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도박 골프는 한국에서 유독 심하다. 국내에 골프가 도입되고 전파된 과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골프란 극소수 부유한 이들이 즐기던 사치성 레저였다. 미국·유럽처럼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클럽 문화가 여물기도 전에 급속도로 골프 인구가 증가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골프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이른바 ‘호구’도 많았다.
건설업이 호황일 때는 졸부나 건달도 골프에 몰두하면서 과시적 소비 행태를 띠고 발전했다. 따라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골프 사기 사건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요즘은 골프 인구가 더 늘고 젊은층이 유입되고, 스포츠에 가까워지면서 도박의 개념은 점차 퇴색됐다. 그러나 아직도 심심찮게 골프 도박·사기 뉴스가 사회면에 나온다.
최근에 터진 가장 큰 규모의 사기 골프는 2010년 보도된 내용이다. 6년여에 걸친 140억원대 사기 골프 조직 42명을 적발한 것이다.
2004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중소기업 사장 등 재력가 15명을 상대로 사기 골프를 하거나 해외 사설 카지노에서 사기 도박을 벌여 14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검거된 사건이었다.
골프 ‘타짜’들은 재력가를 상대로 처음에는 수 차례 친선 게임을 통해 얼굴을 익힌 뒤에 점차 액수를 키워가는 내기 골프로 도박 골프에 끌어들인다.
그 후 타수를 속이거나 짜고 치거나 약을 먹이는 사기 골프를 시도한다. 사기 골프의 대부분은 연습장과 골프장 등에서 처음 만나 수개월 동안 친분을 쌓는 과정이 있었다.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한 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다수의 사기꾼들이 돌아가면서 속이는 행태를 보였다.
점차 판돈이 커지면서 카드·화투 등 노름과 연계되거나 이른바 ‘꽃뱀’이 등장하는 유형도 있었다. 결국엔 피해자가 벼랑 끝에 몰리면서 사건이 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수많은 도박 사기 골프는 보도되지않고 당사자만 속앓이를 하거나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도박·사기 골프를 하는 이들은 주로 정해진 자신만의 핸디캡을 두고 그 타수를 넘게 치면 판돈을 잃는 ‘핸디치기’를 주로 한다. 다른 말로는 ‘나인계’라 부른다. 타짜들이 주로 하는 이런 게임은 미국인들이 즐기는 9홀씩의 매치인 ‘낫소(Nassau)’와 닮았지만 판돈이 큰 게 특징이다. 나인계를 기본으로 하되 홀 당 스킨스를 추가하거나 후반전 판돈을 두 배로 하는 ‘조폭 나인계’ 등이 덧붙여지면 판돈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나인계는 평소 자신의 스코어를 쳐야 본전이 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따라서 타짜들은 상대방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그늘집에서 수면제 성분이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로라제팜이나 아티반 등을 몰래 먹이는 수법을 쓴다. 편 먹기 게임은 ‘호구’를 한 명 정해 타수를 속이거나, 피해자와 같은 팀이 일부러 아웃오브바운즈(OB)를 내서 지는 수법을 쓴다.
또한 앞뒤 팀으로 조를 짜서 코스 상태를 알려주거나 블라인드 홀에서 알까기 등으로 스코어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타짜를 피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타짜가 잘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수일수록 스윙 폼이 어수룩하면서 만만해 보이는 경우가 적잖다. 겉으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공통점은 있다. 타짜는 후반으로 갈수록 잘하고, 판돈이 커질수록 무너지지 않는 플레이를 한다. 그만큼 골프 스코어를 조절한다.
내기-도박-사기 골프가 서로 뚜렷한 경계가 없는 만큼 법적으로도 이들을 구분하기 어렵다. ‘내기’의 정황이 ‘일시적인 오락’의 정도라면 처벌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 경계를 넘으면 ‘도박’이 되어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상대를 속여 승부를 조작한다면 ‘사기’에 해당한다. 도박은 법적으로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2005년에는 ‘골프는 실력과 기량을 겨루는 것인 만큼 도박의 성립 요건인 우연성의 여지가 적다’는 요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게임 당사자에 따라 어떤 이에겐 타당 1000원도 많고, 재벌 회장에게는 타당 100만원도 푼돈일 수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오락’의 개념 규정이 모호하다. 법적으로 도박의 책임 한계를 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뉴스에 보도되더라도 도박 골프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도박·사기 골프가 두려우면 아예 내기를 하지 않는게 상책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 독불장군일 수는 없다. 몇 년 전 에이스회원권거래소의 인터넷 회원 상대의 설문조사에서 내기 골프 경험이 있는 2636명에게 물었더니 대다수는 타당 1만원 미만의 소액 내기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때 대부분의 라운드 대상은 자주 어울리는 지인(80%)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스킨스를 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내기와 도박의 경계를 경험한 순간을 물었을 때 ‘판돈 때문에 손이 떨렸을 때’ 도박이라고 느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은 따거나 잃은 돈이 10만원 내외였고, 50만원을 초과했다는 응답은 10% 미만이었다.
지인과의 라운드에서도 상대방이 갑자기 큰 판돈의 내기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소 자신이 내기를 할 판돈의 상한선을 정해놓는 게 좋다. 또한 라운드 시작 전에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판돈이 커서 부담스럽다면 아예 빠져도 된다. 체면 때문에 무리하게 내기를 하거나 동반자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
이미 내기 골프에 동참했다면 잃었다고 배판을 부르지 말고, 상대방이 요청하는 배판에 따라가서도 안 된다. 그건 사행심을 조장하고 평정심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묘한 심리전일 수 있다. 잃어도 되는 한계를 정하고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이미 잃은 상황에서 이런 각성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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