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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납에 중독될라”

“꼭꼭 숨어라, 납에 중독될라”

익사이드 테크놀로지의 버논 공장은 지난해 봄 폐쇄됐지만 수십 년 동안의 납 오염으로 주변 지역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자아이는 신장에 종양이 생겼고 남자아이는 뇌암에 걸렸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암환자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납 오염을 둘러싼 최근 격전지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동남부에선 암을 마치 철따라 찾아오는 토네이도처럼 얘기한다. 이 집이나 다음 두 집, 어머니나 남편, 또는 사촌이 당했다고 말이다. 때로는 그들 모두가 암에 걸린다.

이곳 아이들은 조산아인 경우가 많다. 장애를 안고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다. 아멜리아 바예조의 자녀 6명은 전부 미숙아로 태어났다. 모두 호흡 장애를 앓는다. 동네에 그런 아이가 많다. 대다수는 히스패닉계 근로계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예조의 첫 다섯 아기는 비교적 수월하게 정상을 되찾았다. 그러나 막내 마이클은 중증 발달지체였다. 시각과 청각도 문제가 있다. 바예조는 “다섯 살인데 아직 기저귀를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거실엔 밝은 색 플라스틱 장난감이 벽에 세워져 있었다. 그중 일부는 마당에서 갖고 노는 야외용이다. 바예조는 아이들을 마당에서 놀리지 않는다고 했다. 마당 흙의 납 농도가 자그마치 1400ppm이다. “그들은 돈 버는 데만 신경 쓸 뿐 납 오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란 세계 최대의 납축전지(자동차 배터리) 제조·재활용 업체인 익사이드(Exide) 테크놀로지다.

지난해까지 인근 버논에 익사이드 납축전지 재활용 공장이 있었다. 버논은 부패와 오염으로 악명 높은 도시다. 캘리포니아 주 규제 당국은 버논의 익사이드 공장에 유해한 화학물질(납·비소·벤젠·1,3-부타디엔)을 대기에 방출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그리 엄중한 경고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계속 무시됐다. 결국 연방 법무부가 나서서 지난해 봄 그 공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한참 뒤늦은 조치였다. LA 카운티의 공중보건국장 대리 신시아 하딩은 “익사이드 공장의 반경 2.8㎞ 안에 있는 5000∼1만 가구가 중금속 오염에 영향 받을 가능성이 크며 그런 오염은 그곳에 살거나 일하는 주민 수만 명에게 지속적인 위험이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토양의 납 농도는 너무 높아 유해 폐기물 매립지 수준이다. 비소·벤젠·1,3-부타디엔은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다. 이스트 LA 일대의 주민은 수십 년 동안 그 물질에 노출됐다.

미시간 주 플린트의 상황과 흡사하다. 가난한 유색 인종은 납 중독으로 신음하지만 대다수 공무원은 뒷짐을 지는 상황을 말한다. 플린트 시는 디트로이트의 수도에서 물을 공급받다가 재작년 비용 절감을 위해 플린트 강으로 수원지를 바꿨다. 새로운 수원지 휴런 호수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완공하기 전 취해진 임시 조치였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겼다. 주민은 물맛과 냄새가 이상하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아이들의 혈중 납 수치가 크게 올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플린트 시는 지난해 10월 수원지를 다시 디트로이트의 수도로 바꿨다. 지난해 12월엔 방문했납 중독 확산에 따른 비상사태도 선포했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억7600만 달러를 버논의 정화 프로그램에 할당했다. 하지만 필요한 금액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버논의 익사이드 공장은 지난해 3월 폐쇄됐지만 문제가 끝난 건 결코 아니다. LA에서 오래 활동한 라디오 방송 기자 워렌 올니는 익사이드 스캔들을 “미국 최악의 환경오염 사건 중 하나”라고 불렀다. LA타임스의 익사이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한 지역 운동가는 “우린 펭귄보다 못한 신세”라고 말했다. “펭귄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없다. 우리 힘만으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운동가들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가 있다. 최근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예산 1억7600만 달러를 오염 정화 프로그램에 할당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이 이 지역을 좀 더 청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추정하는 비용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더구나 인적 비용은 수량화할 수 없다.

최근 이 싸움에 힐다 솔리스 전 노동부 장관이 합세했다. 그녀는 2014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나와 LA 카운티 슈퍼바이저가 됐다. 주민의 72%가 히스패닉계이며 일인당 소득이 1만8000달러인 가난한 지역이다. 솔리스 슈퍼바이저는 LA 카운티 예산 200만 달러를 들여 납 농도를 신속히 측정할 수 있는 특별 기구를 설립하고 주민의 고통을 주 정부에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 지역을 돌아보며 주민을 방문했다. 니콜라사 라미레즈는 앞마당에 텃밭이 있는 임시 주택에 산다. 그러나 그곳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먹을 수 없다. 토양의 납 농도가 1000ppm 이상이다. 캘리포니아 주가 정한 납 농도 최대 허용치는 80ppm이다. 라미레즈의 손녀 랄리는 신장에 종양이 있었다. 다행히 랄리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 미시간 주 플린트와 흡사한 상황이지만 솔리스 슈퍼바이저는 “플린트보다 이곳 사정이 더 나쁘다”고 말했다.

업계 단체인 배터리재활용업자협회는 북미에서 99%의 재활용률을 자랑한다. 그들은 연간 1억5000만 개의 배터리를 재활용함으로써 미국을 더 청정하고 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주장한다.

배터리 재활용은 지저분한 사업이다. 주된 목적이 이타주의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값 나가는 납을 회수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규제가 심해지자 재활용업체 중 다수는 멕시코로 사업장을 옮겼다. 2013년 매클래치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배터리 정련소는 40년 전 154개에서 14개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익사이드는 잇따른 반발에도 꾸준히 버텼다. 지난해 버논의 공장이 폐쇄된 후 최근엔 텍사스 주 프리스코의 공장이 또 문을 닫았다. LA타임스의 조사에 따르면 익사이드는 미국 전역에 오염과 건강에 해를 끼쳤으며 2010∼2013년 익사이드 사업장 7곳이 건강에 유해한 수준의 대기 납 농도와 연관됐다.
지난 1월 LA 포터 랜치의 가스 유출 청문회에 방독면을 쓰고 참가한 시위자들. 주 정부는 버논 오염은 무시하고 이곳 사태에 신속히 대응해 차별한다는 비난을 샀다.
익사이드는 2000년 GNB 테크놀로지를 인수하면서 버논 공장을 넘겨 받았다. 버논 공장은 1922년부터 납을 정련했다. 1949년 그 공장은 방출되는 납 128t을 포집했다. 1981년 캘리포니아 독성물질통제부(DTSC)는 그 공장의 조건부 가동을 승인했다. 현지 공영 라디오 방송 KPCC에 따르면 DTSC는 1999년 빗물 저류지 바닥의 침전물 납 농도가 40%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정화를 지시했다. “당국은 빗물 배수관을 통해 납 입자가 저류지에 유입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배수관은 오염된 물이 토양에 유출되도록 의도적으로 ‘구멍이 나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 후 10년 동안 버논 공장을 인수한 익사이드는 이전과 똑같이 공공 안전을 무시한 가동을 계속했다. 결국 규제 당국이 나섰다. 2013년 대기 질 분석에 따르면 익사이드는 LA 주민 11만 명의 암 발병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었다. 같은 해 말 25만2000명이 버논 공장의 중금속 방출로 ‘만성 장애’에 직면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에 따라 2013년 공장이 일시 폐쇄됐고 지난해 미국 연방 법무부의 지시로 영구 폐쇄됐다.

캘리포니아 중부 담당 연방검사 스테파니 요네쿠라는 “버논의 납 오염이 90년 이상 지속된 뒤에야 주민들이 숨 쉬게 됐다”고 말했다. 익사이드는 법원으로부터 정화 비용으로 5000만 달러를 버논 시당국에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익사이드를 상대로 주민 투쟁을 이끈 존 모레타는 “그들은 대기와 땅을 오염시키고는 그냥 떠나버린다”고 말했다. 평온하던 주택지가 창고와 공장으로 바뀐 버논을 두고 그는 “LA의 겨드랑이”라고 부른다. “캘리포니아 주의 역사에서 이처럼 공중 보건을 무시한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10월 말 LA 카운티 북부 산악 지대의 부유한 동네 포터 랜치에서 가스 저장소로 사용되던 옛 유정이 파손되면서 메탄 가스가 유출됐다.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선 폭발 이래 최악의 환경 재난이었다. 지난 2월 말 그 유정은 완전히 봉인됐지만 그동안 주변 환경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버논과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메탄 가스는 독성 물질이 아니다. 그로 인해 암에 걸린 사람도 없고 죽은 사람도 없다.

지난 1월 31일 LA타임스는 ‘두 가지 재난, 두 가지 대응’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브라운 주지사를 맹비난했다.
미시간 주 플린트 시당국은 지난 1월 수돗물에 의한 납 중독 사례가 늘자 초등학교에 생수를 공급했다.
부자 동네 포터 랜치의 가스 유출엔 신속히 대응했지만 버논의 익사이드 위기는 무시했다는 지적이었다. ‘이스트 LA를 포터 랜치와 똑같이 대하라’고 사설은 강조했다.

실제로 두 지역의 격차는 매우 크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지난 몇 달 동안 포터 랜치에 관한 기사를 10여 건 실었지만 버논의 익사이드 스캔들은 단 1건도 내지 않았다. 한 주민은 공청회에서 “버논은 너무 어두워 포터 랜치처럼 주목 받지 못하고, 또 충분히 어둡지 않아 미시간 주 플린트처럼 이목을 끌지 못한다”고 푸념했다.

마찬가지로 익사이드의 유해물질 유출을 막을 수 있었던 DTSC도 법적 처벌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 LA타임스 토니 바르보자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익사이드가 15년 이상 납부한 벌금은 86만9000달러에 불과했다. 대부분 납 오염의 위험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마지막 2년 동안 부과된 벌금이었다.

나는 솔리스 슈퍼바이저 일행과 버논의 익사이드 공장을 찾아갔다. 교외의 주택지에서 산업 지대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모두가 아는 LA인 말리부 해변이나 할리우드힐스의 호화 빌라와는 딴판인 ‘지옥의 용광로’다. 바로 인근에 초등학교가 여럿 있다. 이곳 주민은 산업의 유해한 흔적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난의 대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공장 둘레를 걸으며 벌어진 울타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보려 했다. 반대쪽에는 폐수로 보이는 저수지가 있었다. 공장 입구에서 사진을 찍자 경비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사실 볼 게 없었다. 독성 물질은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법이다.

이 지역은 수십 년 동안 공장의 안전하지 못한 가동으로 오염됐다. 익사이드는 남아 있는 폐기물에서 납을 추출하려고 공장 재가동을 원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장 재가동 허용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이곳 주민들 중에서 실제 역학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역학자는 많다. 그들은 암 호발구역(cancer clusters, 발병 사례가 집중된 곳), 생물 축적(bioaccumulation, 생물체에 특정 물질이 농축 축적되는 현상), 사례통제 연구(case-controlled studies, 환자군과 대조군의 비교 연구)에 관해 열심히 공부한다.

모레타에게 익사이드 위기가 끝났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거리를 걸어갈 때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 알렉산더 나자리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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