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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진 한국 영화산업의 그늘 - 방심하다 ‘칠천량 해전(원균이 대패한 전투)’ 꼴 당할라

덩치 커진 한국 영화산업의 그늘 - 방심하다 ‘칠천량 해전(원균이 대패한 전투)’ 꼴 당할라



<명량> 을 비롯한 한국 영화들이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 시장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관련 업계에서는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몇 번의 흥행에만 기대는 영화 시장은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의 단기 성장에 취해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다가 퇴보한 홍콩 영화가 대표적인 예다.

흥행 수익을 적절히 배분하고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않으면 한국 영화 시장의 덩치가 아무리 커져도 원균의 ‘칠천량’패전처럼 한 순간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칠천량은 이순신의 후임 원균이 왜군과 맞붙어 패한 곳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 논쟁 치열최근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스크린 독과점 문제다. 스크린 독과점은 한국 영화계의 배급 구조에서부터 비롯된다. 영화산업은 크게 제작·배급·상영이란 축으로 이뤄진다. 각각이 생산·도매·소매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제작사는 해외에서 영화를 수입하거나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곳이다. 감독·배우·스태프가 여기에 속한다. 국내에는 약 2000여개의 제작사가 등록돼 있다. 제작사는 보통 규모가 크지 않다. 따라서 자기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투자자들로부터 제작비를 지원 받아 영화를 찍는다.

제작사가 만든 영화는 도매상인 배급사에게 넘어간다. 배급사는 배급권을 확보해 마케팅 활동을 벌여 영화를 홍보하고, 상영 업체와 계약해 영화관에서 상영되도록 한다. 개봉될 시기, 개봉의 규모, 개봉될 지역, 마케팅 방식 등을 배급 단계에서 모두 결정한다. 극장은 실제 관객과 접촉해 표를 팔고 매출을 창출한다.

영화산업은 기본적으로 배급사가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영화를 찍을 제작사는 많지만 이를 배급해줄 배급사는 과점 체제이기 때문이다. 또 국내 주요 배급사는 보통 해당 영화의 30% 정도의 제작비를 대고 메인 투자자로도 참여한다. 게다가 상영관까지 소유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관객 점유율 1위(34.8%) 배급사인 CJ E&M과 3위(18.9%) 롯데엔터테인먼트는 각각 CGV, 롯데시네마와 같은 그룹의 계열사다.

결국 배급사가 어떤 영화에 투자할지 결정하고, 직접 배급해서 자신이 소유한 극장에 영화를 거는 구조다. 이른바 ‘수직계열화’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도, 공들여 만든 영화가 최대한 많이 관객과 접촉하기 위해서도 배급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셈이다.

더구나 CGV와 롯데시네마는 상영관 시장을 양분하다시피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두 상영관의 스크린 점유율은 각각 41%와 30%다. 이로 인해 대기업 계열 배급사가 배급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차지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에 극장들이 더 많은 상영관을 배정하는 것이 시장 논리인데 대기업이 힘을 앞세워 이에 어긋나는 배급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영화는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관객은 영화 향유의 기회를, 제작자는 창작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검증이 되지 않은 감독·배우의 영화는 투자·배급을 받기 어려워 신인의 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영화감독협회의 이사장인 정진우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 시스템 탓에 흥행 위주의 영화만 빛을 보고 있다”며 “영화의 다양성과 질적 향상,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등을 적용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성장 속에도 ‘다양성 영화(작품성·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의 관객수와 매출은 2009년 이후 줄곧 하락세다. 전체 관객 중 다양성 영화의 비중도 계속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1.6%(340만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1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다양성 영화 6편 중 한국 영화는 한 편뿐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나친 스크린 독과점 논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극장입장권통합전산망을 통해 지난해 한국 영화 상영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극장과 배급사와의 내부자 거래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CGV에서 상영된 영화 중 14.7%가 CJ E&M의 배급,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된 영화 중에서는 11%만이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영화였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흥행 영화에 스크린이 쏠릴 수는 있지만 이는 계열사 내부자 거래와는 다르다”며 “대기업이 특정 영화의 인기를 조정한다기보다 대중의 기호를 대기업이 철저히 따라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잘못된 인식으로 같은 계열사 영화의 스크린 수를 규제하면 이제 살아나기 시작한 영화계에 투자 침체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극장이 가져가는 수익 줄였지만…물론 상영 영화 편수와는 별개로 스크린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또 계열사 몰아주기가 아니더라도 소수의 흥행 위주 영화에 스크린이 집중된다는 논란 역시 남는다. 그러나 한 영화산업 관계자는 “ <명량> 을 제외하고는 한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이 30%대를 넘은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스크린 독과점은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체감 효과로 인한 점유율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스크린 점유율은 관객이 많이 드는 지역이나 황금 시간대 등과는 상관 없이 통계로 잡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일주일 상영 기간 보장과 교차상영 금지다. 교차상영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권고안은 교차상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교차상영 때 사전 서면 합의하고 교차상영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교차상영에 대한 보상 조항이 없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지적보다는 영화 수익이 골고루 배분되도록 공정한 계약 기반을 만드는 게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급선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근 표준계약 기준이 논의되는 등 업계의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은 구습에 따라 불투명하고 관행적으로 처리되면서 제작사의 피해가 커지거나 투자자들이 제작비 투자를 기피한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의 극장 티켓 매출이 100억원이라고 쳤을 때 수익 배분 구조를 단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매출에서 3%는 먼저 영화발전기금, 10%는 부가세로 빠진다. 나머지를 87억원을 극장과 배급사가 나눈다. 이 비율을 ‘부율’이라고 한다. 최근 업계에서 조정 중이지만 지금까지 부율은 50:50이 일반적이다. 이를 적용하면 극장이 43억5000만원을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배급사 몫으로 배당된 수익은 다시 배급사와 제작사, 투자자가 나눠 갖는다. 우선 10%를 배급 수수료로 배급사가 챙긴다. 나머지를 투자자와 제작사가 6:4로 나누는 게 관례다. 결국 100억원의 매출 중 제작자에게는 16억원, 투자자에는 23억원이 돌아가는 셈이다. 투자자의 돈 23억원은 메인 투자자와 여러 창투사가 투자 비율에 따라 나눠 갖는다.

거꾸로 따져보면 제작비 16억원이 든 영화는 극장 매출이 100억원 이상 돼야 제작사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이를 보면 전체 수익 중 제작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장에 비해 훨씬 적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감독·배우들의 인센티브는 계약에 따라 다른데, 경우에 따라 제작사의 몫은 더 줄어든다.

최근 투자·배급사가 직접 감독을 고용하는 공동제작 형태가 늘면서 그런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영업계가 다른 업계를 배려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반영해 영진위는 부율을 상영관 측에 55(배급):45(극장)로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 경우 제작사에게 돌아가는 수익 비율은 15%에서 19%로 늘어난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지난해부터 서울 지역 극장의 부율을 55:45으로 조정했다.





수출·부가 판매 더 늘어야하지만 아직 부율을 조정한 상영관은 아직 많지 않다. 변경 부율을 적용한 상영관은 전국 기준 7%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전히 과거의 부율에 매여 있다.

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극장은 단계적으로 부율 조정을 시행하고 일방적인 할인행사와 판촉활동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영진위에서는 무료 입장의 경우 배급자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허가하거나 무료 입장권을 발권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CGV는 입장수입의 5% 내에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7% 내에서 무료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VOD 등 디지털 온라인 부가 시장과 해외 시장 등 새로운 시장을 통한 문제 해결도 고려할 부분이다. 국내 영화 시장의 매출은 85%가 극장에서 나온다. 최근 IPTV 시장이 성장하면서 부가 시장의 규모는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 비중은 크지 않다. 지난해 한국 영화 전체 매출에서 디지털 온라인 부가 시장의 비중은 14%, 해외 수출은 3%에 불과하다. 캐릭터 등 부가 판권 시장도 미약하다. 원소스멀티유즈(OSMU)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산업의 매출은 절반가량이 해외에서 나온다. 일본 영화 시장 역시 극장 외에 비디오 매출과 부가 시장을 통해 성장했다. 부가시장이 성장하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 제작·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로 인한 부작용이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지만 극장과는 달리 제작사 수익 책정의 기반이 되는 매출을 업체의 통보 말고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매출 투명성을 위해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과 같은 공공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도 한국 영화산업의 현안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의 조사에서 2011년 영화 스태프 팀장(퍼스트)급의 연 평균 소득은 2378만원, 팀장 아래 직급인 세컨드급은 1716만원으로 집계됐다. 서드급의 연 소득은 1344만원이다.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영화산업 결산’을 보면 전체 제작비의 10%만이 스태프 인건비로 지출됐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근로 시간을 따지면 상당수 스태프가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의 고용 불안정도 심각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 영화산업의 노동환경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스태프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의 79.8%를 차지한다. 작품별 계약이 가장 큰 비중(82.4%)을 차지하는 고용의 특수성 때문이다. 영화노조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영화 스태프는 한 해에 6~7개월 정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지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각각 29.1%, 32.6%에 불과해 일이 없는 동안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이 보고서는 “스태프들의 생계가 곤란한 가장 큰 이유는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짧고 실업기간이 길며, 작품당 받는 임금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흥행성적에 따라 임금을 못 받는 일도 허다하다. 전국영화산업노조가 운영하는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된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임금 체불 건이다. 지난해에는 한 장편 영화 스태프가 임금 체불로 인한 생활고 끝에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시작된 것이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이다. 기존의 제작사와 영화 스태프 사이의 계약은 급여와 수당을 뭉뚱그려 팀장급과 계약을 하는 이른바 ‘통계약’방식이다. 통계약은 촬영·조명 등 각 파트별 팀장인 퍼스트가 자기 명의로 계약해 받은 돈을 팀원들에게 나눠주는 계약이다. 특별한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촬영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약정된 금액만 받기 때문에 촬영기간 연장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생겼다. 영화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4대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스태프 처우 개선 위한 법안은 국회서 낮잠이와 달리 표준근로계약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노조가 체결한 협약에 따른 것으로 스태프 개개인과 개별적으로 맺는 단기 계약이다. 계약서에 근로시간과 임금 계산 기준이 명시돼 있다. 임금은 시간 단위로 지급되고 4대 보험이 적용된다. 시간급대로 지급하면 노동시간이 긴 영화 스태프의 전체적인 인건비는 상승한다. 일주일에 한번 휴식이 제공되는 등 최소한의 권리도 챙기도록 한다. 강행군에 따른 노동력 착취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아직 표준근로계약서의 사용률은 낮다. 사용이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국내의 영세 제작사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올라가는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진위가 올해 초부터 8월까지 개봉하거나 개봉 예정인 영화 108편을 조사한 결과 13.1%만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변화도 감지된다. 투자·배급사의 자세가 바뀌고 있어서다. 지금까지 투자·배급사는 계약 방식의 선택을 제작사에게 맡겼지만 대신 그에 따르는 비용도 모두 제작사가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 투자·배급사에서 표준근로계약을 권장하는 추세다. 특히 CJ는 지난해 8월부터 CJ E&M, CGV 등을 통해 투자·배급하는 모든 영화에서 제작사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도록 했다. CJ 관계자는 “업계 상생 차원에서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영화만 투자·배급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확대에는 스태프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시간제 급여로 계산하다 보니 영화 촬영이 짧아질 경우 오히려 총 액수가 줄어들어 일부 스태프들은 통계약 방식을 고수하길 원하기도 한다. 당장의 세금 부담 때문에 4대 보험가입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 기존의 방식과의 조화도 숙제다.

촬영이나 조명 등 각종 파트는 대부분 수장인 감독을 중심으로 팀을 짜고 있다. 실제 계약 당사자는 제작사와 개별 스태프지만 고용 및 근로감독 권한은 감독에게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팀원들은 표준근로계약이지만 감독은 통계약을 맺은 기이한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올해 1월 제출된 영화 및 비디오물진흥법(영비법) 개정안의 처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표준임금 지침 마련과 표준임금계약서 사용 여부에 따른 혜택·벌칙 등의 내용을 담은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영화노조의 홍태화 국장은 “아직 시행 초기라 표준근로계약서의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앞으로 직군·직무·능력 등에 따른 임금 체계를 보급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면 보편적인 계약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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