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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0시대(2) 외식업계] 외식업, 재계 2·3세의 각축장이 되다

[재계 3.0시대(2) 외식업계] 외식업, 재계 2·3세의 각축장이 되다

재계 2·3세들이 한계에 다다른 기존 사업에 비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외식업에 주목하고 있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진입이 용이한 것도 진출 이유다. 이미 해외에서 검증 받은 브랜드 론칭을 통해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역 앞 타임스퀘어를 찾았다. 경방이 옛 경성방직 공장 자리를 개발해 2009년 개장한 이곳은 서울 서남부권 최대 복합 쇼핑몰이다. 크고 작은 9개동의 건물엔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CGV영화관, 교보문고가 입점해있고, 메리어트호텔과 코오롱 스포렉스 등도 입주해 한 공간에서 쇼핑과 문화를 함께 즐기는 몰링(Malling)족에게 인기다. 타임스퀘어에서 젊은층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트리움 주변 식당가다. 최근 외식트렌드를 반영하는 식음료 매장 70여개가 입점했는데 내로라하는 재계 2·3세들의 외식업 각축장이기도 하다.

우선 스타벅스, 롯데리아,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파스쿠찌, 빕스, 제일제면소 등 대기업이 직영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낯익은 매장이 눈에 띈다. 점심과 저녁 무렵에는 식당마다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개성 있는 식당들도 입점했다. 매장 수가 많지 않아 익숙지는 않지만 식도락가들에겐 잘 알려진 브랜드 매장이다. 지하 1층에 자리한 멕시칸레스토랑 온더보더는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의 차남인 이지용 JRW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같은 층의 사보텐은 범LG가(家)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딸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이 론칭한 돈가스전문점이다. 3층의 스무디킹과 4층의 매드포갈릭은 각각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김효조 경인전자 회장 장남)와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남충우 전 타워호텔 회장의 장녀)가 성공시킨 브랜드다. 삼양그룹의 세븐스프링스와 카페세븐스프링스도 지하 1층에 나란히 자리했다.
 식음료 연관 없어도 속속 진출
3층으로 올라가 지난 연말 오픈한 멕시칸 패스트푸드전문점 타코벨에 들어섰다. 아워홈의 구지은 부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미리 조리된 음식을 데워 내오는 여느 패스트푸드 매장과 달리 주문을 받아 그 자리에서 바로 조리하는 게 특징이다. 종업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 첫 번째의 오픈 키친(부엌을 개방하는 형태) 매장”이라고 말했다. 구 부사장은 5년 안에 국내 50곳에 타코벨 매장을 연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구 부사장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제외된 패스트푸드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2004년 아워홈에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한 그는 외식사업 분야를 맡아 레스토랑 이끼이끼와 싱카이, 사보텐, 고품격 웨딩·컨벤션공간 아모리스 론칭을 주도했다. 그는 올 2월 2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이후 재벌가 자녀들의 외식업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애경그룹, 대상그룹, 삼천리, LG패션, 귀뚜라미 등의 2·3세들이 속속 음식 매장을 오픈했다. 신세계, 롯데, CJ 등 유통 대기업들도 트렌드에 뒤처진 매장은 접고, 고객의 기호를 반영한 새로운 브랜드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대기업 자녀들 치고 레스토랑 대표라고 박힌 명함 안 가진 이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다.

재계 2·3세들이 외식업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건 1990년대 초부터다. 1992년 패밀리레스토랑인 TGI프라이데이를 처음 들여온 이선용 전 아시안스타 대표와 이지용 JRW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금성사 사장, LG신용카드 부회장 등을 지낸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의 아들이다. 이 고문의 부인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자 차녀인 구자혜씨이며, 이 고문은 고(故) 이재준 대림산업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이선용, 이지용 두 형제는 2002년 TGI프라이데이를 롯데에 매각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국내 패밀리레스토랑 시장을 석권했다.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도 국내 외식 시장을 연 주역이다. 1995년 베니건스 브랜드를 국내 들여와 TGI프라이데이에 이어 국내 2위의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베니건스를 바른손에 매각한 이후 현재는 레스토랑 마켓오를 운영하고 있다.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와 김성완 스무디킹 대표도 1세대 대표주자로 꼽힌다. [상자기사 참조]

미식가로 알려진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도 외식업계에서 주목하는 재계 2세다. 창업자 고(故) 김복용 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7년 인도정통레스토랑 달을 시작으로 부첼라, 크리스탈제이드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유업계 라이벌인 홍원식 남양유업 대표와 동생 홍명식 사장도 이에 질세라 각각 이탈리아레스토랑 일치프리아니와 회전초밥전문점 사까나야를 운영하고 있다. [176쪽 기사참조]

외식업 진출을 주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식품·식자재 관련 대기업들이다. 아워홈, 매일유업, 남양유업, 한국야쿠르트, 대상 등이다. 윤호중 한국야쿠르트 전무는 디저트카페 코코브루니를 의욕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도 두 번의 외식업 실패를 발판 삼아 지난 2013년 프랑스요리 전문점 메종드라카테고리를 오픈했다. 간장·된장 등 장류를 생산하는 신송식품의 조승현 대표는 몇 해 전 치킨브랜드 오꼬꼬로 프랜차이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박수남 삼원가든 회장의 아들인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도 일식레스토랑 퓨어에서의 실패를 딛고 투뿔등심, 블루밍가든, 붓처스컷, 꼬또 등의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외식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172쪽 기사 참조]

유화·패션·보일러·리조트 업체 등 식음료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기업 2·3세들의 진출도 눈에 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미국 카페프랜차이즈 닥터로빈을 국내로 들여와 현재 11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다이어트푸드전문점으로, 최진민 귀뚜라미보일러그룹 명예회장의 딸 최문경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도시가스업체 삼천리도 중국요리퓨전레스토랑 차이797 3개점과 브런치전문매장 게스트로펍 2개점을 운영 중이다. 이만득 회장의 딸인 이은선씨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손자인 구본걸 LG패션 회장도 2008년 일본라면점 하꼬야, 이듬해에 시푸드뷔페 하꼬야시푸드를 열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 채동석 부회장은 일본라면집 잇푸도, 카레 전문점 도쿄하야시라이스클럽을 국내에 들여왔다.
 현금 돌고 실패 리스크 작아 선호
업계에서는 “재계 2·3세들은 유학이나 여행 등을 통해 글로벌 외식 브랜드와 트렌드를 꿰고 있으며 마케팅이나 MBA(경영학 석사) 등을 전공한 경우가 많아 기본자질도 훌륭하다. 게다가 부친의 자금력이 탄탄해 외식사업에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잇푸도는 애경그룹 채동석 부회장이 일본 출장 때마다 즐겼던 후쿠오카의 돈코츠식 라면집이며, 코코이찌방야는 일본 카레 마니아인 신동원 농심그룹 부회장이 들여온 식당이다. 미국 유학시절 즐겨 찾던 스타벅스를 국내에 론칭한 바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최근 자신이 즐기는 하우스 맥주 콘셉트의 매장 데블스도어를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에 열기도 했다. 외국 유학 때 접한 아이템을 들고 들어와 ‘트렌드 세터(Trend Setter, 유행 창조자)’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학파가 주도하는 현재의 외식산업은 이전과는 다른 양태를 띈다. 과거에는 외국의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프랜차이즈 형태로 펼치는 ‘창업’이 주를 이뤘다. 이미 검증 받은 브랜드를 통해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호황을 누렸던 패밀리레스토랑이 대표적이다. 소득은 늘어나 여유는 생겼으나 마땅한 가족 외식 장소를 찾지 못했던 중산층을 겨냥한 전략이 큰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최근엔 독립형태의 고급 레스토랑을 직접 ‘경영’하는 사례가 늘었다. 철저한 관리를 위해 매장 수를 많이 늘리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다. 매장의 입지 또한 과거 신사동이나 압구정동 청담동 등 서울 강남지역 일색이었으나 최근 이태원과 홍대, 인사동, 동대문 등으로 다양화됐고, 고급 백화점 등 최고 상권안에 독립된 식당처럼 자리하고 있다.

재계 2·3세들이 외식업에 뛰어드는 것은 기존 사업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웅규 백석대 교수(관광학)는 “경영 1세대에서 2·3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포화상태에 이른 주력사업 분야를 대신할 새로운 사업을 찾게 된다”며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외식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면서 적은 자본으로 진입이 용이한 외식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3년 기준 국내 식품·외식산업 규모는 156조원으로 추산된다.국내총생산(GDP)의 10%를 훌쩍 넘었다. LG패션, 귀뚜라미, 삼천리 등이 외식업에 진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창업세대에 비해 늘어난 자손들에게 물려줄 기업이 한정적인 재벌가 입장에서도 외식사업은 매력적이다.

현금 확보가 수월하다는 것도 외식업 진출의 이유다. 외식업은 제조업, 바이오 등 다른 산업에 비해 투자비용이 적고 전문성이 덜 요구되는 업종이다. 또 외상없이 바로 현금이 들어와 유동성이 좋은 데다 재고 부담도 적은 편이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단시간에 투자 대비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외식업”이라며 “소비자들의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업성에 대한 결과를 파악하기 쉽고, 실패했을 경우에도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유행 짧고 골목상권 시비 어려움
그러나 외식업 진출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대기업 외식 브랜드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신세계는 보노보노, 자니로켓 등 대표 외식 브랜드 매장 몇 곳을 폐점했다. CJ 역시 2013년 씨푸드오션 매장을 모두 폐점한데 이어 지난해 3월엔 피셔스마켓도 문을 닫았다. 모두 해산물전문점으로, 해산물 시장 수익이 높지 않은 데다 일본 방사능 수산물 우려 등으로 실적이 악화된 때문이다. 한때 ‘외식 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통했던 오리온그룹도 패밀리레스토랑 마켓오 매장 수를 줄이고 있다.

외식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급변하는 유행 패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고급화에만 치중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그동안 외식업의 방향은 음식의 유행 패턴에 따라 달라졌다. 1990년대 말에는 퓨전음식, 2000년대 이후엔 각국의 정통요리나 웰빙요리가 유행했다. 최근엔 한식뷔페가 대세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회사 차원에서 성장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부 브랜드를 정리한 것”이라며 “계절밥상이나 비비고 등 잘 되고 있는 브랜드에 힘을 실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너들의 전문성 부족도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급변하는 변수에 대응할 만한 철저한 품질관리와 마케팅 전략이 전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민교 맥세스컨설팅 대표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외식업체 대부분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매장 하나의 인테리어에 수십억원, 마케팅에만 일 년에 몇 억원을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라며 “실상 매출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 채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데만 그치는 곳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골목상권과의 충돌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2013년 5월 발표한 음식업점의 출점 제한 규제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외식업 진출에 발목을 잡았다.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는 “대기업이 다양한 외식업종에 진출하면서 전문 인력을 투입하고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순기능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중소기업의 영역이 아닌 대기업의 덩치에 맞는 혁신적이고 과감한 외식사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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