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CREDIT CARD] 한 장이면 충분하다
[SOCIETY CREDIT CARD] 한 장이면 충분하다
“신용카드 몇 장이나 갖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몇 장이라고 선뜻 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지갑에 넣고 다녀도 잘 쓰지 않으면 그런 카드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른다. 게다가 친지의 권유나 카드사의 유혹 때문에 만든 카드도 여러 장이다. 지갑뿐 아니라 집이나 사무실 어디에선가 잠자는 카드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약 558조 5000억원으로 세계 2위다. 미국이 한국의 4배인 2100조원 가량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미국의 경제규모는 한국의 13배가 넘는다. 경제 규모로 견줘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신용카드 사용 실적은 3배 이상 큰 셈이다. 실제로 2009년 닐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민간소비지출 대비 신용카드 이용률은 미국이 19.4%, 일본 19.2%, 영국 15.9%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2010년 57%, 2011년 3분기까지 61%를 기록했다. 100만원을 쓰면 61만원은 신용카드로 결제한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신용카드 왕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신용카드 전문 마케터 최동원씨는 우리나라 신용카드 시장의 성장 요인으로 우수한 마케팅 전략을 꼽았다. 특히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무궁무진한 혜택이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공연·쇼핑 등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할인해 주는 카드부터 사용할 때마다 기부전용 포인트를 제공하는 카드까지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마케팅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앞서간다.
포인트 적립이나 캐쉬백 정도가 혜택의 전부인 해외카드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에서 여성전용카드로 인기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아미티에 카드는 여행자보험, 쇼핑보험 제공이라는 혜택 밖에 없다. 국내의 여성우대 신용카드는 육아, 미용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분야에도 할인 혜택을 준다. 택시요금을 카드로 결제하면 승차한 택시의 차량 번호와 결제 시간을 보호자에게 곧바로 문자로 보내주는 택시안심서비스나, 얼굴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치료비와 성형수술비를 보상받는 성형보험에 무료로 가입시켜주는 카드도 있다. 미국의 신용카드비교 사이트 크레딧카드닷컴(www.creditcards.com)에서 비즈니스 분야 1위를 차지한 비즈니스 골드 리워드 카드의 혜택은 포인트 적립뿐이지만 한국 신용카드의 비즈니스 서비스는 개인사업자에게 사업지원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금융 외적인 부분에서도 혜택을 제공한다.
카드를 발급할 때 사은품을 지급하는 사례도 많다. 사은품에 현혹돼 카드발급 신청서에 사인을 하는 경우가 그래서 생긴다. 올해 공직 시험에 합격한 문지연(28)씨는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갔더니 카드 발급을 권유하러 온 영업사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회비 면제에 즉석에서 현금까지 건네줘 부담 없이 가입했다”고 문씨는 말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은 신용카드 남발로 이어졌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7개 카드사가 운영하는 카드 종류는 총 1만254개다. 이중 7000여종의 카드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사장된다. 발급된 카드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신용카드의 25% 정도인 3295만장 가량이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장롱카드’이기 때문이다. 영업비, 카드 제작비, 배송료 등 카드 하나를 발급하는데 드는 비용은 5~10만원이다. 사용하지도 않을 카드를 발급하면서 연간 1조5천억에서 3조원 가량을 낭비하는 셈이다.
카드회사마다 제공하는 리볼빙, 카드론 등 고금리 현금대출 상품도 문제다. 현금서비스는 까다로운 절차 없이도 급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은행 대출의 몇 배나 되는 이자가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카드론 대출 총액은 23조 9천억원으로 2009년 대비 33.3%나 증가했고, 2007년 3조 5천억원이었던 리볼빙 이용 잔액은 2011년 6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또다시 늘어난 신용카드 발급은 2003년의 ‘신용카드 대란’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1인당 카드 발급이 4.6개를 넘어서면서 신용불량자 400만 명을 양산했던 기억이다. 그 뒤 감소추세였던 1인당 신용카드 발급 수는 2006년부터 다시 늘어 2010년 처음으로 4.6개를 넘어섰다. 카드사들이 분야별로 다양한 혜택을 갖춘 카드들을 개발하고 공격적인 영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연회비나 가입절차에 비해 혜택이 지나치게 많아져 ‘신용카드 체리피커’들이 늘어난다는 점도 2003년과 비슷한 현상이다. 카드론, 리볼빙, 현금서비스를 모두 합한 카드 대출금이 2011년 3분기에 38조2000억원으로, 2003년 3분기 39조4000억원과 흡사하다.
신용카드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신용카드의 혜택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 축소를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에서도 직불카드의 소득공제율을 늘리고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등 신용카드에 준하는 혜택을 직불카드에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여신금융협회는 상담원 연결 없이 신용카드를 해지할 수 있는 ARS를 마련했다.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의 김정주 사무관은 “결제패턴이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신용결제에서 체크결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불카드 활성화를 모색해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의존도를 줄이려는 계획이다.
카드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KB국민카드는 지난 2월 국민은행에서 분사한지 1주년을 맞이해 2012년 핵심 추진과제로 ‘One Plate 마케팅 전략’을 제시했다.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해서 수익을 내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 한 장의 카드로 소비자 만족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서 KB국민카드는 ‘혜담카드’를 내놓았다. ‘혜택을 담는다’는 뜻을 가진 이 카드의 혜택은 생활서비스와 12가지의 라이프스타일서비스로 이뤄져 있다. 생활서비스는 카드발급시 제공되는 기본 서비스로 대중교통, 통신요금, 공과금 등 생활밀착형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주유, 병원·약국, 여행, 자동차 등 12가지 분야로 이뤄진 라이프스타일서비스는 가입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분야별 할인율과 이용한도까지 소비자가 직접 고르게 했다. 대신 원하는 혜택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연회비가 늘어난다. 적은 연회비로 최소한의 서비스만 받거나 연회비를 많이 내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소비자가 직접 만드는 국내 최초의 ‘DIY 카드’인 셈이다. 12가지 혜택의 조합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KB국민카드는 소비자 패턴에 맞게 패키지 상품도 준비했다. 직장인의 경우 생활서비스, 뷰티·헬스, 음식·주점, 스타일푸드 등을 종류별로 담아 연회비는 2만5천원이다. 그 외에 교육, 쇼핑, 공연·영화 혜택이 담긴 주부팩이나 주유와 마일리지가 담긴 마일리지팩, 가족용 패밀리팩 등 소비자의 생활 환경에 최적화된 패키지들이 마련돼 있다. 매번 용도에 따라 새로운 카드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카드의 장점이다.
KB국민카드는 마케팅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꿀 방침이다. KB국민카드의 최기의(56) 사장은 그동안 “발급을 원하지 않는 고객에게 무리하게 마케팅을 한 측면이 있다”면서 “카드 모집사원의 역할을 카드발급 권유에서 고객 사후 관리 쪽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많은 카드를 발급하기만 하면 수당을 받았던 기존의 영업사원 관리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카드는 다다익선이 아니다. 똑똑하게 신용카드를 써야 돈을 버는 ‘카드 재테크’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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