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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미식축구 보면 미국이 보인다

Management - 미식축구 보면 미국이 보인다

일방적·공격적 문화, 시장가격 매기는 가치관, 경쟁과 개인의 성공 찬양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디트로이트와 캔자스시티의 경기. 미식축구는 미국 사회의 특질을 함축한 스포츠다.



미국 메릴랜드대 경영학과 마틴 개논 교수는 다른 나라와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사업을 쉽게 풀어나가려면 그 나라만이 가진 ‘문화 메타포(Metaphor·상징)’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금전적 보상이 모든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경제적 접근법과 대비해 글로벌 경제에서 문화가 갖는 영항력을 강조한다.

그는 지구상의 문화를 이해하고 비교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이자 방법으로 ‘문화 메타포’란 개념을 제시했다. ‘문화 메타포’란 국가의 구성원 대부분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동일시 기준으로 삼는 대상, 활동, 문화적 관행을 일컫는다. 간단하게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코드라고 할 수 있다.

개논 교수에 따르면 프랑스의 문화 메타포는 포도주, 스페인·포르투갈은 투우, 브라질은 삼바, 이스라엘은 키부츠와 모샤브, 미국은 미식축구, 한국은 김치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각 나라에 대해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연상(聯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한 국가의 문화적 특징을 집·음악·춤·스포츠 등 고유한 문화 산물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한 국가의 문화를 신속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논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독일의 문화 메타포는 심포니, 이탈리아는 오페라, 영국은 벽돌집, 태국은 왕실, 중국은 각 가정에 마련된 제단, 폴란드는 마을의 가톨릭교회라고 정의했다. 러시아의 문화 메타포는 발레, 인도는 시바춤, 일본은 정원, 벨기에는 벨기에산 레이스, 터키는 커피하우스, 나이지리아는 시장, 스웨덴은 주말별장 스투가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무형의 문화 메타포도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문화 메타포는 고유 언어인 게일어다.

대표적 저서인 『세계문화의 이해(Understanding Global Cultures 2002)』에서 개논 교수는 세계 23개 국가의 문화 메타포를 소개했다. 오늘날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의 문화 메타포는 ‘외로운 카우보이’나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이다. 미국에서 스포츠, 정확하게는 스포츠경기 관람 또는 시청은 재미를 주는 여가 활동을 넘어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열정을 발산하고 소속감과 정체감을 표현하는 대리만족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미식축구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스포츠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스포츠 관람·시청자 가운데 43%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으로 미식축구를 꼽았다. 2위인 농구의 12%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미국 프로미식축구 NFC 우승팀과 AFC 우승팀이 겨루는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볼(Super Ball)’은 명실상부한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이다. 미국 기업들에게 매년 1월 말 2월 초 사이 수퍼볼이 열리는 ‘슈퍼 선데이(Super Sunday)’는 할로윈데이·크리스마스와 함께 연중 최고의 대목이다. 지난해 수퍼볼 시청자는 1억7000만명이었다. 초당 광고 단가는 1억원에 육박했다.

미식축구는 각기 11명씩인 두 팀의 선수 22명이 승부를 겨룬다. 한 팀이 점수를 얻기 위해 돌진하는 동안 다른 한 편은 방어하는 경기라는 점에서 일반 축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축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경기 시간의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점수를 얻거나 반대편의 승점을 막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소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문화 메타포는 미식축구공격팀이든 수비팀이든 스크럼 후방에서 쿼터백을 중심으로 원진을 만들거나 정렬해 다음 작전을 짜는 것을 ‘허들(Huddle)’이라고 한다. 벼르고 벼르다가 양 팀이 맞붙어 잠시 동안 맹렬히 겨룬 뒤 팀끼리 머리를 맞대고 다음 동작을 계획하는 허들이 되풀이되는 경기 진행 과정은 미국에서 생활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이상하거나 낯설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미식축구는 현존하는 스포츠 종목 중 가장 폭력적인 스포츠로 꼽힌다. 프로 선수의 평균 활동 기간이 3년 반에 불과할 뿐 아니라 미식축구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미국 남자의 평균 수명 75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55세이다. 선수들의 평균키는 188cm, 몸무게는 90~150kg로 이런 덩치들이 한 경기당 평균 80회씩 온힘을 다해 뛰다가 상대팀과 정면충돌하기에 부상의 정도가 심한데다가 뇌진탕 등 온갖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수퍼볼‘ ‘수퍼 선데이‘처럼 미국에서 미식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미국인의 공동 신념과 공동 이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집단의식이자 미국적 가치관의 복합체이다. 프로 미식축구가 보여주는 엄청난 속도, 계속적인 움직임, 고도의 전문성, 일관된 공격성, 격렬한 경쟁은 모두 역동적인 미국 문화의 특질이다. 개인주의와 경쟁적 전문화, 허들(Huddle), 완벽함의 의식적 찬양은 미식축구의 세 가지 근본 요소인 동시에 외향적이며 때로 공격적이기까지 한 미국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식축구는 팀 스포츠임에도 개인이 영광을 얻고 찬양을 받는다. 미식축구가 보여주는 개인주의는 모든 팀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높다. 미식축구의 주요 트로피들은 모두 미식축구에 공헌한 개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의 스포츠 스타들은 신화 속의 영웅이나 주요 종교의 성인이 차지한 그런 반열에 올랐다.

격렬함과 공격성은 미식축구가 갖는 매력 중 하나다. 팀은 팀끼리 경쟁하고 같은 팀에 속한 선수들은 경기에 선발되기 위해 경쟁하며 심지어 팬들조차 더 좋은 티켓을 구하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을 위한 전문화’라는 개념은 미국인들이 창안해 세계적으로 장려하는 미국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미식축구를 다른 스포츠와 구별 짓는 ‘허들’은 미국의 ‘행동지향적’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들은 각기 포지션이 다르고 다양한 배경과 교육 수준을 갖고 있으나 허들에 들어가면 팀의 승리를 위해 상호 의존하고 협조한다. 행동지향적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상황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한 번에 하나씩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로 잘게 쪼갤 수 있다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식축구에서 허들은 경기를 일단의 작은 과제로 분할한 뒤, 단시간의 포지션 재평가를 통해 과제를 배분하고 지속적 전술로 이를 실행한다. 20세기 초 테일러에 의해 개발된 미국식 제조방식은 미국 경제의 ‘허들’이다. 포드의 T카로 대표되는 미국식 제조방식은 디자인을 표준화하고 부품과 제조과정을 규격화하여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

표준화와 규격화는 ‘시간은 돈’이라고 여기는 미국인들의 시간의식과 직결돼 있다. 미국인들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함께 모여 임시 위원회나 팀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 구성원간의 관계는 협조적이지만 일시적이다. 미국 사회는 어느 조직이나 ‘헤쳐 모여’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 깊은 관계로 발전시킬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엄격한 시간 제약이 있는 미식축구의 허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는 미국 문화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허들은 행동지향적 문화 잘 보여줘수퍼볼을 비롯한 모든 미식축구 경기 전에는 유명인이 부르는 국가 연주, 육해공군 군악대 행렬, 성조기 입장 등의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진행된다. 미국 내 팀들만 출전함에도 세계 선수권 대회라고 불리는 것도 자기중심적 민족주의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프로 미식축구 경기는 미국이 곧 세계 최상의 국가, 나아가 세계 자체라는 완벽한 미국적 유토피아의 상징이다.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문화, 모든 것의 가치가 시장가격으로 매겨지고 정글의 경쟁과 개인의 성공을 찬양하는 미국 사회의 특질이 모두 미식축구에 함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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