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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삼성전자? 중국의 구글!

중국의 삼성전자? 중국의 구글!

유연 근무제, 카페 같은 작업환경, 격식 차리지 않는 회장 … 공격적인 R&D로 승부



중국의 통신장비·스마트폰 제조사인 화웨이(華爲)는 선전(深圳)의 본사를 캠퍼스라고 부른다. 국내 IT 전문가들이 ‘중국의 삼성전자’로 부르며, 삼성전자의 미래 최고 경쟁자로 꼽는 화웨이 본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말 이곳을 직접 찾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선전 캠퍼스를 둘러보니 삼성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구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보였다.

근무 시간이었지만 본사 캠퍼스 한 가운데 놓여있는 호수 주변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외국인 직원들이 곳곳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엔 차(茶) 문화가 발달돼 있어 거리에서 카페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스타벅스, 영국의 코스타 커피 같은 유명 브랜드들만이 유명 구역에 하나씩 있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하지만 홍보 담당이자 3년차 직원인 황만(黃曼) 경리는 “2년 전쯤부터 외국인 직원들이 늘어나며 화웨이는 본사 11개 동에 모두 하나씩 카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캠퍼스 남쪽 부근 기숙사에선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백팩을 메고 출근하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황 경리는 “부서마다 8시~11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한다. 내가 속한 대외 홍보팀의 경우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7시쯤 퇴근한다”고 설명했다. 유연근무제란다. 낮은 연차 직원들을 위해 마련된 기숙사도 고급 콘도를 뺨치는 수준이었다.

야외 수영장과 카페테리아·헬스장이 각 동마다 있다. 기숙사 내부 역시 호텔처럼 돼 있어, 침구류를 매주 세탁해주고 청소도 해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미국 웬만한 기업 못지 않은 복지 수준을 갖춘 셈이다. 중국 기업이 이런 모습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론 미국 실리콘밸리식의 근무 환경을 만들어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샘솟도록하려는 회사측의 계산이 깔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사를 캠퍼스라고 불러황만 경리는 “직원들이 캠퍼스에서 회사 설립자이자 최고 의사결정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도 자주 마주친다”고 말했다. 런 회장은 젊은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단다.

‘어쩐지 딱딱할 것 같다’는 중국 기업에 대한 선입관은 여지없이 깨졌다.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의 본사 캠퍼스는 화웨이 부상의 원동력이 ‘소프트파워’에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1988년 허허벌판 모래밭이었던 선전에 둥지를 튼 화웨이는 세계 2위 통신장비 업체로 1위인 에릭슨를 곧 제칠 기세로 급성장하고 있다. 경쟁력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황만 경리는 ‘화웨이 기본법’이라 쓰여있는 작은 책자를 꺼내 연구·개발(R&D) 조항을 보여준다.

‘매출의 10% 이상은 R&D에 투자한다’고 쓰여있다. 2012년에는 전체 매출의 13.7%에 이르는 300억 위안(약 5조2500억원)을 R&D에 투입했다. 전체 글로벌 임직원(11만1000명) 중 R&D 인력만 5만1000명으로 45%에 이른다. 본사 R&D동에는 ‘새벽별은 매일 화웨이에서 뜬다’는 말이 나온다. ‘기술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원천이다.

자체 R&D 기술 확보는 시장 선점으로 이어졌다. 화웨이는 창립 이후 독자 통신장비 기술 개발을 추구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러시아·태국·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시장을 공략했다. 2000년대 들어선 네덜란드·독일 등 선진국 시장에 지사를 설립했다. 현재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2위인 화웨이는 1위인 에릭슨과의 점유율 격차가 3~4% 수준으로, 1~2년 안에 순위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신장비 시장을 장악한 화웨이가 2010년 새로 도전한 영역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불과 3년여 밖에 안됐지만, 삼성·애플에 이은 글로벌 3위 스마트폰 메이커가 됐다. 흔히들 저사양 중저가 폰 위주로 점유율을 올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화웨이가 지난해 내놓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 ‘어센드 P6’은 두께 6.18mm, 무게 120g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보다 10% 가량 얇다. 동급 스마트폰 중 가장 고사양인 5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했다.

1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4’에서는 새 스마트폰 ‘어센드 메이트2’를 내놓고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6인치대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패블릿(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중간 크기 스마트폰)’ 제품이다. 현재 패블릿 시장에서는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내놓은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화웨이가 이 부분을 뺏어오겠노라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배터리다. 탈착식 배터리에 4100mAh의 용량으로 하루 충전하면 이틀 정도 간다. 동급인 갤럭시 노트2(3100mAh)보다 용량이 30% 가량 많지만 두께는 갤럭시노트 시리즈와 비슷하게 유지했다. 뛰어난 세트 기술력이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사양이다.

삼성의 전매특허 격인 ‘수직 계열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웨이는 삼성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만든 프로세서 칩을 쓰고 있다. 아직 플래그십 스마트폰 브랜드에는 퀄컴 칩을 사용하고 있지만, 향후 프로세서 부문 경쟁력도 점차 확보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라고 부르는 이유다.

‘좌 스마트폰, 우 통신장비’로 무장한 화웨이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1월 16일 화웨이는 지난해 글로벌 매출 41조7800억원, 영업이익 5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영업이익은 약 43%, 매출은 10% 상승했다. 화웨이 측은 “경영 구조를 간소화하고 기업 운영 모델을 ‘기능 중심’에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 주요 영업이익 상승 이유”라고 설명했다.



패스트 팔로워 아닌 트렌드 세터 지향화웨이는 미래를 향한 투자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난해엔 약 5조원을 R&D에 투자했다. 영업으로 번 돈을 고스란히 다시 R&D 부문에 집어넣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5세대(5G) 모바일 네트워크 연구 개발 지원을 위해 2018년까지 6억 달러(약 64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등 한국의 스마트폰 업체들은 통신장비 기술을 앞서 확보했던 덕분에 손쉽게 시장에 신제품의 성능과 고객 반응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이런 ‘테스트 베드’의 시너지가 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앞으로 화웨이도 그런 일을 해낼 여건을 갖췄다. 스마트폰 제조 업체 겸 통신장비 업체로서 화웨이의 행보를 눈 여겨 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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