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앓는 제주 부동산] 중국인 덕분에 중국인 때문에
[‘성장통’ 앓는 제주 부동산] 중국인 덕분에 중국인 때문에
최근 휴가차 제주도 함덕 서우봉해변을 찾은 직장인 최유대씨. 모처럼 만의 휴식에 가슴 부풀었던 최씨는 기대와 다른 제주도의 모습에 실망하고 말았다. 함덕의 유려한 풍경은 간 데 없고, 새로 들어선 4~5개의 고층 호텔이 분위기를 흐리고 있어서다. 한적하던 해안가는 인파로 북적였다. 카페를 찾아도 인근의 산만함에 마음이 쉽게 평온해지지 않았다. 최씨의 실망감은 드라이브를 즐기던 중에도 이어졌다. 제주공항과 서귀포시를 잇는 1135번 지방도(평화로). 도로와 접한 산 중턱에는 숲 대신 대단지 타운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섰다. 제주도로 이주한 중국인이 모여 사는 곳 중 하나다. 깍둑썰기한 듯한 건물에 빨간 지붕을 얹은 디자인도 건조하기 짝이 없다. 최씨가 자연을 찾아 시선을 뻗는 곳마다 호텔·리조트·콘도·빌라·펜션 등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들쑥날쑥 들어섰다. 무차별적인 부동산 개발이 ‘세계 7대 자연경관’인 제주도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제주도 부동산은 한창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부동산 투자의 문호를 개방했으나, 제도적 한계와 자연경관 훼손 등 과잉 투자의 문제점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어서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소유 건축물은 총 2575채(37만6703㎡). 2013년 8월 말에는 1055채에 불과했으나, 2년 4개월 만에 2.5배 늘었다. 이 중 중국인 소유는 74%(1873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05년 11만 5000명에 불과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2014년 300만 명에 육박하면서 숙박시설도 함께 늘어났다. 중국인 소유 건축물의 용도를 살펴보면 호텔·리조트·콘도 등 숙박시설이 62%나 된다. 공동주택(19%)이나 단독주택(11%) 비중도 30%에 달했다. 애월·함덕 등지의 중국 호텔에는 한글 간판이나 안내판을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인 전용 숙박시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대형 건축물은 제주도의 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2013~2014년만 해도 애월읍 등 북서쪽에 몰리던 중국인 투자는 제주도 제2공항이 들어설 성산·구좌읍 등 동부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성산읍은 섭지코지·성산일출봉·비자림 등이 있는 지역이다.
중국 자본의 ‘제주 굴기’는 거칠 것 없다. 백통신원㈜은 한라 산천연보호구역과 7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한라산 중턱에 55만㎡ 규모로 콘도 472실과 관광호텔 200실, 맥주 박물관을 짓는다. 녹지개발은 서귀포시 동홍동·토평동 일대에 153만㎡ 규모로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한다. 분마그룹은 이호해수욕장을 포함한 지역에 제주분마이호랜드 공사를 진행했다. 중국 자본이 이처럼 급속히 들어오는 이유는 2010년 2월 도입한 ‘부동산투자이민제’ 덕분이다. 정부와 제주도가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도입한 이 제도 때문에 자연보호지역을 제외한 제주도 거의 전 지역이 개발 사정권에 들었다. 특히 최저 투자 요건은 가구당 5억원에 불과하다.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입지와 풍광 좋은 곳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제주도가 택지 조성을 중단한 점도 중국 자본의 투자를 부추겼다. 제주도는 2007년에 제주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하면서 택지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제주도 인구가 앞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56만 명이었으며, 2025년에야 65만 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제주도의 예상과는 달리 2015년 말 기준 제주도 인구는 64만1355명(외국인 포함)으로 불과 8년 만에 8만 명 증가했다. 해마다 1만 명,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500가구씩 늘어난 셈이다. 제주도가 택지를 새로 조성하지 않은 채 투자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투자금은 자연스럽게 대형 수익형 부동산에 몰렸다.
제주도는 뒤늦게 2025년 인구 전망을 100만 명으로 고치고 신규 택지를 개발하겠다고 지난해 말 밝혔다. 제주도는 15개 지역을 시가화 예정용지로 정해 총량제로 관리하는 방안을 오는 6월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에 제주 제2공항과 신항 만을 구도심 및 다른 지역과 연계하는 도시발전방안을 세워 무분별한 개발의 이미지를 지운다는 계획이다. 또 제주도 전역이었던 투자이민 대상 지역을 관광지·관광단지로 고쳤다. 지역 경제가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와 중국 자본의 무차별적인 투자가 되레 제주도의 ‘상품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투기 자금 증가와 자연 훼손 가능성도 고려 대상이었다.
다만, 개발을 제약했다가 중국인 투자가 위축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있다. 중국 자본이 확 불어난 덕에 제주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고, 지역개발이 활발해진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지난해 제주도 공시지가 상승률은 19.3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4년 전 1억5000만원 하던 제주도청 인근 아파트는 최근 3억5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보일러 설치, 실내 인테리어 등 건축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15년 전 펜션 열풍 때보다도 매출이 2~3배는 늘었다고 한다. 제주도가 애월읍에 들어설 예정인 ‘차이나 비욘드힐 관광단지’ 개발 사업을 철회하기로 했다가 지난 2월 조건부 통과시킨 점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흥유개발이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은 봉성리 90만㎡ 부지에 콘도 634실(163개 동), 관광·레지던스호텔 544실, 상가, 아트홀 등 휴양·문화시설을 갖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내용이다. 사업비만 7200억원에 달한다. 제주도는 중국 자본의 부동산 투자를 대체하는 동시에 지역 발전을 이끌 대안을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국인 투자기업 현황’을 보면, 제주지역 내 외국인 투자 기업 176개 가운데 63%(111개)가 중국 자본이 투자한 기업이다. 업종별로는 부동산 임대업(43%)과 음식·숙박업(22.9%)이 전체의 65.9%를 차지했다. 건축과 농·축·임·어업, 문화오락서비스, 기타사업서비스는 모두 1%대에 그친다. 고태호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의 관광개발 투자는 전·후방 연계 효과가 높지만 효과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기존 사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투자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제주도 역시 최근 투자진흥지구의 최소 투자 규모를 2000만 달러로 대폭 높이기로 했다. 투자 정책의 무게추를 부동산 중심의 ‘양적 성장’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최첨단 산업 중심의 ‘질적 변화’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에서다. 현성호 제주도 투자정책과 과장은 “부동산은 물론 신재생 에너지·교육·의료 등 균형있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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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투자이민제’로 5억원이면 어디든 투자
중국 자본의 ‘제주 굴기’는 거칠 것 없다. 백통신원㈜은 한라 산천연보호구역과 7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한라산 중턱에 55만㎡ 규모로 콘도 472실과 관광호텔 200실, 맥주 박물관을 짓는다. 녹지개발은 서귀포시 동홍동·토평동 일대에 153만㎡ 규모로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한다. 분마그룹은 이호해수욕장을 포함한 지역에 제주분마이호랜드 공사를 진행했다. 중국 자본이 이처럼 급속히 들어오는 이유는 2010년 2월 도입한 ‘부동산투자이민제’ 덕분이다. 정부와 제주도가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도입한 이 제도 때문에 자연보호지역을 제외한 제주도 거의 전 지역이 개발 사정권에 들었다. 특히 최저 투자 요건은 가구당 5억원에 불과하다.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입지와 풍광 좋은 곳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제주도가 택지 조성을 중단한 점도 중국 자본의 투자를 부추겼다. 제주도는 2007년에 제주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하면서 택지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제주도 인구가 앞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56만 명이었으며, 2025년에야 65만 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제주도의 예상과는 달리 2015년 말 기준 제주도 인구는 64만1355명(외국인 포함)으로 불과 8년 만에 8만 명 증가했다. 해마다 1만 명, 4인 가족을 기준으로 2500가구씩 늘어난 셈이다. 제주도가 택지를 새로 조성하지 않은 채 투자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투자금은 자연스럽게 대형 수익형 부동산에 몰렸다.
제주도는 뒤늦게 2025년 인구 전망을 100만 명으로 고치고 신규 택지를 개발하겠다고 지난해 말 밝혔다. 제주도는 15개 지역을 시가화 예정용지로 정해 총량제로 관리하는 방안을 오는 6월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에 제주 제2공항과 신항 만을 구도심 및 다른 지역과 연계하는 도시발전방안을 세워 무분별한 개발의 이미지를 지운다는 계획이다. 또 제주도 전역이었던 투자이민 대상 지역을 관광지·관광단지로 고쳤다. 지역 경제가 중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와 중국 자본의 무차별적인 투자가 되레 제주도의 ‘상품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투기 자금 증가와 자연 훼손 가능성도 고려 대상이었다.
다만, 개발을 제약했다가 중국인 투자가 위축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있다. 중국 자본이 확 불어난 덕에 제주도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고, 지역개발이 활발해진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지난해 제주도 공시지가 상승률은 19.3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4년 전 1억5000만원 하던 제주도청 인근 아파트는 최근 3억5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보일러 설치, 실내 인테리어 등 건축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15년 전 펜션 열풍 때보다도 매출이 2~3배는 늘었다고 한다. 제주도가 애월읍에 들어설 예정인 ‘차이나 비욘드힐 관광단지’ 개발 사업을 철회하기로 했다가 지난 2월 조건부 통과시킨 점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흥유개발이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은 봉성리 90만㎡ 부지에 콘도 634실(163개 동), 관광·레지던스호텔 544실, 상가, 아트홀 등 휴양·문화시설을 갖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내용이다. 사업비만 7200억원에 달한다.
IT·BT 등 첨단산업 유치 추진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투자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제주도 역시 최근 투자진흥지구의 최소 투자 규모를 2000만 달러로 대폭 높이기로 했다. 투자 정책의 무게추를 부동산 중심의 ‘양적 성장’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최첨단 산업 중심의 ‘질적 변화’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에서다. 현성호 제주도 투자정책과 과장은 “부동산은 물론 신재생 에너지·교육·의료 등 균형있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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