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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세이코 중국서 스위스에 도전장

시티즌·세이코 중국서 스위스에 도전장



손목시계는 기능면에서 보면 매우 심플한 기계다.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간단한 기능에 비해 제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격 역시 수천만 엔에 달하는 초고가 제품부터 100엔 숍에서 파는 염가 상품까지 다양하다.


스위스 시계 중국인 소비심리 자극민간 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세계 손목시계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12% 증가한 3조1468억 엔이다. 부유층이 급증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손목시계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세계적인 위기를 겪었던 2009년을 제외하고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견인차는 세계 1위인 스위스의 스와치그룹이다. 7월 24일 2012년 상반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14.4% 증가해 3270억 엔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579억 엔으로 25% 늘었다.스위스제 손목시계가 비싼 이유는 귀금속으로 된 고가 케이스나 장식 때문만은 아니다. 태엽을 동력으로 하는 속도조절 기구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높은 기술력의 장인이 만들어 내는 정밀 구조의 매력에 애호가들이 과감히 지갑을 연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계식은 전지를 동력으로 하는 쿼츠식(Quartz)보다 가격이 비싸다.중력에 의한 측정 오차를 자동 조절하는 투르비용(Tourbillon)을 탑재한 모델은 최저수백만 엔을 호가하고, 내부의 종을 울려 시각을 알리는 미닛리피터는 가격이 1000만엔부터 출발한다.

장인의 기술이 응집된 기계식 무브먼트와 브랜드 특유의 세계관이 응집된 완성품은 둘도 없는 가치를 창출해낸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인 점과 이를 뒷받침하는 브랜드 가치때문에 가격은 더욱 오른다.지금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스위스제 손목시계지만 과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1969년 세이코가 출시한 세계 최초의 쿼츠식 손목시계 ‘아스트론’은 당시 손목시계 시장의 지형도를 단번에 바꿨다. 기계식보다도 정밀도가 높고 유지보수가 불필요한 쿼츠는 대량 생산을 통해 크게 히트했다. 대응에 뒤쳐진 스위스 손목시계 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스위스의 업계 종사자와 관련 기업 수는 1970년 9만명, 1600사에서 1984년 3만명, 600사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곧 기계식은 부활에 성공한다. 손목시계 평론가인 나미키 코이치는 “1985년 발표한 율리스나르당의 천문시계 ‘아스트로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성공요인 중 하나였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 기계식 손목시계는 쿼츠 전성시대에 오직 기계식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이후 제조사간 그룹화 등 재편이 추진되면서 스위스 손목시계는 다시 업계를 인솔해가기 시작했다.

현재 손목시계 업계는 기계식과 쿼츠식이 각각의 시장을 형성해 공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내 생산액에서 기계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이지만 스위스 브랜드의 경우 2000년 이후 기계식 수출액이 쿼츠식을 뛰어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부유층이 급증한 중국이 효자 역할을 했다.나미키씨는 “세계 최대의 시계박람회인 바젤월드에 가 보면 시계를 구입하러 온 중국인 바이어가 놀랄 만큼 늘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모든 시계 제조사가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중국 상하이의 번화가인 남경동로에는 고급 시계가게들이 즐비하다. 창립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시계 가게들에는 오메가나 롤렉스, 론진, 시티즌, 세이코 등 고급 브랜드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가격도 2만~3만 엔부터 수백만 엔까지 다양하다. 평일 낮부터 가족이나 커플, 남성 고객 등으로 붐빈다. 바슈론 콘스탄틴과 같은 최고급 브랜드는 보석상이 모여있는 고급 쇼핑몰에 직영점을 갖추고 있다. 과거 영국인 거주지였던 해안가에 위치한 파텍 필립 매장에 들어서면 석조로 된 매장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남성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예약 손님이 중심이지만 단골 고객일 경우 자택으로 마중을나가는 등 판매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중국도심의 관리직 이상의 화이트 칼라 4400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 내 구입한 고급 손목시계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메가43.4%가 단연 1위를 차지했다. 26.9%의 롤렉스, 13.8% 튜더 등이 뒤를 이었다. 런던 올림픽의 공식시계인 오메가는 발군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에서 고급 손목시계가 팔리는 배경에는 부유층의 성장과 함께 중국만이 지닌 독특한 사정도 있다. 첫째로 고급 손목시계를 사회적인 지위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명목소비(체면소비)’다. 승용차를 차례차례 상급 클래스로 바꿔가는 것처럼 손목시계도 론진에서 저가의 롤렉스, 그리고 최고급 롤렉스 순으로 바꿔가는 식이다. 두번째로 선물 수요가 많다. 중국인은 친해지면 고가의 선물을 주고 받는 관습이 있다.

부유층에서는 부부나 부모자식, 친한 친구 사이에 수만 위안 이상의 귀금속이나 손목시계 등을 선물한다. 고가의 상품을 주는 것은 당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라는 일종의 메시지다. 비즈니스 선물로도 그만이다.마지막으로 손목시계의 자산가치를 고려해 구입하는 별도의 고객층이 있다. 중국에는 도시의 부동산 개발이나 지방 탄광개발 등으로 성공해 재산을 모은 경영자가 셀 수없이 많은데 이러한 고객층은 현금과 더불어 보석, 골동품, 귀금속 등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고급 손목시계는 시세가 명확하고 감정도 확실하기 때문에 자산가치가 높다.


상하이 번화가는 고급 시계 전시장계속 커지는 중국 고급 손목시계 시장이지만 2011년 상반기를 정점으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버블 확대로 위기감을 느낀 중국 정부가 금융 긴축과 맨션 구입 제한 등으로 부동산 가격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체 조짐을 보이자 금융 완화와 경기 회복에 힘을 쏟으면서 소비도 다시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천만 명이라는 부유층이 집중된 중국이고 이러한 사회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는 한중국의 고급 손목시계 수요가 침체될 일은 당분간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스위스 브랜드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동안일본 제조사들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극복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상반기 동안 세이코홀딩스는 21%, 시티즌홀딩스는 19%의 매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 메이커의 중심은 진화를 거듭하는 쿼츠식 손목시계다.

가격은 보통 스위스 고급 기계식 손목시계보다 저렴해 1만~10만엔 대다. 태양광을 원동력으로 한 제품이나 GPS를 이용해 세계 각지에서 현지의 정확한 시간으로 자동조정되는 기능을 갖춘 제품도 나왔다. 그러나 스위스 브랜드의 약진에 기계식 시계 개발에도 힘을 쏟는 모양새다. 세이코는 고급 브랜드 ‘그랜드 세이코’에 기계식 무브먼트 탑재모델을 부활시켰고 시티즌은 스위스 브랜드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티즌은 스위스 브랜드가 격전을 벌이고있는 중국시장에서 ‘MADE IN JAPAN’의 신뢰를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티즌이 성장하는 원동력은 거대한 유통망이다. 일본에서는 대리점 판매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전용 매장이 중심이다. 중국의 한 시계잡지가 외제 시계의 점유율을 조사했는데 매출 기준으로 2010년 시티즌의 점유율은 2.73%로 오메가, 롤렉스 등에 이어 8위를 차지했다. 세이코, 카시오를 앞섰다.

시티즌은 2007년부터 저가격대에서 중가격대 제품을 중심으로 상품 조합을 다시 짰다. 수리센터를 늘리고 바코드에 의한 상품 관리로

위조품 대책도 강화했다. 대량 판매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를 낳는 판매전략으로 전향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중국 판매에서도 중간 가격대의 쿼츠식시계가 중심이다. 2011년도 중국 내 매출액은 2007년에 비해 2배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을 이뤘다. 나카이 아츠시 시티즌 중국지사장은 “스위스제 중심의 고가격대는 중국경제의 변화 조짐으로 부유층의 구매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중가격대 수요는 견고하다”며 지속적인 성장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해외 브랜드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미국의 블로바를 인수해 해외에서의 중가격대 브랜드를 확충했고 올해 3월에는 고급 기계식 무브먼트 제조사인 라쥬페레와 프로소도 인수했다. 이들 회사는 시티즌이 고급 기계식 시계 시장에 진출하는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1913년 일본 최초로 손목시계를 생산, 발매한 세이코는 종합 제조 능력을 갖춘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회사다. 기계식 무브먼트나 케이스 등의 부자재 제조에서 조립까지 일관된 생산 체계를 갖췄다는 얘기다. 자회사인 세이코인스트루먼츠에서 기계식 무브먼트를, 관련회사인 세이코엡손에서 쿼츠식무브먼트를 각각 제조한다. 생산한 무브먼트는 외부 브랜드에 판매하기도 한다.

2004년에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일괄 생산하는 고급시계 공방을 설립했다.올 3월에는 스위스의 고급 손목시계 브랜드인 태그호이어가 세이코인스트루먼츠의일부 부품을 자사 무브먼트에 채용하기로 발표해 존재감을 높였다. 세이코의 또 다른 강점은 폭넓은 제품 라인업이다. 1960년에 발표된 세이코의 고급 기계식 ‘그랜드세이코’는 쿼츠식의 성공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1975년에 일단 생산이 종료되었다가 1988년에 쿼츠식, 1998년에 기계식으로 부활했다.

또한 기계식과 쿼츠식을 융합한 스프링 드라이브 모델을 선보여, 작년 역대 최고매출을 기록했다.동시에 쿼츠의 기능 진화에도 여념이 없다. 세계 최초의 쿼츠식 시계인 ‘아스트론’과 동명의 신상품이 9월에 출시될 예정인데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현지시간에 맞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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