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경영의 정석(1) 탑 독과 언더 독의 경쟁전략
김동호의 경영의 정석(1) 탑 독과 언더 독의 경쟁전략
기업을 경영하는 크고 작은 모든 기업가는 같은 업종에서 숙명적으로 라이벌을 만난다. 탑 독이 되면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언더 독으로 낙인 찍혀 루저의 길을 걸어야 한다. 개싸움은 거칠다. 처음엔 탐색전이 벌어진다. 그러다 결국 강한 개가 약한 개를 힘으로 압도한다. 승부는 물고 물리는 싸움 끝에 간발의 차로 결정된다. 패배한 개는 꼬리를 내리고 이긴 개는 의기양양해 한다. 때로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럼에도 상금을 휩쓸고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
패배한 개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긴 개가 패배한 개를 깔아뭉개고 위에서 힘으로 제압한다. 이같이 개싸움에서 이긴 개가 진 개를 깔아뭉개고 있는 모습에서 승자는 탑 독(Top dog), 패자는 언더 독(Under dog)으로 불린다. 스포츠에서도 승자나 강자를 탑 독으로 부르고, 패나자 약자를 언더 독으로 지칭하는 연원이 됐다. 탑 독과 언더 독의 실력 차가 때로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하지만 탑 독이 되면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언더 독으로 낙인 찍혀 루저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기업 간 경쟁도 마찬가지다. 더 냉정하게 보면 개싸움이나 스포츠 세계의 승부와 똑 같다. 싸움의 수단이 완력이 아니라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바뀔 뿐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크고 작은 모든 기업가는 같은 업종에서 숙명적으로 라이벌을 만난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이 둘의 사이는 탑 독과 언더 독의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과거 1990년대 삼성전자는 소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체급이 달라 함께 같은 경기장에 설 일이 없었다. 서로 상대가 아니라고 봤다. 소니는 세계 초일류 브랜드였고 삼성은 로컬 브랜드로 치부됐다. 같이 어울리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 이런 삼성전자는 언더 독의 길을 걸었다. 몸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탑 독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 진출해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일본 가전업계의 동향을 파악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탑 독의 장점과 강점을 흡수했다. 소니는 20여 개에 이르는 일본 가전업계의 탑 독이기도 했다. 파나소닉·샤프·NEC·도시바 등과 벌인 일본 내 가전업계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우위에 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워크맨이란 신제품의 개발이었다. 소니는 무섭게 질주하면서 텔레비전을 비롯한 모든 가전제품 분야에서 ‘세계 넘버 원’의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늘 이런 소니의 주변을 맴돌면서 벤치마킹을 했다. 소니의 문도 자주 두드렸다. 기술협력을 요청하기도 했고 소니와의 교류도 추진했다. 하지만 소니는 삼성전자를 교류 상대로 조차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이변이 일어났다. 소니를 필두로 자만에 빠져 잠만 자고 있던 일본 가전업계가 변방의 삼성전자에게 덜미를 잡히기 시작했다. 그해 10여 개 일본 주요 가전업계의 순이익 합계가 삼성전자 1개사의 순이익에 미치지 못하는 전자업계의 세기적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영원한 언더 독이던 삼성전자가 부단한 노력과 투자로 일본이 소홀히 하던 반도체 분야에서 반란을 일으킨 결과다. 새로운 탑 독의 등장 앞에 일본 전기전자 가전업계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일본의 패배자들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연구개발과 기술공유를 통해 대응에 나섰지만 근육을 키운 삼성전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이 와중에도 소니는 여전히 탑 독인양 ‘마이 웨이’를 했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이같이 한 번 탑 독이 영원한 탑 독의 자리를 누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세상사의 묘미가 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뒤 지금도 옛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CEO를 영입하고 미국식 지배구조를 갖추어 경영체제 효율화에 나섰지만 일본식 경영의 장점도 놓치는 미국식 경영도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기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힘겨운 탑 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글로벌 전기전자업계의 왕관을 썼지만 성장력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양 날개였던 반도체와 휴대전화가 일제히 중국 기업의 추격에 시달리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영원한 탑 독은 없다는 얘기다.
시장을 국내로 좁혀서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도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해외 전기전자제품 쇼에서 발생했던 삼성전자 세탁기 훼손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기업은 고의성을 놓고 볼썽사나운 공방을 벌일 만큼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드러냈다.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모든 제품군에서 두 회사는 탑 독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세탁기 이외에도 냉장고·에어컨·텔레비전은 물론이고 노트북 경쟁도 치열하다. 이중에서도 노트북은 민감하다. 미래의 고객이자 구매력이 있는 젊은 층에게 가장 강하게 기업 브랜드 가치를 입력시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기업은 노트북에 관해서는 자존심을 건 용호상박의 싸움을 해왔다. 가볍고 성능이 강력한 울트라 북에서의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의 노트북 9(노트북 나인)과 LG전자의 노트북 그램(gram)은 성능에서 두께와 무게로 승부처를 확대하고 다시 디자인으로 결정타를 날린다. 이 둘은 이런 요소들을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인다. 소비자로선 어느 것이 과연 더 좋은지 헷갈릴 만큼 제품의 진화가 빠르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격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지면 소비자 선택의 방정식은 더 복잡해진다. 게임이나 그래픽 디자인 같은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인용이라면 가격 요소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특성은 복잡하다. 성별에 따른 특성부터 다르다. 남성은 컴퓨터의 두뇌(CPU)가 펜티엄이냐 i 시리즈냐부터 하드 디스크가 HDD냐 SSD냐까지 구석구석 따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여성의 판단 기준은 명료하다. 가벼우냐,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느냐가 더 큰 구매 판단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성향을 갖고 있는 여성 소비자에게 노트북의 스펙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닐 수 있다. 이같이 복잡한 소비자 마음을 빼앗기 위해 라이벌 기업은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나선다. 특정 회사 제품이 무조건 좋다는 신뢰와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만년 언더 독 신세였던 기아차가 K시리즈를 내놓고 변신한 것은 이미지 변화의 좋은 사례다. K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 기아차는 무엇보다 디자인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무리 애를 써서 성능을 업그레이드해도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어려웠다. 기아차는 유명한 외국인 디자이너를 영입해 K시리즈의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최근 K7을 비롯해 기아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같이 탑 독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당겨야 한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는 소비자 설득이다. 우리 제품이 경쟁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탄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라이벌 제품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고 전반적으로 앞선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도 소비자에게 그런 사실이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를 위해 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과 방송이 가장 큰 매체였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이 보편화된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소비자 접근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급자 주도의 정보 제공은 힘을 쓰지 못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이것조차 소비자가 클릭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기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높을수록 새로운 브랜드가 파고들 틈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메일은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메일은 전통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만 높다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소비자가 수신 거절 버튼을 누르지만 않는다면 꾸준하게 소비자를 설득해 라이벌로부터 고객을 빼앗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스스로 회원가입을 하면 좋지만 요즘처럼 로그인할 곳이 많은 시대에 그런 고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소비자가 회원가입을 하게 해야 한다. 마치 세일즈맨이 문 안에 한 발을 들여놓는 고전적 방식과 같다. 회원으로 등록만 되면 제품과 서비스 정보를 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창출되는 측면이 강하다. 탑 독과 언더 독은 이런 구조에서 끊임없이 소비자의 선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서로 내가 개발한 제품이, 내가 만든 서비스가 더 좋다고 어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케팅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아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노력은 거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벽을 넘는 쪽이 탑 독의 자리를 지키게 된다.
탑 독은 수성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백조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선 끊임없이 발을 버둥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탑 독은 그럼에도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얼마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언더독의 운명이다. 한 번 언더 독은 영원히 언더 독으로 살란 법은 없다. 사례는 도처에 있다. 하이트 맥주와 카스 맥주의 탑 독 경쟁이 좋은 사례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크라운맥주는 카스맥주의 전신인 OB를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제품 브랜드가 약했다. 시장 점유율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과 경쟁사의 방심으로 하이트는 어느 날 탑 독의 위치를 넘보는 자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최근 두 브랜드는 개인 선호 차이에 따라 소비될 만큼 격차가 줄어들었다. 일본에서도 기린과 아사히의 탑 독 경쟁은 치열했다. 전통적으로 기린이 강했지만 아사히가 치고 올라오면서 불꽃 튀는 자리 바뀜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같이 탑 독의 자리는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더독의 대응전략이다. 탑 독은 헛발질만 안 하면 제품에 대한 신뢰도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경쟁우위를 지켜나가면서 얼마든지 패권을 누릴 수 있다. 반면 강력한 탑 독을 만나 열세에 놓여 있는 언더 독이 치고 올라가는 것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싸움에서 패배한 개는 깊은 상처까지 입고 주인에게 버림받을 가능성도 있다. 명예회복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면 패자부활전에 나갈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설령 너그러운 주인을 만나 권토중래의 기회를 갖더라도 피 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와신상담의 자세로 다시 챔피언 벨트를 겨냥해 도전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와신상담의 자세로 훈련하고 기량을 연마해야 한다. 하지만 훈련을 게을리 하고 체력을 키우지 못하면 패자부활전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역전의 기회는 수시로 찾아온다. 이때를 대비할 수 있는 언더 독으로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강자에게 배워야 한다. 어떤 강점이 라이벌을 탑 독으로 만들었는지 파악해야 상대방의 경쟁우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라이벌의 강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탑 독과 언더 독이 핵심 역량에서는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어느 제품이든 서비스든 탑 독과 언더 독의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잘못된 소비자 인식으로 언더 독 제품의 질이 더 좋은 데도 탑 독 제품이 더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언더 독은 파악해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차이가 없거나 더 좋은데도 탑 독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여전히 디테일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소니를 넘어설 때 제품의 질을 높인 것은 기본으로 하되 시장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이 진출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 먼저 깃발을 꼽거나 제품을 현지화 했다. 일본 전기전자 업체들이 과잉 성능을 갖춘 제품을 만들 때 시장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샤오미와 화웨이 같은 중국의 후발주자가 실용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 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과 같은 전략이다.
개싸움이나 스포츠에선 언더 독 효과가 있다. 열세에 있는 언더 독이 탑 독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바로 언더 독 효과다. 그러나 기업의 세계에는 언더 독 효과가 없다. 오로지 탑 독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냉혹한 승부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탑 독의 수성 노력은 강력하다. 한 번 기세를 잡은 탑 독은 좀처럼 고삐를 놓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다. 마케팅·재무·인적자원관리·경영전략을 비롯해 기업 경영의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중에서도 앞으로 탑 독 경쟁의 관건은 브랜드 파워라고 본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을 보자. 펩시는 오랫동안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탑 독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펩시는 패배자가 된 적도 없다. 펩시는 끊임없이 코카콜라에 도전하면서 좋은 승부를 펼쳐 스스로를 G2(주요 2개사)로 만드는 효과를 얻었다. 콜라에선 탑 독이 되지 못했지만 다른 음료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잡았다. 앞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탑 독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의 1등 브랜드에 대한 집착이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연세대를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동국대 석·박사과정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쓴 책으로『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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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개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긴 개가 패배한 개를 깔아뭉개고 위에서 힘으로 제압한다. 이같이 개싸움에서 이긴 개가 진 개를 깔아뭉개고 있는 모습에서 승자는 탑 독(Top dog), 패자는 언더 독(Under dog)으로 불린다. 스포츠에서도 승자나 강자를 탑 독으로 부르고, 패나자 약자를 언더 독으로 지칭하는 연원이 됐다. 탑 독과 언더 독의 실력 차가 때로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하지만 탑 독이 되면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언더 독으로 낙인 찍혀 루저의 길을 걸어야 한다.
기업 간 경쟁도 마찬가지다. 더 냉정하게 보면 개싸움이나 스포츠 세계의 승부와 똑 같다. 싸움의 수단이 완력이 아니라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바뀔 뿐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크고 작은 모든 기업가는 같은 업종에서 숙명적으로 라이벌을 만난다. 소니와 삼성전자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이 둘의 사이는 탑 독과 언더 독의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과거 1990년대 삼성전자는 소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체급이 달라 함께 같은 경기장에 설 일이 없었다. 서로 상대가 아니라고 봤다. 소니는 세계 초일류 브랜드였고 삼성은 로컬 브랜드로 치부됐다. 같이 어울리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 이런 삼성전자는 언더 독의 길을 걸었다. 몸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탑 독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 진출해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일본 가전업계의 동향을 파악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탑 독의 장점과 강점을 흡수했다.
탑 독 소니를 제친 언더 독 삼성전자
그러다 2001년 이변이 일어났다. 소니를 필두로 자만에 빠져 잠만 자고 있던 일본 가전업계가 변방의 삼성전자에게 덜미를 잡히기 시작했다. 그해 10여 개 일본 주요 가전업계의 순이익 합계가 삼성전자 1개사의 순이익에 미치지 못하는 전자업계의 세기적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영원한 언더 독이던 삼성전자가 부단한 노력과 투자로 일본이 소홀히 하던 반도체 분야에서 반란을 일으킨 결과다. 새로운 탑 독의 등장 앞에 일본 전기전자 가전업계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일본의 패배자들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연구개발과 기술공유를 통해 대응에 나섰지만 근육을 키운 삼성전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이 와중에도 소니는 여전히 탑 독인양 ‘마이 웨이’를 했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이같이 한 번 탑 독이 영원한 탑 독의 자리를 누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세상사의 묘미가 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뒤 지금도 옛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CEO를 영입하고 미국식 지배구조를 갖추어 경영체제 효율화에 나섰지만 일본식 경영의 장점도 놓치는 미국식 경영도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기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힘겨운 탑 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글로벌 전기전자업계의 왕관을 썼지만 성장력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양 날개였던 반도체와 휴대전화가 일제히 중국 기업의 추격에 시달리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영원한 탑 독은 없다는 얘기다.
시장을 국내로 좁혀서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도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해외 전기전자제품 쇼에서 발생했던 삼성전자 세탁기 훼손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기업은 고의성을 놓고 볼썽사나운 공방을 벌일 만큼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드러냈다. 이들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모든 제품군에서 두 회사는 탑 독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세탁기 이외에도 냉장고·에어컨·텔레비전은 물론이고 노트북 경쟁도 치열하다. 이중에서도 노트북은 민감하다. 미래의 고객이자 구매력이 있는 젊은 층에게 가장 강하게 기업 브랜드 가치를 입력시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기업은 노트북에 관해서는 자존심을 건 용호상박의 싸움을 해왔다. 가볍고 성능이 강력한 울트라 북에서의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의 노트북 9(노트북 나인)과 LG전자의 노트북 그램(gram)은 성능에서 두께와 무게로 승부처를 확대하고 다시 디자인으로 결정타를 날린다. 이 둘은 이런 요소들을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인다. 소비자로선 어느 것이 과연 더 좋은지 헷갈릴 만큼 제품의 진화가 빠르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격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지면 소비자 선택의 방정식은 더 복잡해진다. 게임이나 그래픽 디자인 같은 작업을 하지 않는 일반인용이라면 가격 요소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특성은 복잡하다. 성별에 따른 특성부터 다르다. 남성은 컴퓨터의 두뇌(CPU)가 펜티엄이냐 i 시리즈냐부터 하드 디스크가 HDD냐 SSD냐까지 구석구석 따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여성의 판단 기준은 명료하다. 가벼우냐,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느냐가 더 큰 구매 판단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성향을 갖고 있는 여성 소비자에게 노트북의 스펙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닐 수 있다. 이같이 복잡한 소비자 마음을 빼앗기 위해 라이벌 기업은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나선다. 특정 회사 제품이 무조건 좋다는 신뢰와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영원한 탑 독은 없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도 소비자에게 그런 사실이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를 위해 기업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과 방송이 가장 큰 매체였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이 보편화된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소비자 접근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급자 주도의 정보 제공은 힘을 쓰지 못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이것조차 소비자가 클릭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기존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높을수록 새로운 브랜드가 파고들 틈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메일은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메일은 전통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만 높다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소비자가 수신 거절 버튼을 누르지만 않는다면 꾸준하게 소비자를 설득해 라이벌로부터 고객을 빼앗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스스로 회원가입을 하면 좋지만 요즘처럼 로그인할 곳이 많은 시대에 그런 고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소비자가 회원가입을 하게 해야 한다. 마치 세일즈맨이 문 안에 한 발을 들여놓는 고전적 방식과 같다. 회원으로 등록만 되면 제품과 서비스 정보를 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창출되는 측면이 강하다. 탑 독과 언더 독은 이런 구조에서 끊임없이 소비자의 선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서로 내가 개발한 제품이, 내가 만든 서비스가 더 좋다고 어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케팅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아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노력은 거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벽을 넘는 쪽이 탑 독의 자리를 지키게 된다.
탑 독은 수성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백조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선 끊임없이 발을 버둥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탑 독은 그럼에도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얼마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언더독의 운명이다. 한 번 언더 독은 영원히 언더 독으로 살란 법은 없다. 사례는 도처에 있다. 하이트 맥주와 카스 맥주의 탑 독 경쟁이 좋은 사례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크라운맥주는 카스맥주의 전신인 OB를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제품 브랜드가 약했다. 시장 점유율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과 경쟁사의 방심으로 하이트는 어느 날 탑 독의 위치를 넘보는 자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최근 두 브랜드는 개인 선호 차이에 따라 소비될 만큼 격차가 줄어들었다. 일본에서도 기린과 아사히의 탑 독 경쟁은 치열했다. 전통적으로 기린이 강했지만 아사히가 치고 올라오면서 불꽃 튀는 자리 바뀜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메일 설득과 마케팅 중요해져
역전의 기회는 수시로 찾아온다. 이때를 대비할 수 있는 언더 독으로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강자에게 배워야 한다. 어떤 강점이 라이벌을 탑 독으로 만들었는지 파악해야 상대방의 경쟁우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라이벌의 강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탑 독과 언더 독이 핵심 역량에서는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어느 제품이든 서비스든 탑 독과 언더 독의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잘못된 소비자 인식으로 언더 독 제품의 질이 더 좋은 데도 탑 독 제품이 더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언더 독은 파악해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차이가 없거나 더 좋은데도 탑 독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여전히 디테일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소니를 넘어설 때 제품의 질을 높인 것은 기본으로 하되 시장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이 진출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 먼저 깃발을 꼽거나 제품을 현지화 했다. 일본 전기전자 업체들이 과잉 성능을 갖춘 제품을 만들 때 시장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샤오미와 화웨이 같은 중국의 후발주자가 실용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 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과 같은 전략이다.
개싸움이나 스포츠에선 언더 독 효과가 있다. 열세에 있는 언더 독이 탑 독을 이겨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바로 언더 독 효과다. 그러나 기업의 세계에는 언더 독 효과가 없다. 오로지 탑 독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냉혹한 승부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탑 독의 수성 노력은 강력하다. 한 번 기세를 잡은 탑 독은 좀처럼 고삐를 놓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다. 마케팅·재무·인적자원관리·경영전략을 비롯해 기업 경영의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중에서도 앞으로 탑 독 경쟁의 관건은 브랜드 파워라고 본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을 보자. 펩시는 오랫동안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탑 독의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펩시는 패배자가 된 적도 없다. 펩시는 끊임없이 코카콜라에 도전하면서 좋은 승부를 펼쳐 스스로를 G2(주요 2개사)로 만드는 효과를 얻었다. 콜라에선 탑 독이 되지 못했지만 다른 음료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잡았다. 앞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탑 독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의 1등 브랜드에 대한 집착이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연세대를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동국대 석·박사과정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쓴 책으로『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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