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소신(小辛)기업 | 에스피지 여영길 대표] 매출의 43%는 해외에서 올려
[코스닥 소신(小辛)기업 | 에스피지 여영길 대표] 매출의 43%는 해외에서 올려
여영길(52) 에스피지 대표는 1년 중 절반을 중국에서 보낸다. 중국 대표 가전 업체인 하이얼·하이신 등에서 에스피지 기어드모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서다. 지난 2012년에는 중국 쑤저우에 연간 550만대의 기어드모터를 만들 수 있는 설비도 갖췄다. 여 대표는 “중국에서는 주로 냉장고와 제습기, 공기청정기 등의 기어드모터를 납품한다”며 “중국은 대기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특히 공기청정기 모터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피지는 소형 정밀 제어용 기어드모터와 감속기 부품을 생산한다. 기어드모터란 일반 소형 모터에 감속 기어를 부착해 무거운 것을 운반하거나 위·아래로 이동, 속도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전동기의 회전을 줄이는 대신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에스피지는 기어드모터 시장 국내 1위 기업이다. 여영길 대표는 “모터는 인체의 근육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냉장고와 제습기 등과 같은 가전용부터 의료기기나 공장자동화기기 등 산업용까지 모든 기계에는 기어드모터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에스피지가 제조·납품하는 주력 기어드모터는 컨베이어와 포장할 때 들어올리는 AC모터·냉장고용얼음분쇄기나 커피자판기에 사용되는 셰디드폴(shaded pole)모터·공기청정기와 에어컨 실내외기에 들어가는 BLDC모터 등이다. 현재 5000여 종의 기어드모터를 제조하고 있다. 제품 생산은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에스피지 본사와 중국 쑤저우 두 곳에서 하고 있다. 에스피지의 지난해 940만대(중국 포함)의 기어드모터를 생산했다. 최근 3년간 생산량은 연평균 8.25% 늘었다.
1991년 출범한 에스피지는 팬모터를 생산하는 성신모터 관계회사로 시작했다. 동력모터 회사인 성신모터 이해종 회장의 아들인 이준호 대표(현 공동대표)와 당시 성신모터 연구소에 근무했던 여 대표가 힘을 모아 에스피지를 설립했다. 여 대표는 “우리의 기술력이라면 일본에 못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에서 기어드모터는 대부분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스피지는 설립 후 기어드모터 개발에 몰두했다. 그는 “일본 기어드모터를 분석하기 위해 해체했다 풀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며 “야전침대를 연구소에 두고 10여명의 연구원이 모터기술 개발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4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기어드모터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기어드모터 개발만 하면 성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 제품보다 좋은 성능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시해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신생 업체의 기술력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여 대표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직접 발로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노력 끝에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쯤, 이번엔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는 부도가 났고 크고 작은 기업도 줄줄이 무너졌다. 신생 기업인 에스피지도 자칫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였다. 외환위기 이후 엔화가 급등하면서 일본에서 수입해서 쓰던 제품 가격도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여 대표는 “외환위기가 터지고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은 바로 커피자판기 회사였다”며 “1990년대에는 길거리에서 뽑아먹는 커피자판기가 인기였는데 당시 커피 자판기에서 쓰던 셰일드폴 기어드모터는 모두 일본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셰일드폴 기어드모터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버튼을 누르면 커피 컵과 커피 재료를 아래로 떨어뜨려 주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커피자판기를 시작으로 의료기·사무기기 등에 쓰이는 AC기어드모터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BLDC 기어드모터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0년 초부터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문형냉장고와 에어컨 실내외기 등에 들어가는 BLDC모터를 납품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기업이 해외 사업을 중단했지만 에스피지는 오히려 해외로 뛰쳐나갔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뉴디자인엔지니어링 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일이다. “한국의 작은 기업이 기어드모터를 만든다는 소식에 해외 바이어들이 반신반의하며 찾아 왔죠. 하지만 우리 제품의 기술력을 확인하고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 후로 글로벌 가전 제조 업체인 보쉬·지멘스·일레트로닉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어요. 현재도 이들 기업에 냉장고·에어컨·높낮이책상에 들어가는 기어드모터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에스피지의 기술력은 오래 전 입증됐다. 미국 수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UL 인증(미국 안전규격)을 자체 발급할 정도다. 2006년 에스피지는 아시아 모터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UL 인증을 발급해 줄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여 대표는 “국내에서도 UL인증을 받은 기업은 손가락에 꼽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스피지는 송도에 신뢰성 시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 출하되는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곳이다. 그는 “설립 초기부터 운영해오고 있다”며 “5년 전 송도에 시험실을 만들어 매년 10억원씩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국내에서는 일본 기어드모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AC기어드모터시장 점유율은 76%에 달한다. 또 해외 판매망이 넓어지면서 현재 25개국에 63개 대리점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회사 매출 중 해외 비중은 43%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10억원 내외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1350억원을 넘었다. 시장에서는 에스피지의 AC·BLDC모터 사업이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나대투증권은 올해 에스피지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691억원, 143억원으로 전년보다 46.2%, 143%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인혁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형 가전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고, 하반기 반도체 장비 수주가 늘어 산업용 BLDC모터 매출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초 7000원대까지 올랐던 주가는 최근 그리스 사태 등으로 5000원대로 떨어졌다. 여 대표는 “제조업체인 만큼 대내외적인 악재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하반기부터 다시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스피지는 향후 고부가가치 사업과 고효율 스마트 시스템 제품을 확대해 2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모터와 감속기·제어기 제작 기술을 로봇과 폐쇄회로(CC)TV 등과 융합한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CCTV 사업도 시작했다. 여 대표는 “기존 제품은 물론 로봇과 CCTV 등에 들어가는 기어드모터의 해외 판매망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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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피지는 소형 정밀 제어용 기어드모터와 감속기 부품을 생산한다. 기어드모터란 일반 소형 모터에 감속 기어를 부착해 무거운 것을 운반하거나 위·아래로 이동, 속도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품이다. 전동기의 회전을 줄이는 대신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에스피지는 기어드모터 시장 국내 1위 기업이다. 여영길 대표는 “모터는 인체의 근육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냉장고와 제습기 등과 같은 가전용부터 의료기기나 공장자동화기기 등 산업용까지 모든 기계에는 기어드모터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1994년 기어드모터 국산화 성공
1991년 출범한 에스피지는 팬모터를 생산하는 성신모터 관계회사로 시작했다. 동력모터 회사인 성신모터 이해종 회장의 아들인 이준호 대표(현 공동대표)와 당시 성신모터 연구소에 근무했던 여 대표가 힘을 모아 에스피지를 설립했다. 여 대표는 “우리의 기술력이라면 일본에 못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에서 기어드모터는 대부분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스피지는 설립 후 기어드모터 개발에 몰두했다. 그는 “일본 기어드모터를 분석하기 위해 해체했다 풀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며 “야전침대를 연구소에 두고 10여명의 연구원이 모터기술 개발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4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기어드모터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기어드모터 개발만 하면 성공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 제품보다 좋은 성능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시해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신생 업체의 기술력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여 대표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직접 발로 찾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노력 끝에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쯤, 이번엔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는 부도가 났고 크고 작은 기업도 줄줄이 무너졌다. 신생 기업인 에스피지도 자칫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였다. 외환위기 이후 엔화가 급등하면서 일본에서 수입해서 쓰던 제품 가격도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여 대표는 “외환위기가 터지고 가장 먼저 연락 온 곳은 바로 커피자판기 회사였다”며 “1990년대에는 길거리에서 뽑아먹는 커피자판기가 인기였는데 당시 커피 자판기에서 쓰던 셰일드폴 기어드모터는 모두 일본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셰일드폴 기어드모터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버튼을 누르면 커피 컵과 커피 재료를 아래로 떨어뜨려 주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커피자판기를 시작으로 의료기·사무기기 등에 쓰이는 AC기어드모터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BLDC 기어드모터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0년 초부터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문형냉장고와 에어컨 실내외기 등에 들어가는 BLDC모터를 납품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기업이 해외 사업을 중단했지만 에스피지는 오히려 해외로 뛰쳐나갔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뉴디자인엔지니어링 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일이다. “한국의 작은 기업이 기어드모터를 만든다는 소식에 해외 바이어들이 반신반의하며 찾아 왔죠. 하지만 우리 제품의 기술력을 확인하고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 후로 글로벌 가전 제조 업체인 보쉬·지멘스·일레트로닉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어요. 현재도 이들 기업에 냉장고·에어컨·높낮이책상에 들어가는 기어드모터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에스피지의 기술력은 오래 전 입증됐다. 미국 수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UL 인증(미국 안전규격)을 자체 발급할 정도다. 2006년 에스피지는 아시아 모터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UL 인증을 발급해 줄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여 대표는 “국내에서도 UL인증을 받은 기업은 손가락에 꼽는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스피지는 송도에 신뢰성 시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 출하되는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곳이다. 그는 “설립 초기부터 운영해오고 있다”며 “5년 전 송도에 시험실을 만들어 매년 10억원씩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국내에서는 일본 기어드모터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AC기어드모터시장 점유율은 76%에 달한다. 또 해외 판매망이 넓어지면서 현재 25개국에 63개 대리점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회사 매출 중 해외 비중은 43%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10억원 내외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1350억원을 넘었다.
로봇과 CCTV 기어드모터 공급
에스피지는 향후 고부가가치 사업과 고효율 스마트 시스템 제품을 확대해 2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모터와 감속기·제어기 제작 기술을 로봇과 폐쇄회로(CC)TV 등과 융합한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CCTV 사업도 시작했다. 여 대표는 “기존 제품은 물론 로봇과 CCTV 등에 들어가는 기어드모터의 해외 판매망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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