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전화회사는 옛말 콘텐트 무적함대 만든다

전화회사는 옛말 콘텐트 무적함대 만든다

전화회사 KT가 글로벌 미디어 유통그룹 변신을 선언했다. 견인차는 경제관료 출신인 이석채 회장. 그가 사령탑을 맡은 후 KT는 통신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IT산업이 창출한 가상재화(virtual goods) 경제, 앱 경제(App Economy), 네트워크 경제가 일자리 창출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가상재화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최대 2000억 달러에 이릅니다. 10%만 한국이 차지해도 200억 달러예요. 5만~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죠. 간접고용까지 포함하면 6만~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석채(67) KT 회장은 “가상재화 경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인 빈부격차 해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가 전체적으로 좋아지면 재정 면에서도 사회복지 정책을 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출산율과 인구 전망으로는 세금을 두 배로 내도 복지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세금을 두 배 걷었다가는 이민이 급증하고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대선 정국의 화두인 경제 민주화 해법이 이른바 가상재화 경제에 달렸다는 주장이다. 빈부격차와 저출산·고령화는 경제관료 출신 CEO인 그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암적 현상이다. 그는 가계부채나 재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9월21일 서울 서초동 KT 올레캠퍼스에서 그와 만났다.

가상재화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시나요.

“가상재화는 스마트 혁명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이자 스마트 혁명의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형의 재화(physical goods)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운송비가 들고 관세 등 무역장벽을 넘어야 하지만 가상공간 즉 유무선 네트워크에서 유통되는 콘텐트·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는 전 세계가 시장이고 순식간에 이동이 이루어지죠.”

그는 국내 2위의 모바일 게임 업체 컴투스의 약진을 예로 들었다. 컴투스는 과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외국에 지사를 개설한 후 주재원들이 그 나라 통신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했다. 그렇게 10년 공을 들였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아이폰 도입 후 이 회사는 앱스토어에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올려 지난해 176억원을 해외서 벌어들였다. 해외매출액 기준으로 모바일 게임 업계 1위다.



가상재화가 일자리 만드는 대안“유선 인터넷 망을 이용하는 컴퓨터 온라인 게임도 가상재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사람들만 할 수 있었죠. 대부분 불법 다운로드를 받았고요. 스마트 혁명이 창출한 가상재화는 반면 24시간 유통에 기본적으로 과금(billing)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 과거엔 애플만 성공을 거뒀지만 KT가 중국의 차이나모바일, 일본 NTT도코모와 오아시스라는 3개국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오아시스를 통해 일본 시장에 진출한 게임 앱 다크 블레이드가 출시 한 달 만에 2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빅 히트를 쳤죠. 무엇보다 가상재화 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취업이 아니라 창업하는 겁니다. 더욱이 과거의 창업과 달리 진입비용이 얼마 안 들어요. 컴퓨터든 서버든 스스로 마련하지 않고 빌려 쓰면 되기 때문이죠. 우리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네트워크에 실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는 게 KT의 꿈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중순 기자간담회를 열어 ‘콘텐트 생태계 동반성장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향후 3년간 1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우수 콘텐트 사업자(CP)와 중소 채널 사업자(PP)를 지원하는 한편 KT자체도 통신회사에서 글로버 ‘미디어 유통 그룹’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상재화의 유통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 IPTV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를 구축해 하나의 함대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이돌스타처럼 뺨에 작은 무선 마이크를 부착한 그는 거침이 없었다.

항공모함도 한방에 갈 수 있지만 함대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KT가 기함(旗艦)이 되는 콘텐트 무적함대인가요? 그럼 이 회장이 함대 사령관이 되는 건가요?

“그렇게 보셔도 되겠죠. KT는 세계 최고 수준의 콘텐트 하이웨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해 국내 중소 콘텐트 기업과 동반성장 하는 한편 미디어 유통그룹으로 성장할 겁니다. 우리는 자원이 많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어요.”

그가 부임하기 전 KT는 2류 통신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몰려 있었다. 공기업 시절의 갈라파고스적 조직문화도 여전했다. 관료 시절 강한 추진력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는 취임 석 달 만에 자회사인 KTF를 전격적으로 합병했다. 뒤이어 경쟁사들도 통합 회사로 변신했다. 이로써 유무선 통합 시대가 열렸다. 그는 또 아이폰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스마트 혁명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일련의 시도를 관통하는 것은 혁신이었다. 그는 혁신에 대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몸부림’이라고 정의했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한 혁신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어떤 비즈니스를 할 건지 선택해야 합니다. 위대한 기업들이 몰락하는 건 대부분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기 때문이죠. 지속가능 하려면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봐야 합니다.” 혁신은 저항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그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했다.

제살깎기(canivalization)가 불가피한 인터넷 전화(VoIP) 서비스를 시작할 땐 다섯 시간 동안 실무자들과 갑론을박했다. 마침내 한 젊은 직원이 “이 서비스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동의했다.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를 상품화할 땐 석 달 이상 간부들을 설득했다. 당시 KT의 IPTV 서비스인 올레TV(OTV)는 고사 직전에 처했다.

그래서 OTV와 KT가 최대주주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결합한 OTS의 출시를 검토하게 됐다. 문제는 수신료. OTV와 스카이라이프 수신료는 각각 1만원인데 둘 다 수신하는 OTS 요금은 1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책정됐다. 간부들은 그렇게 팔면 손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힘으로 누르지 않고 가슴을 움직이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혁신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이기 때문이죠.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한 건역발상의 개가였습니다. 만일 매출 상쇄(canivalization)가 두려워 서비스를 포기했다면 새로 열리는 시장을 경쟁사에 내줄 수도 있었어요.”

KT의 IPTV 고객 수는 3년 만에 4.4배, 308만 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KT의 영업이익은 57% 신장됐다. 2년 연속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 유무선통신 분야 세계 1위 기업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IT 분야에서 컨버전스를 주도해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했다.

“부임 당시 제가 통신이라는 업을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업 범위를 통신업에 국한하지 말고 통신을 근간으로 하되 우리 역량을 발판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자고 설득했습니다. 통신업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때 우리 업을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비즈니스로 확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노조와 협상해 6000명을 명예퇴직 시키고 젊은 직원 3000명 이상을 채용했다. 명퇴 덕에 150명 뽑던 회사가 1000명 가까이 채용하게 된 것. 명퇴자에게는 정년까지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고 명퇴금을 지급했다. 신규채용 인력 중 900명이 고졸 출신이다. 그 바람에 회사가 젊어졌다. 그는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KT의 인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6월 전

국 대학생 10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하고 싶은 기업’조사에서 KT는 6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나간 분 중 2500명을 2차 노동시장에 취업시켰습니다. 월급이 200만원밖에 안 되지만 일이 있으니윈윈 게임을 한 셈이죠. 우리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일자리 풀에 세대라는 칸막이가 쳐져 있습니다. 젊은 세대 쪽은 우수한 인력만 들어갈 수 있고 그 윗 세대는 고인 물이 돼 버렸죠. 이 칸막이를 들어내 물을 순환시켜야 합니다.

퇴직한 분들이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62세까지 기다려야합니다. 받아 봤자 그게 얼마나 됩니까. 칸막이 너머로 이동하면 200만원은 받을 수 있는데요. 그 자리를 채운 자식들은 300만~400만원씩 받고요. 스마트 워킹, 재택 근무도 그런 함의가 있습니다. 과거 자기 책상이 없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는데 요즘은 직원들이 받아들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이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나름대로 풀어가는 겁니다.”



리더의 자질은 통찰력과 용기그는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이다. 행시 7회에 미 보스턴대 경제학박사로 2대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관가를 떠난 지 13년 만에 CEO로 재기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맡은 경제기획원 대외협력 계획과장 시절 그는 1년 만에 일개 과를 차관급이 장인 해외협력위원회(외교부 통상교섭본부의 전신)로 키웠다.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의 성과가 경제관계에 달렸다고보고 상대국에 제시할 ‘선물’을 준비한 것이 주효했다. 이 일로 대외협력계획 과장이 대통령 해외순방 때 상대국과의 경제관계를 보고하는 게 관례가 됐다고 한다. 당시 매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에게 고(故) 정인용 부총리가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100% 승리라는 건 없네. 51%의 승리가 있을 뿐이지. 상대방에게 49%를 양보하는 그런 게임을 해야 그 일이 성공하고 오래가는 거네.” 그는 이 충고를 깊이 새겼다. 재정경제원 초대 차관으로 있으면서 목적세인 교통세를 신설했을 땐 내무부 간부들로부터 “현대판 조광조로 반드시 낙마할 것”이라는 뒷담화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상주감연구소, 다양한 감 가공품 선보여..."오늘 감잎닭강정에 감잎맥주 한잔 어때요!"

2‘원신’ 4.7 버전 업데이트…새로운 나라 ‘나타’ 예고편 공개

3대구시, 정밀가공 종합기술지원센터 준공...로봇-장비 무인화 "가속화"

4포항시, 스마트 농·수산업 전략 마련에 "동분서주"

5경북도의회,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후보자에 "부적합" 의견

6‘K-뷰티’ 미미박스, IPO 본격 추진…삼성증권 주관사 선정

7하이브, SM엔터 지분 일부 블록딜 처분…680억원 규모

8DL이앤씨, 가정의 달 사옥초청 ‘패밀리데이’ 실시

9KB금융, 국내 최초 ‘기업가치 제고 계획’ 예고 공시

실시간 뉴스

1상주감연구소, 다양한 감 가공품 선보여..."오늘 감잎닭강정에 감잎맥주 한잔 어때요!"

2‘원신’ 4.7 버전 업데이트…새로운 나라 ‘나타’ 예고편 공개

3대구시, 정밀가공 종합기술지원센터 준공...로봇-장비 무인화 "가속화"

4포항시, 스마트 농·수산업 전략 마련에 "동분서주"

5경북도의회,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후보자에 "부적합"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