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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늦깎이 벤처창업 열풍 - 50대 창업, 시니어 벤처의 반란

[Business] 늦깎이 벤처창업 열풍 - 50대 창업, 시니어 벤처의 반란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벤처 CEO 가운데 40대 이상의 비중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40대 벤처 CEO의 비중은 32%였지만 2011년에는 47.7%로 늘었고, 50대 CEO는 11.4%에서 27.5%로 늘었다. 2008년에는 아예 찾아볼 수 없던 60대 CEO도 5.5%로 눈에 띄게 늘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베이비붐세대에게 창업은 인생 제 2막을 열 수 있는 기회다.신약 개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바이오 벤처 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조중명(64) 대표는 52세의 나이에 대기업 임원직을 박차고 나와 창업에 도전했다. LG화학 바이오텍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던 그는 40세에 임원직에 오를 정도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당시 신약인 ‘팩티브’를 내놓고 국내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구자들을 우대해주는 LG의 분위기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불어 닥친 벤처 열풍이 조 대표의 마음을 흔들었다.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족들도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결국 조 대표는 2000년 7월 자신의 뒤를 따른 박사 급 인재 10여명과 함께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설립했다. 단백질의 구조 규명 기술을 기반으로 신약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현재 크리스탈지노믹스는 부작용이 없는 관절염치료제, 슈퍼박테리아도 박멸하는 신개념 항생제 암세포에만 작용하는 분자표적 항암제 기술을 확보하고 임상실험 단계를 거치고 있다. 신약 개발은 단 하나만 성공해도 엄청난 시장 가능성이 열린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라 쉽사리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분야다.



대기업 박차고 나와대기업에서 쌓은 개발 경험이 조 대표에게는 가장 큰 자산이었다. 신약을 연구하고 상품화되는 단계까지 지켜보며 제약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신약개발 벤처는 긴 연구개발과 임상실험 기간을 거쳐야 상용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투자기간이 길고 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때문에 기술이 있다 해도 많이 이들이 신약 사업에 나서길 주저한다. 투자자들은 조 대표가 이전 직장에서 쌓은 이력과 연륜을 담보로 그에게 돈을 걸었다. 조 대표에게 나이는 곧 경쟁력이었다.

새로운 도전이 꼭 청년들만의 몫은 아니다. 최근 벤처 창업이 늘어나는 와중에 50대 이상의 장년층 기업가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3월 7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벤처 CEO 가운데 40대 이상의 비중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40대 벤처 CEO의 비중은 32%였지만 2011년에는 47.7%로 늘었고, 50대 CEO는 11.4%에서 27.5%로 늘었다. 2008년에는 아예 찾아볼 수 없던 60대 CEO도 5.5%로 눈에 띄게 늘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베이비붐세대에게 창업은 인생 제 2막을 열 수 있는 기회다. 정부와 산하 기관의 지원책도 많아졌다. 소상공인진흥원에서는 전문경력 10년 이상,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시니어 창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시니어창업스쿨을 개설해 지난해 8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퇴직자가 자영업으로 옮겨가는 비율이 늘면서 이들에게 경영인으로서의 전문성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과정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의 김영기 교수는 “장년층 벤처 창업가가 가지는 가장 큰 자산은 전문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험 덕분에 쌓인 노하우, 그리고 그동안 모아 놓은 창업 자본”이라고 설명한다. 예전과 달리 장년층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젊다는 것 역시 이들의 벤처 도전을 뒷받침 하는 요소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내의 시니어 벤처 창업가들은 과학, 기술 등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학계에 있던 교수 출신 사업가도 눈에 띈다. 치아 미백제와 골이식재를 제조하는 바이오 벤처 나이벡의 정종평(66) 대표는 2004년 당시 59세의 나이에 서울대학교 학내 벤처로 창업 첫 걸음을 내디뎠다. 지난해 7월에는 창업 7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울대 치대 교수 재임시 정 대표는 전국 8개 대학의 20여명의 연구원과 함께 단백질의 최소 단위인 아미노산 결합 형태를 가리키는 펩타이드 연구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모델을 확립했다. 펩타이드를 응용해 뼈, 치아, 피부 등 신체 조직 관련 제품을 양산하는 것이다. 나이벡은 기술 우수성을 인정받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9년간 90억 원 지원을 받았다.

교수 시절부터 의료분야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자주 진행했던 정 대표는 연구자의 기여도가 낮게 평가 받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산학간의 협력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해 우수한 상품을 개발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빈번했다. 인체친화적인 재료 개발을 통해 의료업 제품 수준을 끌어올려보자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품질과 기술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비즈니스는 연구실과는 엄연히 다른 세계였다. “교수가 무슨 사업이냐”는 반응이 이어졌고 지인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투자금을 유치해도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곧 밀려왔다.



외부 평가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라그나마 정 대표는 교수시절부터 자신의 연구 분야를 응용해 산업 등 다른 분야와 협업하는 작업을 자주 해온 터라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다른 교수들 보다는 경영에 밝았던 셈이다. 캐시카우 제품으로 치아 미백제 제품을 내놓고 홈쇼핑 등을 통해 꾸준히 수익을 올리면서 골이식재에 대한 R&D 투자에 여력을 집중했다.

과학기술분야의 연구자들이 창업에 나설 때 경영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 대표는 “힘들더라도 창업자 본인이 회사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정 대표도 회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바람에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창업을 할 경우 기술에 정통 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자신의 상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고 자칫 아집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단점도 가진다. 정 대표는 “비전문가로부터 투자를 받고 협력업체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냉철한 평가를 듣게 되는데, 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년 벤처 기업인들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다름아닌 인적 네트워크다. 정 대표는 “제품 상용화 단계에서 치의학계의 후배 및 의약업계 지인들과 협력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조 대표는 “대기업에서 일하던 당시 제약회사 관계자와 학계 연구자들로부터 신망을 쌓은 것이 나중에 창업한 뒤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벤처 기업이 초창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인력 확보다. 기술집약 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가 절실하다. 해당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는 시니어 벤처 기업가들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인재를 설득해 데려오거나 그때 쌓은 인맥으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연륜 있는 기업가가 가진 장점 중 하나, 바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벤처기업 MOS를 설립한 김성한(52)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LG전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ODD제품을 개발했고 이후 몇몇 벤처기업에서 기술담당 사장직을 맡은 경력이 있다.

MOS는 김 대표와 대기업 출신의 개발자들 2명이 공동 창업한 벤처기업으로 20인치 이상의 중대형 터치스크린 생산을 목표로 한다. 김 대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우리 창업 멤버는 이번 비즈니스가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로 제품 개발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벤처는 인생 마지막 도전”스마트폰과 타블렛PC가 대중화되며 터치스크린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중대형 터치스크린은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분야라 성장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2013년 기준 중대현 터치스크린 시장인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회사는 MOS(Multipoint Optical Sensing)라고 명명한 고유의 터치스크린 기술에 대해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은 멀티터치가 지원되고 정확도도 높은데다 제작공정이 정전식보다 단순해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50대에 벤처기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협력사, 고객사 관계자가 젊을 경우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기업에서 다루던 기본 기술은 우리 사업 분야에서 모두 응용 가능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보다 훨씬 노련하다”며 “서투른 청년 3~4명이 할 일을 한 명이 해낼 수 있더라”고 전했다.

창업자의 연령대에 관계없이 벤처는 어느 곳이든 설립 초기부터 자금난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조 대표는 “적어도 3년 동안 벤처를 이끌고 나갈 자금을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조언했다. 나이벡의 정 대표는 “압도적으로 우수한 기술력이 있다면 이를 담보로 정부나 투자기관의 지원을 끌어오는 방법도 좋다”고 말한다. MOS의 김 대표는 “적어 시제품을 만드는 시점까지 버텨낼 자금이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들 장년층 벤처 CEO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청년 시절 현업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조 대표는 “기술면에서는 대기업보다 오히려 우리가 앞선다”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소수의 전문가들이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정 대표는 “학내 벤처에서 출발한 기업으로서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올해 4분기에 제품을 양산하고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회사에서 후배 기술자들과 함께 일하며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보람된 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미소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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