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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션 - “기부요? 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같아요”

가수 션 - “기부요? 아이와 놀아주는 것과 같아요”

죽을 때까지 하루에 만원씩 모으자고 했다. 10년 동안 그렇게 모아 기부한 돈이 35억원을 넘었다. ‘기부가 일이 되면 오래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면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눔 전도사로 불리는 가수 션의 기부론이다.
션 이사가 1만km 달리기를 응원하는 이들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들고 있다.
‘넌 겁 없던 녀석이었어. 매우 위험했던 모습, 아.’ 이 가사를 보고 멜로디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1967~1987년생일 가능성이 크다. 이 노래는 1997년에 발표된 힙합 가수 지누션의 데뷔곡 ‘가솔린’이다. 션의 ‘칼날 같은 눈빛’을 기억하고 있던 기자는 최근 기부와 봉사로 더 잘 알려진 그를 보며 궁금해졌다. 그는 왜 이렇게 열심히 나누고 기부를 하는 걸까.

2월 10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재단에서 만난 션(43·본명 노승환) YG엔터테인먼트 이사는 “두 가지 모습 다 제가 맞다”면서 “과거에는 가수로서 성향이 더 잘 드러났고 요즘은 온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웃었다. 청바지에 하늘색 후드 집업을 입고 온 그는 인터뷰 내내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가 눈에 띄었다. “아, 1년 동안 1만km를 뛰었어요(무려 하루에 27km다). 1km당 1만원씩 1억원을 기부하려고요.” 션 이사는 스스로 황당한 계획이었다고 하면서도 마라톤, 철인 3종 경기에 20번이나 참가해 1만km를 채운 것을 뿌듯해했다.

1년 동안 어렵게 모은 1억원을 전달하는 디데이가 바로 이날이었다. “그냥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뜻 깊지 않아요? 제 땀과 열정이 담겨 있으니까요.” 매일 아침 열 발도 못 내디딜 만큼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고 한다. 발톱이 빠지고 허리를 다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된다면 뛰어야지요. 몸이 아픈 아이들은 매일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힘들 거예요.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단체다. 션 이사는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이지선씨의 권유로 홍보대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성격 상 시간을 들여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미 루게릭병 환자를 지원하는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 한국컴패션과 홀트아동복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어 거절했어요. 2년 동안이나요.” 하지만 희귀난치병을 앓는 은총이를 만나 마음이 바뀌었다. “은총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들이 1년도 못 살 거라고 했대요.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고요. 그런데 은총이가 10살이 됐어요. 혼자 걸을 수 있고 엄마, 아빠 말도 해요. 이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션 이사는 지난해 4월부터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월까지 1억6000만원을 모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연탄은행과 ‘대한민국 1도 올리기 허그 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3명을 지목해 이들과 포옹하면 이 3명이 24시간 안에 또 다른 3명을 포옹하고, 포옹을 받은 사람은 만원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션 이사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하루 5분이든, 한 시간이든 매일 기부와 관련한 일을 해요. 나눔을 삶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활의 일부분이죠.” 그는 ‘무엇이든 일이 되는 순간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이 안 되게 한다”며 웃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겁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과 같아요.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면 10분도 버티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나한테도 놀이가 되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죠.”

한창 가수로 활동할 때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나와 주변 사람 모두 완벽하지 않은데 그게 되겠어요? 마음을 내려 놓으니 행복한 일이 훨씬 많이 보이고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그가 기부를 시작한 것은 결혼식 날부터다. 션 이사는 2004년 배우 정혜영씨와 결혼했다. “‘결혼하면 기부해야지’하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 순간이 정말! 무척! 행복했어요. 혜영이에게 이 행복을 우리만 갖지 말고 나누자고 했죠.” 그는 “뭔가 잡으려고 하면 손에 쥔 것만 내 것이지만 손을 펴면 뭐든 다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나눔론’을 폈다. 죽을 때까지 하루 만원씩 모아 베풀며 살아보자는 것이 당시 둘의 약속. 션은 “거기까지만 계획된 기부였다”며 웃었다.

션 이사는 지난 10년 동안 1000시간이 넘는 봉사활동을 했다. 아동 난치병 환자 지원기관 등에 수십억원을 기부했다. 광고 모델료와 책을 내고 받은 인세도 기부금으로 썼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열풍이 분 아이스버킷챌린지 운동에 앞장서 7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누구나 궁극적으로 행복을 꿈꾸잖아요. 행복의 정점을 찍으면, 가령 집을 사는 게 소원인 사람이 내 집 마련을 했다면 더 큰 집을 사는 게 새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후자인 거죠.”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나’라고 묻자 그는 “부모님도 남을 돕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지만 신앙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답했다. 션 이사는 잘 알려진 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큰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내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데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또 저도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아봤기 때문에 그 절실함과 고마움을 잘 압니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션 이사는 16살부터 독립해 혼자 살았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서빙, 막노동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춥고 배고팠어요.” 그는 19살에 형이 춤 추는 것을 보고 음악에 빠졌다. 1992년 잠깐 한국에 와 클럽에서 춤을 추다 가수 제의를 받았고 한국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기획사에 들어간 게 아니라서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았어요. 친구가 밥 한 끼를 사주면 그게 어찌나 고맙던지...”

음악판을 떠돌던 션은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를 만나 1997년 지누션으로 데뷔한다. “저도 힙합 하는 사람이라 차,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문득 과거가 떠오를 때면 곧 ‘아니야, 나누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해’라고 깨닫게 됩니다. 억지로 마음을 고쳐먹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런 마음이 들어요.”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4월 션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그 동안 회사의 사회공헌사업에 션 이사가 많은 조언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전에는 광고 출연료와 강연료, 쇼핑몰 수익 등이 주요 수입이었다. 부부가 간간이 방송활동도 했다. “굳이 나누자면 저는 많이 가진 쪽이죠. 하지만 많이 가져서 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션 이사는 그의 기부 이벤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그저 내가 행복해서 선택한 일”이라며 “제 활동을 좀 더 편하게 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션 이사에게 한국의 개인 기부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흠, 한국의 교육은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잖아요. 모두 다 1등을 해야 한다고 하니 쉽게 나누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 걸 주면 내 몫이 적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어 그는 “하지만 주는 내가 훨씬 행복해지는 것이 나눔의 비밀”이라며 “무엇보다 나눔이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셋째 하율이가 유치원에 가서 그랬대요. 정말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연탄배달이라고요. 그 얘기를 들은 하율이 친구들이 부모님에게 얘기해서 함께 하자는 전화가 많이 왔어요. 어려서부터 기부, 봉사에 재미를 느끼면 한국 특유의 정이 나눔의 문화로 자리잡지 않을까요.”

그는 ‘션’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나눔 활동을 알리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의 SNS에는 봉사 지원자를 모집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사실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2012년부터 ‘션과 함께하는 만원의 기적’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하루 만원씩 1년에 365만원을 기부해 어린이 재활병원을 세우는 일이다. “1만 명이 동참하면 365억원이 만들어 집니다. 제가 직접 100명이 넘는 지인에게 전화해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이지선씨를 비롯해 박찬호 선수, 이영표 선수, 개그우먼 이성미씨 등이 참여했다. 양현석 프로듀서,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가수 싸이, 빅뱅, 거미, 타블로·강혜정 부부 등 YG 식구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섰다. “포브스코리아를 구독하는 CEO와 기업이 하루 만원만 모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기업이 365억원을 내는 것보다 여러 기업이 365만원씩 모으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일을 계기로 기업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이틀 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션 이사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국제어린이 양육기구인 한국컴패션도 꼭 알리고 싶어서요. 이 단체는 1952년 한국의 전쟁 고아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은 물론 필리핀, 아이티도 우리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한국은 2003년에 후원국으로 바뀌어 세계의 12만 명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어요.”

션 이사는 “남자들이 지갑을 열었을 때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있으면 멋지지 않겠느냐”고 또 한번 관심을 가져달라 당부했다. 션, 정혜영 부부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 800명을 후원하고 있다.

끝까지 나눔 전도사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그였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가수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얼마전 MBC 예능 <무한도전> 의 ‘토토가’ 편에 출연한 뒤로 ‘가수 션’을 찾는 곳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올해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 글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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