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그건 죽음의 대기실 아닌가”

“난 그런 극단주의자가 아니다”고 길모어는 영국 브라이튼 근처의 조용한 도시 호브의 해안가에 있는 자택에서 말했다. “누구를 죽이려고 해본 적이 없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창조성이나 명성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명성의 덕을 봤다.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얻을 때 그랬다. 하지만 셀카를 좋아하진 않는다. 난 뮤지션이다. 그 밖에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길모어는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하는 이런 집념으로 수십 년 동안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수많은 상을 받았고 수백만 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1965년 결성됐으며 길모어는 2년 후 합류했다)의 멤버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솔로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솔로 음반 4장이 모두 성공했으며 지난 9월 발표한 4집 앨범 ‘Rattle That Lock’은 평단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얻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별 4개(별 5개가 최고)를 줬고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길모어를 ‘표현력이 풍부한 최고 경지의 대가(an expressive master of his craft)’라고 극찬했다. 이 앨범은 또 영국의 각종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200’에서 5위에 올랐다.
길모어의 솔로 앨범 1집 ‘David Gilmour’(1978)와 2집 ‘About Face’(1984)는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핑크 폴로이드의 1983년 앨범 ‘The Final Cut’(창단 멤버 로저 워터스가 탈퇴하기 2년 전 발표됐다)이 영국 음반 차트에서 1위에 오른 사실을 생각할 때 특히 실망스런 결과였다. 길모어의 3집 앨범 ‘On an Island’(2006)는 앞의 두 솔로 앨범보다 성적이 좋았다. 영국 음반 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 6위를 차지했다.
워터스가 탈퇴한 뒤에도 핑크 플로이드의 활동은 계속됐다. 길모어를 리더로 앨범 2장을 더 냈다. ‘A Momentary Lapse of Reason’(1987)과 ‘The Division Bell’(1994)이다. 지난해 11월에는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키보드 주자 리처드 라이트를 기리는 앨범 ‘The Endless River’를 내놨다. 악기 연주 위주로 구성된 이 앨범은 아마존에서 최다 선주문 기록을 깼다. 핑크 플로이드는 그것이 이 그룹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발표했다.
내년 3월 미국에서 ‘Rattle That Lock’ 홍보 공연

‘Rattle That Lock’은 진정한 의미에서 솔로 앨범이 아니다. 길모어와 21년 동안 함께 살아온 부인 폴리 샘슨(소설가)이 타이틀곡을 포함해 앨범에 실린 곡 절반의 가사를 썼다. 올해 새 소설 ‘친절(The Kindness)’을 발표한 샘슨은 ‘The Girl in the Yellow Dress’의 가사가 단편소설 같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남편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The Division Bell’ 시절부터 가사를 써줬다.
배우자와 그렇게 가까이서 함께 일하는 뮤지션은 많지 않다. “톰 웨이츠(언더그라운드 싱어 송라이터)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길모어는 말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이들의 관계는 쌍방향의 창조적 파트너십이다. 샘슨은 이렇게 말했다. “난 글을 쓸 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읽어주면서 작업하는 습관이 있다. 남편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아주 정직하고 규칙을 중시한다.”
록 음악을 주로 젊은 사람들이 하던 1960년대에 길모어는 “70세가 될 때까지 록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말대로라면 길모어는 내년 3월 6일까지 시간이 있다. 그때가 되면 5집 솔로 앨범을 내고 은퇴하게 될까? 하지만 은퇴라는 단어가 나오자 길모어는 이렇게 말했다. “은퇴? 그건 죽음의 대기실 아닌가? 내 꿈은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멋진 뭔가를 만들어 내고 싶은 야심도 있다.”
베테랑 로커 중엔 그 말고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다. 지난 7월 그룹 더 후는 영국 글래스톤베리 뮤직 페스티벌의 주무대를 장식했다. 비록 리더 로저 댈트리가 바이러스성 수막염에 걸려 미국 순회공연 일정을 내년까지 미루긴 했지만 말이다. 롤링스톤즈는 지난봄과 여름을 미국과 캐나다 순회공연으로 보냈다. 심장병을 앓는 데이비드 보위는 지난 1월 69회 생일에 25집 앨범 ‘Blackstar’를 발표했다.
하드록 그룹 AC/DC는 창단 멤버 맬콤 영(62)이 조기 치매로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순회공연을 한다. 길모어는 오는 12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순회공연 길에 오른다. 내년 3월엔 ‘Rattle That Lock’의 막바지 홍보 공연차 미국으로 향한다. 그 다음엔? 그는 언젠가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내 느낌에 맞는 걸 가리지 않고 연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대로라면 앞으로 그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단 한가지는 ‘연주하지 않는 것’뿐이다.
- NEWSWEEK STAFF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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