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nagement - 단순하고, 솔직하고, 직관적이게

‘진한두유검은콩 식빵’ ‘부드러운 예산사과 통밀브레드’ ‘우리땅 미숫가루 크림빵’…. 제품에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naming)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외래어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직설화법’이 대세다. 제품에 담긴 우아함에 열광하던 한국 사람들이 이제는 찰진 재미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단순하지만, 직관적이다. 뜻을 알기 어려운 이름으로 허세를 부리는 프리미엄 전략에 감탄하기보다는, 실속있는 설득이 훨씬 더 유용하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트렌드 변화는 감성적 설득이 중요한 뷰티·패션업계에서도 나타난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숍 이니스프리는 매니큐어 이름을 ‘안녕 병아리’ ‘빛으로 쌓인 남산타워’ 등으로 지었다. 이름만 들어도 병아리 같은 샛노란 색이 연상된다. CJ올리브영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인 ‘엘르걸’은 립글로스 컬러를 핑크1호, 레드2호 같은 딱딱한 숫자 대신 ‘헬로(hello)’ ‘셀카(셀프 카메라)’ ‘톡톡(talk talk)’ 등을 사용했다. 단순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네이밍 전략이다.
타깃 고객 특성 반영한 돌직구형 네이밍타깃 고객층의 특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돌직구형 네이밍’도 화제다. 제일모직의 캐주얼의류 브랜드 ‘바이크리페어샵’은 10~20대가 주요 고객이다. 제품 라인의 이름에도 이런 고객층의 특성을 반영했다. 이들이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하는 외계어(인터넷 언어)를 과감하게 적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바지의 색상을 표현할 때 ‘불금(불타는 금요일) 와인’ ‘멘붕(멘탈 붕괴) 옐로’ ‘미존(미친 존재감) 레드’ ‘네이비 행쇼(행복하쇼)’ ‘블루 스압(스크롤압박)’과 같은 인터넷 축약어로 표현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어리둥절한 표현이겠지만 젊은이들에겐 ‘브랜드가 어떻게 이런 단어를 선택할 수 있을까?’하는 충격과 동시에 ‘브랜드가 우리를 이해해주는 것 같다’는 동질감마저 준다.
기업이 제품에 붙인 이름을 쓰지 않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제품에 애칭을 붙이는 현상도 나타난다. 간혹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감기몰’에서 제품을 구매했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기서 감기몰이란 새로 생긴 쇼핑몰이 아니다. 현대홈쇼핑을 부르는 애칭이다. 현대홈쇼핑의 URL 주소 ‘에이치 몰(Hmall.com)’의 기침하는 듯한 발음에 착안한 붙인 별명이다. 제품 특징으로 애칭을 붙이기도 한다.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대표 제품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는 ‘갈색병’으로 통한다. 원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유명한 애칭이다. ‘엘라스틴 샴푸’를 사용하면 머릿결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진다고 해서 ‘어머나 샴푸’, 라라베시의 베이스크림은 탁월한 효과 덕분에 ‘악마 베이스’로 통한다.
사람들이 솔직하고 직관적인 네이밍 트렌드에 열광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의 원인은 소비자의 정보탐색행동 변화, 구매행태 변화, 기업-소비자의 관계 변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직설화법은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이 덕분에 기업이 소비자를 견인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고객과 언어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스트라이프 패턴의 드레이핑 스커트’보다 ‘줄무늬 주름치마’가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과 같다. 직설화법이 지닌 직관성은 소비자들의 정보탐색 과정을 단순화하는데 기여한다. 소비자는 무언가를 구매하려고 할 때 다양한 정보탐색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 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탐색의 수고 없이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정보일 수 있다.
둘째, 소비자들의 구매행태 변화도 직설화법 네이밍 트렌드가 등장한 배경이다.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눈으로 확인한 후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쇼루밍(showrooming)족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화려하고 멋있는 이름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가령 누군가 오프라인에서 맘에 드는 제품을 점 찍었는데 제품명이 ‘BS2333323-1’이라고 해보자. 그것을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물론 이런 식의 제품명은 기업의 생산이나 재고관리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겠지만 소비자들에겐 장애물일 뿐이다. 차라리 ‘날아라 병아리’처럼 단순한 이름이라면 사람들이 쉽게 기억한다. 이름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도 제품 자체를 바꿨을 때보다 더 빨리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설화법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공감형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끼리 자발적으로 제품에 별도의 펫네임(pet name)을 지어서 부르는 경우, 소비자는 해당 기업에 인간적인 친숙함을 느끼기 쉽다. 온라인에서 작성된 제품 후기를 읽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펫네임을 아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심리적 유대감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즐겨 부르는 애칭으로부터 자기 제품의 어떤 특성에 소비자들이 반응하는지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종합해보면 직설화법 트렌드는 소비자의 ‘휴리스틱(heuristice, 체감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특성에 가장 적합한 소비행태라 할 수 있다. 수학적 모델에 의해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그것이 어려울 때 소비자는 경험에 의존해 습관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바로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 때 직설화법이 지닌 단순성과 직관성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인다.
소비자와 공감하고 마음 움직여야한 사람이 하루에 보는 광고의 수만 해도 3000개에 달한다. 신제품은 쏟아지고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소비자의 기억에 바로 각인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직관적으로 표현된 작명은 소비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제품의 이름을 짓는 것에서부터 소비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홍보전략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솔직하고 단순한 ‘돌직구’가 곧 판매경쟁의 승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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