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우리가 빌려 쓰는 거야
지구는 우리가 빌려 쓰는 거야
2013년 8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수압파쇄법(fracking, 셰일 층에 함유된 원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하게 되면 매달 청구되는 주민들의 전력요금이 크게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북서 잉글랜드 지방 주민에게 수압파쇄법이 유리하다고 설득하려는 시도였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쇼핑이라고 미국인에게 말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캐머런 총리는 영국 국민이 수동적인 소비자라고 여긴다. 당시 수압파쇄법은 지진을 유발한다는 우려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캐머런 총리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의도는 간단했다. 전력요금을 충분히 절약해 더 사소한 소비재를 구입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압파쇄법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버풀에 모인 성공회 주교들은 전력요금을 몇 푼 아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진짜 문제는 “지구의 보전을 수탁 받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견해차는 현재 진행 중인 문화적 지각변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컨슈머리즘(consumerism, 대량소비주의)에 기초한 사회에서 수탁보전책임과 공유를 포용하는 사회로의 변천이다. 수탁보전책임(stewardship)은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을 대신해 이 행성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하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 경제와 개인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 같은 전환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세계가 아직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컨슈머리즘이 거기에 깊게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수탁보전책임 문화도 확산돼 간다.
에너지원은 제각각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석탄) 또는 그 에너지가 조장하는 태도와 믿음(석유와 가스)에서 기인한다. 석탄은 생산의 산업적 규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줬다. 석유와 가스는 초창기 소비문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신재생 에너지는 강력한 수탁보전책임의 메시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만성적인 우려를 수반한다. 신재생 에너지가 점차 화석연료를 대체함에 따라 수탁보전책임이 갈수록 커지고 컨슈머리즘은 더욱 퇴조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이른바 ‘에너지 논쟁’은 실제로 문화의 교체를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난해 9월 뉴욕의 록펠러 형제 펀드는 화석연료 투자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석유업체 스탠더드 오일은 사업수익 일부를 돌려 세계 각지의 수탁보전 책임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같은 달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억만장자 데이비드 카치 형제가 후원한 신설 플라자 개장식에서 일단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벽에 ‘카치=기후 대혼란’이라는 글자를 비춘 혐의였다. 카치 형제 대(對) 록펠러 형제, 거물들의 싸움이다.
이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예를 보자. 이미 그 우아한 건축의 초석 위까지 물이 차올랐다. 가장 낮은 수로의 다공질 벽돌 사이 회반죽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습기가 올라오면서 건물을 지탱하는 연결봉이 녹슬고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 현관의 13세기 모자이크에 벌써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베네치아사업단(Consorzio Venezia Nuova)이 폭풍우를 막는 홍수 차단막을 세우고 있지만 극빙관(polar ice cap) 해빙에 따른 수위 상승은 막지 못한다.
그러나 베네치아 항만청은 초대형 유람선에 정박 허가를 계속 내준다(올해 예약 520건). 유람선들은 갈수록 파도를 더 멀리 밀어 보내 주데카 운하를 따라 늘어선 웅장한 구조물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시 당국이 조달하는 유지보수 예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산마르코 광장이나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의 광고 플래카드를 장기 임대해 경관을 망가뜨리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다. 이탈리아, EU 또는 유엔의 어떤 수탁보전책임 프로그램이 과연 초대형 유람선과 유명 브랜드의 ‘소비’로부터 베네치아를 구할 수 있을까?
부상하는 수탁보전책임 문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목격된다. 우리 중 다수는 재활용 폐기물과 일반 쓰레기를 분류하고, 공유경제를 통해 교통이나 숙박 수요를 충당하고, 화학물질 없이 재배된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는 습관을 익혔다. 초창기에는 우리의 떳떳하지 못한 쾌락을 포기해야 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종종 부각됐다. 하지만 지금은 ‘녹색’ 생활양식의 실재적인 이점이 뚜렷해지고 있다. 컨슈머리즘 가족 모델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상품을 각각 독립적으로 쇼핑하도록 한다. 수탁보전책임 모델에선 가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협력해 에너지를 절약한다. 앞으로 성공 기준은 재산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전하는 역할을 각자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슈머리즘 쇠퇴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폰 신모델을 먼저 구입하려 매장 앞에서 기꺼이 밤샘하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면? 초대형 주택과 휘발유를 많이 먹는 자동차 시장이 붕괴된다면? 패션업계까지 위태로워질까? 과소비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까?
새로 부상하는 수탁보전책임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풍력발전을 하는 덴마크와 지열발전을 실시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분명한 모델이 발견될지 모른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간다. 더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카풀을 조직해 하이브리드 카(휘발유 + 전기)를 이용한다. 전기 충전이 가능한 곳에 주차시킨다. 자동차와 주택 모두 쌍방향 전력망에 연결된다. 따라서 그들은 전력의 소비자뿐 아니라 공급자도 될 수 있다. 공유경제는 수탁보전책임의 본질적 요소다. 소비가 더는 핵심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소유는 부차적 문제로 밀려난다. 그보다 활용 가능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소유 자원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유하는 데 놀랄 만큼 적극적이다. 따라서 요즘 세계 각지에 있는 주택과 아파트의 수많은 빈방이 에어비앤비나 다른 공유 서비스를 통해 임대 목록에 오른다. 그리고 우버(택시 호출 앱)가 합법인 곳에서는 수많은 택시 기사가 기꺼이 그 서비스에 합류해 택시 회사를 당혹스럽게 한다. 낭비는 수탁보전책임과 상극이다. 미국의 한 조사 결과, 미국 보통 가정의 냉장고에 보관된 음식의 무려 40%가 권장소비기한(best-before date)이 지난 뒤 버려진다. 미국인은 중앙냉방을 선호한다(다른 나라에선 개별 냉방이 보편화됐다). 따라서 더운 날씨에는 수많은 주택과 아파트 건물 구석구석까지 사람이 있든 없든 밤낮으로 에어컨을 켜둔다. 수탁보전책임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우리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 같은 무절제한 에너지 소비에 이의를 제기하고, 지속 가능성을 존중하고, 우리가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 또는 집을 비울 때 에어컨을 꺼야 한다. 낭비의 대안은 지속 가능성이다. 녹색 건축과 도시 계획이 지속 가능성과 수탁보전책임을 가장 활발하게 발전시켜왔다. 이는 도심 인구밀도를 높이고 수직 성장을 촉진한다. 휘발유 먹는 자동차에 편승한 교외 주택지구의 확산을 중단시켰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찍이 200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렌조 피아노 설계팀이 샌프란시스코에 8100㎡의 녹색지붕(living roof)을 조성했다. 가벼운 경사를 이루는 작은 언덕과 해치 형태의 채광창을 갖춘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건물이다. 한편 태평양 반대편에선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왕슈가 벽돌과 타일 100만 개를 재사용해 닝보 역사박물관을 완성했다. 5년 뒤 피아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킴벨 미술관의 증축을 맡았다. 조각된 단열 잔디 지붕, 140m 깊이의 지열 우물 36개, 태양광 패널이 부착된 알루미늄 루버(채광 목적의 미늘판)를 추가했다. 거기서 생산된 전력으로 갤러리의 야간 조명을 밝힌다. 피아노 설계팀 건축물의 단위 면적 당 전력 사용량은 1970년대 초기 건물의 절반에 불과하다. 초창기 건축물도 유명 건축가 로이 칸이 설계했다.
예술가들은 종종 대중의 인식변화를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 이들의 작품은 처음에는 비웃음을 샀지만 수탁보전책임 미술의 밑거름이 됐을지도 모른다. 몇몇 초창기의 시도가 중요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진행 중인 변화의 속도를 말해준다. 일찍이 1960년대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잡동사니를 이용한 ‘가난한 미술’)는 이 같은 새로운 문화를 내다보고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1970년 미국인 조각가 로버트 스밋슨은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를 설계했다.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 솔트 호수에 이르는 460m 길이의 검정 현무암 보도다. 지금은 일반용어가 된 대지미술(Earth Art, 지형이나 자연경관을 이용한 공간예술)의 효시가 됐다. 2003~2004년 덴마크 출신 아이슬란드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현재까지 이 장르의 최고 인기작으로 꼽히는 ‘날씨 프로젝트(Weather Project)’를 제작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에 짙게 깔린 황금빛 안개가 소용돌이친다(터빈 홀은 석유 화력 발전소가 있던 곳이다). 그 속에서 태양 같은 거대한 원반이 반짝인다. 젊은 미술 애호가들이 그 널따란 공간의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햇빛과 바람을 만끽한다.
신재생 에너지에 따르는 신흥 문화에 똑같이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신체의 수탁보전책임이다. 지구의 수탁보전책임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분담할 수 있는 장기적인 목표다. 하지만 내 몸을 돌보는 일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관리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피트니스 업계는 이 같은 인식의 주요 수혜자다. 50년 전에는 운동선수만 체육관을 찾았다. 지금은 누구나 헬스클럽에 가서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몸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도 이 같은 강박증의 또 다른 결과다. 완전 채식주의자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한편 음식점들은 지역산 재료를 쓴다고 광고한다.
섹스에 대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문화적이다. 문화적 변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가능성이 큰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신념과 가치에 속한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히피 문화의 극치)’에 기반한 소비자 문화는 섹스를 또 하나의 체험으로 여겼다. 가능한 한 많이 하되 임신하지 않고 즐겨야 하는 체험 말이다. 반면 새로운 에너지원에 수반하는 섹스관은 분명 섹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연한 만남은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회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공유할 때마다 지속적인 관계에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신체 상품화에 페미니스트만 갈수록 거칠게 저항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육체의 수탁보전책임자로 여기는 부모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은밀한 부위(private parts)’의 페티시즘을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다.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은 세계 각지의 공공장소에서 단체로 벌거벗은 인간의 파노라마 사진 촬영에 참여할 자원자 수십 만 명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불러모은다. 그의 사진이 지금은 이색적일지 모르지만 아르테 포베라처럼 앞으로 다가올 문화의 예고로 인식될 수도 있다.
녹색당은 명백한 수탁보전책임 정당이다. 그러나 대다수 진보파 대안 정당들이 툭하면 그들의 특징적 정강들을 도용한다. 보수파는 유권자에게 녹색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석탄 또는 석유 대기업과 얼마나 한통속이었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 입장에선 신재생 산업에서 수익성 높은 부업을 개발하는 한편 ‘에너지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에 여념 없는 업체가 많다. 지난해 10월 미국 댈라스시의 에너지 서비스 국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의 전력 중 텍사스 북서부의 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8%를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몇몇 석유대국은 우리를 더 놀라게 할 수 있다. 지난 5월 산유국 석유장관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인 자리에서 사우디 석유장관이 새로운 발표를 했다. 석유에 의존하는 체제를 21세기 중반까지 풍력과 태양광으로 대체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사우디에는 두 에너지가 모두 풍부하다. 새로 부상하는 문화는 이미 정치적 변수가 됐다. 캐나다 앨버타주는 악명 높은 타르 샌드의 본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더럽다는 평을 들어온 타르 샌드 매장자원을 채굴하고 있다. 올봄까지 44년 동안 이 지방의 보수파 정부는 석유·가스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 최근에는 워싱턴 로비스트들을 고용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다. 미국 중부를 가로질러 루이지애나주의 인건비 낮은 정유시설로 타르 샌드를 실어 나르는 키스톤 파이프라인 건설에 동의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 지방의 유권자 다수가 직간접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들이 좌파 정부를 선출하리라고는 특히 석유회사를 포함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 밖의 일이 올봄 현실화됐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4석에 불과하던 앨버타주 신민주당(NDP)이 54석으로 급격히 세를 늘려 다수파 정부를 구성했다.
보수파의 오만과 자만에 대한 유권자의 질책이라고 평론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여러 대안 정당을 외면하고 ‘일자리와 에너지’를 표방한 NDP의 공약을 지지했다. 그들은 두 가지 현안 모두 환경 책임에 기반한 접근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레이첼 노틀리 신임 주지사는 취임 즉시 성명을 냈다. 캐나다 횡단 파이프라인은 계속 지지하지만 키스톤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지는 철회하며 워싱턴 로비스트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시사했다.
수탁보전책임이 대세가 되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에너지와 문화 간의 관계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는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다.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그 행동에 관한 신념과 사고까지 아우른다. 물리적·물질적·사회적·정치적 또는 심미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 마을·지방·국가 문화가 있을 뿐 아니라 특정 남녀·연령 또는 직업에 국한된 문화도 있다. 모두가 여러 문화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전 생애뿐 아니라 종종 단 하루 동안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는 그 원동력을 이루는 에너지 공급원에 의존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이외의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생물종은 인간뿐이다. 그리고 각 에너지원은 저마다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수반한다.
그 특정한 가치에서 우선시하는 태도와 신념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어도 분명 수용해야 한다. 이들 근본 가치는 그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모든 문화가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은 문화 변혁의 강력한 동력이다.
석탄이 채굴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농업 사회를 대체했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영국이 변화를 선도했다. 지하의 풍부한 석탄을 캐내고, 증기 엔진을 발명해 완벽하게 만들었다. 증기 엔진은 석탄을 대단히 효과적인 대량생산 수단으로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생산공정이었다. 결과적으로 토지 없이도 부자가 되는 길이 열렸다. 이때부터 생산 공정과의 관계로 사람의 성격이 규정됐다. 석탄에 수반되는 생산 문화는 교육 받고 높은 직업윤리를 가진 근면 성실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본질적으로 근로에 가치를 두는 노동력이 요구됐다. 그로 인해 공교육이 실시되면서 하나의 기대가 형성됐다. 청소년이 의무교육을 마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섹스를 미루는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대였다. 그뿐 아니라 혼전 또는 혼외 관계와 끔찍한 동성 관계도 금지됐다.
석유와 가스가 모두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석탄 기반 생산문화를 연장시켰다고 많은 사람이 가정한다. 그러나 석유와 가스는 탄광이나 증기기관 공장처럼 거기에 의존하는 근면 성실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이 제공하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비교적 소규모의 근로자들이 유정을 시추해 연료를 퍼올릴 수 있었다. 에너지 기업과 정부가 파이프라인을 지킬 수만 있다면 가치의 초점이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한다. 석탄재벌들은 끊임없이 파업을 우려했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는 석유나 가스 근로자를 논의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에 따른 배럴 당 가격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의 수탁보전책임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소비문화를 두고 처음에는 논란이 뜨거웠다. 1960년대 많은 나라에서 석유와 가스가 석탄을 대신해 주요 에너지 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너지 변천에 따라 소비문화도 바뀌었다. 반드시 지지 받지는 못했지만 분명 수용됐다. 특히 우리 모두가 보유하던 플라스틱(석유 제품) 신용카드(미국에서 주유소 고객 전용카드로 출발했다)가 그런 추세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람들을 더는 생산공정과의 관계로 규정짓지 않게 됐다. 이제 시민의식의 정의에 쇼핑을 통해 경제를 떠받쳐야 할 책임이라는 의미도 추가됐다. 지난 50년 동안 소비문화의 가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경제학자와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 대대수가 그렇게 여겼다. 석탄은 교육을 보편화시켰고 석유와 가스는 신용대출의 대중화를 불러왔다.
석탄과 산업혁명이 요구했던 자기절제가 느슨해졌다. 그것은 반문화에서 극치를 이루며 단순히 상품뿐 아니라 소비 가능한 체험으로 훨씬 더 깊숙이 퍼져나갔다. 섹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체험에 불과했다. 화학·의학 연구 덕분에 이 특정한 경험을 출산 위험 없이 누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사랑의 여름’과 ‘성혁명’이 탄생했다.
과거엔 산업적 규율에서 벗어나는 주요 수단이 음주였다. 하지만 새로 도래하는 소비문화에선 단순히 소비자 역할을 하는 데 따르는 따분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불법 약품이 주류 반열에 올랐다. 과거엔 보헤미안 음악가나 작가들이 탐닉하던 재료였다. 반문화 운동의 대부인 티머시 리어리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마약에 취하고 일상에서 일탈하라고 촉구했다. 중장년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로 소비가 단순히 상품 구입뿐 아니라 체험하는 문제가 됐다. 1970년에 접어들면서 ‘체험 경제’가 자리 잡았다. 앤디 워홀은 소비문화의 천재였다. 1960년대 초에 이미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초상화 주제(마릴린 먼로, 재키 오나시스, 리즈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의 스크린 이미지를 탁월하게 이용했다. 이는 브랜딩이 개성을 정의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캠벨 수프 캔이나 브릴로 세제 박스만큼이나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들 이미지에 사용한 색채 변화는 반복된 각 초상화가 지닌 성격을 연상케 했다. 마릴린 먼로는 때로는 핑크나 자주 색으로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종종 같은 캔버스 위의 다른 버전에선 기이하게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다. 그 이유는 뻔하다. 워홀은 앞으로는 누구나 15분 간 유명해질 기회를 갖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소비가 지배하는 문화에선 유튜브 같은 서비스의 출현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신재생 에너지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까지 지난 한 세기 동안 석유와 가스가 맡아왔던, 또는 그 전에 석탄이 성취했던 역할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신재생 에너지를 구현하는 데는 기술·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제 수압파쇄법으로 석유와 가스 의존의 기대수명이 최소한 수십 년 더 연장됐다. 대형 에너지 업체와 그들을 보호해주는 정부는 이 같은 도전과제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약화됐다.
처음에는 독일이 앞장섰다. 일찍이 2000년 독일 의회가 쌍방향 전력망을 구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으로 전력 시스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물주에게 대가를 지불했다. 초기의 장려책 덕분에 독일 제조업체들이 처음에는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을 선도했다. 그러나 기술적·재정적 난제가 쌓이면서 중국이 태양광 패널의 생산과 수출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몇몇 극단적인 경우 독일 업계는 석탄으로 복귀했다. 에너지 전환에는 수십 년 때로는 수 세기가 걸린다. 그리고 곧게 뻗은 탄탄대로가 앞에 놓여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복잡한 문제는 원자력 에너지의 대안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불가피하게 근심의 문화와 연관돼 있다. 어쨌든 불 이후 대량파괴의 매개체로 우리 앞에 나타난 최초의 에너지원이니 말이다.
중국은 앞으로 놀라운 진화 과정을 보일 것으로 여겨지는 흥미로운 사례다. 공산당 이념은 전력화(electrification)를 수반한 변혁의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오늘날 중국은 변함없이 석탄(호주나 몽골 산이 태반이다)에 의존한다. 따라서 여전히 강력한 근로윤리를 가진 규율 잡힌 근로계급을 장려한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러시아로부터 향후 30년 동안 천연가스를 공급 받는 수십 억 루블의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중국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수많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서부 평원지대를 방대한 풍력발전 단지로 덮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에너지 원을 수반하는 각 문화(생산·변모·소비·수탁보전책임)가 충돌한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대도시 주민에게 막대한 가처분 소득을 안겨줬다. 그리고 수많은 농촌 주민을 끌어들였다. 그들은 적은 보수로도 일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극심한 가난을 벗어나 비교적 먹고살 만한 수준으로 올라선 사람이 대단히 많아졌다. 따라서 상하이·베이징 또는 기타 사람이 몰리는 도시의 상점과 거리에서 소비문화가 팽배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탁보전책임 문화가 도래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다. 영국 정부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가 장기적인 목표라고 발표했다. 모든 제품이 재활용되고, 폐기물이 모두 회수되고, 제조공정의 실제 에너지 비용이 모두 설명되는 경제다. 최근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환경 목표를 추구하는 협정을 논의했다. 양국이 그런 노력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지구 수탁보전책임 문화의 밝은 앞날을 가리키는 유망한 도전과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중국이 가면 세계도 간다. 우리가 화석 에너지와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해 어떤 에너지원이든 계속 사용하는 한, 각 에너지원과 관련된 문화적 가치는 그 에너지원에 대한 우리의 의존과 비례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비문화는 대다수 개도국 세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의 생활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소비문화가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 수압파쇄법 덕분에 석유와 가스는 적어도 21세기 중반까지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존재하며 세계 각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압력이 갈수록 거세진다. 현재 자전거를 이용하는 수많은 인도인이 자동차를 굴리기 시작한다면, 남반구 국가들이 냉방장치를 갖춘 싱가포르의 사례를 따르기 시작한다면 지구의 장기적인 존속을 낙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국민의 생활을 개선할 기회를 누가 막겠는가?
한 가지 결론은 피할 수 없다.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그런 세계적인 발전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수탁보전책임 문화를 촉진하고 소비문화를 차츰 줄여나가 그것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몇 십년 동안 살았던 아주 특이한 사람들의 별난 습관쯤으로 여겨지게 만들어야 한다. 멋진 신세계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속가능한 신세계여야 한다.
- BARRY LORD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 필자 배리 로드는 ‘기술과 에너지, 문화의 변천(Art & Energy: How Culture Changes)’의 저자이며 문화유산 컨설팅업체 ‘로드문화자원’의 설립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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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견해차는 현재 진행 중인 문화적 지각변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컨슈머리즘(consumerism, 대량소비주의)에 기초한 사회에서 수탁보전책임과 공유를 포용하는 사회로의 변천이다. 수탁보전책임(stewardship)은 지구상의 다른 동식물을 대신해 이 행성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하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 경제와 개인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 같은 전환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 세계가 아직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컨슈머리즘이 거기에 깊게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수탁보전책임 문화도 확산돼 간다.
에너지원은 제각각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석탄) 또는 그 에너지가 조장하는 태도와 믿음(석유와 가스)에서 기인한다. 석탄은 생산의 산업적 규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줬다. 석유와 가스는 초창기 소비문화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신재생 에너지는 강력한 수탁보전책임의 메시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만성적인 우려를 수반한다. 신재생 에너지가 점차 화석연료를 대체함에 따라 수탁보전책임이 갈수록 커지고 컨슈머리즘은 더욱 퇴조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이른바 ‘에너지 논쟁’은 실제로 문화의 교체를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난해 9월 뉴욕의 록펠러 형제 펀드는 화석연료 투자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석유업체 스탠더드 오일은 사업수익 일부를 돌려 세계 각지의 수탁보전 책임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같은 달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억만장자 데이비드 카치 형제가 후원한 신설 플라자 개장식에서 일단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벽에 ‘카치=기후 대혼란’이라는 글자를 비춘 혐의였다. 카치 형제 대(對) 록펠러 형제, 거물들의 싸움이다.
이는 중차대한 문제다.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예를 보자. 이미 그 우아한 건축의 초석 위까지 물이 차올랐다. 가장 낮은 수로의 다공질 벽돌 사이 회반죽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습기가 올라오면서 건물을 지탱하는 연결봉이 녹슬고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 현관의 13세기 모자이크에 벌써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베네치아사업단(Consorzio Venezia Nuova)이 폭풍우를 막는 홍수 차단막을 세우고 있지만 극빙관(polar ice cap) 해빙에 따른 수위 상승은 막지 못한다.
그러나 베네치아 항만청은 초대형 유람선에 정박 허가를 계속 내준다(올해 예약 520건). 유람선들은 갈수록 파도를 더 멀리 밀어 보내 주데카 운하를 따라 늘어선 웅장한 구조물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시 당국이 조달하는 유지보수 예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산마르코 광장이나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의 광고 플래카드를 장기 임대해 경관을 망가뜨리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다. 이탈리아, EU 또는 유엔의 어떤 수탁보전책임 프로그램이 과연 초대형 유람선과 유명 브랜드의 ‘소비’로부터 베네치아를 구할 수 있을까?
부상하는 수탁보전책임 문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목격된다. 우리 중 다수는 재활용 폐기물과 일반 쓰레기를 분류하고, 공유경제를 통해 교통이나 숙박 수요를 충당하고, 화학물질 없이 재배된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는 습관을 익혔다. 초창기에는 우리의 떳떳하지 못한 쾌락을 포기해야 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종종 부각됐다. 하지만 지금은 ‘녹색’ 생활양식의 실재적인 이점이 뚜렷해지고 있다. 컨슈머리즘 가족 모델은 구성원들이 원하는 상품을 각각 독립적으로 쇼핑하도록 한다. 수탁보전책임 모델에선 가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협력해 에너지를 절약한다. 앞으로 성공 기준은 재산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전하는 역할을 각자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슈머리즘 쇠퇴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폰 신모델을 먼저 구입하려 매장 앞에서 기꺼이 밤샘하는 사람 수가 줄어든다면? 초대형 주택과 휘발유를 많이 먹는 자동차 시장이 붕괴된다면? 패션업계까지 위태로워질까? 과소비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까?
새로 부상하는 수탁보전책임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풍력발전을 하는 덴마크와 지열발전을 실시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분명한 모델이 발견될지 모른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간다. 더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카풀을 조직해 하이브리드 카(휘발유 + 전기)를 이용한다. 전기 충전이 가능한 곳에 주차시킨다. 자동차와 주택 모두 쌍방향 전력망에 연결된다. 따라서 그들은 전력의 소비자뿐 아니라 공급자도 될 수 있다. 공유경제는 수탁보전책임의 본질적 요소다. 소비가 더는 핵심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소유는 부차적 문제로 밀려난다. 그보다 활용 가능성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소유 자원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유하는 데 놀랄 만큼 적극적이다. 따라서 요즘 세계 각지에 있는 주택과 아파트의 수많은 빈방이 에어비앤비나 다른 공유 서비스를 통해 임대 목록에 오른다. 그리고 우버(택시 호출 앱)가 합법인 곳에서는 수많은 택시 기사가 기꺼이 그 서비스에 합류해 택시 회사를 당혹스럽게 한다.
쓰레기를 이용한 예술작품도 선보여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찍이 200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렌조 피아노 설계팀이 샌프란시스코에 8100㎡의 녹색지붕(living roof)을 조성했다. 가벼운 경사를 이루는 작은 언덕과 해치 형태의 채광창을 갖춘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건물이다. 한편 태평양 반대편에선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왕슈가 벽돌과 타일 100만 개를 재사용해 닝보 역사박물관을 완성했다. 5년 뒤 피아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킴벨 미술관의 증축을 맡았다. 조각된 단열 잔디 지붕, 140m 깊이의 지열 우물 36개, 태양광 패널이 부착된 알루미늄 루버(채광 목적의 미늘판)를 추가했다. 거기서 생산된 전력으로 갤러리의 야간 조명을 밝힌다. 피아노 설계팀 건축물의 단위 면적 당 전력 사용량은 1970년대 초기 건물의 절반에 불과하다. 초창기 건축물도 유명 건축가 로이 칸이 설계했다.
예술가들은 종종 대중의 인식변화를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 이들의 작품은 처음에는 비웃음을 샀지만 수탁보전책임 미술의 밑거름이 됐을지도 모른다. 몇몇 초창기의 시도가 중요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진행 중인 변화의 속도를 말해준다. 일찍이 1960년대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잡동사니를 이용한 ‘가난한 미술’)는 이 같은 새로운 문화를 내다보고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1970년 미국인 조각가 로버트 스밋슨은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를 설계했다.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 솔트 호수에 이르는 460m 길이의 검정 현무암 보도다. 지금은 일반용어가 된 대지미술(Earth Art, 지형이나 자연경관을 이용한 공간예술)의 효시가 됐다. 2003~2004년 덴마크 출신 아이슬란드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현재까지 이 장르의 최고 인기작으로 꼽히는 ‘날씨 프로젝트(Weather Project)’를 제작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에 짙게 깔린 황금빛 안개가 소용돌이친다(터빈 홀은 석유 화력 발전소가 있던 곳이다). 그 속에서 태양 같은 거대한 원반이 반짝인다. 젊은 미술 애호가들이 그 널따란 공간의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햇빛과 바람을 만끽한다.
신재생 에너지에 따르는 신흥 문화에 똑같이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신체의 수탁보전책임이다. 지구의 수탁보전책임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분담할 수 있는 장기적인 목표다. 하지만 내 몸을 돌보는 일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관리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피트니스 업계는 이 같은 인식의 주요 수혜자다. 50년 전에는 운동선수만 체육관을 찾았다. 지금은 누구나 헬스클럽에 가서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몸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도 이 같은 강박증의 또 다른 결과다. 완전 채식주의자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한편 음식점들은 지역산 재료를 쓴다고 광고한다.
섹스에 대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문화적이다. 문화적 변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가능성이 큰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신념과 가치에 속한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히피 문화의 극치)’에 기반한 소비자 문화는 섹스를 또 하나의 체험으로 여겼다. 가능한 한 많이 하되 임신하지 않고 즐겨야 하는 체험 말이다. 반면 새로운 에너지원에 수반하는 섹스관은 분명 섹스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우연한 만남은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회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공유할 때마다 지속적인 관계에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신체 상품화에 페미니스트만 갈수록 거칠게 저항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육체의 수탁보전책임자로 여기는 부모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은밀한 부위(private parts)’의 페티시즘을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다. 사진작가 스펜서 튜닉은 세계 각지의 공공장소에서 단체로 벌거벗은 인간의 파노라마 사진 촬영에 참여할 자원자 수십 만 명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불러모은다. 그의 사진이 지금은 이색적일지 모르지만 아르테 포베라처럼 앞으로 다가올 문화의 예고로 인식될 수도 있다.
녹색당은 명백한 수탁보전책임 정당이다. 그러나 대다수 진보파 대안 정당들이 툭하면 그들의 특징적 정강들을 도용한다. 보수파는 유권자에게 녹색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석탄 또는 석유 대기업과 얼마나 한통속이었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 입장에선 신재생 산업에서 수익성 높은 부업을 개발하는 한편 ‘에너지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에 여념 없는 업체가 많다. 지난해 10월 미국 댈라스시의 에너지 서비스 국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의 전력 중 텍사스 북서부의 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8%를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몇몇 석유대국은 우리를 더 놀라게 할 수 있다. 지난 5월 산유국 석유장관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인 자리에서 사우디 석유장관이 새로운 발표를 했다. 석유에 의존하는 체제를 21세기 중반까지 풍력과 태양광으로 대체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사우디에는 두 에너지가 모두 풍부하다.
일자리와 에너지 표방한 정당에 유권자 몰려
보수파의 오만과 자만에 대한 유권자의 질책이라고 평론가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여러 대안 정당을 외면하고 ‘일자리와 에너지’를 표방한 NDP의 공약을 지지했다. 그들은 두 가지 현안 모두 환경 책임에 기반한 접근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레이첼 노틀리 신임 주지사는 취임 즉시 성명을 냈다. 캐나다 횡단 파이프라인은 계속 지지하지만 키스톤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지는 철회하며 워싱턴 로비스트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시사했다.
수탁보전책임이 대세가 되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에너지와 문화 간의 관계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는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다.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그 행동에 관한 신념과 사고까지 아우른다. 물리적·물질적·사회적·정치적 또는 심미적 측면을 모두 지닌다. 마을·지방·국가 문화가 있을 뿐 아니라 특정 남녀·연령 또는 직업에 국한된 문화도 있다. 모두가 여러 문화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전 생애뿐 아니라 종종 단 하루 동안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는 그 원동력을 이루는 에너지 공급원에 의존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이외의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생물종은 인간뿐이다. 그리고 각 에너지원은 저마다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수반한다.
그 특정한 가치에서 우선시하는 태도와 신념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어도 분명 수용해야 한다. 이들 근본 가치는 그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모든 문화가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은 문화 변혁의 강력한 동력이다.
석탄이 채굴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농업 사회를 대체했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영국이 변화를 선도했다. 지하의 풍부한 석탄을 캐내고, 증기 엔진을 발명해 완벽하게 만들었다. 증기 엔진은 석탄을 대단히 효과적인 대량생산 수단으로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생산공정이었다. 결과적으로 토지 없이도 부자가 되는 길이 열렸다. 이때부터 생산 공정과의 관계로 사람의 성격이 규정됐다. 석탄에 수반되는 생산 문화는 교육 받고 높은 직업윤리를 가진 근면 성실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본질적으로 근로에 가치를 두는 노동력이 요구됐다. 그로 인해 공교육이 실시되면서 하나의 기대가 형성됐다. 청소년이 의무교육을 마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섹스를 미루는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대였다. 그뿐 아니라 혼전 또는 혼외 관계와 끔찍한 동성 관계도 금지됐다.
석유와 가스가 모두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석탄 기반 생산문화를 연장시켰다고 많은 사람이 가정한다. 그러나 석유와 가스는 탄광이나 증기기관 공장처럼 거기에 의존하는 근면 성실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질학자들이 제공하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비교적 소규모의 근로자들이 유정을 시추해 연료를 퍼올릴 수 있었다. 에너지 기업과 정부가 파이프라인을 지킬 수만 있다면 가치의 초점이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한다. 석탄재벌들은 끊임없이 파업을 우려했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는 석유나 가스 근로자를 논의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에 따른 배럴 당 가격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의 수탁보전책임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소비문화를 두고 처음에는 논란이 뜨거웠다. 1960년대 많은 나라에서 석유와 가스가 석탄을 대신해 주요 에너지 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너지 변천에 따라 소비문화도 바뀌었다. 반드시 지지 받지는 못했지만 분명 수용됐다. 특히 우리 모두가 보유하던 플라스틱(석유 제품) 신용카드(미국에서 주유소 고객 전용카드로 출발했다)가 그런 추세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람들을 더는 생산공정과의 관계로 규정짓지 않게 됐다. 이제 시민의식의 정의에 쇼핑을 통해 경제를 떠받쳐야 할 책임이라는 의미도 추가됐다. 지난 50년 동안 소비문화의 가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경제학자와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 대대수가 그렇게 여겼다. 석탄은 교육을 보편화시켰고 석유와 가스는 신용대출의 대중화를 불러왔다.
석탄과 산업혁명이 요구했던 자기절제가 느슨해졌다. 그것은 반문화에서 극치를 이루며 단순히 상품뿐 아니라 소비 가능한 체험으로 훨씬 더 깊숙이 퍼져나갔다. 섹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체험에 불과했다. 화학·의학 연구 덕분에 이 특정한 경험을 출산 위험 없이 누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사랑의 여름’과 ‘성혁명’이 탄생했다.
과거엔 산업적 규율에서 벗어나는 주요 수단이 음주였다. 하지만 새로 도래하는 소비문화에선 단순히 소비자 역할을 하는 데 따르는 따분함을 달래는 수단으로 불법 약품이 주류 반열에 올랐다. 과거엔 보헤미안 음악가나 작가들이 탐닉하던 재료였다. 반문화 운동의 대부인 티머시 리어리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마약에 취하고 일상에서 일탈하라고 촉구했다. 중장년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로 소비가 단순히 상품 구입뿐 아니라 체험하는 문제가 됐다. 1970년에 접어들면서 ‘체험 경제’가 자리 잡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신재생 에너지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까지 지난 한 세기 동안 석유와 가스가 맡아왔던, 또는 그 전에 석탄이 성취했던 역할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신재생 에너지를 구현하는 데는 기술·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제 수압파쇄법으로 석유와 가스 의존의 기대수명이 최소한 수십 년 더 연장됐다. 대형 에너지 업체와 그들을 보호해주는 정부는 이 같은 도전과제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크게 약화됐다.
처음에는 독일이 앞장섰다. 일찍이 2000년 독일 의회가 쌍방향 전력망을 구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으로 전력 시스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물주에게 대가를 지불했다. 초기의 장려책 덕분에 독일 제조업체들이 처음에는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을 선도했다. 그러나 기술적·재정적 난제가 쌓이면서 중국이 태양광 패널의 생산과 수출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몇몇 극단적인 경우 독일 업계는 석탄으로 복귀했다. 에너지 전환에는 수십 년 때로는 수 세기가 걸린다. 그리고 곧게 뻗은 탄탄대로가 앞에 놓여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복잡한 문제는 원자력 에너지의 대안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불가피하게 근심의 문화와 연관돼 있다. 어쨌든 불 이후 대량파괴의 매개체로 우리 앞에 나타난 최초의 에너지원이니 말이다.
중국은 앞으로 놀라운 진화 과정을 보일 것으로 여겨지는 흥미로운 사례다. 공산당 이념은 전력화(electrification)를 수반한 변혁의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오늘날 중국은 변함없이 석탄(호주나 몽골 산이 태반이다)에 의존한다. 따라서 여전히 강력한 근로윤리를 가진 규율 잡힌 근로계급을 장려한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러시아로부터 향후 30년 동안 천연가스를 공급 받는 수십 억 루블의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중국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수많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서부 평원지대를 방대한 풍력발전 단지로 덮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에너지 원을 수반하는 각 문화(생산·변모·소비·수탁보전책임)가 충돌한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대도시 주민에게 막대한 가처분 소득을 안겨줬다. 그리고 수많은 농촌 주민을 끌어들였다. 그들은 적은 보수로도 일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극심한 가난을 벗어나 비교적 먹고살 만한 수준으로 올라선 사람이 대단히 많아졌다. 따라서 상하이·베이징 또는 기타 사람이 몰리는 도시의 상점과 거리에서 소비문화가 팽배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탁보전책임 문화가 도래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다. 영국 정부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가 장기적인 목표라고 발표했다. 모든 제품이 재활용되고, 폐기물이 모두 회수되고, 제조공정의 실제 에너지 비용이 모두 설명되는 경제다. 최근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환경 목표를 추구하는 협정을 논의했다. 양국이 그런 노력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지구 수탁보전책임 문화의 밝은 앞날을 가리키는 유망한 도전과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수탁보전책임은 높이고 소비는 줄이고
반면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존재하며 세계 각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압력이 갈수록 거세진다. 현재 자전거를 이용하는 수많은 인도인이 자동차를 굴리기 시작한다면, 남반구 국가들이 냉방장치를 갖춘 싱가포르의 사례를 따르기 시작한다면 지구의 장기적인 존속을 낙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국민의 생활을 개선할 기회를 누가 막겠는가?
한 가지 결론은 피할 수 없다.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그런 세계적인 발전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수탁보전책임 문화를 촉진하고 소비문화를 차츰 줄여나가 그것을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몇 십년 동안 살았던 아주 특이한 사람들의 별난 습관쯤으로 여겨지게 만들어야 한다. 멋진 신세계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지속가능한 신세계여야 한다.
- BARRY LORD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 필자 배리 로드는 ‘기술과 에너지, 문화의 변천(Art & Energy: How Culture Changes)’의 저자이며 문화유산 컨설팅업체 ‘로드문화자원’의 설립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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