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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100대 기업에서 탈락한 25개사] 조선·중공업·해운 천문학적 적자행진

[시가총액 100대 기업에서 탈락한 25개사] 조선·중공업·해운 천문학적 적자행진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 추격, 저유가에 고전 … 전통의 굴뚝산업 휘청
곳곳에 빈 도크가 보이는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국내 조선업은 발주 부진과 저가 수주 경쟁, 누적 적자에 시달리며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활력 잃은 한국 경제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에서 이탈한 기업은 화려한 과거를 자랑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STX조선·한진해운·현대상선 등등. 한 때 글로벌 조선·해운업계의 리딩컴퍼니로 승승장구했다. 200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로는 업황 부진과 실적 하락에 시달렸다. 구조조정의 수모를 겪으며 시가총액도 급감했다. 한국의 중후장대(重厚長大)산업은 수명을 다했다고 평가 받듯, 주식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에서 탈락한 기업은 총 25개다. 산업별로는 조선·플랜트·중공업이 10개로 가장 많고, 유통·상사 4개, 전기·전선 3개, 해운·물류 3개, 금융·증권 2개, 철강·건설·소재·통신 각각 1개씩이다. LS·두산 등 지주사의 경우 주력 산업군에 포함해 분류했다. 상장 폐지된 2곳(SK브로드밴드·STX조선)을 제외한 23개 기업의 평균 순위는 127단계 하락했다. 조선·중공업·플랜트 분야의 몰락이 도드라진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해운 물동량이 줄자 선박의 신규 발주가 감소한 영향이다. 여기에 매출 증대를 위한 무리한 플랜트 사업 확장과 저가 수주 경쟁이 제살을 깎아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96위 STX, 1015위로 수직 추락
조선업 가운데에서도 하락폭이 가장 큰 기업은 STX다. 96위에서 919단계 하락하며 1000위 밖(1015위)으로 밀려났다. STX는 2012년 5031억원, 2013년 1조595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후 2014년 3806억원의 반짝 흑자를 냈다. 그러나 2015년 490억원, 올 상반기까지 364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부진한 모습이다. 2008년 STX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던 영향도 있다. 2007년 1월 1만8000원대이던 STX의 주가는 같은 해 11월 15만원대로 치솟았다. 그러다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2008년 4만원대로 떨어졌다. 주가 거품 붕괴와 함께 찾아온 경영난으로 투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었다.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 무상감자는 STX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결정타는 세계 4위 조선사였던 주력 계열사 STX조선의 상장 폐지다. STX조선은 2012년 7820억원, 2013년 4조5737억 원의 막대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석유·액화석유가스(LPG)·컨테이너선 등 특수선박에 주력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와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3년 STX조선이 자율 협약에 들어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덕에 2014년 1조 3619억원의 흑자를 내며 회생의 가능성을 엿보였다. 그러나 2015년 7245억원, 올 상반기까지 1조251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희망의 끈을 놓쳤다.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자율협약 기간 중 STX조선에 약 4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거치며 STX조선을 ‘특화 중소형 조선사’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조선업 부진 속에 공허한 메아리만 남겼다. 결국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지난 5월 자율협약을 중단하고 법정관리 처분하며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렸다. STX조선의 2008년 시가총액 순위는 89위였다.

STX를 비롯한 조선·중공업·플랜트 업종은 경기 침체 이후 업황이 반등하는 ‘수퍼 사이클’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생산능력을 감축해야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승자 독식’의 시장 구조상 제살 깎아먹기가 불가피하다. 중국은 2012년부터 시장점유율 1위(수주량 기준)를 지키고 있으며 올 1~8월에는 시장점유율을 66%나 점하고 있다. 한국이 저가 수주를 통해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시장을 잠식했던 것과 유사한 양상이다. 지난 4월 불거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큰 기대가 들지 않는 이유다.

이런 관측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중공업(30→101위)·대우조선(49→162위)·현대미포조선(66→132위)·한진중공업(99→342위) 등 대부분 기업이 순위표에서 미끄러졌다. 이제 시가총액 100위 안에 드는 조선·중공업 회사는 현대중공업(25위)과 두산중공업(83위) 뿐이다.
 대우조선, 13년 번 돈 3년 만에 허공으로
한진해운이 경영난에 빠진 가운데 물류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삼성중공업은 올해 357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예상이 현실화한다면 지난해(1조2121억원 적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다. 삼성중공업은 수주 잔량을 소진하고 있어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2018년 수주 절벽에 부딪힐 것이란 비관적인 관측이 제기된다. 2015년 10월부터 11개월 동안 이어진 수주 실적 ‘0’의 고리를 끊고 지난 9~10월 유조선 9척을 신규 수주했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1조 2000억원대의 순손실을 메울 만한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특히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가능성도 열려있으며, 지분구조상 다른 계열사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려운 ‘독자생존’ 구조라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삼성엔지니어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가 총액 순위는 2008년 56위에서 올해 105위로 떨어졌다. 플랜트 저가 수주와 저유가 탓에 실적이 악화되며 지난 3년 간 누적 적자는 1조9566억원. 올해 당기순이익은 814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경영재편 시나리오 탓에 사업재편은 요원한 실정이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경직된 사업 구조 속에서 업황 변화에 맞춰 상시적 인력감축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 역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우조선은 2012년 221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이래로 2013~2015년 3년 내리 적자를 기록했다. 3년 누적 적자만 4조8532억원에 달한다. 올해도 2000억원 안팎의 순손실이 예상된다. 2000년 산업은행에 편입된 후 2012년까지 벌어들인 3조8465억원(당기순이익 기준)보다도 많다. 13년 간 벌어들인 것보다 1조원 많은 돈을 단 3년 만에 허공으로 날렸다. 대우조선은 세계 1위 현대중공업과 어깨를 견주는 회사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무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산업은행 산하에서 경영정상화에 나선 터라 꾸준한 수주와 흑자 경영을 요구받았다. 이 때문에 시장환경 악화에도 무리한 수주에 나섰다. 낙하산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특히 저가 수주 경쟁을 촉발해 조선업 전체에 피해를 입혔다는 평가도 있다.

현대미포조선과 한진중공업도 고난의 행군 중이다. 이들 회사는 극심한 경영난에도 2조~4조원대 연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골병을 앓고 있다. 지난 5월 채권단과 자율 협약을 체결한 한진중공업은 수주 부진으로 부산 영도조선소 등 생산설비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대륜 E&S·대륜발전·별내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를 매각할 계획이다. 자산 매각을 통해 현재까지 약 2조원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2014년 6793억원 적자의 실적 쇼크를 기록한 현대미포조선 역시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주머니를 튼튼하게 하고 있다. 모회사인 현대중공업과 더불어 비교적 회생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 속에 반등을 준비 중이다.
 한진해운 청산, 현대상선 회생 가능성
조선·중공업 부진의 배경이 된 물류·해운 업종도 상황이 나쁘다. 양대 해운사인 현대상선(137위)과 한진해운(467위)은 각각 108·387단계 하락했다. 해운업계의 뜨는 별이란 평가를 받던 STX팬오션은 57위에서 106위로 밀려났다. 현대상선이 경영위기에 놓이며 자회사인 현대증권도 120위로 떨어졌다. 물류·해운업은 경기 민감 업종이지만, 정기선 노선을 많이 확보하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호황기에는 투자금이 몰린다. 그러나 더 이상은 주식시장의 수퍼스타가 아니다. 1985년 지수 1000으로 시작한 발틱운임지수는 7월 707로 떨어졌고, 컨테이너 정기선 운임료도 1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 떨어지는 등 업황이 냉각됐다.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는 한진해운은 청산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회생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민간 기업의 손실을 막는 데 국민 혈세를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10여년 전 고가에 맺은 용선료 계약이 걸림돌이다. 업황이 좋을 때 정기선 노선을 뺏기지 않으려고 비싼 돈을 주고 빌린 선박 이용료가 지나치게 불어났다. 빚더미에 짓눌린 한진해운은 지난 6월 선주들과 용선료를 인하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채무 조정도 못했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 문제로 고난을 치렀지만 상황은 한결 낫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사재를 출연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냈다. 여기에 용선료를 21% 낮추는데 성공하면서 회생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글로벌 해운사의 합종연횡과 선박의 대형화, 경쟁 심화, 경기 부진, 운임료 하락 등 악재가 겹쳐있어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현대상선의 자회사인 현대증권도 모기업의 경영난을 함께 겪으며 시가총액 순위가 76위에서 120위로 내려왔다가, 현재는 KB투자증권과 합병을 앞두고 상장 폐지됐다.

STX팬오션의 경우 양대 해운사에 비해 홍역을 일찍 앓았다. 2012년 4653억원, 2013년 1조910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2013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2014년 7861억원, 2015년 45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7월 거래정지도 풀렸다. 그러나 업황 부진과 STX계열사라는 디스카운트 탓에 주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규모가 큰 조선·해운의 부진은 기계·철강·전선 등 연관산업에도 악영향 미치고 있다. 이들 업종은 전자·자동차·건설 등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에 부진이 꼭 조선·해운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중후장대산업의 분위기 침체를 대략적으로 읽을 수 있다.

굴삭기·로더 중장비와 디젤 엔진 등을 만드는 두산인프라코어는 시가총액 순위 72위에서 147위로 고꾸라졌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세계적인 중장비 회사인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2000년대 중반 관심종목으로 떠올랐다. 공격적인 투자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주목받았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각종 개발·건설 사업에 차질이 생기며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85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250% 넘는 부채비율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 영향으로 올 3월 공작기계 부문을 1조1308억원에 매각하는 등 재무건전성 강화에 힘 쓰고 있다. 핵심 계열사의 부진 탓에 지주회사인 두산의 시가총액 순위도 62위에서 102위로 떨어졌다. 주류·의류·유통 기업이던 두산의 변신은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장비·철강·전선 등 연관 산업에도 악영향
주가가 2007년 고점 대비 10분의 1가량으로 하락한 동국제강은 83위에서 227위로 크게 밀렸다. 2000년대 중반 호황기 때 수익성 제고를 위해 열연공장 등에 뛰어든 것이 발목을 잡았다. 고철값 하락과 중국의 증산 등 악재가 뒤섞였다. 연간 매출은 6조원에 달하지만 2012~2015년 4년간 누적 적자가 8704억 원에 달한다. 그만큼 수익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동국제강을 비롯해 동부제철 등 중견 제철사들이 대부분 열연 등 투자 확대에 나섰다가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해저케이블 등 대형 전선을 생산하는 LS(68→114위)와 LS산전(87→159위), 대한전선(97→126위) 등도 주가가 부진했다. 지난 4년 간 1조4363억원의 당기순손실 등 실적 부진과 경영권 불안에 시달리던 대한전선은 자본잠식 문제로 지난해 5대 1 감자와 액면분할을 벌인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상장폐지를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다. LS와 LS산전은 구리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한 때 실적 불안에 시달린 사례다.

한편 신세계(15→108위)·SK네트웍스(54→124위)·하이트진로(69→142위)·농심(91→121위) 등 일부 유통·상사 기업도 시가총액 순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신세계는 2011년 사업부 형태이던 이마트를 인적분할해 상장하면서 시가총액 순위가 많이 하락했다. SK네트웍스는 렌터카 업종의 경쟁 심화와 면세점 특허 취득 실패 등 악재가 겹치며 주가가 급락했다. 하이트진로와 농심은 매출 부진과 업종 내 경쟁 심화 등의 영향으로 시가총액 순위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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