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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바비’ 인형은 감시 도구?

‘헬로 바비’ 인형은 감시 도구?

마텔의 신제품 헬로 바비는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와 Wi-Fi 연결을 통해 말하고 대답하고 들을 수 있다.
미국 장난감 업체 마텔은 1960년대 초 말하는 인형 ‘채티 캐시(Chatty Cathy)’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인형은 줄을 잡아당기면 ‘I love you(사랑해)!’ ‘Let’s play house(소꿉놀이하자)!’ 등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었다. 채티 캐시는 곧 수많은 소녀의 크리스마스 선물 희망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마텔은 매출 감소로 휘청거리는 56세의 바비 인형 브랜드를 구하기 위해 캐시 채티보다 더 수다스런 ‘헬로 바비(Hello Barbie)’를 출시했다. 말을 할 뿐 아니라 특정 사항을 강조하고 들을 줄도 아는 이 인형은 부모와 사이버 보안 옹호자, 정신의학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티가 잘 안 나지만 헬로 바비는 지금까지 제작된 장난감 중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제품에 속한다. 6~8세 아동을 겨냥한 이 인형은 짧은 메탈릭 재킷과 스키니 진 등 최신 유행 의상 속에 첨단 전자장치를 감추고 있다. 멋진 목걸이 속에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숨겨져 있어 쌍방향 대화와 스토리텔링, 게임 수행 등이 가능하다. 헬로 바비는 보통 바비 인형보다 다리가 약간 굵은데 그 속엔 충전 가능한 배터리 2개가 들어 있다. 등의 잘록한 허리 부분에는 충전용의 소형 USB 포트가 있다. 아이가 바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는 인형 허리 벨트의 버클을 누르고 말하면 된다.

채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모바일 앱을 다운받고 바비를 무선 네트워크에 연결시켜야 한다. 아이가 바비에게 말할 때는 둘의 대화 내용이 녹음돼 Wi-Fi를 통해 토이토크(ToyTalk)의 서버로 전송된다(토이토크는 바비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텔이 제휴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신생 업체다). 음성인식 소프트웨어가 소리를 문자로 전환하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아이의 말에서 핵심어를 추려 작가들이 쓴 8000가지의 대답 중 하나를 골라 말하게 한다.

게다가 바비는 모든 사항을 기억한다.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와 관련해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향후 대화에 활용한다. 일례로 아이가 바비에게 자신은 엄마가 2명이라고 말할 경우 바비는 나중에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너의 두 엄마는 어떤 점이 특별해? 함께하고 싶은 일이 뭐야?”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바비는 비밀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아이가 바비에게 한 대답에서 뽑아낸 핵심어는 ‘트렌드 버킷(trend bucket)’에 전달된다. 이를 통해 마텔과 토이토크는 그때그때 어린이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봄 시즌엔 제품을 어떻게 향상시켜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바비의 대답 창고에 어떤 말을 추가할 것인가 등이다. 만약 많은 어린이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언급한 사실을 회사 측이 파악할 경우 몇 주 후 바비는 그 가수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마텔의 대변인 미셸 치도니는 저장된 대화 내용이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은 없느냐는 뉴스위크의 질문에 “그 정보를 바비 라인의 다른 제품과 관련된 결정에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말은 그 데이터를 다른 장난감 라인에 이용할 가능성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토이토크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따르면 ‘제3의 판매자’가 이 데이터를 ‘연구·개발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아동 프라이버시 옹호자들은 큰 우려를 나타낸다.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년기를 위한 캠페인(CCFC)’의 창립 이사 수전 린은 지난해 3월 뉴스위크에 “이 인형은 헬로 바비가 아니라 ‘서베일런스(Surveillance, 감시 바비’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CCFC는 그 즈음 헬로 바비의 판매 중단을 주장하며 ‘헬 노 바비(Hell No Barbie)’ 운동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헬로 바비한테 말할 때는 그저 하나의 인형이 아니라 마텔에 말하는 것”이라고 린 이사는 말했다.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라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까 하는 생각밖에 없는 다국적 기업이다.”

바비에 첨단기술이 개입되면서 심리학자들은 아동에게 미칠 영향이나 사이버 보안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낸다. 사진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웹 시리즈 ‘바비의 드림하우스’의 한 장면.
치도니는 이런 비난이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헬로 바비는 감시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 카메라는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게다가 그 인형은 스위치를 눌러 작동시켜야만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또 우리는 모든 데이터를 부모들에게 전달한다.”

실제로 부모들은 계정에 접속해 자녀가 말한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토이토크의 접근을 거부할 수 있다. “자녀가 말한 내용 중에 우리 서버에 오르기를 원치 않는 부분이 있을 경우 휴지통에 넣고 비우면 몇 초 안에 모든 서버에서 그 내용이 지워진다”고 토이토크의 공동 창업자 겸 CEO 오렌 제이콥이 말했다. “부모들은 또 모든 내용을 삭제하고 ‘녹음’ 기능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부모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있다. 부모들이 토이토크에 정보의 보유를 허용할 경우 자녀가 바비와 나눈 대화의 오디오 파일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녹음 기록은 바비의 말과 아이의 대답으로 이뤄진 2행 연구로 돼 있다. 부모들은 녹음된 내용을 듣거나 삭제할 수 있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려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다. 또 아이 할머니에게 이메일로 보낼 수도 있다.

부모들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아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정신의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동·청소년 전문 정신과의 주디스 피오나 조셉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놀 때 하는 말을 바탕으로 마음속의 분노와 가족 생활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놀이 도중에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영화 장면의 영향이 드러날 수도 있다. “부모들은 녹음 내용을 통해 자녀에 관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CCFC는 또 바비의 지명도와 방대한 네트워크에 솔깃한 해커들이 데이터를 훔쳐갈 가능성을 우려한다. 사이버 범죄자들은 돈과 관련된 정보를 선호하지만 아동의 개인적 정보 등 돈벌이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정보에도 관심을 갖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말 해커들이 다양한 전자 장난감을 파는 중국 회사 V테크의 서버를 들쑤셔 놓았다. 그들은 부모 약 500만 명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 비밀번호, 집 주소를 빼냈으며 어린이 약 20만 명의 이름과 성별, 생일 정보를 훔쳐갔다. 게다가 그들이 빼낸 정보 중엔 어린이와 부모의 사진 수천 장과 그들 사이에 오간 문자 메시지와 대화 녹음 기록도 포함돼 있다.

토이토크는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고 말한다. 회사 측은 수집 데이터를 부모의 이메일 주소와 어린이의 대화 내용으로 최소화했으며 인형과 서버 간의 연결을 보안장치로 보호한다. 또 인형 안에 부모가 선택한 Wi-Fi 네트워크 외엔 아무것도 저장할 수 없도록 했다. “따라서 만약 아이가 인형을 잃어버리더라도 아이의 데이터는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제이콥 CEO는 말했다. 바비의 기술적 취약성 등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치도니는 “바비가 높은 지명도 때문에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비현실적으로 날씬한 몸매에 풍만한 가슴을 지닌 바비는 1959년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서 세상에 첫선을 보이자마자 어머니들의 분노를 샀다. 한 어머니는 “저런 인형이 어린 내 딸에게 영향을 주는 게 싫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세상은 여자 아이들에게 과도한 정신적 압박감을 안겨준다.” 바비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그를 둘러싼 비난도 거세졌다.

1992년 마텔은 헬로 바비의 초기 버전 ‘틴 토크 바비(Teen Talk Barbie)’를 출시했다. 이 인형은 목 뒤쪽의 단추를 누를 때마다 말을 했다. ‘옷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난 쇼핑이 좋아!’ 등의 표현은 여권주의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한편 ‘수학 시간은 힘들어’ 같은 말은 미국 대학여성협회(AAUW)의 분노를 샀다. “틴 토크 바비를 갖고 놀 확률이 가장 높은 10~12세 여아들이 자신의 수학 능력에 자신감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섀런 슈스터 당시 AAUW 회장은 말했다. AAUW는 마텔에 이 인형의 리콜을 요구했다. 회사 측은 그 표현을 바비의 말 창고에서 삭제하고 사과했다.

마텔은 최신 제품 헬로 바비가 여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 “마텔과 토이토크는 바비의 입에서 나오게 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매우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치도니는 말했다. “완전무결하다는 말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시각을 고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다.”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우려에 대한 마텔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는 어떤 것도 바꾸지 않았다”고 치도니는 말했다.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녀가 ‘놀라운 행동’을 했을 때 그 장면을 녹화해서 소셜 미디어에 올려 공유하는 습관을 가진 부모들은 그 말에 동의할 듯하다. 애플의 시리,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등 음성인식 서비스에 익숙한 부모들은 헬로 바비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스위크가 인터뷰한 정신과의사들은 많은 부모가 자녀의 솔직한 말을 듣기 위해 헬로 바비의 녹음 기능을 알려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 부모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고 정신과의사들은 경고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동·청소년 전문 정신과의사 케빈 캘리코 박사는 부모가 헬로 바비의 녹음 기능을 숨긴 사실을 자녀가 알게 될 경우 결과가 썩 좋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비밀이 들통났을 때 아이가 화를 낼 가능성이 있으며 의욕을 상실할 위험성도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인형에게 한 말을 엄마와 아빠가 온라인으로 확인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말을 가려서 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될지 모른다. 캘리코 박사는 아이가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LAUREN WALKER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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