 때까지 매일 재판을 한다. 사건 규모가 워낙 커서 몇 년씩 걸린다. “한국에서의 22년의 법관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됐죠. 한국에서 받은 법학교육, 특히 사법연수원에서 익힌 법률적 추론 능력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아요. 영미법과 대륙법의 제도가 절충된 국제 재판소의 제도는 대륙법을 따르면서도 영미법 제도를 많이 받아들인 한국의 법조인이라면 기여할 여지가 많죠.”
그는 2009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잔혹한 ‘인종청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재판의 재판장으로 임명됐고 ICTY 부소장직(임기 2년) 연임에도 성공했다. “한국인은 전쟁의 어려움을 딛고,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도 이룩한 근면하고 역동적인 국민이라는 점을 높이 샀나 봅니다. ICTY 재판관은 유엔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뽑는데 2001년과 2005년에 임기 4년의 상임 재판관으로 선출됐을 때 우리나라 국력이 많이 신장됐구나 실감했습니다. 결국엔 그 덕에 당선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꿈은 뭘까. “세계의 주목을 받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잘 마무리해 좋은 판결을 후세에 남기고 싶습니다. 막상 재판장으로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재판관 시절과는 또 다른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ICTY의 종료계획(completion strategy: 유엔안보리가 의결한 완료계획에 따라 2010년까지 모든 재판을 마치도록 한 것. 2008년 체포된 라도반 카라지치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 연장된 상태)이 원만하게 집행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권 부소장은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국제기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인 만큼 자신감과는 별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유창한 발음보다는 남의 말을 알아듣고,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유엔 예산 기여도나 인구 등을 감안할 때 ICTY에는 적어도 6명의 한국 직원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ICTY에는 한국계 미국인 재판연구관 2명뿐 한국인 직원은 한 명도 없다. 회원국별 직원수는 적정, 과다, 과소, 전무로 분류하는데, 현재 한국은 “전무(全無)”로 분류된다. 권오곤 부소장은 국제법에 정통한 많은 젊은이가 국제 사법재판계로 진출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익힐 것을 강조했다.
[
공동취재 이연화 인턴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중국·홍콩·태국 코로나19 확산…국내서도 유행할까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팜이데일리
리사♥재벌남친 해안가 포착…달콤 근황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3대 이모님 가전답네”…더러운 우리집 새집 만드는 ‘이것’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백기사’로 얽힌 재계…경영권 분쟁 때 빛나는 동맹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유바이오로직스 ‘영업이익률 42.7%’, 백신기업 1위...고수익 유지 가능할까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