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ures sports - 왕이 될 뻔했던 사나이

야구가 지금은 다소 궁지에 몰렸지만 그래도 분명 미국의 국민 스포츠다. 요즘이 야구의 햇빛 찬란한 날들일 성싶다. 시즌 개막일에는 미국의 모든 스타디움이 만원을 이룬다. 그 열풍이 웅장함과 화려함을 뽐내며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시즌 개막과 함께 봄과 부활, 어린 시절에 관한 온갖 상투적 표현들이 난무한다.
현 시점에서 대다수 야구 팬은 자신이 사랑하고 응원하는 팀이 시즌 중 좋은 성적을 거둬 가을에도 야구 경기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구장 밖에서는 야구의 위대한 선구자 잭 루스벨트 로빈슨을 그린 전기영화 ‘42’가 개봉됐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흑인 선수다. 한 남자가 홀로 세상의 진로를 바꾸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시절, 미국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향수 어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분출한다.
그러나 뉴욕에선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이애미뉴타임스, ESPN, 뉴욕타임스 기자들의 탁월한 취재 덕분에 빛을 잃은 스타다. 대화 중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종종 질색을 하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올 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아직 한 경기도 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에이로드가 다시 한번 뉴욕 타블로이드 신문의 뒷면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뉴욕 양키스 3루수는 선수경력에서 두 번째로 경기력향상 약물(PED, performance-enhancing drugs)을 복용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잠시 부진에 빠져 방황하는 동안 근육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은 폐쇄된 ‘노화방지’ 센터와 관련된 기록을 없애는 데 자신의 상당한 자원을 쏟아부었다고 전해진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그 ‘노화방지’ 센터는 여러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경쟁우위를 얻도록 돕는 데 관여했다. 에이로드는 이를 부인한다. 그러나 야구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능력에 에이로드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그보다 더 어둡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어둠의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을 원해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하려 했을지 모르는 남자의 몰락 말이다.
그는 한때 흠잡을 데 없는 야구의 미래였다. 온 미국이 그의 매력에 빠져 그를 미래의 유력한 제왕으로 여겼다. 고향 시애틀 구장에서 빛을 발한 뒤 전국구 스타로 도약한 젊고 오점 없는 스타였다. 미남에 말 잘하고 절로 찬사가 우러나오게 하는 기량을 갖춘 아름다운 선수였다.
뉴욕 양키스는 프로 야구에서 가장 전설적인 팀이다. 하지만 양키스로 이적한 뒤 에이로드의 이미지는 거칠고 혼란스러워졌다. 할리우드 스타급 외모에 실제로 할리우드의 미녀 배우들과 데이트를 하는 건 여전하다. 맞다. 그는 영화배우 케이트 허드슨을 품에 안고, 수퍼볼 경기장에서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팝콘을 먹고, 플로리다주 코랄 게이블스에서 세계 최상급 갑부나 선수들과 의젓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남자가 됐다.
그리고 과도한 근육질 남성들로 얼룩진 시대를 정화할 것으로 기대됐던 선수였다. 우리는 그들의 철면피한 부정행위를 눈감아줄 의사가 있었다. 그들이 계속 뛰어나고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공을 던지고 야구장 담장 너머로 공을 날려보내는 한 말이다.
에이로드는 여전히 편안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인다(열광하던 팬들이 사라지고 대신 궁궐 같은 자택을 나설 때마다 무자비한 비웃음이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그 일로 그가 갖게 됐다고 알려진 불안감을 애써 감추려는 듯하다). 과거 조 디마지오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추앙받는 인물이 됐다. 하지만 에이로드는 그런 인물이 될 수 없다.
그의 몰락은 많은 팬들이 차라리 잊고 싶어하는 시절의 완결판이다. 2005년 그 미국 국민 스포츠의 순수성을 조사하기 위해 소집된 청문회가 그 출발점이었다.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 등 존경받는 선수들이 의회에 불려나가 바보처럼 행동했다. 추락한 남자들이 조금이나마 남은 명성을 지켜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소사는 영어를 모르는 척했다. 맥과이어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스테로이드 복용을 보는 시각은 세대에 따라 다를지 모른다. 저명한 야구 전문기자로저 앤젤이 그 사실을 일깨워줬다. 2년 전 그의 뉴요커 잡지 사무실에 함께 앉았을 때였다. 그는 2005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문예창작 강사를 맡았을 때의 일을 돌이켰다. 저연령과 고연령 학생 90명가량이 그의 강연을 들으러 왔다. 앤젤은 청중의 다양한 반응을 기억했다.
“스테로이드 문제를 주제로 다룰 때 말했다. ‘여론조사를 하겠어요. 가령 여러분이 치과의사나 회계사 또는 건축가인데 갑자기 어떤 약물을 권유받았다고 칩시다. 불법이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며 어쩌면 여러분을 더 뛰어난 나아가 사상 최고의 회계사와 건축가로 만들어줄지 모릅니다. 복용하겠다는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 그러자 고연령 학생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절대 복용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저연령 학생들은 모두 ‘절대로 안 한다!’고 답했다.”
앤젤은 그 논란과 관련해 또 다른 점을 지적했다. 당시 의회와 언론에서 거론되던 문제였다. “스테로이드 논란의 와중에서 사람들이 망각한 듯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야구를 하는 목적은 승자, 승리팀을 가리는 것이라는 점”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것이 야구를 하는 이유다.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서다. 기록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팬들을 위한 하나의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메인 이벤트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더 빨리 더 높이 더 잘 하려는 욕구가 PED의 복용을 부추긴다.
조지 미첼 상원의원이 스테로이드와 PED 복용에 관한 통렬한 400쪽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뒤로 대다수 선수들이 후폭풍을 우려해 그런 방법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메이저리그(MLB) 당국자들은 여전히 그런 우위를 추구하는 선수들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듯하다. 밀워키의 라이언 브라운은 2011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시즌이 끝난 뒤 MLB 관계자들은 그를 상대로 약물검사를 실시했다. 그의 자격 박탈이 목적이었지만 실패했다.
MLB가 문제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애쓰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스포츠작가 셀레나 로버츠가 2009년 에이로드의 전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많은 삶(The Many Lives of Alex Rodriguez)’에서 먼저 의혹을 제기했다. 그 자신도 스테로이드 복용을 인정했다. 그 뒤로 MLB는 그를 외면하기는커녕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듯하다. 그를 야구에서 퇴출시킬 만한 증거를 찾아낼 작정이다. 그로써 그가 야구계의 마지막 약물복용자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의 은퇴로 야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부끄러운 악몽에서 마침내 깨어날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 되리라고.
이 스포츠에서 그 말고 누가 그만한 지위, 그만한 인정을 얻었던가? 물론 에이로드의 팀 동료 데릭 지터도 있다. 부상에 시달리며 화려한 경력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유격수 말이다. 그도 몇 차례 염문을 뿌렸으며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하지만 가끔씩 로봇 같은 인상을 준다. 양 어깨에 야구를 들쳐 매고 달려나갈 만한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듯하다. 야구가 미국의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많은 팬을 자랑하는 스포츠로서 위상을 되찾으려면 그런 스타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에이로드의 기록은 어떤 방법으로 달성했든, 여전히 야구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손꼽힌다. 부상을 당하고, 부정행위 주장이 추가로 터져 나와도 에이로드는 사상 최다 홈런기록을 돌파할 가능성이 큰 선수다. 현재 기록 보유자인 배리 본즈조차 깨끗하지 않다. 여러 모로 볼 때 그도 스테로이드에 의존해 기록을 갱신했다. 마약복용 혐의로 오점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좌익수로 기억에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에이로드와 마찬가지로 그도 유혹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아직도 야구에 애정을 지닌 팬들에게 이 최근의 논란은 한창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LA 다저스로부터 뉴욕 양키스에 이르는 팀들이 노장 선수들의 지갑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시내티, 세인트루이스, 볼티모어 같은 지역의 팀들은 프로 야구에서 발군의 경기력을 보여준다. 워싱턴 DC의 내셔널스 팀도 주목할 만하다. 몬트리올에서 연고지를 옮긴 뒤로 다른 팀들의 보약 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도 리그 최고의 팀으로서 미국 수도에 커다란 자부심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작은 팀과 평범한 스타들의 이야기는 초대형 스타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광고계약의 세계에서 사람들을 열광시키지 못한다. 스포츠 세계의 스타들은 우리 머리 위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데이비드 베컴(축구)과 코비 브라이언트(농구)가 전지전능한 그리스 신들처럼 광고판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세상이다. 그들의 결점은 외면되고 잊혀지거나 용서된다.
에이로드는 이 같은 세상의 그 전당에서 바로 그와 같은 위치를 추구했다. 그리고 37세의 나이에 조용히 물러나지 않고 완강히 버티는 선택을 했다. 모든 걸 원상복구하고 아직도 뉴욕뿐 아니라 세계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가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에서 그는 한번 더 기회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의 알려진 부정행위가 밝혀지기전에 많은 사람이 느꼈던 ‘에이로드 열풍’을 되살릴 기회 말이다. 당시엔 뉴욕사람 대다수가 그가 가장 필요할 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뉴욕의 슈퍼맨이 아니라 렉스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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