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e BOOKS - 원자폭탄을 만든 사나이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최초의 원자폭탄 설계와 제조를 지휘했다. 하지만 그가 유일한 원폭제조 관계자는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건설 근로자로부터 폭발물 전문가, 소련 스파이에 이르기까지 13만 명을 웃돌았다.
그러나 다른 참여자들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반면 그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뚜렷이 남아 있다.
영국 철학자 레이 몽크가 두툼한 오펜하이머 전기를 새로 내놓았다. 그를 다룬 책은 전에도 여러 권이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내가 쓴 책을 포함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모든 역사서에서 중대한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왜 이 한 사람이 그 거대한 프로젝트 전체를 상징하게 됐을까. 모든 오펜하이머 전기작가가 답해야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그말고도 유명인사가 많이 참여했다.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국방부를 비롯해 수천 개의 미군 시설을 건설한 뒤 맨해튼 프로젝트 전체를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에 성공으로 이끌었다. 한스 베테는 별들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열핵반응의 연쇄를 발견했다.
레오 질라드와 엔리코 페르미는 핵원자로를 발명했다. 존 폰 노이만은 프로그램 내장식 디지털 컴퓨터를 개발했다. 에드워드 텔러와 스타니슬라프울람은 수소폭탄을 공동 발명했다. 루이스 알바레스는 폭발을 일으키는 신기술을 고안해 팻맨(Fat Man,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훗날 아들 월터와 함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들이 멸종했음을 증명했다. 그밖에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명한 인물은 많다. 오펜하이머는 뭐가 그렇게 특별했을까?
오펜하이머는 똑똑하고 돈 많고 잘 생기고 카리스마 넘쳤다.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 버클리와 캘리포니아 공대의 젊은 교수로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유럽의 독주를 저지했다. 노벨상을 다수 수상하는 물리학 강국으로 미국을 탈바꿈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직행정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로스앨러모스 핵연구소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그의 최대 적수인 에드워드 텔러조차 언젠가 오펜하이머를 가리켜 자신이 아는 최고의 연구소 운영자라고 말할 정도였다. 전후 그는 미국 핵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과학자 그룹[미국 원자력위원회(AEC)의 일반자문위원회(GAC)]을 이끌었다. 그리고 뉴저지주의 권위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연구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 고고한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에서 젊은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을 맞아 들였다.
모두 탁월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핵개발 역사에서 그의 독특한 위상을 설명하진 못한다. 먼저 그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특출했던 반면 잔인한 측면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불안심리에서 비롯된 듯했다. 멍청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베테도 그에게 많이 당했다. 오펜하이머의 인생에서 중요한 여성들과의 관계는 파멸적이었다. 그의 진지한 첫사랑이었던 버클리대 교수의 딸 진태틀록은 자살했다. 아내 키티는 평생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다. 딸은 자살했다. 아들은 고립된 은둔 생활을 계속한다.
이론물리학자로서 오펜하이머의 업적은 그의 명석한 두뇌가 약속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한다는 점을 과시하는 데 대단히 신경 썼다”는 데 있었다. 그의 제자이자 훗날 노벨상을 받은 줄리언 슈윙거의 평가다. 오펜하이머가 행동보다 말이 앞섰음을 정중하게 표현한 말이다.
동료 물리학자 이시도어 라비는 오펜하이머가 깊이 존경한 노벨상 수상자다. 라비는 오펜하이머가 너무 많은 미스터리를 자연의 법칙으로 해석했다고 생각했다. 전기의 저자 몽크는 그가 자기분야의 일반적 통념을 신기하게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점에 주목했다.
몽크가 오펜하이머의 물리학 연구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의 전기는 한 가지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인생을 다룬 이전의 전기들이 등한시했던 영역이다. 1920년대 후반 오펜하이머는 블랙홀이라고 불리게 된 현상을 처음 규명했다. 거대한 별들이 중력붕괴(자신의 중력으로 인한 급격한 수축)하면서 빛까지 뒤로 빨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오펜하이머가 1971년 최초의 블랙홀이 확인될 때까지 살았다면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오펜하이머의 애국심은 정부 내의 아무리 둔감한 비판자라도 뻔히 보였을 듯하다. 그는 어쨌든 원자폭탄으로 조국을 난공불락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생활뿐 아니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리학 연구까지 포기했다. 하지만 전쟁 전 좌익과 공산주의 정치를 기웃거렸고 전쟁 중에 자신이 받은 간첩 제의에 관해 보안 당국자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의 연구와 명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의 선택 또는 실수에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성향이 맞물려 결국 그는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그에게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던 사람 중에 루이스 스트라우스라는 이름의 사악한 인물이 있었다. 구두 판매원이었다가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돌팔이 물리학자로 변신했다. 오펜하이머의 파멸을 주도한 장본인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여름 스트라우스를 원자력위원회(AEC) 의장에 임명했다. 스트라우스는 오펜하이머를 공격할 만한 꼬투리를 수집했다. 그는 1948년 의회 청문회 중 오펜하이머에게 수모를 당한 일로 아직 감정이 상해 있었고, 오펜하이머가 소련 스파이라고 믿었다.
스트라우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펜하이머의 기밀정보 취급허가를 취소했다. 사실상 그의 정부 접근을 차단했다. 오펜하이머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명예로 충만한 학자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어쨌든 AEC 컨설턴트에서 배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신 그런 공격에 맞서 싸우는 쪽을 선택했다. 스트라우스는 냉혹한 검사를 찾아내 그 과학자를 심문하도록 하고, 변호사와의 통화를 도청하고, 변호사가 혐의를 조사하는 데 필요한 열람허가를 내주지 않고 지연시켰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 문제(In the Matter of J. Robert Oppenheimer)’ 청문회 속기록은 원자폭탄 개발 초창기의 중대하고 어두운 문서 중 하나다. 독단적이고 불공평하며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정부 심판대 앞에서 적대적인 증인들이 비겁한 퍼레이드를 벌인다. 피해자 자신은 수치심에 휩싸여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를 빨아댄다. 거의 셰익스피어 문학에 가까운 줄거리다. 그는 결국 1967년 63세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라비는 친구 편에 섰던 소수 증인 중 한 명이었다. 끝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청문회 위원들에게 따지고 든다. “(오펜하이머의 연구 덕분에) 원자폭탄을 잇따라 개발했다. 더 이상 무엇을 원하는가, 인어를 내놓아야 만족하겠는가?” 스트라우스와 다른 사람들 특히 에드워드 텔러는 오펜하이머의 머리가 얹힌 쟁반을 원했다. 그 뜻이 이뤄졌다. 오펜하이머는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것을 “나의 탈선사고(my train wreck)”로 불렀다. 지인들은 그가 다시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라비와 마찬가지로 몽크의 관점에서 오펜하이머의 핵심적인 문제는 알맹이 없는, 허위의 자의식이었다. 라비는 그것을 특유의 재치로 묘사했다. 자신이 로마 가톨릭 우애공제회(the Knights of Columbus)나 국제유대인단체 브나이 브리스(B’nai B’rith) 중 어느 쪽의 회장이 되기를 원하는지 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라고 말이다.
오펜하이머의 19세기 선조였던 유대계 독일인들은 현지 문화에 동화하기 위해 애썼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종교적인 유산을 부인하려 애썼다. 오펜하이머의 부모는 뉴욕의 윤리-문화 운동에 그 유산을 한층 더 깊숙이 담갔다. 그 운동은 유대주의의 지나치게 초자연적인 색깔을 걷어내는 한편 인본주의를 살려냈다. 오펜하이머 자신이 배우였기때문에 거의 어느 역할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위협을 받으면 비굴해지거나 아니면 오만해졌다. 그가 로스앨러모스의 위대한 연구소 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지능 때문이었다(“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했다”고 베테가 말했다). 폭넓은 지식과 문화, 그리고 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그곳에 모인 재능 있는 사람들의 복잡한 인성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력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애국심 강한 국민으로서 그 역할을 맡기로 결정해 탁월하게 수행해냈기 때문이다.
몽크는 오펜하이머의 삶에 대한 냉철한 적격의 안내자다. 그의 전기는 분명 이제껏 최고의 걸작이다. 하지만 대공황 시절 오펜하이머가 빠졌던 공산주의와의 불장난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오래 전에 껍데기만 남은 공산주의는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신념보다는 세상의 고통에 대한 부유한 유미주의자의 각성을 말해준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을 언제나 올바르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다수 오류는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과오도 일부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1949년 소련의 최초 원자폭탄 실험에 맞선 수소폭탄 속성 개발계획에 반대했다. 한 가지 근본적인 이유는 에드워드 텔러의 ‘수퍼’ 설계가 수소의 희소 동위원소인 트리튬을 다량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트리튬은 핵 원자로에서 리튬의 중성자 조사(照射)에 의해 생성된다. 그러나 약간의 리튬이 원래 플루토늄 증식에 사용되는 공간을 차지한다. 미국이 제조할 줄 모르는 수소폭탄용 트리튬을 만들기 위해 미국이 제조할 줄 아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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