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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주총을 꺼리는 이유

CEO가 주총을 꺼리는 이유

해마다 3월의 금요일이 다가오면 한국 기업만의 독특한 현상인 ‘수퍼주총데이’가 열린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포함한 상장기업 대다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집중적으로 이 기간에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올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둘째 금요일에 삼성전자 등 50여 개사, 셋째 금요일에 333개사, 그리고 넷째 주에는 총 937개사가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주총이 몰리는 속내는 당연히 일사천리로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러자니 일반주주의 참여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여러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은 주총 참여 기업을 제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왜 금요일인가? 다음 날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아 주주총회 후 생길 수 있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인사발령을 연말이나 휴일 직전에 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이런 행태는 일종의 담합행위가 아닐까 싶다. 상법상으로 의결권 행사를 간소화 하기 위해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제도가 2010년부터 도입됐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회사가 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아직도 주주총회장에 나타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총회꾼’ 출현을 억제하려는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주총기념품을 없앤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기업의 실적이나 비전보다 주가에만 관심을 보이는 떠돌이 주주를 견제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CEO는 왜 주주총회를 좋아하지 않을까 ? 경영자의 관점에서 한번 짚어보자.



1. 그냥 싫다:
학생이 시험보기 싫은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시험의 묘한 긴장감과 결과에 대한 중압감을 주주총회에서 느낀다면 경영자 입장에서 굳이 반길 리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소집공고도 법정 기한 직전에야 하고, 의사봉 두드리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다.



2. 공개석상에서 벌거벗기는 것이 싫다:
공개석상에서 평가받는 걸 흔쾌히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좋은 면만을 보이기 위해 애쓰게 된다. 마치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 선 연인들처럼.



3. 주주의 돈은 좋지만 간섭은 싫다:
주주의 자본금은 회사를 윤택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지만 전주(錢主)의 질책을 흔쾌히 받아들이긴 어렵다. 경영을 잘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충분한 배당도 하고 주가도 부양하는 것은 좋지만 경영행위에 대해 간섭받고 관여당하는 것은 싫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싫다는 말처럼.



4. 1년 경영 성과를 몇 개의 숫자로 설명하기 싫다:
회사의 업무는 복잡다단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그걸 일정 규격으로 지정하고 제한된 도표 몇 장에다 나타내고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건 뭔가 아쉽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5. 언젠간 나도 해임될 행사라서 싫다: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고 그들 중에서 대표이사를 뽑는다. 중대 의결기구인 주주총회가 두려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모든 이유에도 나는 소망한다. 주주총회가 경영 성과를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중요 정책사항에 대한 의결을 행하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 이상호 참좋은레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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