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경영의 정석(2) ‘완생’ 같은 ‘미생’ 조련술
김동호의 경영의 정석(2) ‘완생’ 같은 ‘미생’ 조련술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던 드라마 <미생> 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 온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조명했다. 이런 비정규직 근로자는 먼 곳에 있지않다. 지금 사무실을 둘러보라. 평균적으로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다. 웹툰에서 다시 드라마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던 <미생> 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온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조명했다. 축 처진 어깨, 기죽은 표정, 조심스러운 행동거지는 주인공 장그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비정규직은 근로자가 기본적으로 보장받는 권익의 상당수를 포기한 채 살고 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떨고,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동일한 임금은 언감생심이다. 기간제 근로자는 아무리 성실하고 유능하게 일해도 2년만 되면 보따리를 싸들고 총총히 회사를 떠난다.
이런 비정규직 근로자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사무실을 둘러보라. 평균적으로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다. 국내 임금근로자의 32.5%에 달하는 627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근로자는 급여와 근로조건이 달라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제도로 고착화된 결과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을 인적자원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해 둬선 안 된다. 구성원으로 포용해 적합한 일을 맡기고 성과에 따라 보상도 제대로 해줘야 할 때가 됐다.
비정규직 근로자 한 명이 떠나면 그 자리는 새로운 비정규직 근로자가 와서 채운다. 기업 경영자로선 인건비 절감에 따른 재무적 이익에 만족할 테니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 기업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가장 큰 손실은 시나브로 기업의 경쟁우위가 약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경영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에서 나온다. 이는 조직 경쟁력의 원천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온 조직 및 인적자원 분야 경영 구루(guru)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1950~60년대 인적자원 전문가들은 산업환경에서 조직의 경쟁력을 찾았다. 개별 기업은 산업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 고전적 산업조직론의 기본모형은 S-C-P로 요약된다. 산업환경(structure)에 따라 기업의 행동(conduct)이 결정되고 그 결과로서 기업경영의 성과(performance)가 도출된다는 얘기다. 이 모형은 이후 비약적 기술혁신으로 차츰 퇴조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산업환경의 영향이 크더라도 기업이 경쟁 우위와 핵심역량을 확보하면 경영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성과를 추구할 수 있다는 현대 경영이론이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이를 ‘경쟁전략’이란 키워드를 통해 구체화했고 제이 바니(Jay Barney)는 ‘비교우위’를 통해 설명했다.
이중에서도 바니가 구체화한 비교우위는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니는 VRIN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보유한 자원이 가치(value)가 있고 희소(rare)할 뿐만 아니라 모방불가적(inimmitable)이며 대체불가한(non substitutable)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자원에는 자본·땅·인력은 물론 기술과 정보가 포함된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적자원이다. 노동집약 시대에서 첨단지식을 가진 인재를 확보한 기업이 경쟁우위를 갖는 시대가 되면서다.
인적자원이 중요해지는 것은 갈수록 정보력과 전문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농경시대를 거쳐 제조업 중심의 산업혁명 시대까지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사회였다. 그러나 반도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이 3차 산업혁명을 불러왔다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의 활용이 본격화하는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가진 인적자원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적자원관리의 효율화가 기업 경영의 관건이 된 것이다.
이 시대에는 기업의 자원 가운데 자금이나 토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저금리·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사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돈은 은행에서 얼마든지 융통할 수 있고, 토지 역시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조차 공장의 집적화와 기계의 모듈화·로봇화가 이뤄지면서 좁은 공간에 첨단 시설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는 인적자본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성과에 관심을 쏟아온 기업 경영자는 비정규직 근로자 활용 전략에서 커다란 허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인적자원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에는 기업의 핵심역량은 인적자원에서 나온다. 그런데 정예 직원만 정규직으로 돌리고 주변 업무는 비정규직에 맡기는 방식이 지속되면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허점과 구멍이 발생할 수 있다. 가장 놓치지 쉬운 부분은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숨어 있는 A-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중요한 4차 산업시대에는 누구에게나 잠재적인 능력이 있다. 학력과 성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능력이나 성과 차이도 일반화할 수 없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가 정규직 형태에서 벗어난 고용형태로 일했던 사람이 많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같은 이들은 정규직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획기적인 혁신을 이뤘다. 이들은 물론 전형적인 비정규직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직이 반드시 탁월한 능력과 성과를 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 경영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구분하고 차별할 필요가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처럼 활용하고 오히려 정규직을 비정규직처럼 관리하는 방향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인적자원이 기업의 핵심 자원이라면 조직의 경쟁우위는 전체 구성원의 평균적인 역량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비정규직이 값싸다는 이유로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조직 전체의 인적자원 풀(pool)이 옅어지고 조직의 경쟁우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 맡은 일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직무에 비정규직을 장기간 투입했다고 치자. 조직은 생물처럼 살아 있어서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직무에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초기 산업 조직론에서 환경이 기업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부분이다. 비정규직 운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규직은 조직에 대해 말할 기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원천적으로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이 잠재적인 능력을 다 뽑아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비정규직은 형태와 기간이 다양하다. 크게는 한시적·단시간·비전형으로 나눠지는데 이들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비전형은 택배기사·골프장 캐디 같은 특수고용형태근로자가 많다. 용역이나 파견도 비전형으로 볼 수 있다. 단시간은 주로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형태로 종사하는 비정규직이다. 여기서는 물론 단시간·비전형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 직결되는 비정규직은 한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인적자원관리를 의미한다. 한시적 근로자 가운데서도 기간제 근로자가 초점이다.
기간제 근로자는 정규직과 가장 유사한 가까운 형태로 일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조직 목표를 향해 일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다. 장그래가 바로 그런 경우다. 장그래는 미생에서 완생이 되기 위해 온갖 차별을 참고 견뎠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국내 기업의 정규직 전환율은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장그래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 전환은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얘기다. 현재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관행으로는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기간제 근로자는 2년만 되면 싹뚝 잘려나가는 1회용 비정규직이라는 이미지만 고착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긍정적 기여가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도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인적자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많은 조직이라면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인재를 놓치지 않고 감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형태에 따른 조직 내부의 차별을 최대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업무 프로세스에 동등하게 참여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은 다양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두 명의 의견보다는 서너 명의 의견을 모이면 더 균형 잡힌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실패 확률을 낮추고 양질 결과를 이끌어 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일반적으로 직무태도와 조직몰입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일반화는 성급하다. 좁은 취업문 때문에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는 자신의 교육 및 기술수준보다 낮은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잠재적인 능력을 갖고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들은 임금과 근로조건에 차별을 받기 때문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태도 이론을 보면 이해할 만하다.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과 자신을 비교할 경우 차별을 받거나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태도가 부정적으로 바뀌기 쉽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근로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현대차 사내하청근로자는 비정규직 신분으로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와 사실상 똑같은 일을 해왔다. 하청이라면 직접 근로 지시를 해선 안 되지만 현대차는 이들을 현대차 직원처럼 활용했다.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 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승복한 현대차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사내하청 근로자 20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차별에 따른 소외감은 직무태도와 조직몰입을 약화시킨다. 또 스스로 조직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찾아나서는 조직시민행동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들을 조직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면 태도와 성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비정규직의 쓰임은 업종마다 다르다. 사무직의 경우 단순업무를 하는 자리에는 비정규직을 둘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금융회사에서는 비정규직이 부적합하다.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금융지식을 꿰고 있으려면 장기 근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돌리면 부작용이 많다. 업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갖출만 하면 퇴직하고 다시 새로 고용한다면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일지 몰라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시너지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비정규직 없는 조직을 추구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이 없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키울 수 있고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오뚜기·삼립식품·삼양제넥스·해태제과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에선 구성원 전체가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보상을 받는다. 조직 구성원 전체가 조직 목표를 향해 자발적으로 회사일을 창의적으로 찾아서 하는 풍토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일일이 직원들에게 지시를 안 해도 최적의 상태로 굴러갈 수 있다.
자발적인 비정규직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조업의 첨단화와 산업의 서비스화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제조업은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보스포럼에서는 앞으로 5년간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 대신 새로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남으로써 결국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의 특성이고 다른 하나의 비정규직 근로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서비스업은 특성상 정규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서비스를 요구할 때만 서비스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비정규직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인재 활용의 효용성을 좌우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글로벌화에 따른 단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비정규직이 차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면 외국에서도 인재가 몰려들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정규직은 비정규직처럼 대우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에 근거한 직무 부여와 성과 평가에 기반해 실적이 있으면 대우해줘야 한다. 구성원 전체가 공정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대우받는 기반이 갖춰져야 조직의 경쟁우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연세대를 나와 KDI(한국개발연구원) MBA와 동국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미생>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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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정규직 근로자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금 사무실을 둘러보라. 평균적으로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 근로자다. 국내 임금근로자의 32.5%에 달하는 627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근로자는 급여와 근로조건이 달라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제도로 고착화된 결과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을 인적자원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해 둬선 안 된다. 구성원으로 포용해 적합한 일을 맡기고 성과에 따라 보상도 제대로 해줘야 할 때가 됐다.
비정규직 근로자 한 명이 떠나면 그 자리는 새로운 비정규직 근로자가 와서 채운다. 기업 경영자로선 인건비 절감에 따른 재무적 이익에 만족할 테니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 기업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가장 큰 손실은 시나브로 기업의 경쟁우위가 약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경영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에서 나온다. 이는 조직 경쟁력의 원천을 밝히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온 조직 및 인적자원 분야 경영 구루(guru)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1950~60년대 인적자원 전문가들은 산업환경에서 조직의 경쟁력을 찾았다. 개별 기업은 산업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 고전적 산업조직론의 기본모형은 S-C-P로 요약된다. 산업환경(structure)에 따라 기업의 행동(conduct)이 결정되고 그 결과로서 기업경영의 성과(performance)가 도출된다는 얘기다. 이 모형은 이후 비약적 기술혁신으로 차츰 퇴조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산업환경의 영향이 크더라도 기업이 경쟁 우위와 핵심역량을 확보하면 경영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성과를 추구할 수 있다는 현대 경영이론이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이를 ‘경쟁전략’이란 키워드를 통해 구체화했고 제이 바니(Jay Barney)는 ‘비교우위’를 통해 설명했다.
이중에서도 바니가 구체화한 비교우위는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니는 VRIN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보유한 자원이 가치(value)가 있고 희소(rare)할 뿐만 아니라 모방불가적(inimmitable)이며 대체불가한(non substitutable)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자원에는 자본·땅·인력은 물론 기술과 정보가 포함된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적자원이다. 노동집약 시대에서 첨단지식을 가진 인재를 확보한 기업이 경쟁우위를 갖는 시대가 되면서다.
인적자원이 중요해지는 것은 갈수록 정보력과 전문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농경시대를 거쳐 제조업 중심의 산업혁명 시대까지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사회였다. 그러나 반도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이 3차 산업혁명을 불러왔다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의 활용이 본격화하는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가진 인적자원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적자원관리의 효율화가 기업 경영의 관건이 된 것이다.
이 시대에는 기업의 자원 가운데 자금이나 토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저금리·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사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돈은 은행에서 얼마든지 융통할 수 있고, 토지 역시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으로 제조업조차 공장의 집적화와 기계의 모듈화·로봇화가 이뤄지면서 좁은 공간에 첨단 시설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는 인적자본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성과에 관심을 쏟아온 기업 경영자는 비정규직 근로자 활용 전략에서 커다란 허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비정규직 가운데 숨어 있는 A-플레이어를 찾아라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가 정규직 형태에서 벗어난 고용형태로 일했던 사람이 많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같은 이들은 정규직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획기적인 혁신을 이뤘다. 이들은 물론 전형적인 비정규직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직이 반드시 탁월한 능력과 성과를 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 경영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구분하고 차별할 필요가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처럼 활용하고 오히려 정규직을 비정규직처럼 관리하는 방향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인적자원이 기업의 핵심 자원이라면 조직의 경쟁우위는 전체 구성원의 평균적인 역량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비정규직이 값싸다는 이유로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조직 전체의 인적자원 풀(pool)이 옅어지고 조직의 경쟁우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이 맡은 일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직무에 비정규직을 장기간 투입했다고 치자. 조직은 생물처럼 살아 있어서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직무에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초기 산업 조직론에서 환경이 기업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부분이다. 비정규직 운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규직은 조직에 대해 말할 기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원천적으로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이 잠재적인 능력을 다 뽑아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비정규직은 형태와 기간이 다양하다. 크게는 한시적·단시간·비전형으로 나눠지는데 이들은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비전형은 택배기사·골프장 캐디 같은 특수고용형태근로자가 많다. 용역이나 파견도 비전형으로 볼 수 있다. 단시간은 주로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형태로 종사하는 비정규직이다. 여기서는 물론 단시간·비전형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 직결되는 비정규직은 한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인적자원관리를 의미한다. 한시적 근로자 가운데서도 기간제 근로자가 초점이다.
기간제 근로자는 정규직과 가장 유사한 가까운 형태로 일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조직 목표를 향해 일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다. 장그래가 바로 그런 경우다. 장그래는 미생에서 완생이 되기 위해 온갖 차별을 참고 견뎠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국내 기업의 정규직 전환율은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장그래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 전환은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얘기다. 현재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관행으로는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기간제 근로자는 2년만 되면 싹뚝 잘려나가는 1회용 비정규직이라는 이미지만 고착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긍정적 기여가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도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인적자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많은 조직이라면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인재를 놓치지 않고 감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형태에 따른 조직 내부의 차별을 최대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업무 프로세스에 동등하게 참여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은 다양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두 명의 의견보다는 서너 명의 의견을 모이면 더 균형 잡힌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실패 확률을 낮추고 양질 결과를 이끌어 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고용형태에 따른 조직 내부의 차별을 완화해야
비정규직 근로자의 태도 이론을 보면 이해할 만하다.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과 자신을 비교할 경우 차별을 받거나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태도가 부정적으로 바뀌기 쉽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근로자가 바로 그런 경우다. 현대차 사내하청근로자는 비정규직 신분으로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와 사실상 똑같은 일을 해왔다. 하청이라면 직접 근로 지시를 해선 안 되지만 현대차는 이들을 현대차 직원처럼 활용했다.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 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승복한 현대차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사내하청 근로자 20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의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차별에 따른 소외감은 직무태도와 조직몰입을 약화시킨다. 또 스스로 조직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찾아나서는 조직시민행동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들을 조직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면 태도와 성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비정규직의 쓰임은 업종마다 다르다. 사무직의 경우 단순업무를 하는 자리에는 비정규직을 둘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금융회사에서는 비정규직이 부적합하다.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금융지식을 꿰고 있으려면 장기 근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돌리면 부작용이 많다. 업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갖출만 하면 퇴직하고 다시 새로 고용한다면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일지 몰라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시너지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비정규직 없는 조직을 추구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이 없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를 키울 수 있고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오뚜기·삼립식품·삼양제넥스·해태제과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에선 구성원 전체가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보상을 받는다. 조직 구성원 전체가 조직 목표를 향해 자발적으로 회사일을 창의적으로 찾아서 하는 풍토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일일이 직원들에게 지시를 안 해도 최적의 상태로 굴러갈 수 있다.
자발적인 비정규직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조업의 첨단화와 산업의 서비스화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제조업은 더 이상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보스포럼에서는 앞으로 5년간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 대신 새로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남으로써 결국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왔다.
비정규직 활용문제가 인재 활용의 효용성 좌우한다
비정규직이 차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면 외국에서도 인재가 몰려들 가능성이 커진다. 한편 정규직은 비정규직처럼 대우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에 근거한 직무 부여와 성과 평가에 기반해 실적이 있으면 대우해줘야 한다. 구성원 전체가 공정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대우받는 기반이 갖춰져야 조직의 경쟁우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연세대를 나와 KDI(한국개발연구원) MBA와 동국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미생>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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