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공장보다 집값이 먼저 뛴다…호남 반도체 숨은 변수
- [호남 반도체 선택일까 선물일까]⑥
들썩이는 부동산…주거비 부담·공급 부족 해결해야
800조 성패는 교육·의료·교통 등 정주 기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이승훈 기자]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AI 메가 프로젝트가 광주·전남의 미래를 바꿀 기대감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공장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이 머물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주택 공급과 정주 인프라를 제때 갖추지 못하면 인재 확보와 산업 경쟁력 모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기대감에 먼저 달아오른 광주
메가 프로젝트가 발표된 지난 6월 29일 광주에서 만난 한 60대 개인택시 기사는 “삼성전자에서 27년 일하다 퇴직해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이제는 뒤늦게 그 회사 덕을 보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손님을 태우면 반도체 이야기부터 나온다”며 “예전에는 광주에 대기업 공장이 들어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지역 전체가 기대감에 들떠 있다”고 말했다.
시장도 기대감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삼성 반도체 생산시설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첨단 3지구 일대에서는 매물이 줄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배후 주거지로 꼽히는 북구 양산동과 첨단지구는 물론 남구 봉선동, 서구 화정동까지 관심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날 광주 시민 A씨는 “첨단 3지구는 한동안 공장도 없이 아파트만 먼저 들어서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던 곳이었다”며 “당시에는 무모한 투자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대부분 사라졌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생산 시설이 들어서는 곳과 사람들이 정착하는 곳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첨단 3지구가 생산 거점이 되더라도 교육과 의료,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봉선동과 화정동, 상무지구 등이 주거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 교육을 고려하는 고급 인력일수록 학군과 생활 인프라를 우선하는 경향이 강해 공장과 주거지는 자연스럽게 분리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산업이 부동산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는 수도권에서 이미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6월 30일 집값이 급등한 화성 동탄구와 용인 기흥구, 구리시를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반도체 산업 유치 기대감과 개발 호재로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이른바 ‘삼중 규제’를 적용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기준 동탄구의 올해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은 11.38%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구리시(7.87%)와 기흥구(6.21%)도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동탄과 기흥은 반도체 산업 기대감이 집값에 선반영된 대표 사례”라며 “산업 호재는 실제 공장 가동보다 부동산 시장을 먼저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산업 호재가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기업과 협력업체의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산업단지 조성과 주택 공급이 엇박자를 낼 경우 기업은 정착 지원 비용이 늘고, 협력업체 역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빛가람혁신도시가 남긴 교훈
광주·전남은 이미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16개 공공기관이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을 시작한 2014~2015년 나주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부동산 시장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나주시 개별공시지가 상승률은 26.96%로 전국 시·군·구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혁신도시 개발 기대감으로 토지와 주택 가격이 급등했고 신축 아파트에는 수천만원대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집값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환경이었다. 2013년 5월 가장 먼저 이전한 우정사업정보센터의 주거 실태 조사에서는 직원 34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직원들은 원룸과 전세를 구하거나 공동생활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협력업체 직원 상당수도 회사가 마련한 임시 숙소에 의존해야 했다. 지역 언론은 주택 공급과 생활 인프라 확충이 늦어질 경우 혁신도시가 ‘인구 5만 자족도시’가 아니라 업무시설 중심의 ‘반쪽 도시’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한전 본사 이전을 불과 5개월 앞둔 2014년에도 주거난은 계속됐다. 당시 한전은 이전 예정 인력 약 1800명 가운데 1200명 수준의 숙소만 확보해 600여채가 부족했다. 임시 사택도 상당수가 2~3인 공동생활 형태였고, 숙소를 배정받지 못한 직원들은 직접 광주와 나주 일대에서 거처를 구해야 했다.
국회 조사에서도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공기관 직원 가운데 가족과 함께 이주하겠다는 비율은 38.9%에 그쳤다. 한전은 32% 수준이었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주거 부담 등이 겹치면서 가족 동반 이주를 포기한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나주시는 외형적으로 성장했다. 인구는 2014년 9만669명에서 2024년 11만7103명으로 약 29% 증가했고 예산 규모도 두 배 가까이 커졌다. 하지만 혁신도시 핵심 생활권인 빛가람동 인구는 3만9000명 안팎에서 정체되며 애초 목표였던 ‘인구 5만 자족도시’에는 미치지 못했다.
공공기관은 이전했지만 상당수 직원은 교육과 의료, 생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광주에서 출퇴근을 선택했다. 산업 시설은 나주에 들어섰지만 정주 기능은 광주가 흡수하면서 산업과 생활이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번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수만명의 종사자와 협력업체 인력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택 공급과 교육·의료·교통 등 정주 여건이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인재 확보와 지역 정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사업을 과거 혁신도시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반도체 산업단지는 생산 시설뿐 아니라 주거와 상업, 교통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기업도시 형태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 공공기관 이전과 단순 비교하기보다 정주 기능을 얼마나 빠르게 갖추느냐가 사업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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