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리더 | 소진욱 미래에셋자산운용 베트남 사무소장] 이젠 ‘베트남 트라우마’ 떨칠 때
[자본시장의 리더 | 소진욱 미래에셋자산운용 베트남 사무소장] 이젠 ‘베트남 트라우마’ 떨칠 때
미래에셋자산운용은 5월 초 ‘미래에셋 베트남펀드’를 출시했다. 미래에셋운용이 내놓은 최초의 순수 주식형 베트남 펀드다. 현지 법인을 설치한 건 10여 년 전이지만 상품 출시가 늦은 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2008년 이후 베트남 증시를 부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월 상황이 바뀌었다. 박 회장은 당시 회의에서 베트남에 적극 진출하라는 주문을 했다. 미래에셋운용은 발 빠르게 상품을 출시했다. 펀드 운용은 사내 최고의 베트남 전문가인 소진욱 베트남 사무소장이 총괄한다. 그는 2006년부터 10년 째 베트남에서 근무 중이다. 소 사무소장은 “베트남은 고성장의 길목에 들어섰다”며 “10년 전 한국 투자자가 베트남에서 큰 손실을 입어 생긴 트라우마를 떨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년 전과 지금의 베트남은 어떻게 다른가.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 베트남은 내부적 한계로 비틀거렸다. 이젠 그런 혼란이 수습되며 잠재력이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핵심은 중국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국이 생산한 저가 제품을 미국 등 선진국이 사주던 경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가 필요하다. 인구 6억 명이 넘는 아세안은 좋은 대안이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이 최적의 장소다.”
다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국가도 있는데.
“미얀마는 최근 개혁 개방에 나서고 있지만 수십 년 간 군사독재를 겪어 경제 구조가 취약하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경제구조는 아직 미약하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브루나이가 생산 기지를 맡긴 어렵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 가까이 되고 인구도 각각 2억5000만, 4000만 명 정도에 산업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 기반이라 외국 기업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소수의 화교가 경제를 장악해 정치·사회적 갈등이 크다. 태국도 반정부시위 등 정치 불안이 여전하다. 필리핀은 남부 지역에 이슬람 반군이 있고 도심에선 총기 살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베트남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베트남은 개혁 개방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인건비가 낮다. 젊은 인구 비중도 매우 크다. 무엇보다 국가 저변에 흐르는 문화가 유교다. 그러다 보니 교육열이 높고 현세에서 잘 살고자 하는 욕심이 많다. 베트남은 한국 못지 않게 나이를 따지는 곳이다. 외국인이라도 나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인정하고 따른다. 한국 기업이 적응하기 쉽다.”
지난 10년 간 베트남 경제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2000년대 중반 베트남에 외국계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경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도 생산 설비마저도 베트남으로 수입해야 했다. 이와 달리 외국계 자금이 유입되자 국내 물가는 오르고 사치재 수입이 급증했다. 짧은 시간에 무역 적자가 늘어났다. 베트남 통화인 동화 가치가 급락하고 물가도 20% 이상 급등했다. 시장경제에 익숙지 못한 베트남 정부는 악순환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관료들은 돈을 챙겼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악순환의 고리가 2011년부터 끊겼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다. 수출이 늘면서 무역수지가 2012년 약 20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2014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 시기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며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 국가가 경상적자를 내던 시기다. 베트남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다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록 지난해엔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수출 규모가 늘면서 원자재 수입이 늘어 벌어진 호황형 적자다. 올해 1분기 다시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 투자자는 베트남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나.
“그렇다. 지난 2~3년 간 베트남 경제가 안정기였다면 이젠 성장기다. 지난해 베트남 GDP 성장률 6.7%는 시장의 예측치를 넘어선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베트남에 대한 수요가 높다. 베트남 증시에 대한 투자 수요도 늘고 있다. 아직은 베트남 국제신용등급이 투자 적격 단계인 BBB-보다 3단계 아래인 BB-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지속돼 2~3년 안에 투자적격 등급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때는 증시 상황이 지금과 천양지차가 될 것이다. 외국인 자금뿐 아니라 국민연금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기관도 투자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보다 저평가된 지금이 베트남 투자의 적기다. 그런 생각으로 베트남 펀드를 출시했다.”
미래에셋베트남펀드는 어디에 투자하나.
“대형주 위주로 자산을 담고 있다. 신흥국은 재정적으로 건전한 대기업에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주가로 봐도 베트남 대형주가 지난 몇 년 간 상승세다. 향후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베트남 대형주엔 어떤 게 있나.
“베트남 시가총액 1위는 ‘비나밀크(베트남 유업공사)’다. 시가 총액이 5조원 정도다. 우유 회사라고 얕봐선 곤란하다. 베트남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사실상 독과점 기업이다. 현지 마트에 가면 비나밀크 제품이 대부분이다. 몇 년 전까지는 외국계 기업 제품이 많았는데 비나밀크가 유통을 장악하며 시장이 바뀌었다. 매년 매출이 15~20%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젊은층 비율이 높아 우유 소비량도 상당하다. 2위는 베트남의 외환은행 격인 ‘비엣콤뱅크’다. 베트남 5대 국영은행 중 하나로 다른 곳에 비해 먼저 구조조정을 해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좋다. 3위는 부동산 개발 업체 ‘빈콤’이다. 하노이와 호치민 내 알짜 부지를 사들이고 있다. 현지 부동산 경기가 올해부터 활황세다. 빈콤은 과거 상가 위주로 투자하다 요즘은 대단위 주택단지 건설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주의할 점은 없나.
“물론 위험 요소도 아직 많다. 베트남 경제는 해외무역 비중이 전체 GDP의 80%를 넘는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 변화에 따라 경제가 휘청댄다. 1분기에도 세계 경제가 안 좋자 성장률이 하락했다. 다만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중국은 위험이자 기회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베트남 사회엔 반중 정서가 생각보다 강하다. 중국과 지역적으로 연결돼 있는 베트남으로선 국가적 갈등이 곧바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미국과 가까워질 기회가 된다. 미국이 베트남을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을 교두보로 중시하고 있다. 최근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정도로 가깝다. 올해 초 정권 수뇌부가 교체됐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지난 10년간 내정을 책임졌던 응우옌 떤 중 총리가 4월 퇴임했다.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을 제외하곤 총리와 국가주석, 국회의장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정책 변화에 따라 과거 정부 지원을 받던 기업 상황에 변화가 올 수 있다. 기후도 근심거리다. 엘니뇨 현상으로 올해 베트남은 가뭄이 심하다. 작황이 안좋아져 지난 1분기 1차 산업이 15년 만에 역성장했다. 베트남의 장기 성장동력인 공장 생산 제조업은 탄탄해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체 경제지표가 낮아져 단기적으로 외국인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이 최근 베트남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5%에서 6.2%로 하향 조정했다.”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0년 전과 지금의 베트남은 어떻게 다른가.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 베트남은 내부적 한계로 비틀거렸다. 이젠 그런 혼란이 수습되며 잠재력이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핵심은 중국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국이 생산한 저가 제품을 미국 등 선진국이 사주던 경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가 필요하다. 인구 6억 명이 넘는 아세안은 좋은 대안이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이 최적의 장소다.”
다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국가도 있는데.
“미얀마는 최근 개혁 개방에 나서고 있지만 수십 년 간 군사독재를 겪어 경제 구조가 취약하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경제구조는 아직 미약하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브루나이가 생산 기지를 맡긴 어렵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 가까이 되고 인구도 각각 2억5000만, 4000만 명 정도에 산업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 기반이라 외국 기업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소수의 화교가 경제를 장악해 정치·사회적 갈등이 크다. 태국도 반정부시위 등 정치 불안이 여전하다. 필리핀은 남부 지역에 이슬람 반군이 있고 도심에선 총기 살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베트남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베트남은 개혁 개방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인건비가 낮다. 젊은 인구 비중도 매우 크다. 무엇보다 국가 저변에 흐르는 문화가 유교다. 그러다 보니 교육열이 높고 현세에서 잘 살고자 하는 욕심이 많다. 베트남은 한국 못지 않게 나이를 따지는 곳이다. 외국인이라도 나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인정하고 따른다. 한국 기업이 적응하기 쉽다.”
지난 10년 간 베트남 경제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2000년대 중반 베트남에 외국계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경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도 생산 설비마저도 베트남으로 수입해야 했다. 이와 달리 외국계 자금이 유입되자 국내 물가는 오르고 사치재 수입이 급증했다. 짧은 시간에 무역 적자가 늘어났다. 베트남 통화인 동화 가치가 급락하고 물가도 20% 이상 급등했다. 시장경제에 익숙지 못한 베트남 정부는 악순환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관료들은 돈을 챙겼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악순환의 고리가 2011년부터 끊겼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다. 수출이 늘면서 무역수지가 2012년 약 20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2014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 시기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며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 국가가 경상적자를 내던 시기다. 베트남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다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록 지난해엔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수출 규모가 늘면서 원자재 수입이 늘어 벌어진 호황형 적자다. 올해 1분기 다시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 투자자는 베트남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나.
“그렇다. 지난 2~3년 간 베트남 경제가 안정기였다면 이젠 성장기다. 지난해 베트남 GDP 성장률 6.7%는 시장의 예측치를 넘어선 것이다. 글로벌 기업의 베트남에 대한 수요가 높다. 베트남 증시에 대한 투자 수요도 늘고 있다. 아직은 베트남 국제신용등급이 투자 적격 단계인 BBB-보다 3단계 아래인 BB-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지속돼 2~3년 안에 투자적격 등급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때는 증시 상황이 지금과 천양지차가 될 것이다. 외국인 자금뿐 아니라 국민연금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기관도 투자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보다 저평가된 지금이 베트남 투자의 적기다. 그런 생각으로 베트남 펀드를 출시했다.”
미래에셋베트남펀드는 어디에 투자하나.
“대형주 위주로 자산을 담고 있다. 신흥국은 재정적으로 건전한 대기업에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주가로 봐도 베트남 대형주가 지난 몇 년 간 상승세다. 향후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베트남 대형주엔 어떤 게 있나.
“베트남 시가총액 1위는 ‘비나밀크(베트남 유업공사)’다. 시가 총액이 5조원 정도다. 우유 회사라고 얕봐선 곤란하다. 베트남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사실상 독과점 기업이다. 현지 마트에 가면 비나밀크 제품이 대부분이다. 몇 년 전까지는 외국계 기업 제품이 많았는데 비나밀크가 유통을 장악하며 시장이 바뀌었다. 매년 매출이 15~20%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은 젊은층 비율이 높아 우유 소비량도 상당하다. 2위는 베트남의 외환은행 격인 ‘비엣콤뱅크’다. 베트남 5대 국영은행 중 하나로 다른 곳에 비해 먼저 구조조정을 해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좋다. 3위는 부동산 개발 업체 ‘빈콤’이다. 하노이와 호치민 내 알짜 부지를 사들이고 있다. 현지 부동산 경기가 올해부터 활황세다. 빈콤은 과거 상가 위주로 투자하다 요즘은 대단위 주택단지 건설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주의할 점은 없나.
“물론 위험 요소도 아직 많다. 베트남 경제는 해외무역 비중이 전체 GDP의 80%를 넘는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 변화에 따라 경제가 휘청댄다. 1분기에도 세계 경제가 안 좋자 성장률이 하락했다. 다만 플러스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중국은 위험이자 기회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베트남 사회엔 반중 정서가 생각보다 강하다. 중국과 지역적으로 연결돼 있는 베트남으로선 국가적 갈등이 곧바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미국과 가까워질 기회가 된다. 미국이 베트남을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을 교두보로 중시하고 있다. 최근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할 정도로 가깝다. 올해 초 정권 수뇌부가 교체됐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지난 10년간 내정을 책임졌던 응우옌 떤 중 총리가 4월 퇴임했다.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을 제외하곤 총리와 국가주석, 국회의장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정책 변화에 따라 과거 정부 지원을 받던 기업 상황에 변화가 올 수 있다. 기후도 근심거리다. 엘니뇨 현상으로 올해 베트남은 가뭄이 심하다. 작황이 안좋아져 지난 1분기 1차 산업이 15년 만에 역성장했다. 베트남의 장기 성장동력인 공장 생산 제조업은 탄탄해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체 경제지표가 낮아져 단기적으로 외국인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이 최근 베트남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5%에서 6.2%로 하향 조정했다.”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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