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란 무엇인가?
“모험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든다(I love the idea of risk)”고 알 파치노는 말했다. “하지만 자살은 좋아하지 않는다(What I don’t like is suicide).” 그는 영화배우로서 처음 마주한 중대한 모험을 이야기했다. ‘대부(The Godfather)’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브롱크스의 한 식당에서 경쟁 상대인 갱 두목과 부패한 경찰서장을 면전에서 사살하는 장면이다.
파치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서 마이클은 갱 두목 솔로조를 쏜 뒤 총을 버릴 때(뭔가 더럽거나 무서운 것을 떨쳐 버리듯) 그냥 손에서 털어 버린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난 끝났어. 난 이제 끝났어(It’s not a part of me, I’m done, I’m done)’라는 듯이 말이다. 촬영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계획한 동작이 아니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실질적인 대작에 처음 출연한 32세의 배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as if he is, once again, the 32-year-old actor in his first truly major motion picture). 당시 그는 제작사가 마이클 역에 자신보다 더스틴 호프만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 같은 마이클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려고 혼신을 다했다.
“그 총을 던져버리는 동작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다(There was a combination of things in that gesture)”고 그가 말했다. 다시 조용했다. “어쩌면 ‘이 총은 내 게 아니야, 치워 버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 아니 정확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또 침묵이 흘렀다. “사실 양면적인 감정이었다(It was ambivalent).”
알 파치노를 맨해턴 미드타운의 커다란 아파트에서 만났다. 그가 임대해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그는 데이비드 마멧의 연극 ‘글렌개리 글렌로스(Glengarry Glen Ross)’의 브로드웨이 리바이벌에 출연할 예정이다. 부동산 사기꾼들의 작은 사무실을 배경으로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과 허튼 소리를 풍자한 현대판 우화다.
브로드웨이는 계속 그를 할리우드에서 불러낸다(The theater keeps pulling him back in from Hollywood). 마이클 콜레오네가 착실한 시민으로 살려고 할 때마다 마피아 패밀리와 혈연이 그를 다시 조직범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과 비슷하다(the way a Mafia family and blood ties keep pullingMichael Corleone back in every time he tries to go straight). 그러나 마이클이 아닌 알 파치노의 현실 세계에서 그가 착실하게 사는 길은 연극이다.
파치노는 올해 72세가 됐다. 오래된 초상화의 주인공처럼 멀리서 볼 때는 그가 투박한 석공(stonemason)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만투아 공작(베르디의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처럼 보인다. 세련된 동시에 미천하게 태어난 귀족(humbly born aristocrat)의 거친 얼굴을 가졌다. 까칠하게 자란 수염 속에 홍조가 오간다. 우연히 소설에서 본 “흥분에 젖은(bathed in high feeling)”이라는 표현이 계속 떠올랐다. 파치노는 늘 흥분에 젖은 상태다. 하지만 인터뷰에 조심스럽게 열의를 보이면서도 무심하고 늘 거리를 두는 듯한(detached, removed) 느낌을 주었다.
파치노는 곧잘 연기를 그림에 비유한다(Pacino refers often to painting as a metaphor for acting). 인터뷰를 할 때도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작업을 보는 듯하다. 바닥에 깔린 캔버스 주위를 돌듯이 그는 대화의 주위를 서성거린다. 가볍게 문지르고, 쿡쿡 찌르고, 뚝뚝 떨어뜨리고, 들이 붓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난 모순되고 애매한 말을 자주 한다(I can be contradictory, vague)”고 파치노가 말했다.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다보면 그렇다(It’s part of the struggle to find the words).” 그러나 나중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간단명료하게 말하려고 애쓴다(When we talk, I try to keep it simple).” 그런 모순과 모호함, 끊임없는 표현의 수정은 언어를 뛰어넘는 어떤 기본적인 진실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다. ‘대부’에서 마이클이 총을 던져버릴 때의 심정을 파치노가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알 파치노는 사실주의 연기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한다(Al Pacino does reality to perfection). 1970년대 ‘대부1, 2’ ‘형사 서피코’ ‘뜨거운 오후’ 같은 영화에서 파치노는 몰입 연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스카페이스’ ‘사랑의 파도’ ‘대부3(파치노는 “이 영화에서 머리 모양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인의 향기’ ‘히트’ ‘도니 브래스코’ ‘인썸니아’ 등 그 뒤에 출연한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자신이 각본을 쓰듯이 연기하면서 소설 ‘백경’의 에이햅 선장이나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 개츠비처럼 생생하고 새로운 미국의 남성상을 만들어냈다. 부패의 유산을 뿌리칠 수 없는 저주 받은 아들(‘대부’), 영웅적 충동에 이끌리는 상처투성이 파수꾼(‘형사 서피코’), 사랑과 분노의 모호함 때문에 내부적으로 단절된 부상한 무법자(‘뜨거운 오후’). 그의 전설적인 단순함은 미국의 연기를 재정의했다(His mythic simplicity has redefined American acting).
1970년대에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는 마음의 고향인 연극 무대로 돌아가 ‘파블로 허멜의 기초훈련(The Basic Training of Pavlo Hummel)’으로 토니상을 받았다. 파치노는 이렇게 말했다. “연극 배우는 공중 곡예사(aerialist)와 흡사하다. 늘 모험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연극보다는 그의 영화 연기에서 공중그네를 타고 무대 위를 나는 곡예사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난다. 그와 데이비드 마멧이 완벽한 콤비를 이루는 한가지 이유는 마멧이 영화대본을 쓰는 극작가라는 사실일지 모른다.
파치노는 마멧의 언가 “자연스럽게 들리지도 않고 연극조로 들리지도 않는다(doesn’t sound natural, and it doesn’t sound theatrical)”고 말했다. “그냥 계속 듣고 싶은 무엇처럼 들린다.” 마멧이 대본을 쓰고 감독한 새 영화(아직 개봉되지 않았다)에서 유명한 음반 프로듀서 필 스펙터를 그린 파치노의 연기를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파치노와 마멧은 서로를 경외한다. 파치노는 마멧을 거의 셰익스피어와 유진 오닐에 견준다. 한편 마멧은 파치노와 함께 일하는 소감을 묻자 “그저 고마울 따름(I’m just grateful)”이라고 말했다. 인간 파치노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마멧은 그의 겸손함을 지적하며 “더 좋을 수 없다(I’m crazy about him)”고 평했다.
마멧은 파치노의 재능을 말로 옮기기가 불가능하다(it is impossible to put Pacino’s gift into words)고 말했다. “리 스트라스버그(유명한 연출가)는 무엇이 배우를 뛰어나게 만드는지 알려고 애썼다. 앙토냉 아르토(프랑스의 극작가이자 배우)도 그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마멧은 파치노의 재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는 우리의 능력을 넘어선다(beyond our ability to reduce).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면이 있다(it has some divinity about it).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마멧에게 약 30년 전 그의 연극 ‘아메리칸 버팔로’에서 파치노의 연기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물었다. “바흐가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What Bach would have felt had he heard Glenn Gould)?” (유명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바흐 작품을 즐겨 연주했다.)
파치노는 1980년대에 4년 동안 할리우드를 떠났다. 자신이 출연한 일부 영화의 부실한 관리에 좌절하고 흥행 실적을 올려야 하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아메리칸 버팔로’의 주연을 맡아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또 영국 극작가 히스코트 윌리엄스가 쓴 ‘로컬 스티그매틱(The Local Stigmatic)‘의 영화화에 자본을 대고 주연을 맡았다(56분짜리 영화로 상업적으로 개봉되지 않았다). 그 영화에서 파치노는 런던 토박이의 말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섬뜩할 정도로 예민하고 지능적인 폭력배를 연기했다.
파치노는 상업 영화를 떠난 그 4년을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나 자신과 더 가까워졌다(I got back to being closer to myself than I had been for a while). 내게 필요했던 위안을 거기서 얻었다(That gave me comfort, and I needed it at the time).”
그는 ‘대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급속한 성공 직후엔 개인적으로 나락에 빠졌다. 폭음, 우울증, 외로움, 말릴 수 없는 이기심(selfishness)… 특히 이기심은 그를 몹시 괴롭혔다. 인터뷰 도중 그가 자주 인용하는 미켈란젤로의 명언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먼저 자신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the necessity of freeing yourself from yourself in order to give pleasure to others)고 미켈란젤로는 말했다.
“역겨운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That’s all part of taking you away from your own sick ego)”이라고 파치노가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자기 잇속을 차리려는 욕심이 눈을 멀게 한다. 진정한 실체를 표현하려면 그런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It’s all about getting back to being free of yourself).”
그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물론이다(Oh yeah)”고 파치노가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심리치료의 무용성을 꼬집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한 여성은 그런 치료를 10년간 받았다고 그가 말했다. 치료 마지막 날 그녀는 의사에게 자신의 삶을 크게 바꿔줬으며충만감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당신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그녀는 의사에게 말했다. “제발 뭐라도 말 좀 해보세요. 한마디라도.” 의사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노 아블로 잉글레스!(No hablo ingles)!” 영어를 못한다는 스페인어였다. 파치노는 낄낄대며 웃었다. 몇 가지 질문에는 파치노가 “난 영어 못해요”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생활에 관해 묻자 그는 나지막하면서도 확고하게 말했다. “그런 건 묻지 마라.”
그러나 감정과 관련된 질문에는 마음을 터놓았다. 명성을 얻기 전의 익명성을 되찾고 싶은지 물었다(if he ever yearns to recapture the anonymity of his life before he achieved fame). 그는 두 손을 머리 양쪽에 댔다. 뺨의 홍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좋다. 나 혼자서 살아나가야 한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자신을 조롱하는 듯 그의 눈이 깜박거렸다. “비행기를 어떻게 타야하지? 식당에는 어떻게 가야 하지? 난 모른다. 걷고 말하기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곤 짓궂게 미소 지으며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정답은 ‘아니야, 그러긴 너무 늦었어’가 아닐까?”
파치노의 어머니는 그가 21세 때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다시 살아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갑자기 애틋해졌다. “모르겠다. 그냥 … 표현하기가 힘들다. 먼저 앉으시라고 권한 뒤 찬물에 적신 수건을 이마에 얹어주고 싶다. 인기 배우가 된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줍은 듯이 웃었다. “먼저 그 충격을 가라앉혀야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받으세요. 어머니의 새 아파트 열쇠에요.’ 어머니는 연극을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자신의 아파트가 있다면 너무도 좋아하실 듯하다. 어머니는 진짜 연극을 좋아했다. 아주 예민했다.”
파치노가 왜 연극에 심취하고 계속 무대로 돌아가는지 알려면 먼저 그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해야 한다(Youcannot really understand what the theater means to Pacino, why he keeps coming back to it, unless you understand what family means to him). 아주 어렸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집을 버리고 떠났다. 이스트 할렘에 살던 어머니는 파치노를 데리고 브롱크스의 친정으로 들어갔다. 한 아파트에서 7명이 살았다. “식구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more than was necessary)”고 파치노는 농담으로 말했다. 어린 파치노는 너무 갑갑하다고 느끼면서도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말론 브랜도는 40세가 되자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파치노는 “하지만 말론은 연극무대를 떠났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턴 영화에 전념했다는 뜻이다. “연극 무대에서는 믿음과 신뢰가 생긴다(In the theater a kind of shorthand takes place, a trust and confidence)”고 파치노가 말했다.
젊었을 때 한 카페에 앉아 있던 배우들을 본 기억을 돌이키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 서로간의 편안함과 유대감이 마치 단란한 가족 같다는 느낌이었다(You could almost feel that the comfort they had with each other was very much like a kind of functional family). 그렇다. ‘가족’이 정확한 표현이다.”
파치노는 연극에 연속성과 전통(continuity and tradition)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런 유대감 속에서 유명인사도 과거의 익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앨프리드 런트와 린 폰탠 같은 고전극 배우들을 두고 파치노는 부러움과 존경심을 표했다. “그들은 연극으로 시작했고 연극이 그들의 삶이었다. 그들에게 연기는 숨쉬기와 같았다(their performance was like breathing).” 파치노는 똑같은 역할을 매번 달라지는 감정으로 매일 밤,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계속하는 그런 의식을 너무도 즐긴다.
반면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분노가 번뜩였다. 물론 그는 영화의 ‘마술(magic)’을 좋아한다. 인기 영화배우로서의 삶도 고맙게 여긴다. 최근에는 범죄 코미디 영화 ‘스탠드 업 가이즈(Stand up Guys)’에서 웃기는 역도 맡았다(크리스토퍼 월켄과 호흡을 맞춘 그 영화는 12월 개봉 예정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시계에 맞춰야 하는(accommodate the clock)” 상업 영화의 굴레를 개탄했다. 자신의 악명 높은 매너리즘도 제작사에서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주지 않은 탓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3주간의 리허설이 주어지면 훌륭하다(Three weeks’ rehearsal is good for a film). 요즘은 아예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In today’s world they rarely rehearse at all).”
그는 연극으로의 복귀를 재탄생(rebirth)의 개념으로 이야기했다. “말하자면 (인류의 고향인) 동굴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It’s like going back to the cave, so to speak).” 파치노와 가장 친하며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찰리 래프턴이다. 래프턴은 그의 첫 연기 스승이기도 하다. 파치노는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으로 투병 중인 래프턴을 큰 은혜를 입은 스승으로 존경한다. “찰리는 지혜를 타고났다(Charlie has an innate wisdom). 그는 일찍부터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었고 나와 평생을 같이 했다.”
파치노는 자신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여러 명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찰리 래프턴, 리 스트라스버그, 말론 브랜도, 조 팹, 마티 브레그먼(프로듀서)을 꼽았다. 하지만 자녀를 가진 뒤로는 그런 존재를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지난 25년 동안은 그랬다.” 자녀가 그의 이기심 탈피에 도움이 됐다. “집에 가면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니 잠깐(Wait a minute)! 이게 혹시 나만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This isn’t at all about me, is it)?’라며 균형을 찾으려 한다.”
파치노는 “배우로서 맡은 역할에 스스로 공감할 수 있다면(if I can relate to the part)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아버지를 향한 자식으로서의 도리에 집착하는 데 공감했다는 뜻이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마피아 두목으로서의 브랜도와 아버지 같은 존재로서의 브랜도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졌는지(if the lines separating Brando the Mafia patrician from Brando the father figure became blurred) 물었다. 파치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촬영 전에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우리를 데리고 이스트 할렘의 한 이탈리아 식당에 갔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 앉았는데 말론이 상석을 차지했다. 30분이나 1시간쯤 지나자 모두가 심리적으로 그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그대로 따르는 듯했다. 말론은 개인적으로 나를 잘 몰랐지만 마치 내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극중의 아들 마이클인 듯이 대했다. 어쩌면 내게는 말론이 자식에게 일러주고 싶어하는 무엇이 있었던 듯하다. 극중의 그는 막내 아들 마이클을 총애하며 세심하게 신경 쓴다.
그 만찬에서도 그는 마이클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사색적인 성격이면서도 눈치가 아주 빠르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방식대로 법질서를 무시하는(contemplative, hyperaware, independent, and, in his own way, anarchic) 인물 말이다.” 사색적인 성격이면서도 눈치가 아주 빠르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방식대로 법질서를 무시하는 인물. 파치노는 영화 ‘대부’에서 자신과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했다(in The Godfather, Pacino found the role he could relate to down to the depths of his being).
이스트 할렘의 그 만찬에서 파치노는 새로 얻은 가족과 함께 자신이 바라는 배우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를 주제로 한 미국의 동화인 동시에 미국의 현실적인 삶을 주제로 한 할리우드의 동화다. 배우라는 직업에서 주어진 운명을 실천하는 인간적인 꿈의 동화다.
갑자기 파치노는 인터뷰의 첫 대화부터 찾으려 했던 간단명료한 표현을 결국 생각해냈다.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현실이 됐다(My love became my real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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