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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례로 본 삼성전기의 이상한 명예퇴직 - 이틀 안에 명퇴 결정하고, 9일 안에 짐싸라

[단독] 사례로 본 삼성전기의 이상한 명예퇴직 - 이틀 안에 명퇴 결정하고, 9일 안에 짐싸라

본지는 연매출 7조~8조원대의 대기업인 삼성전기의 명예퇴직 방식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명예퇴직 관련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대기업의 명예퇴직 매뉴얼을 유추할 수 있는 사례다. 이에 따르면 ‘명예’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명예퇴직 프로그램이었다.
 명예퇴직 매뉴얼① 1차 면담 - 명퇴 언급에 앞서 자녀 이야기부터 꺼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지난해 7월 말 삼성전기 경영진단(내부 컨설팅)을 11년 만에 실시했다. 경영진단 결과 감원 등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컨설팅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2017년까지 1000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기는 지난해부터 40~50대 차·부장급 직원을 중심으로 명예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기도 “경영진단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컨설팅이 핵심이다”라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삼성전기 임직원수가) 4만명이라 좀 무거운 편이어서 구조조정은 상시 실시 중”이라고 언급했다.

문제는 감원 방식 중 하나인 명예퇴직이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32년간 삼성에서만 근무한 A씨(55세)는 지난해 11월 17일 평소와 다름없이 생산현장으로 출근했다. 오전 9시경 갑자기 사측으로부터 미팅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회의실에서 삼성전기 인사팀 관계자가 꺼낸 첫 마디는 A씨 자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A씨에게 다짜고짜 ‘자녀가 삼성그룹 계열사(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게 맞느냐’라는 말을 꺼냈다. 상황에 따라 명예퇴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자칫 A씨 자녀에게 불이익이 갈수 있다고 오해받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 밖에도 삼성전기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면담 초반부에 인사팀이 먼저 ‘명예퇴직’이란 용어를 입밖에 꺼내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70분간 진행된 면담 후반부로 가서야 삼성전기는 부연 설명을 통해 A씨가 명예퇴직 대상자임을 알 수 있게 유도했다. 이어 그 자리에서 명예퇴직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종용했다.

이런 삼성전기의 명예퇴직 방식은 ‘자발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명예퇴직은 정년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퇴직 의사를 표명하면, 위로금, 자녀 학자금 등 금전적 보상을 지급해 근로계약을 종료하는 제도다. 하지만 당시 삼성전기 사내에는 명예퇴직 신청 공지가 없었다. 또한 A씨의 경우 1차 면담 이전 사측으로부터 서면통지나 예고 등 직·간접적으로 명예퇴직 내용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가 당사자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명예퇴직 대상자를 선정한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명예퇴직 매뉴얼② 2차 면담 - ‘위로금 이미 결정됐으며, 더 줄 수 없다’ 못 박아
지난해 3월 삼성전기는 노사협의회를 열어 임금피크제 도입 계획을 확정했다. 정년을 만 60세로 늘리되, 만 55세가 지나면 매년 전년 연봉을 기준으로 임금을 10%씩 깎는 방식이다. A씨도 당연히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60세까지 ‘삼성맨’으로 근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년 연장 도입 시점은 2016년부터인데다, 그는 당시(54세)에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55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A씨가 1차 면담에서 하루아침에 명예퇴직 여부를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2차 면담까지 이틀의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지난해 11월 19일, 역시 아침 일찍 사측은 A씨에게 전화를 했다. 2차 면담은 1차 면담보다 더 직설적이다. A씨가 앉자마자 사측은 “(명예퇴직 여부를) 결정했느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위로금은 2억2000만원을 주는 것으로 이미 결정했으며 더는 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본인의 자발적 의사와는 무관하게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어려울 정도로 명예퇴직이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추정된다. A씨도 “(이 말을 듣자) 더 이상 의견을 조율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기술한다.

이후 일정은 속전속결이다. 2차 면담 진행 중에 인사 담당자는 퇴직 관련 서류를 내밀고 그 자리에서 퇴직원 작성을 요청한다. 나아가 삼성전기는 A씨에게 ‘11월 28일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회사 비품과 사원증 반납도 지난해 12월 1일까지였다. 서류상 퇴직일은 지난해 12월 10일이지만, 12월 1일 이후는 구상휴가로 처리돼 출근이 불가능하다. 회사를 정리하는 데 단 9일을 제시한 것이다. A씨는 “2015년 1월 10일까지 업무를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삼성전기는 이를 거절했다.
 명예퇴직 매뉴얼③ (명예퇴직 결정 후) 출근 기간 9일 - 자료 유출 조사 … 적발 때 명예퇴직금 지급 거절
퇴직원 작성 이후 출근이 가능한 9일 동안 명예퇴직 예정자는 문서발송 등 처신을 주의해야 한다. 사측에서 자료 유출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외비 자료 등을 외부로 유출할 경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A씨는 마지막 출근일 이틀 전인 지난해 11월 26일, 일부 자료를 본인의 삼성그룹 e메일 계정에서 개인 e메일 계정으로 전송했다. 삼성전기 동료 부서원들의 연락처 리스트와 개인PC에 보유하던 자료 일부다.

A씨는 ‘미혼인 자녀가 향후 결혼할 때를 대비해 부서원에게 경사를 알리고자 연락처를 전송했으며, 퇴직 후 후임자가 궁금한 사안을 인계할 때를 대비해 일부 자료를 개인 메일로 전송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전기는 11월 28일 A씨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했다. 불미스러운 사유로 퇴직하면 일반퇴직으로 처리돼 명예퇴직금 또한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삼성전기 직원 3명과 함께 당사자 집에 방문해 사측의 요구대로 자료 삭제, 조사, 확인 과정에 응했다. 모든 자료를 회수하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만, 형사고발을 하지 않더라도 명예퇴직이 아닌 일반퇴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삼성전기 입장이었다. 일반퇴직을 하면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삼성전기가 명예퇴직자에게 일반퇴직을 요구하는 행위는 법률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명예퇴직은 합의에 의해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 일방이 임의로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대법원 2003.06.27. 선고 2003다1632)”고 설명한다. 명예퇴직 합의 과정을 대법원이 ‘청약과 승낙에 의한 합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사측이 사후에 일방적으로 합의를 철회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A씨 사례의 경우 합의로 소송이 취하됐다. 소장이 접수되자 삼성전기가 올해 1월 30일 A씨에게 명예퇴직금을 지급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기는 “A씨의 경우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명예퇴직금 못 준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위로금을 주는 걸로 좋게 끝나서 소송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소송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소 취하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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