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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구찌 회장

[COVER STORY]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구찌 회장


돌체 비타(Dolce Vita). 이탈리아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1960년대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 구찌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구찌 회장은 제 2의 돌체 비타를 꿈꾸며 혁신의 가위로 구찌를 재단하고 있다.

“배경은 훌륭한데 얼굴이 별로네요.”

인터뷰 전에 사진 촬영을 하고 온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Patrizio di Marco) 회장의 얼굴이 상기됐다. “사진을 재미있게 찍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되더라”며 자신의 외모 탓을 했다. 하지만 185cm는 돼 보이는 큰 키에 깔끔한 핀스트라이프 블랙 정장을 몸에 딱 맞게 입고 나타난 디 마르코 회장은 패션 모델 못지않았다. 얼굴과 몸짓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2009년 취임 후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유독 한국엔 잘 전달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구찌의 변화’를 가장 잘 상징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서울에 오픈 하게 됐죠. 한국 시장에 구찌의 본질을 알리고 싶습니다.”

지난 4월 24일 서울 청담동의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VIP룸에서 디 마르코 회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에 각인된 구찌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먼저 한국 시장 정비 작업에 나섰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이 신호탄이다.

“그간 구찌는 GG 로고로 잘 알려져 있었죠. 하지만 구찌의 본질은 몇 십 년간 ‘Made in Italy’라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온 브랜드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써 사회적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찌가 머지않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디 마르코 회장은 이번 방한에서 두 가지 특별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가 강조한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다.

우선 그는 구찌가 한국가구박물관과 함께 개최한 특별 전시회 ‘변하지 않는 장인의 손길’을 찾았다. 300년간 전해 내려온 한국 가구 장인의 작품과 91년의 역사를 가진 구찌의 다양한 아카이브(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 제품 70여 점이 함께 전시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멋을 선보였다.

디 마르코 회장은 전시회 개관식에 참석해 “한국의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5년 간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후원한다”고 밝혔다. 구찌는 5년간 총 5억원을 후원한다. 후원금은 유실될 위험에 처한 국내 문화유산 보존 사업에 쓰인다.

그는 한국 패션 학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시작했다. 패션 전공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구찌 장학프로그램’을 가동한다. 매년 5명의 학생을 선발해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이탈리아 구찌 본사와 패션쇼를 탐방하는 기회를 준다.

“구찌는 사회공헌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CSR 활동을 펼칠 겁니다.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명품 업계서 24년간 경영능력 길러



브랜드 재정립에 주력하고 계시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구찌는 9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그간 장인정신과 전통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를 바꾸기 위해 제품, 매장, 커뮤니케이션, 직원관리, 규정 등 모든 면에서 브랜드 재정립에 나섰죠. 우선 전통적 아이콘을 재해석해서 제품에 담았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인을 이탈리아 피렌체로 초청해 제품에 담긴 장인정신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죠. 구찌 장인들이 직접 각 국가를 방문해 제품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아티잔 코너’도 개최했어요.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손녀 샬롯 카시라기 공주를 모델로 내세운 캠페인도 벌였죠.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헤리티지와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이게 널리 알려지도록 한 겁니다. 무엇보다 좀 더 고객 중심적으로 변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브랜드가 변했다는 걸 고객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달라진 제품을 통해서겠죠.“물론 이전 구찌 제품들도 훌륭했지만 너무 대중적이었어요. 5년 전에 구찌 매장에 방문하면 주로 GG 로고가 새겨진 캔버스 가방을 봤을 텐데요. 이제는 세계 어느 매장에 가더라도 가죽 제품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젊은 고객을 위해 온라인 판로를 활성화했죠. 기존의 명품 이미지가 훼손되는 모험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저는 늘 우리 E-commerce가 브랜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운영된다면 컨트롤이 가능하죠. 구찌는 디지털 스토어를 통해 브랜드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Gucci.com의 리뉴얼 이후 성과는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구찌가 택한 혁신의 가장 성공적인 예로 꼽고 싶어요. 구찌는 2000년대 초 처음으로 온라인을 도입했고 고객의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그들의 니즈에 따라 진화해왔습니다. 최근엔 ‘모바일’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늘어나면서 정보를 얻고 쇼핑을 하는 주요 채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신흥 럭셔리 브랜드가 치고 올라옵니다. 역사가 오랜 브랜드로써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글로벌 명품 시장은 1998년과 2004~2005년을 기점으로 전과 후를 1, 2, 3단계로 나눕니다. 1, 2단계에서 브랜드는 로고를 선호하는 고객들로 인해 큰 성공을 거뒀죠. 이 단계를 지나면서 고객 취향은 더욱 세련돼졌습니다. 그들은 로고가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가죽가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죠. 구찌는 1~2단계에 머물러 있는 고객들의 브랜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흥 브랜드들이 작고 새롭고 특별하다는 점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구찌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구찌 본연의 가치를 전달해 고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초고속 승진은 위험을 택한 보상

디 마르코 회장은 명품 업계에서 오랜 동안 몸 담아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주변에서는 그를 결단이 서면 즉시 행동에 옮기는 ‘행동형 리더’라고 말한다. 배짱이 두둑해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찌 회장으로서는 젊은 나이죠. 초고속 승진의 비결이 궁금합니다.“그렇게 젊지 않아요. 몇 달 후면 50이니까(웃음). 옛 말에 ‘행운은 용기 있는 자와 위험을 피하지 않는 자를 돕는다(Fortune helps the brave and the risk-taker)’고 했죠. 더 쉽고 위험이 적은 일을 할 기회도 있었지만 구찌를 선택했어요. 지금의 위치는 위험을 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해요. ‘일, 열정, 믿음, 운’이 비결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번씩 스스로를 돌아보고 칭찬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구찌 회장에 낙점된 결정적 이유가 파산 직전의 보테가베네타 매출을 8년 만에 10배나 늘렸기 때문이라던데요.“보테가베네타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놀라운 반전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죠. 제겐 구찌에서 지난 3년간 이룬 것들이 더 놀랍습니다. 구찌는 인지도가 높고 매출 규모가 큰 거대한 기업이죠. 이런 브랜드에서 2년간 3억 유로의 매출 성장(지난해 매출 31억4300만 유로, 한화 4조7240억원)은 굉장한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공은 브랜드의 변화죠. 지난 3년간 이를 위해 어느 때 보다 많은 노력과 힘을 쏟았습니다. 엔진의 조각을 바꾸듯 세심하게 브랜드 포지션을 조정했고 현재 구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성이 높은 럭셔리 브랜드가 됐죠.”



구찌라는 세계적인 명품 제국을 잘 이끌어가려면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직원들의 소속감이 중요해요. 그들이 구찌를 배우고 느끼기를 원해요. 구찌처럼 크고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의 일원이 된다면 그 브랜드가 지닌 역사와 업적에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원부터 사장까지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기업이 가장 좋은 회사죠. ‘구찌에 소속돼 있는 한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여기서 그의 ‘넘버 원 직원’인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대개 명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러하듯 그녀도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다. 디 마르코 회장을 도와 지금의 구찌를 있게 한 장본인이자 그의 연인이기도 하다. 둘은 사내 연애를 한다. 2009년 6월부터 교제해왔다.

일화가 재미 있다. 둘은 각자 따로 구찌그룹을 총괄하는 PPR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을 만났다.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연애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피노 회장은 “이 사실이 외부(주주들)에 어떻게 비칠지 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앞으로 얼마나 조심할지도 알고 있다”며 교제를 지지했다. 이후 둘은 부하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당신에게 폐가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 차례로 ‘허락’을 받았다. 이후 둘의 연애 사실은 사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지난해 10월 영국의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보도됐을 정도다. 그는 이번 방한 때 프리다 지아니니와 동행했다.

명품 브랜드는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조화가 중요하죠. 프리다 지아니니와 일과 사랑을 어떻게 조율하나요.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관계는 서로 다른 역할과 의무에 대한 철저한 ‘존중’에 기반해야 합니다. 서로의 전문 분야가 다르므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구찌가 있기까지 프리다의 공이 큽니다. 그녀의 어떤 점을 높이 삽니까.“그녀와 난 구찌가 ‘오리지널 구찌’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브랜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헤리티지가 말해주죠. 우리는 구찌 창업자인 구찌오구찌의 비전으로 돌아가 ‘헤리티지’와 ‘패션’사이에서 완벽한 조합을 찾아냈죠. 프리다는 ‘과거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현재를 직시하며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지금 이 회사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실행에 옮기라’고 했어요. 크리에이티비티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쁜 것을 디자인하고 싶어하죠. 그래서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구찌 만큼 자율성이 보장된 회사는 별로 없어요.”

그는 독보적인 경영 수완으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수장이 됐다. 또 아름답고 능력 있는 애인을 두고 있어 여느 남자라도 부러워할 만 하다. 일상에 관해 몇 가지 물었다.



스카우트 제안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내겐 구찌가 가장 좋은 회사죠. 좋은 브랜드와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회사로 가기에는 나이도 좀 있고…(웃음).”



평소 점심을 안 먹는다고 들었는데요. 중년의 몸매라고 믿기 힘들만큼 날씬한 비결입니까.“점심을 거르는 것은 다이어트를 위한 게 아닙니다. 일본에서 일할 때 생긴 버릇이죠.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서 65명의 직원이 다닥다닥 붙어 일했어요. 점심을 먹으면 너무 졸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죠. 그때부터 안 먹기 시작한 게 습관이 됐네요.”



구찌의 최고경영자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별로에요(웃음). 이탈리아에 3개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 바빠 한 집에서 이틀 잔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죠. 저는 늘 돌아다닙니다.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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