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호남 반도체 걸림돌 ‘둘’…전력·용수 없으면 800조 투자도 없다
- [호남 반도체 선택일까 선물일까]④
3년 전 극심한 가뭄 겪은 호남
식수도 모자란 땅에 ‘물 먹는 하마’ 반도체 가능할까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뜨겁다. 정부는 최근 호남권에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조성하겠다는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첨단 산업의 필수 요소인 ‘전력’과 ‘용수’를 적기에 공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했다. 풍부한 호남지역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 다목적댐을 연계해 인프라걱정 없는 첨단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화려한 정책 발표의 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공급 호언장담이 기후변화로 인한 수자원 고갈 현실과 전력망 건설 지연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간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6.3GW 전력·65만톤 용수 무조건 책임진다”
정부가 수립한 서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 계획은 단일 산업단지 공급 대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핵심은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가 밀집할 이 지역에 대규모 도수관로를 신속히 건설하고, 인근 다목적댐과 하수 재이용수 등 대체 수자원을 총동원한다는 점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열린 메가 프로젝트 정책 발표회에서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는 “서남권 반도체 공장과 첨단 단지가 완전히 가동되는 시점에 필요한 6.3기가와트(GW)의 전력과 하루 65만톤(t)의 용수를 단 하루의 차질도 없이 완벽하게 공급하겠다. 아울러 기업들의 추가 확장 수요에 대비해 그 이상의 물과 전기도 미리 확보해 놓는 선제적 인프라 투자를 감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자신감은 서남권이 가진 지리적·환경적 이점에서 나온다. 호남 지역은 국내에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가장 풍부한 곳이며, 한빛원전 등 안정적인 기저부하(기본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발전원)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 다목적댐의 여유 용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초기에 가동될 반도체 라인의 용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기후부는 용수 공급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동복댐에서 하루 30만톤, 주암댐과 장흥댐에서 15만톤, 보성강댐에서 10만톤, 나주댐에서 10만톤 등 총 하루 65만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인근 댐 등에서 확보할 수 있는 용수를 모두 합하면 약 106만톤 가량으로 65만톤이 필요한 반도체 산단에 충분한 물 공급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의 공언과 달리, 실제 수자원 수급 전망 통계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 환경부(현 기후부)가 발표한 ‘제1차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 보고서는 장기적인 산업용수 확보가 결코 녹록지 않음을 증명하는 아킬레스건이다. 정부 자체 조사에서도 첨단 산업시설의 폭발적인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한 기존 댐의 여유량 부족 탓에, 장래에 연간 7억4000만톤에 달하는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국민의힘 김태규 원내수석부대변인은 6월 30일 논평을 내고 “정부는 호남이 물도 풍부하고 재생에너지도 풍부한 반도체 최적지라고 하지만 물도, 전력도, 따져보면 명분 뿐”이라며 “불과 3년 전인 2023년, 호남은 댐 밑바닥에 고인 물까지 끌어 쓰고 4대강 보의 물을 동원해야 했을 만큼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의 식수원 저수율은 20% 안팎으로 떨어졌고 전국의 가뭄 ‘경계’ 지역 대부분이 호남에 몰려 있었다”며 “식수조차 모자랐던 그 땅에, 하루 100만톤의 물을 먹는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꽉 막힌 ‘전력 고속도로’가 발목
전력 공급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서남권에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풍부하다는 것은 '발전 측면'의 이야기일 뿐, 이를 공장과 데이터센터까지 안정적으로 배달하는 ‘송배전망’의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 한국의 전력 계통은 고질적인 동서·남북 간 불균형을 겪고 있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지방과 해안가에 몰려 있는 반면, 이를 소비할 거점은 특정 산단이나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서남권 내부에 공장을 짓는다 해도, GW급에 달하는 전력을 전압 강화나 정전 사고 없이 24시간 내내 일정하게 공급하려면 초고압 송전선로와 대규모 변전소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송전탑과 변전소 건설은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보상 문제로 인해 통상 계획보다 5~10년 이상 지연되기 일쑤다. 동해안의 원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선로 건설이 7년 가까이 표류했던 사례가 서남권에서도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반도체 공장은 단 0.01초만 전력 공급이 끊기거나 전압이 흔들려도 수백억원 상당의 웨이퍼를 폐기해야 하는 ‘품질 민감 업종’이다. 전력 양의 풍부함보다 계통의 안정성이 우선시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 환경단체들 역시 자연과 지역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개발 독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에 따라 장거리 송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여기에 더해 또 새로운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를 무턱대고 조성하는 것이 균형 잡힌 국가 계획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호남 지역은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지을 물도 부족했던 지역인데, 천문학적인 양의 물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동해안 발전소 사례처럼 전기를 만들어도 서울이나 호남으로 보낼 송배전망을 깔아야 하는데,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정부가 어떻게 설득할지 대책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용인 클러스터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에서 증설하는 개념이지만, 호남은 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므로 훨씬 많은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며 “반도체는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의 차이가 극심한 산업이다. 무리하게 변동성이 큰 반도체 공장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호남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최적의 산업이 무엇인지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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