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nagement - 일본인이 “고려해보겠다”고 한 뜻은…

미국 어느 대학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서는 한국어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father’를 가리키는 호칭이 자그마치 열 가지가 넘는, ‘높임말이 발달한 언어’로 소개한다. 아버지·아빠·아버님·부친·가친·엄친·춘부장·선친·아범·아비 등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는 물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및 문장 주체와의 3자 관계에 따라 다른 호칭이 사용된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워하는 점이 존댓말이다. “밥 먹었냐” “식사 했나요?” “진지 드셨습니까”가 다 다르니, 그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려면 미칠 지경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우리말 경어법은 문법적으로 주체를 높이는 존경의 표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공손의 표현, 객체와 주체,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른 겸양의 표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심지어 ‘압존법(壓尊法)’까지 신경 써야 할 때도 있다. 압존법이란 ‘문장의 주체가 화자(話者)보다는 높지만 청자(聽者)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이다. “할아버님, 아버님이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가 아니라 “할아버님,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어법이다.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높임말을 언제, 어디서 알맞게 구사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5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파악된 지구상의 언어는 6809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6700여개 정도로 본다. 이 중 문자를 가진 언어는 300여개에 불과하다. 호주 근방에 있는 파푸아 뉴기니섬의 경우 동네마다 언어가 달라 900여개의 언어가 쓰인다. 인도만 해도 지역과 부족에 따라 언어가 달라 260여개의 언어가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누이트의 눈 관련 단어 24개언어는 특정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독자적 상징 체계라 할 수 있다. 산업화나 근대화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언어의 어휘는 해당문화권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반영한다. 남부 인도의 코가 부족에게는 중요한 천연자원인 대나무를 표현하는 7가지 단어가 있지만 열대지방이라 눈을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
1년 내내 눈과 얼음 속에서 생활하는 이누이트(흔히 말하는 에스키모)는 일상생활에서 눈의 상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내리는 눈, 바람에 휩쓸려온 눈, 녹기 시작한 눈, 단단해서 뭉쳐진 눈 등 눈에 관한 단어만 24가지다. 이누이트 언어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눈을 가리키는 우리말도 함박눈·싸락눈·진눈깨비·가루눈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어는 가축과 고기의 이름이 서로 다른 반면, 불어는 가축과 가축에서 얻는 고기의 명칭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영어에서 소는 ‘옥스(ox 일소)‘ ‘카우(cow 암소)’ ‘불(bull 황소)’ 등으로 구분되나 ‘쇠고기’를 의미하는 단어는 ‘비프(beef)’란 말밖에 없다.
프랑스어에는 소와 쇠고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뵈프(beouf)’로 동일하다. 암소는 ‘바쉬(vache)’라고 하고 암쇠고기도 같은 단어를 쓴다. 또 영어에서 송아지는 ‘카프(calf)’, 송아지 고기는 ‘빌(veal)’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어에서는 송아지와 송아지 고기 모두 ‘보(veau)’를 사용한다.
‘beef’와 ‘veal’은 모두 불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어느 학자는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 유래를 1세기(1066~1154) 가량 지속된 프랑스계 노르만 왕조의 잉글랜드 지배에서 찾는다. 1066년 프랑스 귀족 노르망디공 기욤(윌리암)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뒤 영국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공존하게 됐다. 지배계층인 프랑스 귀족은 프랑스어를, 피지배계층인 색슨족은 영어를 사용했다.
어느 날 색슨족 하인은 자신의 상전인 프랑스 귀족이 자신이 기른 소를 잡아 만든 쇠고기 요리를 보고 ‘beouf’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문화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색슨족의 입장에서 지배계층이던 프랑스 귀족의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된 가축의 고기이름을 받아들인 까닭에 영어에는 가축과 고기의 이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노르만 왕조 지배기간 동안 계속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은 영어에 많은 어휘를 제공했다. 영어의 ‘맨션(mansion)’이란 단어 역시 프랑스어에서 ‘집’을 의미하는 ‘메종(maison)’에서 유래했다. 본래 프랑스어에는 없는 ‘저택’이라는 의미가 추가됐다.
인도유럽어족 가운데 게르만어 그룹에 속하는 영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어휘 수가 풍부하고 동의어도 다른 언어에 비해 많은 건 영국이 정복하거나 무역거래를 했던 다른 언어권 국가의 언어로부터 다양한 어휘를 받아들여서다. 현재 영어의 어휘를 어원별로 구분해보면 본래 영어 78.1%, 프랑스어 15.2%, 라틴어 3.1%, 덴마크어 2.4% 순이다.
에드워드 홀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따라 문화를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구분했다. 상황적 단서에 의존하는 고맥락 문화는 함축적이며 단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행간(行間)을 읽는 간접적 커뮤니케이션 행태를 보인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동사는 문장 끝에 오기 때문에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중국·일본과 같은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목표가 화자와 청자간 조화와 유대를 증진시키는 것이기에 문장의 의미나 진실성보다는 전반적인 감성의 표현이나 공손함이 중시된다. 이 때문에 고맥락 문화권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답변이 부정적인 것일 때 답변을 망설이게 된다.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태국의 경우 사회적 질서에서 개인의 지위에 큰 비중을 둔다.
이로 인해 태국어는 왕족의 언어, 성직자의 언어, 평민의 언어, 속어 등 네 가지 층위로 구분된다. 지위와 관계를 표현하는 대명사·명사·동사가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 ‘나’에 해당하는 17가지 대명사와 ‘너’에 해당하는 19가지 대명사를 포함해 무려 47개 대명사가 사용된다.
고맥락 문화권 ‘아 다르고 어 다르다’이에 비해 정교한 언어 메시지 전달을 중시하는 저맥락 문화는 언어 표현이 좀 더 직접적이고 명시적이며 정확하다. 말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저맥락 문화권인 미국과 고맥락 문화권인 일본과의 협상에서 일본인이 상대방을 배려해 거절하는 대신 ‘고려해보겠다’는 등의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미국인은 일본인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카베는 ‘동서(東西)의 문화적 가정:일본과 미국의 경우’란 논문을 통해 ‘영어는 대상지향적 언어이고 일본어는 신분지향적 언어’라고 지적했다. 일본어의 구조는 말하는 사람이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들지만 영어·독일어 등 서구 언어는 사물과 대상의 속성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어 역시 일본어나 태국어처럼 전달하는 내용이 같아도 상대방과 자신의 지위에 따라 다른 단어가 사용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처럼 한국 사회에서 반말 잘못 쓰다가는 봉변은 물론, 심지어 목숨마저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리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언어 폭력이 낳은 심리적 상처는 죽을 때까지 머릿속에 남아 전 생애를 지배한다. 가족이나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사용한다면 언어폭력으로 인한 갈등과 기회비용의 상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계엄으로 누가 죽었나?" 김문수에…한동훈 던진 한 마디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박시후, 불륜 만남 주선 의혹…입장 밝혔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트럼프 美투자 압박 속…삼성, 테슬라 이어 애플 뚫었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3년간 배당 늘린다더니…고려아연, 중간배당 생략한 배경은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대규모 기술수출에도 주가 원점 바이오벤처들…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