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서해안 갯벌 주꾸미 기행 - 봄 주꾸미는 며느리도 안 준다
[Travel] 서해안 갯벌 주꾸미 기행 - 봄 주꾸미는 며느리도 안 준다
‘집 나간 며느리 전어 굽는 냄새에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며느리가 탐내는 해산물로는 주꾸미도 있다. 서해안 갯마을에 가면 ‘봄 주꾸미는 며느리도 안 준다’는 말이 남아있다.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벚꽃 필 무렵 등장하는 알이 꽉 찬 주꾸미는 봄 별미 중 으뜸이다.
짧은 팔 문어 ‘주꾸미’낙지·문어·주꾸미. 우리에겐 친숙한 어물이지만 서양에선 ‘문어과 연체동물’을 괴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산 낙지를 통째로 입 안에 우겨 넣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고 ‘사람도 아니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문어는 영어로 옥토푸스(Octopus)다. 그리스어로 여덟이라는 뜻의 ‘옥토(octo)’와 발이라는 ‘푸스(pus)’를 합친 단어다.
주꾸미는 문어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다. 여덟 개의 다리가 물갈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위에 눈이 달려 있다. 그래서 주꾸미는 영어로 ‘물갈퀴발 문어(webfoot octopus)’ 또는 ‘짧은 팔 문어(short arm octopus)’로 불린다. 또한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몸통에는 내장이 들어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죽금어’라 쓰고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 웅크릴 준(纖)자를 써서 ‘纖魚(준어)’다. 주꾸미는 낮에 바위틈이나 소라 껍데기 속에 바짝 웅크리고 있는데,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꾸미의 산란철은 5∼6월이다. 조업 시기는 3∼4월에 절정을 이룬다. 산란을 앞둔 주꾸미 내장 속에 깨알 같은 알이 가득 차는 시기라서다. 알이 가득 찬 내장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면 알더미가 밥풀대기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를 입 안에 넣고 톡톡 터트리며 먹는 맛은 일품이다. 봄 주꾸미를 ‘며느리 주기 아깝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을 게다.
주꾸미 육질은 문어나 낙지처럼 타우린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 초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가미가제 특공대에게 주꾸미 달인 물을 먹였다는 설도 있다. 타우린은 특히 시력에 좋은데, 육안으로 목표물을 찾아 자살을 해야 하는 파일럿의 시력을 좋게 하기 위해 이를 먹였다고 한다.
주꾸미는 서해안 갯벌 어디에서나 잡힌다. 충청도 태안반도에서 전라도 끝 해남반도를 돌아 시계 반대방향으로 강진·보성·여수까지 갯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주꾸미가 난다. 가격차는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일수록 더 비싸다. 올 3월 말 현재, 주꾸미 소매가는 1㎏ 4만원 선을 기준으로 충청도 북쪽으로는 그 이상, 아래 쪽으로는 그 이하다. 그러나 알이 차기 시작하는 4월이 되면 전체적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주꾸미는 봄에 먹어야 제맛전북 군산 비응항은 새만금 방조제에 맞붙어 있는 포구다. 주꾸미를 잡는 소형 어선이 70여 척 정도 있다. 봄날에 여행 삼아 주꾸미 미식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주꾸미는 다소 소심한 놈이다. 낮에는 소라껍데기 속에 들어가 숨어 지낸다. 활동하는 시간은 밤 뿐이다. 오랜 시간 주꾸미를 상대한 어부들은 이런 습성을 활용해 주꾸미를 잡는다.
바다 밑바닥에 소라 껍데기가 달린 어망을 일정한 간격으로 뿌려두면 이 안으로 주꾸미가 쏙 들어간다. 어부는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또 주꾸미란 놈은 집 욕심이 없는지, 예쁜 소라가 아닌 빈 깡통을 던져놔도 집으로 삼고 지낸다.
주꾸미는 알 찬 놈을 높이 쳐주기 때문에 봄에 조업하는 게 정상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철 잡기도 한다. 선상에서 주꾸미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비응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자마자 만나는 방조제 앞바다가 주꾸미 낚시 포인트다.
주꾸미 조리법으로는 ‘샤브샤브’가 대중적이다. 해산물 베이스의 육수에 양파 등 채소를 넣고 끓인 뒤 물이 팔팔 끓고 있을 때 주꾸미를 살짝 데친다. 문어·낙지와 마찬가지로 주꾸미는 많이 익히면 질기고 식감이 떨어진다. 회갈색이 불그스름하게 변했을 때 냉큼 건져 먹는 게 좋다. 특히 알이 찬 주꾸미 몸통은 봄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다. 서울의 대중음식점에서 먹는 매운 주꾸미볶음과는 재료부터 다르다. 주꾸미볶음의 재료는 주로 냉동을 쓸 수밖에 없는데, 매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어 자극적인 맛을 낸다. 냉동한 것을 해동해 다시 삶으면 주꾸미 특유의 식감이 사라져 매운 양념으로 ‘범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
2미·중 갈등 고조되나…대만에 F-16 부품 판매 승인한 미국의 속내는
3"나도 피해자” 호소…유흥업소 실장, 이선균 협박으로 檢 징역 7년 구형
4배우 김사희 품절녀 된다...두살 연상 사업가와 결혼
5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바이오 진출 이어진다…신약개발 자회사 ‘에이엠시사이언스’ 설립
6공동 사냥한 게임 아이템 ‘먹튀’ 소용없다…”게임사가 압수해도 정당” 판결 나와
787억 바나나 '꿀꺽'한 코인 사업가..."훨씬 맛있다"
8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소송 이어져…캐나다 언론사 오픈AI 상대로 소송
9'진영이 형이 돌아왔다' 56% 급등 JYP...1년 전 발언 재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