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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108) 도널드 트럼프 미국 트럼프 그룹 회장] 美 부동산 재벌의 대통령 도전기

[글로벌 파워 피플 (108) 도널드 트럼프 미국 트럼프 그룹 회장] 美 부동산 재벌의 대통령 도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트럼프 그룹 회장. / 사진:뉴시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이제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미 대선은 1845년부터 11월의 첫 월요일 이후에 오는 첫 화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인 2016년의 선거는 11월8일 화요일에 치러진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두 번째 4년 임기를 마치기 때문에 내년 선거에는 신인끼리 격돌하게 된다. 그만큼 화제도 풍성하고 새로운 인물도 다양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 특이한 것은 이번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 결정까지 한참 남았음에도 벌써 압도적인 화제를 모으는 인물이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영부인에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에서는 숱한 후보 중에 막말과 말실수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69)가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는 평이다.

트럼프는 부동산과 리조트 개발을 주로 하는 트럼프 그룹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다.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에 이어 미국에서 인구가 셋째로 많은 뉴욕주의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와 넷째로 많은 플로리다주의 팜비치에 있는 저택을 오가며 살고 있다. 트럼프 플라자와 트럼프 애틀란틱 시티의 회장도 맡고 있다. 자신이 지분이 있는 NBC방송에서 리얼리티 인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면서 ‘너는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도발적인 코멘트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재산이 45억 달러에 이르는 억만장자인데다 지금도 연 수입이 2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민주당→공화당→민주당→공화당 오락가락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마르코 루비오 후보(왼쪽)와 젭 부시 후보(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11월 10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 극장에서 개최된 4차 공화당 TV토론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시스
독특한 것은 그의 정치 이력이다. 1987년 이전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정치자금도 기부했다. 그러다 1987년 공화당으로 돌아섰으며 1999년까지는 계속 공화당을 후원했다. 하지만, 1999년부터 개혁당을 지지했으나 오래가지 못했으며, 그 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다시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2011년부터 이듬해까지는 독립당을 후원했다. 한마디로 지지 정당부터 정치적 성향까지 오락가락하며 시계추처럼 진폭이 컸다. 사업상 필요성이나 기분에 따라 지지정당이 왔다갔다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가 지금 대선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공화당원이 된 것은 2012년부터다.

하지만 그는 미국 대선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공화당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로 꼽히고 있다. 인종차별에 이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막말에 말실수, 그리고 국가 현안과 국제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음에도 인기가 꺾일 줄 모른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잘 알려진 부자인데다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으로 인지도가 높은 게 하나의 이유다. 둘째, 유명인사라는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광고판인데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텔레비전에 강할 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달고 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장 강한 미 대선 예비후보로 꼽힌다. 트럼프는 연배와 달리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새로운 정치적 이슈가 등장하면 이에 대한 코멘트를 발 빠르게 SNS에 올린다. CNN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이 이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트럼프의 뒤에는 미국 선거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SNS 참모’가 있다고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트럼프는 29세의 저스틴 매코니라는 인물을 선거참모로 고용해 SNS를 전담시키고 있다. 전담 참모까지 둘 정도로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부동산 재벌일 뿐 정치적으로 업적이 없는 트럼프가 후보 경선전에서 돌풍을 이어가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전은 인터넷 경쟁력이 곧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2011년 트위터 개설 당시 30만명이던 트럼프의 팔로워가 현재 430만명에 이른다. 2009년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를 졸업한 매코니는 트럼프가 진행한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등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능력을 발휘했다. 트럼프가 대선 예비후보로 나서면서 들고 나왔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라는 구호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매코니가 주도하는 트럼프의 SNS는 경쟁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여기에 올린 동영상은 먼저 “밤에 잠들기가 어려운가요? 힘이 넘치나요?”라고 물은 뒤 전 지사가 유세하는 바로 뒤에서 한 여성이 졸고 있는 영상을 올렸다. 그가 사람들에게 잠이 오게 하는 따분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한 것이다. 동영상 광고에 나오는 “젭, 모두의 잠을 위해”라는 음성 메시지로 부시 전 주지사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인기 SNS인 인스타그램에 부시의 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과거 “젭이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 우리 집안은 이미 두 명의 부시 대통령으로 충분하다”고 발언하는 내용을 15초간 편집한 짤막하면서도 강력한 영상을 올렸다. 부시 가문에 대한 식상감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매코니는 이처럼 SNS 세계에서 트럼프의 입과 귀 노릇을 충실히 하면서 새로운 정치 지평을 열고 있다. 이처럼 세상 흐름에 맞춰 참모를 잘 쓰고 있는 것이 트럼프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뒤엔 든든한 ‘SNS 참모’
트럼프 1946년 미국 뉴욕주 퀸스에서 태어났다. 퀸스는 미국 내 한인 밀집지구 중 하나다. 뉴욕주에 있는 예수회 계열의 가톨릭 사립대학인 포덤대에 입학했다가 펜실베이니아대로 옮겨서 졸업했다. 예수회에서 세운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톨릭 신자는 아니고, 장로회 소속의 개신교 신자다. 트럼프는 지지정당만큼 부인을 자주 바꾼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7년 이바카 젤니슈코바와 결혼했다가 92년 이혼했으며 이듬해 마를라 메이플스와 재혼했다가 6년 만에 헤어졌다. 지금 부인인 멜라니아 크나우스왐과는 2005년 결혼했다.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트럼프의 집안 내력이다. 이민자에 반감이 있는 유권자를 교묘하게 선동해 인기를 모은다는 평가를 받지만, 아메리칸인디언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이 그러하듯 그도 이민자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3세다. 그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드럼프(1869~1918)는 독일 서부 팔츠 지역에 있는 칼슈타트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현재 1200명 정도가 사는 이 마을은 독일 서부 와인 가도에 있는 주요 포도주 산지다. 미국의 유명 식품사인 하인즈 케첩을 창업한 헨리 하인즈의 아버지인 요한 하인리히 ‘하인츠(하인즈의 독일식 발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포도주 양조장을 겸한 고향의 포도밭에서 일하던 프리드리히 드럼프는 1885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이발사로 6년간 일했다. 그러다 모은 돈을 들고 1891년 대륙을 횡단해 서부로 옮겼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의 시애틀로 이주해 ‘푸들 도그’라는 이름의 퇴폐적인 식당을 운영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당시 미 서부 식당의 상당수는 1층에서 음식과 술을 마시고 2층에선 성매매를 하는 퇴폐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식당도 그중의 하나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무렵 그는 프리드리히 드럼프라는 독일 이름을 같은 어원의 영어 이름인 프레더릭 트럼프로 바꾸고 미국에 귀화했다. 1894년 프레더릭은 워싱턴주 몬테 크리스토로 옮겨 호텔을 열었다. 그러다 1896년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서북부 유콘 지역의 클론다이크에 금이 발견돼 골드러시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유콘으로 가는 길목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베네트로 옮겼다.

1896년부터 1899년까지 계속된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로 무려 10만명이 몰렸으니 이들을 재우고 먹이는 온갖 가게가 호경기를 맞았다. 프레더릭은 베네트에 1897년 ‘악틱(북극)’이라는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 처음 텐트 하나로 시작했던 호텔은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잘 돼 곧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2층짜리 건물로 확장됐다. 1900년 베네트에서 유콘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되자 프레더릭은 유콘의 화이트호스에 식당을 겸한 호텔을 열었다. 하지만, 골드러시의 거품이 꺼진 데다 성매매 단속망이 조여오자 겁을 먹은 프레더릭은 1901년 호텔을 팔고 떠났다. 독일 고향마을로 돌아갔다.

그는 이듬해 이웃집 여자인 엘리자베트(엘리자베스의 독일식 이름) 크리스트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가 탈세와 병역 기피 목적으로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돌아왔다고 판단한 독일 당국은 그를 추방했다. 임신한 부인과 함께 다시 미국에 온 그는 뉴욕주 퀸스에서 새 출발을 했다. 프레드(1905~1999)와 존이라는 두 아들을 남기고 1918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다. 숨질 무렵 그는 퀸스의 부동산 개발에 투자를 시작하고 있었다. 트럼프 가문 부동산 사업의 모태다.
 3대에 걸쳐 서부개척, 주택 붐으로 거액 모아
1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장남 프레드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부친이다. 22살 때 부동산 개발과 건설업에 뛰어든 프레드는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대에 뉴욕주에 ‘혼자 물건을 고르고 돈을 아끼세요’라는 광고문구를 앞세운 수퍼마켓을 열었다. 수퍼마켓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업이라 돈벌이가 잘 됐다. 프레드는 이익을 남기고 이를 킹컬렌이라는 경쟁 체인에 넘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군함을 건설하는 조선소 인근에서 군인과 군무원을 위한 주택건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이 끝나자 귀환 장병을 위한 주택 건설이 붐을 이뤘다. 이후 뉴욕시에 아파트 붐이 일자 아파트 건설로 떼돈을 벌었다. 당시 그는 2만7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임대사업도 함께 벌였다. 트럼프 그룹은 이 때 세웠다. 1968년 아들 도널드가 회사에 들어와 사업을 함께했다. 그가 바로 지금의 도널트 트럼프다.

트럼프 자신도 과감한 부동산 개발로 화제를 모으면서 재산을 불렸다. 이민자인 트럼프 집안은 이처럼 3대에 걸쳐 기업가 정신으로 서부개척과 주택 붐이라는 기회를 활용해 재산을 모았다. 자수성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흑인에게 아파트 임대를 해주지 않다가 1973년 민권법 위반으로 수사도 받았다. 구두쇠로 유명했던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거액의 유산을 3남2녀의 자녀에게 남겼다.

그의 형제자매도 대부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큰누나 메리앤은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냈으며, 작은 누나 엘리자베스는 체이스 맨해튼 은행 중역이었다. 큰형인 프레드는 40대에 세상을 떠났으며 동생인 로버트는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 관리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경영인이다. 차남인 트럼프는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45억 달러의 재산을 일궜다. 이 재산을 활용한 적극적인 유세전이 트럼프를 돌풍의 정치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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