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GYO-THE RICH VILLAGE | 서울 부촌의 축소판 ‘판교 비버리힐스’
PANGYO-THE RICH VILLAGE | 서울 부촌의 축소판 ‘판교 비버리힐스’
지난 4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신분당선 판교역 인근 쇼핑몰 아브뉴프랑.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이곳은 서울 강남, 성남 분당 지역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판교 최고의 프리미엄 상권이다. 쁘띠마르숑, 달팩토리, 캐스키드슨 등 주로 서울 강남에 매장을 둔 패션브랜드가 입점했고 붓처스컷, 생어거스틴, 뉴욕버거, 올라, 아티제, 블루밍가든, 공차 등 개성 있는 식음료 브랜드도 눈에 띈다.
3층 규모의 아브뉴프랑은 200m에 이르는 길이를 활용해 내부 스트리트를 조성했다. 좌우에 테마거리와 광장, 테라스형 상가, 야외 쉼터 등을 배치해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채롭게 꾸몄다. 현재 레스토랑, 카페, 패션·잡화, 편의시설 등 80여 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아브뉴프랑은 철저하게 여성을 겨냥한 쇼핑몰이다. 주말에는 여성들이 가족의 손을 이끌고 쇼핑하고, 평일 낮 시간에는 30~50대 주부들이 각종 모임을 갖는다. 이곳은 ‘판교 골드맘의 놀이터’로도 불린다. 골드맘은 ‘고학력에 경제력을 갖추고 귀하게 자란 젊은 엄마’를 뜻한다. 흔한 프랜차이즈 매장보다는 디저트 매장이나 유기농 베이커리 매장에 손님이 더 많다. 마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와 있는 듯하다.
상권·학군 좋아 분당보다 비싼 동판교아브뉴프랑을 설계한 호반건설의 전략은 바로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길처럼 다양하고 개성 있는 고급 매장 위주로 상업시설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급격히 늘고 있는 판교신도시 중산층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중했다는 분석이다.
인근 판교공인중개소 대표는 “매장 업종과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보증금 1억~2억원, 월임대료 200만~500만원으로 강남 중심가 수준”이라며 “알파돔시티 내 현대백화점이 내년에 완공되면 판교역~알파돔시티~판교테크노밸리로 이어지는 판교의 중심상권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는 자족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일부에선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인 서울 강남의 확장판이라고도 평한다. 판교신도시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접하고 있어 강남과의 접근이 용이하다. 아직 인프라가 충분치는 않지만 1기 신도시 분당과 접해 있어 학군이나 쇼핑, 의료시설 이용도 편리하다. 판교테크노밸리 입주가 거의 완료되면서 주택 수요층도 늘었다. 안랩, 넥슨, 엔씨소프트, SK케미칼, 포스코ICT 등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문화산업기술(CT) 등 고부가가치 업종 종사자가 몰리면서 중산층 거주지로 자리 잡고 있다.
판교를 둘러보면 마치 서울 부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기업 오너 일가가 몰려있는 성북동이나 평창동의 대저택 단지, 트렌드를 선도하는 청담동의 고급 빌라촌, 학군 따라 형성된 대치동 아파트단지가 판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판교는 경부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뉜다. 도로가 갈라놓은 입지이지만, 주거 환경면에서 두 지역은 확연히 다르다. 동판교는 판교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값도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업무시설과 상가도 마찬가지다. 반면 서판교는 녹지율 등 자연환경이 좋아 수십억원대의 고급 단독주택이 즐비하다.
분당과 지척인 동판교는 판교테크노밸리의 기업 입주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봇들마을 7·8단지, 백현마을 1단지 등은 판교테크노밸리 이주 수요에 역세권, 학군 프리미엄이 더해져 가격대가 높게 형성됐다. 봇들마을 8단지 주공 휴먼시아 85㎡의 매매가는 지난해 3월 7억5000만원에서 1년 만에 8억5000만원대로 뛰었다. 전세 역시 5억5000만원에서 1년새 1억원이 올랐다. 웬만한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를 훨씬 웃도는 초강세다.
판교공인중개소 대표는 “최근 가파른 전세값 상승에 부담을 느낀 판교테크노밸리 일대 직장인들이 매매로 전환하고 있다”며 “혁신학교로 지정된 보평초등학교 주변 아파트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판교 지역 아파트도 오름세는 비슷한 양상이다. 운중동 산운마을 13단지 전용면적 84㎡ 역시 지난해보다 1억원 정도 오른 4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운중동 한림공인중개사무소 김형태 소장은 “서판교 일대는 운중천과 금토산공원, 남서울CC 등의 조망을 누릴 수 있어 인기가 높다”며 “새학기를 맞아 84㎡에 4억3000만원 하던 급전세 물건이 다 소진되는 바람에 지금은 4억5000만 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급등세는 인근 분당신도시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월말 기준 판교 아파트 평균 전세값은 3.3㎡당 1425만원으로 1년 전 1171만원 대비 20%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분당 아파트 매매가격이 1448만원에서 1452만원으로 소폭 오른 것과 비교하면 판교 아파트 전세값이 분당 아파트값에 육박하는 셈이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자존심을 세웠던 분당 지역이 판교에 밀리는 모양새다. 김미선 부동산써브 선임연구원은 “기존 분당의 인프라를 누리면서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판교
에 몰리면서 집값과 전세값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서판교는 개발 콘셉트 자체가 동판교와 다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입지 환경이다. 북쪽은 청계산 자락이 감싸고, 산 밑의 금토산공원과 중앙의 운중천이 펼쳐져 배산임수의 명당이라는 평가다. 녹지율이 2기 신도시 중 가장 높고, 인구밀도는 1헥타르당 70명으로 동판교의 절반 수준이다.
서판교 단독주택에 모여든 CEO와 오너들서판교 부촌은 ‘신흥 부촌’과 ‘전통 부촌’으로 나눌 수 있다. 운중동 일대 타운하우스와 단독주택에 상대적으로 젊은 부자들이 모여 살고, 남서울CC 옆 하산운동·대장동 고급주택가는 전통적인 부자들이 둥지를 틀었다. 서판교의 대표적인 타운하우스는 SK건설의 ‘산운·운중 아펠바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공급한 ‘월든힐스’다. 운중 아펠바움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를 맡아 화제를 모았고, 산운 아펠바움 역시 세계적인 건축가인 짐 올슨이 설계했다.
4월 11일 오후에 찾은 산운 아펠바움. 산자락을 끼고 자리를 잡은 데다 최첨단 보안시설이 설치돼 출입관리가 엄격했다. 철저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 세대로 진입하는 도로도 독립성을 유지하게끔 설계돼 있다. SK건설이 공급한 이곳은 모두 34가구로 가구별 대지 면적이 330~596㎡(100~180평)에 전용면적 176~310㎡(53~94평)의 대형 평형으로 구성돼 있다.
2012년 말 입주 당시 분양가가 85억원(310㎡)으로 국내 타운하우스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형태 소장은 “현재 시세는 40억원에서 70억원 정도”라고 했다. “운중동 타운하우스 단지에 입주한 이들은 대부분 강남권의 고가 노후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인근 판교테크노밸리의 IT업계 CEO와 임원도 많다.”
타운하우스 아래 동네엔 230~264㎡(70~80평) 필지에 들어선 단독주택이 즐비하다. 이들은 높은 담과 넓은 마당으로 비슷비슷한 외양을 지닌 한남동이나 성북동 일대의 주택과는 외형에서부터 내부 구조까지 상당히 다르다. 이곳에는 외국에서 볼 수 있는 전원풍의 주택, 세련된 느낌의 일복식 목조주택, 모던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주택 등 집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주택들이 가득하다.
김 소장은 “서판교 일대 단독주택 수요자 중에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거주자의 70% 정도가 서울 강남3구(서초·강남·송파)와 경기 분당의 서현동, 정자동에서 옮겨왔다”고 말했다. 서판교 일대 단독주택 필지는 모두 14개 블록에 1300개 정도다.
남서울CC 입구 전원마을에 자리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집은 지난해 성남시에서 가장 비싼 주택에 올랐다. 성남시가 공시한 바에 따르면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82억원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공사비와 땅값 등을 합하면 시세가 200억원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주택은 약 3300㎡(1000평)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세워졌다.
건물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해 골목 입구에서부터 단연 눈에 띈다. 지하층이라고는 하지만 지형이 높아 출입구 역할을 한다. 1층에는 대형 홀과 거실과 주방, 2층에는 방과 욕실 등이 있고,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집터가 워낙 높고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어 주변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구조다.
정 부회장 집에서 남서울CC 클럽하우스를 지나 1㎞ 남짓 올라가면 고급 저택들이 등장한다. 성남시 하산운동과 대장동에 걸쳐 있는 전원주택단지 남서울파크힐로, 골프장을 끼고 있고 서판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주거지다. 이 마을의 출입은 마을 양쪽 끝 경비실에서 바리게이트를 열어줘야 가능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사유지에 도로를 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으며, 단지 아래에 기존 도로가 있어 인근 주민들의 불편함도 없다”고 말했다. 남서울CC에서 끊어진 도로를 비용을 들여 단지 안으로 연결했다는 설명이다.
모두 100개 정도의 필지로 나뉜 이 단지에는 현재 전원주택 30채가 세워졌다. 4채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1필지 면적은 820~2000㎡(250~600평)로 3.3㎡당 400만~1000만원대다. 대부분 1필지가 1650㎡(500평) 정도이니까 땅값만 20억~50억원 수준이고, 두 필지를 합쳐 집을 올린 곳은 100억원이 넘는다.
이 전원주택 단지에는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이건영 대한제분 부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심영섭 우림건설 회장,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등이 자신이나 일가 명의로 집을 갖고 있다. 홍평우 신라명과 사장, 김의광 장원산업 회장(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매형), 전경호 전 청주방적 회장, 장진우 한불에너지관리 회장, 유시현 가오 대표이사, 최영배 대유설비 대표 등 중소기업 오너도 눈에 띈다. 최근엔 김용민 후성 대표와 정훈탁 IHQ 대표, 이영훈 로지트코퍼레이션 회장, 주광남 금강철강 회장이 입주했다(90쪽 참조).
대장동 LG컨설팅투자개발의 정명호 대표는 “40여 년 전 대지 13만2000㎡(4만 평)을 사들인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이 남서울CC를 운영하면서 회원 확보 차원에서 한 필지씩 나눠줬다”며 “1976년 5월 4일 이른바 ‘5·4 조치’에 따른 성남시 조례로 개발이 묶여 있다가 몇 년 전 건축 허가가 나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게이트빌리지이다 보니 경비·보안·청소 같은 공동 비용이 많이 든다. 집을 짓지 않고 토지만 보유하고 있어도 기본 관리비를 평당 1만원씩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웬만한 부자는 집을 지었다해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인프라 구축해야 중산층 더 몰린다미국 실리콘밸리는 세계적으로 창업 기지의 상징이다. 이곳이 벤처의 산실이 된 것은 단순히 모여 있어서가 아니다. 몰려든 인재들이 살기 좋은 환경 속에서 기량을 마음을 펼칠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판교의 주거 환경 인프라가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IT를 위주로 한 첨단기업 입주, 중산층 거주지와 상권 형성 등은 긍정적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생활 편의 시설과 열악한 교통편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표적인 호재로 꼽혔던 서판교역 개통도 아직까지 확정된 게 없다.
지난해 연말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는 724개사가 입주해 4만2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80% 공정인 테크노밸리가 100% 완성되면 8만 명이 될 전망이다. 최근 흐름을 보면 이들의 상당수가 판교에 거주지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테크노밸리 회사원들이 볼 때 판교는 날마다 땅값이 치솟고, 물가도 비싸다. ‘판교는 아직 미완성’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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