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셰프 4인의 ‘요리 토크’
숨겨놓은 비밀 레시피는 없다
- [FOOD] 셰프 4인의 ‘요리 토크’
숨겨놓은 비밀 레시피는 없다
사진 오상민 기자

4월 16일 20여 명의 셰프가 참석한 가운데 ‘셰프 장 클래스’가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셰프들에게 우리 장을 알리기 위해 샘표식품이 개최한 행사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파인다이닝을 하는 셰프도 여럿 있었다. 이들이 된장, 간장을 공부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했다. 요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알고 싶었다. 셰프 장 클래스가 시작되기 전 네 사람이 서울 충무로 샘표 본사 9층에 모였다. 모두 서둘러 점심 장사를 끝낸 후 오후 1시30분쯤 나타났다.
오세득 셰프가 운영하는 줄라이는 2010년 뉴욕 타임즈 매거진 에 소개됐던 서울 반포동의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이 땅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요리한다는 게 모토다. 초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였던 노재승 셰프는 ‘다른 것을 모두 잊을 수 있는’ 요리의 매력에 빠져 요리사가 됐다. 현재는 임피리얼 팰리스호텔에서 일한다. 서양식 요리를 주로 하지만 쌀을 주제로 쓴 석사학위 논문을 계기로 농림부의 쌀요리 프로젝트 ‘미라클’의 멘토 셰프로 활동했다. 국문학을 공부하다 방향을 틀어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공부한 백상준 셰프는 현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컬리나리아12538’을 운영한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KBS ‘생방송 오늘’의 ‘우리땅 우리음식’ 코너에서 전국 곳곳의 식재료와 숨은 맛을 찾아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사의 꿈을 꿨다는 박정현 셰프는 호주에서 경험을 쌓고 2010년부터 정식당에서 모던 코리안 메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네 사람 중에는 이번에 처음 보는 사이도 있었지만 요리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금새 친해졌다. 기자가 사회를 보며 대화 중간에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오세득 가끔 요리에 미소된장을 쓸 때가 있어요. 그러다 우리 된장을 써볼까 해서 써보면 냄새가 너무 강해요. 그걸 어떻게 해 볼까 늘 고민이 많았어요.
노재승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된장찌개입니다. 어렸을 적 경기도 양평에서 살았는데, 그 때 할머니께서 담근 된장에 텃밭에서 키운 애호박이랑 고추를 넣고 끓여주셨어요. 근데 지금은 그걸 먹을 수 없잖아요. 시중에서 파는 된장으로는 그 맛도 안 나고요. 그래서 오늘 배워보려고요.
박정현 정식당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프렌치나 모던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정식당에 와서 모던 코리안을 하고 있는데요. 의외로 장은 잘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깔끔하게 멸치육수나 바지락을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뭔가 한계에 부딪히는 거 같기도 했어요.
백상준 저는 사실 된장, 고추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오늘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해요. 사실 김치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처음으로 담가 먹었어요.
레시피 있다고 똑같이 못 만들어
사회 음식 드라마에 보면 여러 시험을 거친 후계자에게만 비법을 전수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요. 실제 비밀 레시피 하나 정도 숨겨놓고 계신가요?
노재승 아니요, 어차피 프렌치나 이탈리아 음식은 훌륭한 레시피를 달달 외워도 원래 음식과 똑 같은 걸 만들 수 없어요.
오세득 비교적 검증됐다고 할 수 있는 교과서의 레시피도 그대로 만들면 맛이 없습니다. 사람들 입맛이 계속 변하거든요. 그리고 밑에 직원들 안 가르쳐 주면 내가 힘든데. 빨리빨리 시켜야 되는데 비법이 어디 있어요. 우리 주방은 다 개방돼 있어서 옆에서 보면 뭐 넣는지도 다 보여요.

백상준 제 식당은 빵이나 스탁 같은 걸 제외하고는 레시피가 아예 없어요. 제가 0.001g까지 적힌 레시피를 준다고 해도 직원은 똑같이 못 만들거든요. 그래서 레시피를 만드는 것 보다 직접 맛을 보고 감각으로 익히면서 요리를 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아, 우리 셰프가 이 정도 점도의 마요네즈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감으로 익히라는 거죠.
박정현 물론 설렁탕이나 콩국수 같은 메뉴는 비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일하는 레스토랑 쪽은 시즌별 메뉴가 계속 바뀝니다. 빨리 새로운 걸 공유하고 같이 체크해야 발전하죠.
노재승 1년 전 메뉴도 다시 못 쓸 정도로 계속 바뀌니까요.
사회 그러면 새로운 메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나요.
박정현 예술가나 경영 하는 분들이 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가장 쉬운 것은 물론 많이 먹어보고 그걸 어떻게 응용할까 고민하는 거죠. 이 외에 사물이나 음악에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식자재에서도 많이 떠올려요. ‘아, 이 재료는 이런 단맛이 있으니까 시큼한 게 더해지면 좋겠다. 시큼한 걸 넣고 보니 질감이 좀 부족한데 바삭한 질감의 재료를 더해보자’, 뭐 이런 식이죠.
노재승 저는 요리가 재료를 가지고 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료를 사서 장난을 많이 치죠. 대학 두 군데서 강의를 하는데요,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보통 조리과목은 가르치는 사람이 시연을 하고 그대로 만들어보도록 하죠. 저는 매번 새로운 재료를 준비해 놓습니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이걸로 네가 만들고 싶은걸 만들어 봐”라고 해요. 학생들이 만드는 걸 보면 정말 엉뚱한 것이 많아요. 거기서 ‘이거구나’하며 무릎을 치기도 합니다. 학생이 만든 라이스크로켓이라는 게 있었어요. 저희 샐러드 메뉴에 그걸 조그맣게 만들어 넣어보기도 했죠.
오세득 2~3일 직원들에게 식당을 맡겨놓고 떠날 때가 있어요. 각 지역에 가면 ‘00의 고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걸 사죠. 예를 들어 횡성은 한우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더덕의 고장이기도 해요. 거길 가면 더덕을 사죠. 부근에 더덕요리를 하는 식당에 가보기도 하고요. 구입한 재료는 주방에 던져놓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어? 이게 뭐예요”하며 몰려오죠. 그러고는 각자 재료 특징도 찾아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봅니다. 제가 따로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백상준 매주 각 지방을 돌아다닌 적도 있어요. KBS ‘생방송 오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우리땅 우리 음식’이라는 코너를 맡았을 때입니다.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와 음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식당 문 열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우연히 섭외가 들어와 시작했죠. 꽃게잡이 배, 문어잡이 배, 광어잡이 배, 오징어잡이 배…. 정말 안 타본 배가 없어요. 산골에도 많이 가봤고요. 그 때 연이 닿은 분들께 지금도 재료를 공급받아요. 제게는 정말 큰 밑천이죠. 이 밑천이 떨어지면 저도 다른 것을 개발해야겠지요.
좋은 재료 구하려 ‘프락치’ 심기도
박정현 백상준 셰프님의 프로그램 보면서 굉장히 부러웠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산지에 가서 먹어보는 거잖아요. 어떨 때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재료를 사려고 해도 원하는 걸 구입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마트에는 품종이 한정돼 있거든요. 잘 팔리는 것만 가져다 놓죠. 사과만 해도 제가 어렸을 때는 국광·홍옥·부사 등 다양했는데 이제는 한가지 품종 밖에 없어요.
백상준 사실 물량이 많지 않아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지역에서 팔리고 마는 재료가 많더라고요.
박정현 그렇지만 실제 셰프들이 자주 재료를 찾아 여행을 갈 수는 없어요. 자리가 잡힌 식당은 좀 덜하겠지만 일단 레스토랑을 비우고 떠나려면 불안하죠. 그리고 산지에서 직송을 한다고 해도 수량이나 질이 일정치 않아요. 수급이 딸린다며 공급을 못한다고 하기도 하고요.
오세득 그래서 노량진 수산시장에 ‘프락치’를 심어놓는 거 아니겠어요. 새로운 거 들어오면 바로 연락 달라고 거기 상인들한테 부탁을 해 놓는 거죠. 제 프락치는 ‘미경이 엄마’입니다.
사회 오 셰프님은 아침마다 스쿠터를 타고 장을 보신다고 하던데요.
오세득 프락치가 연락을 해주면 가는 거죠. 요즘은 차도 탑니다. 어떻게 매일 스쿠터만 타요. 우리는 기업 형태 레스토랑이 아니니까, 사러 다닐게 많아요. 데코레이션 할 꽃도 보러 다녀야 하고요. 점심시간이 끝나면 필요한 공산품을 사러 나갈 때도 있어요. 우리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뭔가 새로운 걸 원해요. 점심 장사가 끝나면 저녁 메뉴를 짜죠. 매일 메뉴를 새로 짭니다. 제 철에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로 프렌치를 만든다는 게 제 컨셉트니까요.
박정현 저도 하루 일과가 비슷한데요. 9시30분에 출근해 재료를 체크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점심 장사가 끝나면 3~4시 정도에 휴식시간이 있어요. 새 메뉴를 개발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정식당 메뉴개발과 직원 교육 을 전담하는 게 제 역할이죠. 정식당에 오기 전 식당을 옮기는 중간에 길게 여행을 다닌 적이 있어요. 런던에서 인턴을 마치고 2달 정도 유럽여행을 했고요. 호주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5달 정도 동남아 여행을 다녔죠. 남미나 동남아시아에는 매력적인 음식이 굉장히 많아요. 지금은 뉴코리안을 하고 있지만 제 스타일의 음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음식 경험을 주고 싶어요.
백상준 식당 문을 열기 전에 선배가 하는 레스토랑 홀에서 매니저로 일했어요. 제 레스토랑을 차리기 위해 준비를 한 거죠. 이렇게 해서 지금의 식당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남들과 다른 걸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손님들이 좋아할 음식을 하는 거 더라고요. 산지에서 바로 재료를 받아 신선하고 손님들이 좋아할만한 요리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은 메모지에 그날 저희 식당에서 먹은 음식의 좋았던 점을 적어 주신 손님이 있었어요. 그냥 맛있다고 하는 것 보다 더 기억에 남고 고맙죠.
노재승 저는 편지는 아니고 용돈 하라고 팁을 많이 주시던 손님이 기억에 남는데요, 하하. 연말 모임에 오신 손님들이었는데 음식이 별로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저를 불러서 이렇게 저렇게 다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만들어 직접 가져다 드렸죠. 그분들끼리 내기를 했나 봐요. 셰프가 직접 들고 올지, 홀 직원이 들고 올지에 대해서요. 제가 직접 들고 가니 고맙다며 팁을 주셨어요. 고객과 소통하는 요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농장에서 재료도 기르고 싶어
사회 앞으로 어떤 요리를 하고 싶으세요.
노재승 호텔에만 11년 있다 보니 이제 제 식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호텔이 좋은 점도 있지만 제한적인 면도 많거든요. 코드 맞는 사람들이랑 작게, 제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도 싶고요.
백상준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식당 외에 좀 더 캐주얼 한 레스토랑을 구상하고 있어요. 물론 파인다이닝도 좋지만 음악 하나, 인테리어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요. 좀 더 즐겁게 손님들과 얼굴을 맞대고 일하고 싶어요. 친구 한 명과 계획 중인데 올 가을이나 늦어도 내년 봄에는 문을 열려고 합니다. 최원석 셰프님, 한복려 선생님 등과 함께 준비한 책이 초여름쯤에 나와요. 우선 그걸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내용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오세득 오너 셰프 레스토랑은 맞춤 요리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죠. 그런데 저희 식당 위치가 굉장히 ‘뻘쭘’해요. 서래마을에서도 벗어나 있고요. 좋은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다가 들르게 되잖아요. 그것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어요. 예술품을 보면 예술가만의 색깔이 있잖아요. 누군가 제 요리를 보고 ‘오세득이 만들었구나’라고 알아챌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제주도에 제 농장을 하고 있는데요, 농사도 계속 잘 지어야겠죠.
박정현 떠먹는 샐러드라고 제가 정식당에서 만든 된장찌개를 응용한 메뉴가 있어요. 병어조림을 응용해서 만든 음식도 있었고요. 배숙소스를 곁들인 오리고기도 있어요. 다양한 음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양한 음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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