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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망하게 하는 저금리 쇼크, 일본의 대응법을 반면교사 삼자

보험사 망하게 하는 저금리 쇼크, 일본의 대응법을 반면교사 삼자

보험업계의 생존이 달린 저금리는 보험사를 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십수년 째이지만 여전히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계 보험업계가 저금리라는 늪에 허우적대고 있다. 저금리 상황이 연장되면 보험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될 거란 공포 때문이다. 사진은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하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기자회견을 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직원들.
“저금리는 금융산업에 많은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생명보험사들은 금리가 1%인 세계에 살고 있지만 3~6%에 달하는 이자를 줘야 하는 부채를 끌고 가고 있다.”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5월 미국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한 말이다. 지난 6월엔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직후 메트라이프·푸르덴셜·링컨내셔널 등 미국 보험사의 주가가 10%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브렉시트로 저금리 상황이 연장되면 보험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될 거란 공포 때문이었다. 전세계 보험 업계가 저금리라는 늪에 허우적대고 있다. 금리가 하락하면 보험사는 자산운용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보험금을 내주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따라서 보험 상품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고객의 수요는 줄어든다. 더 치명적인 건 투자 수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저금리 상황에서는 보험사가 자산운용으로 올릴 수 있는 투자수익은 감소하는데 비해 기존에 판매된 상품, 특히 저축성 보험에 내줘야할 보험금은 그만큼 줄지 않는다. 보험사 중에서도 장기 저축성 보험 비중이 큰 생명보험사의 수익성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 크게 악화된다. 국내 보험업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 때문에 보험사가 비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IFRS4 2단계 도입으로 인한 충격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보험업계의 생존이 달린 진짜 위험은 IFRS가 아니라 저금리다. 저금리는 보험사를 망하게 만든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건 지난 7월 보험 최고경영자(CEO) 조찬회에서 발표된 보험연구원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국내 생명보험 계약의 43%(적립금 기준)는 확정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약속한 확정금리가 5% 이상인 계약의 비중도 31%가 넘는다. 보험사가 2000년대 초반까지 판매한 고금리 상품 때문이다. 금리확정형 상품은 이율이 고정돼있기 때문에 시장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상관없이 고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계약이 끝나지 않는 한 보험사엔 계속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보험업계 전체의 운용자산 투자수익률은 연 4.3%. 고객에게 적립해줘야 하는 적립이율(4.6%)에도 못 미치는 ‘금리 역마진’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운용자산의 규모(652조원)가 적립금 부채(565조 원)보다 크다보니 역마진에도 불구하고 투자이익률이 마이너스는 아니다. 그러나 보험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시장금리가 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했을 때 2017년부터는 본격적인 이자율 차이로 인한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로 인해 2020년이면 보험업계 전체의 수익의 2015년과 비교해 40%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런 전망이 심상치 않은 건 일본의 20년 전과 그대로 닮아서다. 일본에서는 버블 붕괴기인 1997년~2001년 9개 보험사(생명보험사 7곳, 손해보험사 2곳)가 파산했다.

저금리 탓이었다. 일본의 민간 생보사는 1980년대에 최고 연 6%대의 예정이율을 내걸고 보험을 판매했다. 당시 일본 보험 시장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간이보험(우체국보험)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민간 생보사는 간이보험과의 경쟁을 위해 예정이율을 높여 고객을 끌어 모았다. 버블의 절정기였던 1990년 4월 일본 생보사의 예정이율은 최고 6.25%까지 상승했다.버블은 꺼졌고 경기는 빠르게 침체됐다. 일본 정부도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생보사도 신규계약에 적용하는 예정이율을 낮추기 시작했고 1999년엔 2.0%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미 높은 예정이율로 판매해놓은 장기 확정형 보험상품의 만기가 속속 돌아왔고 고객에게 지급해야할 보험금 지출은 늘어갔다. 경기침체에 따른 주가하락으로 수익의 원천이 되는 유가증권 운용 수익률은 크게 떨어졌다. 자산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투자해뒀던 해외 부동산 가격도 급락했다. 1995년 일본의 기준금리는 0.5%까지 떨어졌다.

보험금 지출 규모가 자산운용 수익을 초과하는 역마진으로 적자가 발생하는 생보사가 속출했다. 1997년 4월, 버블 붕괴 전 공격적으로 영업을 해왔던 닛산생명이 가장 먼저 대장성으로부터 업무정지 명령을 받았다. 이후 총 7개 생보사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업무정지를 받거나 자발적인 법정관리 신청으로 파산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보험 계약자의 손실도 불가피했다. 계약 자체는 다른 보험사로 이전되긴 했지만 예정이율 인하, 책임준비금 삭감, 조기해약 공제율 인상과 같은 부담을 계약자가 감수해야했다. 계약 당시엔 6%대였던 예정이율이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수익구조 다변화 시급해
파산을 면한 일본의 보험사는 살아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다이렉트 마케팅, 텔레마케팅 등 판매채널의 효율화로 사업비를 절감하고, 보증이율을 인하했다. 또 금리 영향이 적은 보장성보험판매 비중을 크게 늘렸다. 저축성보험을 판매하더라도 확정금리를 지급하는 상품은 피하고 변액보험 위주로 확대했다. 수익구조도 다변화했다. 일본 정부는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2003년엔 계약조건 변경제도를 도입했다. 보험업의 지속이 곤란한 정도의 심각한 경영위기 시엔 보험금액을 삭감하거나 예정이율을 인하하는 등 계약 조약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저금리 적응에 실패한 사례는 또 나타났다.

중견 생보사인 야마토(大和)생명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10월 파산했다. 저금리 타개를 위해 파생상품 등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댄 탓이었다. 보험연구원 조재린 연구위원은 “일본의 생명보험업계는 20년 동안 재무건전성을 개선해서 2차 역마진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국내 보험업계에서 저금리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십수년 째다. 실제 최근 들어 일부 생보사가 저금리로 인한 부담이 큰 저축성보험 판매를 속속 중단하거나, 자산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채권 투자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생보업계는 올 초까지도 2.7~2.8%대 최저보증이율을 내건 양로보험이 인기리에 판매됐다. 그동안 국내 보험사가 워낙 보수적인 운용을 해온 터라 대체투자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도 하다. 아직까진 저금리가 심화되는 데 비해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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