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바다로 간 목마]의 ‘회복탄력성’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바다로 간 목마]의 ‘회복탄력성’

순정소설(純情小說)이라는 장르가 있다.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을 담은 소설’쯤 된다. 주인공들은 바보같은 사랑을 하고,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하고, 고통받는다. 1970~1980년대는 순정소설의 전성기였다. 순수한 두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죽음이었다. 눈밭에서 두 주인공이 쓰러지는 영화 [러브스토리]가 대표적이다. 순정소설은 세대를 초월해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순정소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계산적이 되어가는 세태. 순수한 사랑을 찾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일까.
1978년 발표된 한수산의 [바다로 간 목마]는 그 시절 최고의 순정소설이었다. ‘사랑의 뜻이 더럽혀진 시대에 그 참뜻을 찬란히 일깨울 순애의 연가’. 1980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가 씌여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유신독재, 노동문제 등이 얽혀있던 1970년대 말. 그래도 사람들은 낭만을 찾고 순수를 찾았다. 한수산은 작가의 말을 통해 ‘왜 보석은 빛날까요?’라고 묻게 되는 나이, 그 나이의 사람들을 위하여 이 책은 씌여졌다’고 말한다.

주희는 몇번이나 민우랑 헤어지려 한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의 반대를 이겨내기 힘들다. 1970년대의 사랑은 그랬다. 하지만 별리의 상처는 깊다. 가슴이 타 들어가버릴 듯한 하루하루. 강물을 봐도 민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가는 한 마리 사슴을 생각했다. 그 사슴은 나일까, 아니면 내 사랑일까. 주희는 멍한 눈으로 스쳐지나가는 차창 밖. 먼 풍경들을 아무도 없는 겨울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겪는다.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뀐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는 능력도 사람마다 다르다. 심리학에서는 아픔에서 회복하는 능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아픔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는 뜻이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저서 [회복탄력성]에서 “회복탄력성이란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이라며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고 밝혔다.
회복탄력성은 1970~1980년대 심리학의 주요 이슈였다. 어린이들이 청년기로 성장해가는 성장통을 주로 연구했다. 심리학이 경제학과 접목되면서 ‘회복탄력성’은 경영학의 주목도 받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직원들도 실패에 따른 아픔과 고통을 겪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회복탄력성이 다른 것처럼 기업과 조직도 마찬가지다. 어떤 조직은 실패를 훨훨 털고 일어나는가 하면, 어떤 조직은 끝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이 심기일전한다면 회복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CEO가 실패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고, 노조는 이에 반박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다. 또 주력 상품이 추락하더라도 앞선 기술력으로 곧 새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회복탄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복탄력성이 낮을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회복탄력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능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스테판 캔토어 등이 쓴 [CEO를 위한 심리학 특강 50]이란 책을 보면‘ 회복탄력성은 성격적인 특성이라기보다 개인이 학습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회복탄력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길러진다는 의미다. 심리학자인 캐런 레이비치는 회복탄력성 기술에는 7가지가 있다고 했다. 감정의 자각 또는 조정, 충동 조절, 낙천성, 인과관계 분석, 공감, 자기효능감, 성장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술은 ‘낙천성’이라고 했다.
주희는 부모의 반대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스스로를 설득한다. 민우와의 결혼은 불가능한 것이고, 어서 빨리 이 아픔에서 극복하자고. 그래서 만나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담으며 한동안 민우와 만나지 않는다. 회복탄력성 기술로 보자면 ‘감정의 자각 또는 조정’과 ‘인과관계 분석’이다. 하지만 낙천성은 부족했다. ‘만났기에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했기에 잊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잊혀지지 않고 또 남아있으면 어떠랴’라고 생각하지만 잠시다.
전문가의 실험을 보면 사람의 3분의 1은 선천적으로 높은 수준의 회복탄력성을 지닌다. 하지만 3분의 2는 회복탄력성 수준이 낮다. 하지만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다고 김주환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니까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갖추고 아픔에 빠진 개인을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보적인 자살율 1위를 기록하는 것은 사회적 치유시스템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아픔을 개인이 극복해야 할 몫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창업과 일자리 창출이 화두가 되면서 최근 정부는 창업 분야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소구대출(유한책임대출)’이다. 사업을 하다가 망하더라도 담보물만 넘기면 대출자의 상환책임이 끝나는 제도다. 지금은 사업을 하다 망하면 사업체 뿐 아니라 개인자산까지 거덜난다. 한번 실패했다고 완전히 망가지는 사회라면 창업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재도전의 기회는 한국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젊은 사업가들이 창업을 꺼려서는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어렵다.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난다. 민우 집에서 결혼식도 없이 살기 시작한 두 사람. 하지만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희는 아이를 낳다가 숨진다. 1989년에 재출간된 책에서 한수산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을 읽었던 누군가는 이제 어머니가 되었을지 모른다”며 “긴 세월을,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서 서성거리는 어떤 간이역처럼 이 이야기는 그렇게 오고 또 떠나는 이들과 함께 있다”고 밝혔다. 2018년이면 책 출간 40주년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누군가는 손자를 안고 있을 나이다. 좋은 이야기의 생명은 길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9월 금리인하 문 열어둔 파월…월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데일리
박미선 측 “병명 공개 어려워…현재 휴식 중”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9월 금리인하 문 열어둔 파월…월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세금 0원에 150억 환차익 ‘잭팟’…유럽 빌딩 투자했더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압타바이오, 급성신손상 예방약 내년 기술이전 자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