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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가 미국 소비 살린다

저유가가 미국 소비 살린다

소비 수요가 억눌려 있었다는 건 미국인의 자동차 구입이 증가할 뿐 아니라 주행거리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장이 중국발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출렁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바로 거기에 희소식이 담겨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 지출이 1960년보다 줄게 된다는 점이다.

올해 미국 가구의 에너지 비용 지출이 평균적으로 전년 대비 700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가외소득은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통계기구인 에너지정보청(EIA) 경제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올해 마지막 분기의 휘발유 평균 소매가는 갤런 당 2.11달러 선으로 예상된다”고 EIA 석유시장 분석 팀의 티머시 헤스가 말했다. “그리고 내년 내내 3달러를 밑돌 전망이다.”

그 뒤 시장이 균형을 회복해 가격이 강세로 돌아선다고 EIA 거시경제팀의 분석가 바이핀 아로라가 말했다. 이는 모두 미국인이 절실히 바라던 경제적 지원을 대략 1년 동안 제공받는다는 의미다. “휘발유 값이 많이 들지 않아 남는 돈으로 TV를 장만한다”고 아로라 분석가가 말했다. “유류비 지출 감소로 미국 경제의 70% 선을 차지하는 가처분소득과 개인소비가 늘어난다. 소비자의 소득이 증가하면 지출이 늘고 기업은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한다.”

소비지출 증가는 연율로 3.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발표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2분기에 3.7%의 견실한 성장을 기록했다. 가처분소득도 증가세다. 경제분석국(BEA) 발표에 따르면 2분기에 3.7% 증가해 1186억 달러에 달했다. 증가율이 크지는 않지만 나쁜 편도 아니다.

대다수 미국인은 지독하게 오르지 않는 임금에 발목 잡혀 있었다. 그들의 호주머니에 가욋돈이 생기면서 경제 전반에 온기가 퍼질 수 있다고 존 킬더프가 말했다. 뉴욕에 있는 원자재 투자 전문 헤지펀드인 어게인 캐피털의 창업 파트너다. “9월부터 시작되는 신학기 쇼핑 시즌 대목에 큰 호황이 찾아올 듯하다. 미국의 일반 소비자가 에너지 비용 지출 감소로 생긴 여유 자금 중 일부를 이때 풀 가능성이 크다”고 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미국 경제에선 개인소비 지출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 같은 소비지출 증가는 여러 모로 경제에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같은 전망은 이번 글로벌 경기둔화에 약간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요 몇 주 사이 시장의 출렁거림을 다시 정리해 보자. 지난 8월초 중국의 예상치 못한 위안화 절하 조치 때문에 세계적으로 주식과 원자재 가격 폭락이 촉발됐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 경제가 한계에 이르렀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중국의 경제 데이터는 종종 좋게 말하면 불확실하고 솔직히 말해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갑작스런 통화절하는 투자자들에게 공포를 안겨다 줬다. 대부분 불의의 허를 찔렸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칠지 불안해 한다. 뒤따른 혼란은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망령을 불러일으켰다. 8월부터 9월까지 미국 주가가 줄줄 흘러내리고 FRB가 금리인상을 내년까지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중국 정부는 금리와 은행 지급준비율을 낮췄다(올해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전에도 여러 차례 시장에 개입했다). 시장이 손실을 만회하는 사이 경제전문가들은 중국의 고도성장 시대가 끝났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제적인 폭락보다는 계속적인 감속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재의 시장 패닉은 기본적으로 ‘중국발’”이라고 줄리안 제섭이 리포트에 썼다. 영국 런던에 있는 거시경제 리서치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글로벌 경제분석가다. “다른 주요 경제의 최근 데이터는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대규모의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세계의 모든 에너지 소비자는 이번 패닉으로 직접적으로 혜택을 볼 위치에 있다. 중국은 석유 그리고 휘발유 같은 정유 제품을 포함한 원자재의 세계 최대 소비국이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둔화는 이번 여름 8주간 연속된 유가 하락세의 핵심 요인 중 하나다.

FRB의 금리인상 기대감에 따른 미국 달러화의 강세도 압력을 가중시켰다. 석유가격이 달러로 표시돼 달러 강세일 때는 석유 1배럴을 사는 데 외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달러 약세일 때는 반대다). 그 결과, 지난 8월 미국 원유가가 6년 반만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지난 8월 24일, 미국 유가 지표인 서부 텍사스 중질유 가격이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배럴 당 40달러 아래서 마감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배럴 당 100달러 선을 맴돌았다. 한편 글로벌 유가 지표인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 당 45달러를 하향 돌파했다. 둘 다 하락 이후 반등세를 나타냈지만 여전히 큰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는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생산된 원유의 80%가 곧바로 운수에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어게인 캐피털의 존 킬더프 파트너가 말했다. 그는 항공·해운·육상운수 업종에 혜택이 돌아간다고 예상한다. “따라서 기차·비행기·트럭·자동차 운행 비용이 절감된다.”

중국 문제로 시장이 요동치는 사이 많은 투자자와 경제분석가는 또 하나의 긍정적인 변화를 간과했다. 지난 8월 소비심리의 회복이라고 킬더프 파트너가 말했다. ‘원자재 특히 유가 하락 그리고 달러 강세가 이 같은 변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크레딧 스위스 은행의 애널리스트들이 시장조사 보고서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그런 시장 동향은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약세, 그리고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강세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저유가의 또 다른 결과는 석유 수요의 급증이다. 선진 공업국들에 에너지에 관해 조언을 제공하는 파리 소재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사실상 5년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추세를 뛰어넘는’ 급증이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하루 글로벌 석유수요가 170만 배럴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8월과 9월에 예상치를 상향 조정한 뒤 내년에는 수요가 하루 140만 배럴이나 더 증가한다고 IEA는 내다봤다.

미국에선 소비자의 석유제품 수요가 예년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 휘발유를 많이 먹는 SUV와 트럭 판매가 급증한다. 여름 드라이빙 시즌 중 자동차 제조사들이 발표한 판매 실적은 애널리스트 예상치의 2배에 육박했다. 자동차 시장 리서치 업체 오토데이터에 따르면 10년래 최대 판매실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름값이 싸지면서 수요가 증가한다”고 일리노이주 갈레나에 있는 리터부시&어소시에이츠의 에너지 분석가 짐 리터부시가 말했다. 소비 수요가 억눌려 있었다는 건 미국인의 자동차 구입이 증가할 뿐 아니라 주행거리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그는 관측했다. “휘발유는 에너지 산업 중 수요가 생산을 따라 움직이는 제품에 속한다.”

하지만 석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높은 수요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공급과잉을 흡수하지 못했다. 미국의 셰일 가스·오일 붐으로 인해 말 그대로 시장에 석유가 콸콸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무려’ 하루 300만 배럴의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고 지난여름 IEA가 추산했다. 1998년 이후 최대 기록이다. EIA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석유생산은 하루 922만 배럴에 달할 전망이다. 1972년 이후 최대 규모다.

내년에는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EIA의 헤스 분석가가 말했다. 그는 “올 4분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2009년 미국에서 시추 붐이 일기 시작한 뒤로 “연평균 10%씩 생산을 늘려 왔다”고 덧붙였다. 내년에는 생산량이 하루 4% 수준인 40만 배럴 정도 감소한다고 EIA는 예상한다.
 비(非) OPEC 국가들 공급 줄일 듯
미국의 셰일 가스·오일 붐으로 인해 말 그대로 시장에 석유가 콸콸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무려’ 하루 300만 배럴의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유가하락은 석유 시추업자와 수출업자의 이익을 잠식했다. 그들은 수요에 맞춰 설비와 인력을 감축해야 했다. 올 들어 현재까지 총 감축액은 1800억 달러에 달했다. IEA에 따르면 1986년 석유파동 이후 최대 규모다. 이는 특히 미국의 주요 석유업체들에 골치 아픈 문제다. 미국은 석유수출을 금지하는데 현재 석유 비축분이 지난해 수준의 25%를 웃돈다. 여름 드라이빙 시즌의 높은 수요를 모두 충족시킨 뒤의 통계다.

사우디, 이라크, 이란 간의 3각 대립도 이 같은 공급거품에 악영향을 미칠 듯하다. 이들 중동 산유국들은 시장에 석유를 쏟아부으며 점유율 경쟁을 벌인다. 이란은 지난 7월 기념비적인 핵협상 타결 이후 “사우디의 뒤를 이어 최대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의 위상을 되찾으려” 노력할 것이라고 IEA는 내다봤다.

지난해 OPEC의 사실상 대표격인 사우디가 석유 생산량을 줄여 유가하락 저지에 앞장설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그해 11월 사우디는 일방적인 감산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유가하락으로 인한 수입감소를 메우려 생산량을 늘렸다. 그러나 ‘능력껏 퍼 올리는’ 전략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에는 효과가 없었다.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예산적자가 올해 1500억 달러에 달한다고 국제통화기금은 추정한다. 사우디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OPEC는 지난 8월 말 기구 차원의 보고서를 통해 ‘다른 모든 생산국과 협상을 통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공표했다. 과거 OPEC는 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높일 목적으로 때때로 감산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감산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IEA에 따르면 비(非) OPEC 국가들은 공급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저유가가 부채질하는 에너지 수요 증가와 함께 미국 내 에너지 설비의 감축이 궁극적으로 내년 말에는 가격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IEA는 “저유가가 더 오래 간다는 인식이 석유 업계의 많은 관계자들 사이에 확산된다”고 전한다.

석유 배럴 당 가격이 2002년 이후론 전례 없는 20달러 대로 떨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한동안 가격이 낮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20달러 대로 진입한다고 보는 쪽은 아니다”고 짐 리터부시 애널리스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30달러 대 초중반은 가능하겠지만 20달러 대까지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 LEAH MCGRATH GOODMAN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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