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URES drugs - 아편 전쟁 2.0

아프가니스탄에서 13년 동안 전쟁을 치른 서방 국가들이 올해 병력을 완전히 철수할 계획이다. 적들을 완전히 패배시킨 것도 아니다. 아프간 정부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부패했으며 명목상으로만 민주적일 뿐이다. 서방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더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그 전쟁의 여파에 시달려야 한다. 물론 그 대가가 미국인의 피와 혈세로 측정되진 않지만 더 중요한 지표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이 증가하면서 세계를 휩쓰는 헤로인 중독을 말한다.
최신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생산은 거의 50% 증가했다. 아프간산 아편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세계적으로 68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장 뤽 르마이유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대표에 따르면 그중 아프가니스탄에 남는 건 10%도 안 된다.
UNODC의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아편 거래로 발생하는 수출 가치는 약 40억 달러에 이른다. 그중 4분의 1은 아편 재배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방 관리, 반군, 군벌, 마약 밀매업자들이 차지한다.” 동시에 미국에서 헤로인 중독률이 급증하고 있으며, 러시아부터 파키스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변 국가들에서 더욱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3년 12월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 검찰총장은 “헤로인 유행”이 오하이오주를 장악했다고 경고했다. 빅토르 이바노프 러시아 마약관리국장도 헤로인을 두고 “러시아 젊은이들을 잡아먹는 용”이라고 불렀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참여한 서방국 중 다수는 이렇게 자문한다. 우리 교외 지역 아이들을 마약쟁이로 만드는 양귀비 재배 농민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느라 제2차 세계대전에 들인 시간과 돈의 두 배를 우리가 썼는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말인 2008년, 리처드 홀브루크 미국 아프가니스탄 특사는 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다른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진 아프가니스탄 경제를 재건하는 동시에 마약 거래를 근절하려고 시작된 미국의 임무가 오히려 아편 생산을 기록적으로 늘리는 결과로 끝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 답의 일부는 국제안보지원군(ISAF, 미군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다국적군)이 아프간의 아편 재배 농민에게 소득 출처의 대안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1년 이래 미국 정부는 아편 생산을 막기 위해 60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양귀비 재배 근절 프로그램과 대체 작물 재배 보조금이 포함된 액수다. 그 정도로 충분치 않은 게 분명했다. 아편은 다른 작물보다 수익률이 대여섯 배 높다. 따라서 양귀비 재배를 단념시키려면 보조금(또는 벌금)이 엄청나야 한다. 아편 다음으로 가장 물량이 많은 수출 농산물은 견과류다. 견과류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체 공식 수출액 3억7600만 달러의 7.4% 정도 차지한다.
UNODC에 따르면 아프간 농민은 수확한 아편으로 ㎏ 당 203달러를 벌 수 있다. 2001년 이래 서방은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서비스 부문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지만 진정한 아프가니스탄 경제를 구축하지 못했다. 1970년대 만해도 아프가니스탄은 식량을 자급자족했다. 지금은 3200만 인구를 먹이기 위해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UNODC의 조사·추세분석 책임자 안젤라 메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양귀비 재배가 급증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서방 병력이 철수하는 2014년 이후 농민과 국가가 예상하는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다시금 세를 구축하는 탈레반에게 아프간 정부가 영토의 많은 부분을 잃으면 상황은 호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메는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의 규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양귀비가 재배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통제가 적을수록 아편은 더 많이 생산된다.”
창설된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은 35만 명에 이르지만 그중 80%는 문맹이며 연간 탈영률이 20%에 근접한다. 미군 침공 이전에는 군도 경찰도 없었고 탈레반 민병대뿐이었다. 미국-NATO 합동 훈련단 명목으로 1만 명 미만의 서방 병력이 잔류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조건을 두고 미국 정부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과 올해 후반기에 선출될 후임자가 친소련 아프간 대통령이었던 나지불라의 운명을 피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소련은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어쩔 수 없이 철수하면서 나지불라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카불의 유엔 임시본부에서 수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사임한 뒤 1996년 무장 게릴라조직 무자헤딘에 의해 가로등 기둥에 매달려 무참하게 처형당했다.
탈레반도 헤로인 거래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탈레반 초기 시절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학생 운동 지도자들은 마약을 금하고 헤로인 밀매자와 중독자를 공개 태형에 처했다. 또 양귀비 재배를 사악하다고 규정하고 단속했다. 이제 탈레반은 실용적으로 변했다. 지금 그들은 서방의 마약퇴치 프로그램에 의해 생계가 어려워진 양귀비 재배 농민의 편에 섰다.
탈레반으로서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아편에 10%의 세금을 부과한다. 불어나는 아편세금 수입으로 탈레반은 과거의 세력을 거의 회복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2013년 3월부터 10월까지 아프간 경찰 1273명과 마을 경비대원 77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기간에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34개 주 중 30곳에서 6600차례의 공격을 감행했다.
물론 ISAF와 아프간 정부군이 내린 결정은 나름대로 실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양귀비 재배 농민들을 탈레반의 품에 안겨다 주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인기 없는 양귀비 퇴치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게 나을 지 모른다.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2013년 양귀비 퇴치 대상 지역이 4분의 1이나 줄었다. 당연히 양귀비 재배 면적은 36%나 늘었다.
미국 국방부는 현재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양귀비 폐기처분 프로그램을 적극 밀어붙이면 농민이 ISAF에 등을 돌리고 탈레반을 지지하게 된다. 반면 아프간 농민들에게 아편 생산을 허용하면 치명적인 국제 거래를 부추기게 된다. 어느 쪽이든 탈레반에게 득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아프간 정부가 아편 생산 근절 프로그램에 별로 관심이 없고 더구나 탈레반과 싸울 생각도 없는 듯하다는 사실이다. 카르자이는 최근 탈레반을 “형제”라고 부르며 미국이 탈레반과 짜고 폭탄테러를 연출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또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자신은 파키스탄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아프간 관리 다수(고위층 포함)가 마약 밀매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개인적으로 축재하고 다가오는 총선의 선거 자금으로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던 전 미국 관리는 “카르자이 정부의 부패는 미국 정부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추악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관리들이 어디선가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그는 말했다. 아프간 주지사들, 정부 자문역들, 행정관들은 호화 차량을 여러 대 소유한다. “주차장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부정직한지 알 수 있다”고 그 미국 관리는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카르자이의 이복 동생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도 마약 거래에 연루됐다.

파키스탄인 약 100만 명이 헤로인을 사용하며 그중 절반은 주사기를 이용한다. 유엔은 주사기를 이용하는 파키스탄 헤로인 중독자 중 에이즈바이러스(HIV) 양성반응자가 거의 30%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2005년의 11%에서 크게 증가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에 든다.
UNODC 파키스탄 지국을 이끄는 세자르 게데스는 “파키스탄은 헤로인 운송의 중심지이자 주요 소비지가 됐다”고 말했다. “아편의 일부는 파키스탄에 머문다. 수익성이 좋은 시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밀매업자들이 현금과 현물로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 시장이 형성된다.”
한편 세계에서 헤로인 중독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러시아다. 2012년 기준 550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60%가 늘었으며 미국의 거의 10배다. 미국의 경우 2012년 헤로인 사용자가 66만9000명이었다(2007년엔 37만3000명).
매년 러시아인 약 3만 명이 헤로인 중독과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으며, 12만 명이 마약 관련 범죄로 수감된다. 비정부기구 ‘마약 없는 나라(Country Without Drugs)’에 따르면 툴라, 야로슬라블, 사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지난 2년 동안 헤로인과 에이즈로 인한 사망 건수가 두 배, 심지어 세 배로 늘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에이즈는 주로 성행위로 전염된다. 그러나 러시아에선 80%가 주사바늘에 의해 HIV에 감염된다. 에이즈 확진 환자도 3만5000명 이상이다. 오하이오주 마약단속반 팀장 척 보이어에 따르면 미국에선 분말 헤로인 한 봉지(약 0.1g)가 약 20달러에 거래된다.
모스크바 거리의 헤로인 가격은 이전에는 낮은 편이었지만 수요가 늘면서 급등했다. 크렘린이 지원하는 인구·이주·지역개발 연구소의 유리 크루프노프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흘러 들어오는 헤로인이 러시아인들의 수요를 증폭시켰다. 1997~98년, 2003~04년에 값싼 헤로인 공급이 크게 늘었다. 2004년에는 러시아 어디에서든 5달러면 헤로인 한 봉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7달러에서 최고 45달러까지 올랐다.”
이제 러시아 당국은 헤로인 유행을 국가 위기로 간주한다. 크루프노프는 “러시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선 헤로인 공급이 수요를 낳는다.” 러시아의 마약단속국장 이바노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구다. 그는 마약 밀매를 테러 행위와 같은 범죄로 공식 규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인 제재를 가한다.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국제법에서 최우선으로 다루는 길밖에 없다”고 이바노프는 말했다. 그는 ‘무지개-2’로 알려진 마약퇴치 계획을 실행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국,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했다. “마약 경제의 규모는 천연가스나 석유에 맞먹는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마약 거래는 인간의 생명, 건강에 명백한 위협이며 우리로선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마약은 테러나 해적행위와 마찬가지로 세계안보의 위협 요소로 분류돼야 마땅하다.”

이바노프의 ‘무지개-2’ 계획의 다른 측면은 공격적인 양귀비 퇴치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그 역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바노프는 “우리는 모든 재배 농민과제조소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할 수 있는 국제법만 만들어 달라. 우리가 그들의 재고를 소거하겠다. 용은 동굴 속에 있을 때 죽여야 한다.”

윌리엄 브라운필드 미 국무부 국제마약 법집행 담당 차관보는 “불법 마약과 마약 남용 문제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이 카르자이 정권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프간·파키스탄 담당 미국 특별대표의 수석 고문 바넷 루빈은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는 어느 한쪽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심하게 비난하는 기능장애 부부와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아프간인들이 대가를 치른다.”
서방이 아프가니스탄을 ‘실패한 마약국가’로 버려두고 떠날 수 있을까? 최고위 정치인들마저 마약 거래에 연루된 아프가니스탄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미국 정치인 다수는 그런 발상에 격분한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최근 국제마약통제위원회에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주둔을 고려하면서 마약퇴치 문제를 유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소비되는 아프간산 헤로인은 아주 소량이다.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헤로인의 대부분은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 나온다. 그런데 왜 멀리 떨어진 나라의 양귀비 재배에 신경을 써야 하냐고? 한 마디로 아프가니스탄의 불법 마약거래가 탈레반의 테러 활동에 자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을 상대로 한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가 12년 동안 쏟아 부은 피와 혈세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마약퇴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을 마약 밀매자들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들을 단속하고 싶다고 해도 서방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확실치 않다.
ISAF는 양귀비 재배 단속을 포기했다. 동시에 서방 외교관들은 다국적군 병력이 아직 현지에 남아 있는 동안 탈레반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는데 실패했다. 루빈은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의 힘과 영향력은 다수의 생각보다 허약하다”고 말했다. 카르자이는 생존하려면 탈레반과 협상을 해야 한다. 탈레반은 양귀비 재배 농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카르자이의 핵심 지지자 중 다수는 마약 거래와 깊숙이 연루돼 있다. 특히 파슈툰족이 지배하는 헬만드와 칸다하르주에서 그렇다.
이제 서방은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카르자이 정부를 존속시키려면 단기적으로 아편 생산을 못 본 체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헤로인은 러시아의 옴스크부터 미국의 오하이오주까지 수많은 젊은이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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